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에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이 모두 도착하자 다 함께 식사하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김명혁 목사님이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종교인들이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기도 드립니다.”
“아멘!”
스님도 큰 목소리로 ‘아멘’ 하고 목사님의 기도에 응답했습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지난 9월 말에 미국 워싱턴 D.C. 를 방문하여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고 온 결과를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스님이 미국 방문 결과에 대해 자세히 공유해 주었습니다.
“미국에 가서 조야에 있는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전체적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단시일 내에 바뀔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첫째,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이 긴밀히 군사적 협력을 하는 게 한국의 안보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에 더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남북 간에 적절한 긴장이 있지 않으면 한국은 일본과 군사협력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남북 간에 갈등이 고조되는 것이 한일 간의 군사협력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치하는 것이 앞으로 동아시아 안보에 큰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는 중장기적 시야보다는 당장 현재의 필요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정책이 금방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째, 미국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정책은 동맹의 의사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미국이 설령 한반도에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싶어도 한국 정부가 반대하면 바이든 정부는 그걸 무시하고 추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문제를 풀면 오히려 미국 정부가 동의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취하고 있어서 미국이 이걸 무시하고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사실 해결의 열쇠는 한국 정부에 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를 움직여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놔두고 미국에 가서 이렇게 평화를 호소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A가 안 되면 B라도 해야 하니까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은 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공조 체제가 구축된 것을 자축하고 있지만, 한국 국민 대다수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한일관계가 개선되는 것에 대해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년 후 한국 정부가 바뀌면 한미일 공조 체제는 다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미일 공조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도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한국 국민의 상당수는 현 정부가 일본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편중된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가 만약 북한에 대해서도 과거를 묻지 않고 화해와 평화로 가는 파격적인 정책을 펼친다면, 편중된 정책이 아니라 과거를 뛰어넘어 미래지향적으로 가는 과감한 외교 정책을 펼쳤다고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한테도 좋은 일이고, 결과적으로 한미일 공조 체제도 공고하게 해 줍니다. 게다가 북·중·러의 공조 체제에서 북한을 빼내게 되어 북·중·러의 결속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북·중·러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동맹을 강화하니까 이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일거삼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미국의 이익을 위한 길은 북한을 저렇게 내버려 둘 게 아니라 과감하게 북한을 견인해 내는 정책을 쓰는 것입니다. 북한이 먼저 핵 폐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해봐야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해결책도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감한 정책을 취해야 합니다.
북한의 위상이 예전과는 매우 다릅니다. 과거에는 북한이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라는 뒷배가 생겼기 때문에 옛날과 똑같이 다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내용으로 미국의 조야 인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부분이 저의 이야기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는 되지 못했어요. 앞으로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으로 인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에 기술적 진전이 이루어지게 되면 북한과 협상을 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발생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국제적인 전쟁에 남북이 다 휩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소모적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고,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화약을 비축한 나라가 자본주의 진영에는 한국이고, 사회주의 진영에는 북한밖에 없어서, 최근에는 남북이 모두 무기 판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북이 모두 국제적인 전쟁의 양 진영에 각각 살상 무기를 제공하여 사람을 죽이는 데 일조하고 있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5천 년의 역사에서 침략 전쟁을 벌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직접적인 침략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는 현재 상황에 대해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모습을 보면 북한이 가진 전략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국민의 절반 이상이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유지되어 온 평화 공존 정책이 아닌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써서 이런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거죠. 팔레스타인 사람 만 명을 죽이면 뭐 하겠어요. 결국 자기 나라 사람도 죽게 될 수밖에 없잖아요.
남한과 북한의 상황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다를 게 없습니다. 남한이 가진 압도적 무력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스라엘 역시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의 적개심을 낮추는 게 평화를 가져오는 길인데, 지금 이스라엘과 미국이 취하는 태도가 과연 민주주의 진영이 그동안 말해 온 가치와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나요?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국제적인 도덕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한 정부도 한결같이 가치 외교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최근의 행보를 보면 그 ‘가치’라는 게 도대체 무슨 가치인지 의문입니다. 처음부터 실리를 내세웠으면 그래도 괜찮은데, 가치 외교를 주장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니까 국민은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까지 미국을 다녀온 결과를 공유하자 종교인 분들은 큰 박수로 스님의 노력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박남수 전 교령님은 스님이 민간 외교 사절단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스님께서 이번에 미국의 조야 인사들을 만나 대화를 하고 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입니다. 국가의 명을 받아 행동하는 사람이 외교관인데, 외교관이 아닌 스님께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민간 외교 사절단의 역할을 하고 오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 측에서도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정부 각료들한테서 듣는 것과 민간한테서 듣는 것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 우리나라 민간의 목소리를 전했다는 점에서 스님의 이번 미국 방문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목소리는 선거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이지만, 민간의 목소리는 평화를 향한 본성의 소리입니다.
