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0.18.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가을 나들이, 수행법회
“사춘기 아들과 소통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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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경주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애광원과 스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20년 전입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남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거제도에 있는 애광원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때, JTS가 애광원의 피해복구를 도왔습니다.

피해복구가 끝나고 스님이 김임순 원장님에게 앞으로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겠냐고 물으니 원장님은 '장애인들은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나들이를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정토회에서 매년 봄과 가을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다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2019년 가을을 끝으로 나들이를 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4년 만의 외출입니다.

스님은 새벽부터 베트남 스님들에게 소개할 ‘한국 불교의 역사와 정토회 소개’ 자료를 교정한 후 9시에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불국사 주차장에 도착하자 파란 조끼를 입은 경남지부 정토회원 45명이 애광원 식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 애광원 식구들을 함께 기다렸습니다. 10시가 넘어 애광원 식구들이 탄 버스 2대가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경증 장애가 있는 35명의 원생을 비롯하여 대표이사님과 10명의 선생님이 함께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스님은 버스 문 앞에서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반가워요!”

“스님, 안녕!”

스님의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린 애광원 식구들은 다시 봉사자와 손을 잡았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함께 나들이할 짝지입니다. 4년 만이지만 봉사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와락 껴안는 분도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원생들은 먼저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스님은 불국사 안내도 앞에서 애광원 식구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렸습니다. 원생들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4년 만이네요. 오랜만에 나오니까 어때요?”

“좋아요!”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가을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에 기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곧 원생들이 다 모였습니다.

“자, 제 이야기 들려요? 이 절은 불국사입니다. 1300년 전에 지었어요. 언제 지었다고요?”

스님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원생들은 스님의 말을 크게 따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절이에요. 그럼 우리 불국사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사진을 찍고 불국사로 들어갔습니다. 경내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봉사자들은 거주인들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갔습니다.


천왕문을 지나 청운교, 백운교 앞까지 걸어왔습니다. 원생들을 나무 아래 앉도록 하고, 봉사자들은 뒤에 선 채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요. 여러분 앞에 계단이 쭉 올라가 있는 게 보이죠. 이것을 청운교, 백운교라고 해요. 뭐라고요?”

“청운교, 백운교!”

“청운교, 백운교를 올라가면 부처님의 나라가 있어요. ‘청운의 뜻을 품고’ 이런 말 들어봤어요? 청운이란 젊음의 용기를 상징해요. 백운이란 흰 구름을 말해요. 어른들이 ‘인생이 백운 같다’라고 말하죠. 나이가 들면 ‘세상일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다 무상하다.’라는 걸 알게 돼요. 이런 걸 깨달으면 부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해서 청운교, 백운교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스님은 축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앞에 축대를 보세요. 축대 맨 밑은 자연석으로 쌓았어요. 굵은 돌, 작은 돌을 깎지도 않고 막 쌓았는데 저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는 큰 물건도 있고 작은 물건도 있고,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마음이 넓은 사람도 있고 좁은 사람도 있어요. 저렇게 다 크고 작고와 관계없이 다 자기 역할을 하고 살아요.

그 위층은 기둥을 반듯반듯하게 정기적으로 세우고, 그 사이에는 돌을 끼워놨죠? 얼른 보면 깎은 것 같은데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자연석입니다. 기둥이 저렇게 반듯반듯하게 자기 위치를 잘 지키고 있으면, 가운데 돌들까지 다 깎을 필요가 없어요. 생긴 대로 착착 맞춰서 쌓아도 기둥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기둥 사이의 돌은 깎지는 않았지만, 바깥으로 드러난 한 면은 평평합니다. 다른 면은 울퉁불퉁해도 적어도 한 면은 평평해요. 성인은 반듯한 기둥처럼 많은 부분이 다듬어져야 해요. 보통 사람은 그냥 생긴 대로 살아도 좋지만 한 가지는 성인을 닮아야 이 세계가 유지된다는 것을 뜻해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부를 하든지 오늘처럼 이렇게 봉사하든지 뭐든지 한 가지는 성인과 같은 행동을 하는 거예요.”

“네!”

오르막길을 올라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다보탑 앞에서 스님은 목어, 운판, 법고, 범종을 설명하고 대웅전의 뜻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대웅은 큰 영웅이라는 뜻이에요. 우리는 남은 이겨도 자기를 잘 못 이깁니다. 화를 못 다스리고, 욕심을 못 다스리고, 성질을 못 다스려요. 그래서 진짜 영웅은 남을 이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에요. 부처님은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일 큰 영웅이라고 하는 거예요.”

