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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북한 전문가들과 북한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오늘은 스님이 지난 9월에 워싱턴 D.C. 를 방문하고 온 결과를 보고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한 후 향후 방향에 대해 의논을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을 배웅한 후 오전에는 눈이 잘 안 보여 안경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안경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시력이 개선되지 않아서 안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진료를 받고 나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을 했습니다. 오후 2시에는 중국에서 온 손님과 미팅을 하고, 오후 4시에는 영화감독님과 미팅을 했습니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눈 후 강연을 하기 위해 오후 5시에 평화재단을 출발했습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고려대학교 불교학생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스님을 기념식에 초청하여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청소년 시절에 고려대학교 불교학생회와 인연이 있어서 흔쾌히 강연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오자 모두가 환호를 했습니다. 청중은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고려대 불교학생회와의 인연에 대해 소개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고려대 불교학생회 창립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제가 경주 분황사에서 경주 불교학생회 회장과 영남 불교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저희들의 지도 교사를 맡으신 분이 바로 고려대 불교학생회 출신이신 안홍부 거사님입니다. 다들 아시지요? 그때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대화를 하는 데에는 무슨 사전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눌지 미리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그냥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대화에 임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질문하는 내용에 따라서 이런저런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게 됩니다. 즉문즉설은 제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누구든지 손을 들고 질문을 해 보시죠.”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에 손을 들고 질문한 사람은 고려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이었습니다. 망설이며 질문을 시작한 학생은 막막한 불안감을 꺼내 놓았습니다.
“법륜 스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희귀 난치병이 있어서 비록 맨 앞에 서 있지만 스님의 얼굴이 안 보입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저도 앞으로 나갈게요.”
스님은 질문하는 학생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학생도 스님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수술이 안 되는 희귀 난치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괴로움도 많았습니다. 스님을 보기 위해 일찍 와서 앞자리에 앉았는데, 여기서도 스님이 안 보이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도 스님의 옷자락 색깔이라도 볼 수 있는 게 어디냐 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알아차림과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동시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올 때 제가 어떻게 대처해야 덜 괴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마음이 부정적으로 일어나면,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화가 나거나, 번뇌가 일어납니다. 반면에 마음이 긍정적으로 일어나면, 감사한 마음이 들거나, 이해하는 마음이 들어서 마음이 시원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싶으면 부정적인 마음을 일으키면 되고, 편안해지고 싶으면 긍정적인 마음을 일으키면 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쥐가 접시에 담긴 고구마를 먹으려고 합니다. 여태까지 쓰레기통만 뒤지다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면 ‘이게 웬 떡이야, 나도 운이 좋을 때가 있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게 바로 쥐약입니다. 누가 쥐를 위해 접시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겠어요?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거죠. 이때 붓다는 ‘먹지 마라’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쥐약 들었다’ 이렇게만 말합니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리 맛있어도 안 먹어야 합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먹고 죽을래’ 하고 먹고 죽으면 돼요. 죽음을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자기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진실을 말할 뿐이에요. 쥐약이 들었다고 사실을 말해주었을 때 그 사실을 알면 번뇌가 사라지고 나의 선택만 남습니다. 최종 선택은 내가 해야 합니다. 붓다가 대신 선택해 주는 법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가 붓다이기 때문에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겁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데 계속 치료에 매달리면 나는 괴롭고 열등한 존재가 됩니다. 눈이 안 보이는 것이 현실이 된 지금 상황에서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안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볼 것 다 봤으니까 지금부터는 안 보여도 괜찮아. 대강 짐작할 수 있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자기 존재에 대해서 자긍심이 생깁니다. 옆에서 사람들이 걱정하면 이렇게 말해주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 난 볼 것 많이 봤어. 요즘 세상이 많이 어지러운데 더러운 꼴 안 봐서 다행이야.’
유마 거사가 아픈 몸을 가지고 법문을 했듯이 자신의 조건을 가지고 법을 설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렇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면 괴로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인공으로 만든 눈을 이식해서 넣으면 육안보다 더 많은 기능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런 날이 오면 질문자가 갖고 있는 희귀 난치병도 큰 문제는 안 됩니다.
피부 이식 기술은 화상 입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나온 기술인데 요즘은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에 많이 쓰이잖아요. 앞으로 인공으로 만든 팔의 기능이 너무 좋으면 멀쩡한 팔을 잘라내고 인공으로 만든 팔을 넣는 사람이 생길 겁니다. 마찬가지로 인공으로 만든 눈이 너무 좋으면 멀쩡한 눈을 파내고 인공으로 만든 눈을 넣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벌써 성형술은 그런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장애는 불편할 뿐이지 열등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우월한 것도 없고, 열등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서로 다를 뿐입니다. 장애를 열등하다고 생각하니까 ‘전생에 죄를 지어서 그렇다’ 하거나 ‘하나님이 벌을 주어서 그렇다’ 하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이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열등하다고 규정해 놓고 그것을 합리화시키려는 지배 논리입니다.