이번에 스님이 물꼬를 트셨으니까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세계만방에 알릴 것인가?’ 하는 다음 단계의 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종교인 모임의 이후 역할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토론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반도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종교인 모임이 올해 연말쯤에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 게 좋을까요? 안 그러면 내년 총선 끝난 후에 정말 나라를 위해서 정치 지도자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요?”
종교인 분들은 다양한 의견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미국의 조야 인사들이 과연 스님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은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미국은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한반도보다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더 급선무인 상황입니다. 중국을 견제하려면 한국과 일본을 묶어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관심만 가진 것 같아요.
제가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가 확산되는 문제가 매우 위험하다고 하니까, 미국 전문가 중 한 명은 별로 급한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물어보았어요.
‘북한이 핵을 만들기 전에는 위험하다고 하면서 4자 회담과 6자 회담을 만들어서 온갖 난리를 피웠는데, 지금은 핵을 만들어서 확산까지 하려고 하는데 별로 급하지 않다면, 옛날에 위험하다고 한 말이 다 거짓말이냐? 아니면 옛날에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보다 10배 더 위험한데 왜 방치하느냐?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
이에 대해 제대로 대답을 못 했습니다. 다만 미국 의회 관계자 중 한 명은 북한이 과연 약속을 지키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는데, 제가 당연히 안 지킬 가능성이 크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왜 약속하느냐’고 반문하길래 ‘내버려 두는 것보다 약속하고 감시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약속을 지킬 수도 있고 안 지킬 수도 있지만, 설령 안 지킨다 해도 약속해 놓고 감시하는 것이 외교적 우위를 점유하는 방법이니까요.”
“아주 설득을 잘하셨네요.”
스님은 향후 미국 의회 관계자들을 더 많이 만나서 설득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 미국에 사는 한국 이민자가 2백만 명이 넘고, 그중 시민권자는 약 100만 명이 됩니다. 그중에는 이산가족도 10만 명이나 됩니다. 미국 의회에서 이산가족 상봉 법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그 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전혀 추진하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이산가족 1세대가 나이가 들어가니까 이젠 죽은 뒤에 뼈라도 고향에 묻고 싶다는 요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얘기입니까. 미국은 70년 전에 죽은 미군 유해를 발굴해 온다고 난리를 피워놓고 왜 이산가족의 아픔에는 침묵하냐고요. 이 문제는 단순히 한국의 문제가 아니고 10만 명이 넘는 미국 시민들의 아픔입니다. 그 아픔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빨리 이산가족 상봉의 물꼬를 터야 하고, 죽으면 뼈라도 고향에 묻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죽어서는 수목장 사업을 추진해 줄 것을 미국에 요청했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달 모임에서 이후 종교인 모임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토론하기로 하고 9시가 넘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분들을 배웅한 후 곧바로 정토회관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주간반을 위한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지난 한 주간의 소식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저는 꽤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인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경주로 가을소풍을 다녀왔습니다. 경주 불국사와 대릉원, 첨성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은 베트남 불교상가 위원회(VBS)에서 오신 큰스님들을 맞이해서 안내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이틀간은 두북수련원에서 한 해 동안 농사지은 벼를 추수했습니다. 요즘은 농기계가 좋아져서 이틀 만에 7천 평이 넘는 논의 벼를 다 벨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많은 일정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지난 일주일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많은 행사가 8분 동안의 영상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스님의 활동 모습에 이어서 곳곳에서 봉사한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에 비치자 감동이 배가 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봉사 덕분에 모든 일정을 차질 없이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봉사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세 명이 질문을 신청하여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모진 말을 해서 상처를 받았지만, 남편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13년이 되었는데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손위 시누이가 둘이 있는데 사는 형편에 비해서 인색한 편입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4살 때 집을 나가셨다가 최근에 연락이 와서 다시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제가 싫으신지 모진 말로 상처를 주곤 하십니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 시아버지를 결혼 초에 모시고 살 당시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두 번이나 유산했습니다. 남편은 항상 시댁 식구들 편을 들어왔고, 그래서 저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크면 이혼하려고 참으며 살고 있는데,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약을 4년째 먹고 있습니다.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했던 모진 말들이 자꾸만 저를 괴롭게 합니다.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남편이 밉고,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을 쓰레기봉투 열어보듯 열어보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지난 일을 떠올려 화를 일으키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아이들이 클 때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 야단을 치실 줄 알지만, 저에게 맞는 답을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수행적 관점이 잘못 잡혀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악물고 ‘아이들이 클 때까지 참고 살겠다.’ 하는 관점은 현재에 깨어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질문자처럼 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에는 터지게 됩니다. 후회하다가 다시 이를 악물고 참고 살게 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살면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자가 사는 방식은 수행적 관점에서 볼 때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수행이란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기’입니다.”