원생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다보탑 앞에서 조별로 기념사진을 찍고 무설전을 지나 비로전으로 갔습니다. 비로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의 손 모양을 스님의 설명에 따라 다 같이 따라 해 보았습니다.




사리탑과 나한전을 지나 극락전으로 이동하기까지 가파른 돌계단과 턱이 많았습니다. 봉사자들은 원생들과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내렸습니다. 극락전에는 황금복 돼지상이 있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복돼지도 쓰다듬어보았습니다.


극락전까지 다 둘러보고 다시 청운교 백운교 앞으로 내려와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고 조별로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4년 만에 만난 기념으로 오늘은 사진을 더 많이 찍었습니다.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후문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봉사자들은 떡갈비를 잘게 썰어서 원생들의 숟가락에 올려주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 식당 앞에서 커피도 한 잔씩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에는 대릉원 천마총으로 갔습니다. 천마총에 들어가기 전에 스님이 천마총과 천마도, 박혁거세 설화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대릉원입니다. 대자는 크다는 뜻이고 능은 무덤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큰 무덤이 있는 공원이에요. 여기 보이는 이 무덤을 발굴 조사했을 때 자작나무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이 발견됐어요. 그래서 이름을 천마총(天馬圖)이라고 붙였습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썩는 게 아니고 무덤 안에서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솥이나 밥그릇 같은 온갖 살림 도구를 다 무덤 안에 넣어줬어요. 이제 무덤에 들어가서 그런 유물들을 한번 보는 거예요. 여러분, 무덤에 들어가 본 적 없지요? 그럼 이제 한번 들어가 볼까요?”

“네!”

무덤으로 들어간다는 말에 원생들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스님을 따라 설레는 얼굴로 무덤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기가 무덤 속이에요. 무덤 속에 들어와 보니까 기분이 어때요?”

“재밌어요.”

천마총 내부에 전시된 유물을 보며 원생들은 스님의 설명대로 솥과 밥그릇을 찾아내고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진짜, 밥그릇! 밥그릇!”


천마총을 나와 첨성대로 걸어갔습니다.




넓을 들판을 지나 첨성대 가까이 걸어오니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었습니다.

“우와!”


원생들은 감을 보고도 기뻐했습니다. 첨성대 앞에서도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여기는 첨성대예요. 어디라고요?”

“첨, 성, 대!”

스님의 재미난 설명을 듣고 첨성대를 나와 계림으로 향했습니다.

“자, 노래 부를 사람 나와 봐요.”

한 원생이 신나게 달려와 스님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았습니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가을에 딱 어울리는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스님도 원생들도 함께 합창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때때로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대로 참 아름다웠습니다.

해바라기가 활짝 핀 꽃밭 앞에서 스님은 다시 노래 부를 사람을 찾았습니다. 다른 원생이 마이크를 잡고 혼을 다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란 해바라기 꽃밭을 지나니 이번에는 분홍빛 핑크뮬리밭이 펼쳐졌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멈춰 서서 스님은 다시 원생들에게 마이크를 건넸습니다.


“날 두고 가지 마오. 가지 마오-”

한 원생은 가지 마오를 반복해 불렀습니다. 원생의 짝지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스님 가지 마시라고 부르는 노래인가 봐요.”

원생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고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자, 이따가 또 노래를 부릅시다.”

아름다운 꽃밭을 지나 계림으로 들어갔습니다. 계림은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에 있는 숲으로 신라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깃든 곳입니다.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숲을 지나 경주 최부자 아카데미로 갔습니다.



경주 최부자 아카데미에 도착해 툇마루에 앉아 함께 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정토회원이자 경주문화유산해설사인 이수진 님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이수진 님이 레크레이션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원생들이 줄을 지었습니다.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원생들이 많아 기회는 딱 한 번만 주어졌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나의 바람이었어.”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


어눌하지만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도 있었고, 가사를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노래였습니다. 그 어떤 가수보다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원생들은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한 원생은 이 구절을 부르며 스님이 있는 쪽으로 계속 손을 뻗었습니다. 스님은 활짝 웃으며 합장으로 화답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쉽지만 해가 저물 듯, 나들이를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스님은 애광원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재밌었어요?”

“네!”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불국사, 천마총, 첨성대, 여기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습니다.

“오늘 많이 걸었는데 다리는 안 아파요? 더 걸을 수 있어요?”