붓다는 ’ 무상(無常)‘과 ’ 무아(無我)‘를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존재도 열등하다고 할 실체가 없고, 우월하다고 할 실체도 없습니다. ‘브라만’이라고 성스럽다고 할 실체가 없고, ‘수드라’라고 더럽다고 할 실체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수드라가 성스러운 존재인 브라만의 그림자만 밟아도 죽임을 당했지만, 출가한 승려들은 모두 무아를 체득했기 때문에 브라만 출신인 사리푸트라와 목갈리나가 수드라 출신인 우빠리와 함께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어요. 그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민주주의와 평등사상이 서양에서 전래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최근에 서양을 쫓아가며 살다 보니까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미 2600년 전 붓다의 가르침 속에 인간 해방 사상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습니다. 팔이 하나 없는 나를 어떻게 아름답게 가꿀 것인지, 눈이 안 보이는 나를 어떻게 아름답게 가꿀 것인지, 내가 관점을 바꾸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남으로부터 동정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열등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남을 동정해 주어야지 왜 동정을 받습니까? 눈이 안 보이면 좀 불편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불편할 뿐이지 나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청중도 질문자에게 큰 박수로 격려를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를 생각해 보세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1960년에 우리나라 1인당 GDP는 100불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1인당 GDP는 3만 5천 불이 되었어요. 이러한 경제 발전을 통해서 지금 우리는 350배 행복해졌나요? 350배는 고사하고 다만 3배라도 행복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우리나라 GDP가 35만 불이 된다고 해도 현재의 방식으로는 우리의 고뇌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경제 발전을 통해서는 인간의 고뇌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제가 더 발전하면 현대인의 고뇌가 해결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60년 전 선조들의 입장에서 우리를 보면 우리는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더운 물과 찬 물이 언제든지 나오고, 차도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뇌가 가득하잖아요.
이런 고뇌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요? 바로 붓다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처님은 당시에 왕자로 태어나서 부러울 것 없이 살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싯다르타 태자를 부러워했습니다.
‘저런 남자를 남편으로 둔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런 남자를 아들로 둔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런 남자를 아버지로 둔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당대 사람들이 이런 노래를 불렀던 것이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타마 싯다르타는 번뇌가 가득했어요. 배가 고프면 음식을 구하면 되고, 옷이 부족하면 옷을 구하면 되는데, 그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데도 번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타마는 복을 빌지 않았습니다. 대신 ‘왜 괴로울까?’ 하고 탐구를 했어요.
그래서 붓다의 본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 현대인의 고뇌와 가장 근접해 있습니다. 별도로 불교를 현대화할 필요가 없어요. 바로 그대로 적용을 하면 됩니다. ‘왜 괴로울까?’ 이 질문은 바로 선(禪)의 질문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의 화두는 관념화되어서 활구(活句)가 되지 못하고 사구(死句)가 되어버렸어요. 붓다의 근본 가르침은 인류가 현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뇌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지, 기독교를 믿는지, 종교를 안 믿는지, 이러한 분별은 모두 세상의 이해 다툼이에요. 붓다가 그런 이익 집단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는 경전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붓다는 다만 고뇌하는 자에게 고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붓다는 계급 차별이 극심했던 사회에서 계급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고, 성차별이 그토록 심한 사회에서 여성의 출가를 인정했습니다. 당시에 여자는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해서 남자의 노예로 취급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노예였다가 남편의 노예였다가 아들의 노예가 되어야 했어요. 그런 시대에 아버지도 없고,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는 비구니가 된다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 자기 이름을 갖는 주인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는 정말로 획기적인 일이었어요. 불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계급 해방을 주로 말하는데, 여성 해방이야말로 불교의 위대한 사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유산이 모두 굽타 시대에 폐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스리랑카에서는 출가한 스님들의 교단이 브라만 출신과 낮은 계급 출신으로 이원화가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붓다의 가르침과 모순이 됩니까? 마찬가지로 대승이니, 소승이니, 선이니, 이런 구분은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붓다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고 있는데, 저는 오히려 지금이 불교를 널리 전할 수 있는 황금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믿고 있다는 것은 관념을 굳게 갖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깨달음을 전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관념을 벗어날 때 오히려 우리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갖고서 대화할 수 있어요. 관념을 가진 사람은 늘 그 관념을 갖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 얘기만 계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가지길 바랍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미래로 향한 옛길임을 알아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고뇌하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전법을 부지런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강연이 끝나고 스님의 열혈 팬이라는 분이 꽃다발을 전했습니다. 무대를 내려온 후 창립 60주년 축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고려대 불교학생회 회장과 대불련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을 한 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이 무대 밑으로 내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스님은 악수를 나누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은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자 밤 9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군 장병 행복학교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군인들과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화엄반 행자님들과 온라인 수련을 하고,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한 후,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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