스님이 질문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아침밥 먹었습니까?”
“예. 먹었습니다.”
“옷을 입었습니까?”
“예. 입었습니다.”
“잠은 잘 잤습니까?”
“예. 잘 잤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잠도 잘 잤는데, 무슨 괴로움이 있다는 겁니까? 아이들이 건강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고, 남편도 직장을 다니고 있잖아요. 따지고 보면 질문자는 아무런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이런 관점을 딱 가질 때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남편과 이혼할지 안 할지는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살만하면 살고 헤어질 만하면 헤어지면 될 일입니다.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십 년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생각하면서 살고 있으니 지금 여기에 깨어있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수행적 관점이 잘못 잡히면 질문자처럼 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란 것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한테 꼭 들어맞는 답을 찾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다른 상황들을 살펴보고 거기에서 내가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정답이란 늘 시간과 공간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정해진 답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비슷한 상황들을 참고해서 그때그때 놓인 상황에 맞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면서 ‘정답을 달라’, ‘스님이 무슨 답변을 하실지 알겠다.’, ‘야단맞을 것 같다’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생각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태도입니다. 만약 내가 힘든 상황이라면, 법문을 참고해서 ‘내가 이렇게 마음을 가지면 되겠구나’ 하고 내가 자유로워지는 방향을 찾으면 될 일입니다. 그게 잘 안 되면 ‘연습 부족이구나’ 하고 연습을 계속해야지 묻는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말 모르겠거나 연습해도 잘 안될 때, 스님에게 질문을 해서 도움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지 자꾸 정답 찾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무유정법(無有定法)’입니다. 정해진 법이 없다는 관점이 딱 서야 합니다. 정답이 있다고 생각해서 정답 찾기를 하게 되면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 하는 생각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중도를 벗어난 관점입니다. 그래도 질문자가 굳이 질문을 하니까 답한다면, 질문자는 지금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밥을 굶었다면 밥을 먹어야 하고, 입을 옷이 없다면 헌 옷이라도 주워 입어야 하고, 살 집이 없다면 남의 집 처마 밑에서라도 자야 합니다. 이렇게 삶에 필요한 의식주 세 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의식주에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지구상에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아이들도 있는데 질문자는 아이가 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된다는 이유로 주변을 문제 삼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세상은 원래 내가 원하는 만큼 될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잘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1등 하기를 원하면 1등을 못 하는 아이가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남편이 직장에 잘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찍 들어오기를 원하면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큰 문제가 되는 거예요.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는 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내가 바라는 만큼 공부를 잘해야 하고, 남편은 나만 위해 주어야 하고, 시댁은 늘 나에게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데,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불만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시댁하고 안 봐야겠다든지, 남편 하고 같이 못 살겠다든지, 이런 식으로 이혼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정말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못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혼하려니까 질문자가 생활하는 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 핑계를 대고 아이가 클 때까지는 이혼을 미룬다고 말하는 겁니다.
남편도 자기 인생이 있는데, 모든 걸 다 나한테 맞추어 달라고 요구하면 어떡해요? 질문자에게는 시어머니이고 시누이지만, 남편에게는 자신의 엄마이고 자기 형제입니다. 부인과 아이들은 내 쪽 사람이니까 자연적으로 무슨 갈등이 생기면 ‘당신이 참아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게 시댁을 편드는 게 아니에요. 형제로서 여동생이나 누나가 어렵다고 하면 도와줄 수가 있잖아요. 아들로서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하잖아요. 질문자도 자기 아이가 자기 말을 잘 들으면 좋잖아요. 남편은 내 남편만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아들이란 말이에요. 아들이라면 어느 정도 엄마의 말을 들어야 하잖아요. 남편이 당장 시댁에 돈을 다 줘버렸다면 문제를 제기할 만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내가 도와줘서 잘 크고 있듯이 남편이 크는 데는 시댁에서 많은 도움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시댁에 남편의 수입 중에 일부를 나눠줘야 하고, 내 시간 중에 일부를 시댁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이 시댁의 편을 든다고 ‘아예 그냥 시댁에 가서 살아라.’ 하잖아요.