“네!”

“그럼 계속 걸을까요?”

원생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좋았지만 힘들었나 봅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4년간 못 만났죠. 앞으로는 계속 만날 거예요.”

“네!”

“애광원 선생님들 수고하시니까 선생님들 말 잘 듣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고요. 오늘 노래할 때처럼 기분 좋게 지내야 합니다. 알았죠?”

“네!”

“내년 봄에 또 보도록 하겠습니다.”


봄에 또 보자는 이야기에 원생들은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이어서 송우정 애광원 대표이사님도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친구들, 오늘 좋은 시간 가졌죠? 우리가 코로나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갔었잖아요. 그런데 법륜스님은 몇 년 동안 우리를 잊지 않고 무도 갖다 주시고, 가지도 갖다 주시고, 쌀도 갖다 주시고, 김치도 가져다주셨잖아요.”

“네!”

“너무 감사했습니다. 정말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나들이를 온다고 우리 친구들이 어제 밤잠 설레고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이렇게 시간 내시는 게 절대 쉽지 않은데 스님과 정토회원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 선생님들이 ‘나들이 나온 중에서 제일 쉬웠다.’라고 했어요. 봉사자님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할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 거주인들과 선생님들에게 전해져서 살아갈 힘을 얻어갑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불러주시고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애광원 선생님을 대표해서 이경미 님도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다 표현을 못 하시니까 제가 대신해서 마음을 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경주에 오시기 전부터 오랜만에 나들이 가신다고 참 좋아하셨어요. 아까 저희 선생님끼리 이야기했지만, 오늘 친구들이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얼마나 오고 싶었는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그게 다 마음으로 느껴졌습니다. 다 여러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또 만날 때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짝지와 손을 잡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월정교를 건넜습니다.




월정교 주차장에서 스님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오늘 밤에 서울로 갈 준비를 해야 해서 저녁 식사는 하지 않고 가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

애광원 식구들과 정토회 봉사자들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고 스님은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오늘 저는 지적장애인들을 보호하는 애광원에 살고 있는 분들과 함께 불국사를 구경하고, 천마총, 첨성대, 반월성, 계림 숲을 돌며 가을 산책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가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들판에서는 벼 베기가 한창인데요. 콤바인을 이용해서 베다 보니 며칠 사이에 벌써 전체 논의 3분의 1 가량은 벤 듯합니다. 아마도 다음 주에는 곳곳이 빈 들판이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일일이 낫으로 벼를 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요즘은 모내기도 농기계가 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모를 심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창 바쁜 농번기인 모내기 철과 벼 베기 철에는 학생들도 일주일씩 방학을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농번기에 학생들이 농사일을 돕거나 하지는 않죠. 여러분들은 지금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이어서 전국 으뜸절에서 진행된 회원들의 활동 모습과 스님이 지난 5일 동안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농사일한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영상보기

영상을 보고 나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춘기 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춘기 아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반응하기가 싫어집니다. 아들과 거리를 두려면 하숙집 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너무 방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사춘기는 제2의 성격 형성 시기인데 그래도 아들에게 관심을 좀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적당한 마음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요?”

“아주 마음씨 좋은 하숙집 주인 같은 역할을 하면 되겠네요. 질문자가 하숙집 주인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니까 그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숙집 주인 중에는 밥만 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돈만 받으면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보다는 비록 남의 집 아이이지만 ‘혹시 밥은 잘 챙겨 먹나?’, ‘혹시 아픈 곳은 없나?’ 하고 살펴보는 하숙집 주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반면에 부모는 하숙집 주인처럼 지켜보기보다는 왜 밥을 안 먹었냐?’, ‘왜 공부를 안 하냐?’ 하고 간섭을 하죠. 만약 하숙집 주인이 간섭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그 하숙집을 나가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하숙집 주인은 좋은 마음으로 관여를 하더라도 지나치게 간섭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간섭하죠. 관심을 갖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항상 지나치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나치게 하는 것은 멈추어야 합니다. 관심은 갖되 지켜봐야 하고, 표현은 하되 강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소통이란 무엇일까요? 질문자는 지금 아이와 소통이 안 된다고 하는데, 소통이란 아이가 내 말을 잘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와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하는 걸 보니 아이가 내 말을 안 듣는다는 거죠? (웃음)

