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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霜降)입니다. 상강이란 서리가 내린다는 뜻입니다. 서리가 내린다는 것은 곧 겨울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농부들이 수확을 마무리하느라 가장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을에는 수확도 하지만 심는 작물도 있습니다. 바로 보리입니다. ‘한로 상강에 보리 파종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스님은 새벽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해가 뜨자 문수팀 행자님들과 파종할 보리를 들고 산아랫밭으로 갔습니다. 산아랫밭은 얼마 전 고구마를 수확하고 다시 빈 땅이 되었습니다. 농사팀이 트랙터로 땅을 갈아 놓아 곧바로 보리를 심었습니다.
보리를 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보리 낱알이 한 곳에 뭉치지 않게 흩뿌려주면 됩니다. 스님과 문수팀 행자님들은 가벼운 손놀림으로 넓은 밭에 보리를 골고루 뿌려주었습니다.
밭 한쪽은 땅이 덜 갈려있었습니다. 묘당법사님이 트랙터로 땅을 갈자 스님과 행자님들이 마른 풀더미를 걷어냈습니다. 풀은 밭 한쪽에 거름으로 만들기 위해 모아두었습니다. 밭을 다 갈고 남은 땅에 보리를 다 뿌렸습니다.
보리를 다 뿌리고 나자 묘당법사님이 트랙터로 흙을 덮어주었습니다.
9시가 되어 문수팀 행자님들이 밭 바깥에서 사시예불을 드리고 스님은 산밑밭으로 갔습니다. 서리가 내리는 날씨에도 꿋꿋이 자라고 있는 작물을 찾아냈습니다.
“날이 추워지니 벌이 없어져서 수정이 잘 안 되네요.”
스님은 호박 수꽃을 꺾어 암꽃에 직접 수정을 해주었습니다.
수확한 작물을 모아보니 바구니가 묵직했습니다.
다시 산아랫밭에 가보니 땅이 다 덮여있었습니다. 행자님 한 명이 남아 밭에 물을 주고 스님과 다른 행자님은 논으로 갔습니다.
800평 논에서 농사팀 행자님들이 수확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오신 콤바인 기사님은 콤바인이 돌아 나오며 벼를 수확하면 된다며 모서리에 벼를 베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논은 지난주에 베트남 청년들과 모서리를 베어놓아서 논에는 더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 저는 다른 일을 할게요.”
스님은 배추밭으로 가보았습니다.
행자님은 배추와 무에 물을 주고 스님은 주변에 난 풀을 뽑았습니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어제 거름을 주고 갈아놓은 텃밭에 마늘을 심었습니다.
마늘을 땅에 콕콕 심어놓은 후 흙을 체에 걸러 덮었습니다.
상추모종도 옮겨 심었습니다. 땅에 물을 듬뿍 준 후 여린 상추 모종을 조심스럽게 옮겨 심고, 체에 거른 흙으로 덮었습니다.
“밭에 가서 또 일을 시작하면 출발시간이 너무 늦어지겠네요. 여기까지 하고 마칩시다.”
사용한 도구를 깨끗이 씻어 창고에 둔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작업복을 갈아입고 간단히 씻은 후 짐을 챙겨 오후 4시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해가 지고 저녁 8시가 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고, 주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한 후, 오후에는 '에너지 전환과 시민행동'을 주제로 평화재단 공개 세미나를 하고,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영어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의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지난달에 스님의 영어 즉문즉설 강연에 친구를 초대했어요. 친구는 오랫동안 불교를 공부하고 있는데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들으며 의문이 생겼다고 합니다. 불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며 스님께서 붓다의 가르침을 알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질문에 답변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랫동안 즉문즉설 강연을 해오고 있는데, 이런 대화 형식의 강연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핵심 목표는 인간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네 가지로 나누어서 접근했습니다. 첫째, ‘괴롭다’ 하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둘째,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 원인을 제거하면 괴롭지 않은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넷째, 앞으로 괴로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고집멸도(苦集滅道), 즉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즉문즉설은 이 사성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음으로써 본인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제가 묻고 상대가 답하는 과정에서 그 괴로움의 원인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대화 중에 질문자는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아, 별일 아니었네’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세 번째 단계입니다. 집에 돌아가서도 괴로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네 번째 단계입니다. 사성제를 통해 인간의 괴로움을 없애려고 했던 붓다의 방식을 제가 지금 즉문즉설을 통해 행하고 있는 거예요.
붓다는 사람들과 만나서 불교 교리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아들이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 등 온갖 사람들이 삶 속에서 겪는 괴로움을 가지고 와서 붓다에게 호소하면 붓다는 이런 대화 방식을 통해서 그들을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했습니다.
이러한 대중과 붓다의 수많은 대화를 분석해서 그 원리를 가지고 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점점 학문화된 것이 철학으로서의 불교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붓다를 믿으면 모든 괴로움이 없어진다’, ‘붓다를 믿으면 네가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진다’ 하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발전한 것이 종교로서의 불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불교는 종교로서의 불교와 철학으로서의 불교, 이 두 가지입니다.
저는 붓다의 고유한 방법에 따라 불교를 실천하다 보니까 위의 두 가지 방향과는 사뭇 달라 보일 겁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지식은 그냥 지식일 뿐입니다. 그 지식을 안다고 해서 우리의 고뇌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근본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즉문즉설이 바로 부처님이 행하신 담마 토크(Dharma Talk)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단순히 불교에 대한 교리를 설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가진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제가 즉문즉설을 하는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담마 토크의 원리나 법칙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담마 토크의 원리와 법칙은 바로 사성제, 팔정도, 중도, 연기법, 무상, 무아 등 불교의 교리입니다. 이런 원리를 알고 싶다면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런 원리에 대한 설명이 바로 불교 철학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목표는 이런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불교의 목표입니다.
자동차 운전을 한번 비유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자동차가 움직이는 원리를 잘 몰라도, 액셀레이터를 밟고,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돌리고, 이런 몇 가지 기능만 알아도 운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해서 편리함을 누립니다. 그러나 왜 핸들을 돌리는데 차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느냐, 왜 엑셀레이터를 밟는데 차가 앞으로 가느냐, 어떤 이유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서느냐, 이런 의문점을 이해하려면 차의 구조나 작동 원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동차 정비사가 하는 일입니다. 물론 정비도 할 줄 알고 운전도 할 줄 알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정비를 할 줄 몰라도 운전을 할 수 있고, 자동차를 이용하여 편리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즉문즉설 강연에서 저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의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운전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간단한 원리를 배워서 자기 생활에 적용하면 자유롭게 살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불교교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정토불교대학을 마련한 것입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불교의 원리와 법칙에 대해 자세히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전법을 담당하는 정토회의 전법활동가는 어느 정도는 이런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운전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정비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운전만 가르치면 되지 정비까지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운전을 못하는 정비사도 있을 수 있고, 운전을 할 줄 아는데 자동차를 정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를 수도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연구하고 불교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도 실상 자신의 고뇌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학교 교수는 될 수 있고, 박사는 될 수 있더라도, 자신을 괴로움이 없는 해탈의 길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즉문즉설의 목표는 사람들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소수라 할지라도 불교의 원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지만요.”
“네,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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