질문자의 행동은 마치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남북의 평화를 호소하는 사람에게 북한에 가서 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자고 하면 친일 세력이라고 하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너무 극단적으로 가는 건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친중 세력이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이런 식으로 그냥 다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멋대로 규정해서 배척하는데 이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이렇게 상대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쟁이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질문자도 남편을 가만히 살펴보고 이해를 한번 해보세요. 남편이 특별한 게 아닙니다. 남편은 자신이 자란 환경에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오빠가 동생을 외면하면 밖에서 다 욕하잖아요? 동생이 누나를 외면하면 다 욕하잖아요? 아들이 부모를 외면하면 다 욕하잖아요? 질문자에게는 내 부모도 아니고 내 형제도 아니니까 ‘나하고 결혼하고 왜 자꾸 시댁에 신경 쓰냐?’ 하고 반발하지만, 남편에게는 그들이 자기 형제들이고 자기 가족입니다. 결혼해서 살려면 ‘상대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하는 대로 어느 정도 놔둬야 하는 거예요.
질문자가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관점이 잘 안 바뀌는 이유는 질문자가 우울증이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바꾸려고 해도 안 된다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첫째, 본인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신질환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우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둘째, 상대방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편안해져요. 남편이나 시어머니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내가 편안해지면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과도 생깁니다. 이렇게 해서 살만해지면 계속 살아도 됩니다.
그러니 우선 나를 먼저 치료하세요. 세월이 흘러서 아이들이 다 크고 난 뒤에도 이런 결혼생활은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으면 그때 그만 살아도 됩니다. 한번 결혼하면 반드시 끝까지 살아야 한다거나, 힘들면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거나, 이렇게 정해진 법이 없어요. 언제든 자기가 못 살겠으면 그만 살면 됩니다. 이혼하기로 했다면, 아이들은 누가 양육할 것인지, 양육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재산 분할은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복잡한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합니다.
아이들도 두고, 재산도 두고, 몸만 싹 빠져나오겠다고 하면 이혼하는 게 간단합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집을 나오면 됩니다. 남편에게 ‘여보, 나는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어. 애들은 당신이 키우고 나는 갈게’하고 나오면 됩니다. 그런데 집이나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재산 분할이나 양육권 분쟁까지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많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망설이는 거예요. 질문자는 재산과 양육권을 포기하지 못할 테니까요. 재산과 양육권을 포기하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내일이라도 집을 나오면 끝이에요. 그러나 이혼하면서 이익을 챙기려고 하면 남편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서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서로 싸우는 동안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어서 성인이 되면 부모가 서로 싸우더라도 상처를 덜 받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살아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이라도 이혼을 결정하고 집을 나가버리면 됩니다.
그게 어렵다면, 첫째,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합니다. 둘째, 나부터 우선 살아야 하니까 이혼은 못 할망정 더 이상 남편과 시댁 식구들 사이에 간섭하지 않아야 합니다.
‘밥 먹으면 됐고, 옷 입으면 됐고, 잠자면 됐다. 아이가 안 아프면 됐다. 그 외에 일들은 어떻게 하든지 남편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혼은 아이들이 다 큰 뒤에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됩니다. 같이 살 만하면 계속 살고, 영 못 살겠으면 그때 헤어지면 됩니다. 미리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도저히 못 살겠다면 몸만 나가세요. 이렇게 생각하면 내일 나가도 괜찮아요. 몸만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앞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같이 살려면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꾸준히 치료받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현재에 깨어있도록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공개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이번 달 세미나의 주제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시민행동’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정필 소장님이 세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소장님은 전 세계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기후 발생 분포를 소개하면서 기술적 해결책과 주요 쟁점들, 기후정의 선언의 핵심 테제들을 알려주고, 탄소 중립 기본법, 지역별 특성화된 탄소 중립 이행전략 등 다양한 대안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도 소장님의 발표 내용을 경청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의 활동과 전국 으뜸절에서 진행된 실천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난 후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노점상 노인들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마음이 쓰이는데, 관점을 어떻게 가지면 좋을까요?
공양간에서 봉사하며 외부손님 접대할 때 음식이 남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러한 정토회의 손님 접대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할지요?
정진할 때 절을 108번 하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 궁금합니다.
범죄마다 형량을 정하는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달아 미팅하고, 저녁에는 고려대 불교학생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2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