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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 민다나오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입니다.
새벽 2시 50분에 마닐라 공항을 출발하여 약 4시간 동안 비행을 한 후 한국 시간으로 아침 8시 1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구름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창밖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밤새 앉은 채로 잠을 자다가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후 4박 5일 동안 함께 한 JTS 방문단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JTS 방문단은 각자 집으로 향하고, 스님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땀이 났는데, 한국 거리를 나서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렸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과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를 본 후 12시에 두북으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챙겼습니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텃밭에 남은 배추를 수확하고 밭 정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부터 시작된 편두통이 진통제를 먹어도 그치질 않았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편두통에 설사까지 더해졌습니다. 스님은 급하게 두북행을 취소하고 정토회관에 남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실내에서 휴식하면서 필리핀 JTS가 학교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준 미국의 한 재단에 보고해야 할 자료를 검토하고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도 정토회관에서 아픈 몸을 회복하며 업무를 볼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어제 필리핀 JTS 활동가들과의 간담회에서 나눈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살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데 정토회에서 불법을 만나고 그 상황들에 대해 이해가 됐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불법을 만나는 길 위에 있었던 거라고 이해가 됐어요. 그런데 딱 한 사람이 마음에 걸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돈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는 건지도 궁금하고요. 십여 년 전에 지인이 ‘나에게 돈을 맡기면 일 년에 받을 이자를 한 달에 주겠다. 몇 배로 불려주겠다.’고 해서, 알뜰하게 살았던 제가 그 사람에게 돈을 맡겼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던 쥐약을 먹었고 십여 년 동안 돈을 달라고 할까 말까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결국 1/5도 못 되는 돈을 받고 이 문제를 끝내게 됐습니다. 제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돈을 가져갔던 그 사람이 생각나요. ‘그 사람이 잘 안 됐으면 좋겠다’하고 불쑥불쑥 나쁜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런 마음이 저에게 굉장히 안 좋은 거 같습니다. 어차피 끝난 일인데 아직 까지 상처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재물이나 물건이나 돈은 원래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재화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인류가 소유권에 대해 사회적인 약속을 한 거예요.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줬으면 돌려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빌린 사람이 돈이 없다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방법밖에 없어요. 감옥에 보내는 것은 심리적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지 나에게 무슨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나한테 돈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 사람이 돈이 있더라도 차용증과 같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면 그 돈은 이미 내 것이 아닙니다. 심리적으로 내 것이라는 생각만 남아 있을 뿐이에요. 내 소유라고 주장하려면 법적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증거가 없으면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여기 내 돈 100만 원이 있었는데 이걸 다른 사람이 주머니에 넣어서 자기 것이라고 우긴다고 합시다. 이 경우 분쟁의 소지가 될 수는 있지만 훔쳐갔든 빌려갔든 증거가 없으면 돌려받을 수 없는 거예요.
돌려받는 방법은 그에게 인간적인 호소를 해보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돌려받을 방법이 있는데 기분이 나빠서 포기하면 내 손해입니다.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데 계속 애를 써도 내 손해예요.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아무런 진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그 문제를 계속 붙들고 살면 나만 손해입니다. 내가 나를 해치는 행동이에요. 다시 말해, 처음엔 그 사람이 돈을 가져가서 나를 해쳤지만 그 이후에 그걸 가지고 괴로워하는 것은 내가 나를 해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을 해치는 행위는 나쁘다고 말하고 나를 해치는 행위는 어리석다고 해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지금 어리석어서 이 문제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겁니다.
그걸 심리학 용어로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성추행을 당했거나, 돈을 빼앗겼거나, 어릴 때 맞았던 과거의 기억이 자꾸 되살아나서 지금 일어나는 일도 아닌데 화가 나거나 괴롭거나 슬퍼하는 걸 말해요. 이건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수행적으로는 ‘본래 내 것이 없는’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그것을 내 거라고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 돈은 질문자의 부모가 준 돈도 아니고 질문자가 번 돈이기 때문에 집착이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알뜰살뜰하게 살았다고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집착이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돈에 애착이 강한데 그것을 날려버렸기 때문에 그 순간에 겪었던 심리적 고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거예요. 계속 그 생각만 하면 다시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 생각을 한다고 해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만 괴로울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각은 그만둬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도 계속 생각이 난다면 ‘본래 내 것이 없다’는 수행적 도리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근데 그것마저도 되지 않는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서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합니다.”
“네, 지금 정신과 치료는 받고 있습니다. 약은 계속 먹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아요. 스님께서 한 말씀해 주시면 그 말씀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래서 ‘본래 내 것이 없다’라는 도리를 말씀드린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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