소통이란 상대가 내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이가 내 말을 안 듣는다’ 하고 말하는 것은 아이에게 독재가 안 통한다는 얘기입니다. 아이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무조건 들어주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때 아이의 마음은 어떤 상태였는지 그냥 들어 보는 겁니다. 아이가 뭐라 말하면 먼저 들어 보는 자세를 갖고, 아이의 말이 내가 용인할 수준이고 아이와 합의가 되면 ‘그래, 그렇게 해라’ 하면 됩니다. 합의가 안 되면 ‘엄마는 그렇게 못 하겠다.’ 하면 됩니다. 이것은 강요도 아니고, 간섭도 아닙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내가 승낙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내가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결정권이 나한테 있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있는 거예요. 그걸 받아들이든지 안 받아들이든지를 아이가 결정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이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결정권이 나한테 있습니다.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내가 결정해야 하니까요. 그것은 간섭이 아니에요. 들어줄 만하면 승낙하고, 들어주기가 어려우면 거절하고, 상대가 넘긴 공을 내가 받아서 처리만 하면 됩니다.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어질러 놓은 물건을 안 치워요. 저는 이런 습관이 성장하면서 책임감과 연결될까 봐 걱정되어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지고 정리하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지인이 사춘기 아이는 집에서 좀 편안하게 해 주라고 해서 그냥 바라보기만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혹시 아이의 성장에 악영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한 번은 친구 사이에 쓰던 말투를 저한테도 써서 화가 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자기도 모르게 친구 사이의 말투를 저한테 썼다고 제가 화를 내는 건 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경우 제가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합니다.”

“그렇게 불편한 자식하고 한 집에서 어떻게 살아요? 무슨 외간 남자하고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시 말해 질문자는 자식의 눈치를 보고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의 눈치를 보고 산다는 건 질문자에게 아주 큰 스트레스죠. 그렇게 살면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아이가 방을 어지르면 당연히 엄마로서 방을 치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치우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말하는 것과 ‘왜 방을 어질러 놓고 다니느냐? 치워라!’ 하고 화를 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아들이 방을 치웠으면 좋겠다면 방을 치우라고 의견을 전달하는 선에서 말을 하면 됩니다. 방을 안 치웠다고 야단을 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자기 방을 안 치웠다고 왜 야단을 쳐요? 자기가 그렇게 살겠다는데요.

방을 안 치우는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관점이 잡혀 있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 아이의 인격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는 도와줘야 합니다. 부모로서 방을 치우라고 말은 해줘야 해요. 그러나 그것을 하고 안 하고는 아이가 결정할 일이므로 그것을 안 한다고 해서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하더라도 엄마로서는 아이가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이야기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의견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엄마로서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걸 강요하는 것은 지금 법적으로도 아동 학대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본인의 생각을 아들에게 강요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어지러워진 방을 치우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아들에게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어질러진 게 보기 싫어서 치워주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 치워주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 싫어서 치워주는 거예요. 그러니 방을 치워주는 걸로 아이한테 생색을 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도저히 못 견뎌서 치워주는 거예요. 가능하면 어질러진 채로 그냥 놔두는 게 제일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자꾸 치워주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릇이 나빠지더라도 내가 보기 싫으면 나를 위해서 치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가능하면 어질러진 게 보기 싫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방을 치우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입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일상적으로 욕설을 하고 지내니까 엄마한테도 습관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온 겁니다. 그걸 시비할 필요는 없어요. 엄마에게 욕을 한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말버릇이 튀어나온 거예요. 그러나 엄마로서 얘기는 해줘야 하겠죠.

‘말투가 그게 뭐니? 그런 말투는 고치는 게 좋겠다. 물론 친구들이 하니까 너도 따라 쓰지만, 바람직한 말투는 아니란다.’

이렇게 내 의견은 편안하게 얘기해 주지만 말버릇을 고치고 안 고치는 것은 아이의 선택입니다. 이런 관점에 선다면 뭐든지 말할 수 있고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에게 망설임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말하면 아이가 들을까, 안 들을까?’ 이렇게 눈치를 보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들을 것 같으면 말해주고, 내 말을 안 들을 것 같으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스님 말씀을 들으니 제 말이 아이한테 상처를 줄까 봐 눈치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아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고, 아이의 선택을 가볍게 들어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감을 들어 보니까 이해가 좀 덜된 것 같아요. 말이 좀 복잡하고 명료하지 않네요. 조금 더 살펴서 ‘아이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하지 말고 질문자가 좋은 것을 하세요. ‘내 자식이라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 이것만 지키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좋은 가을날, 여러분 모두 마음 나누기를 풍부하게 하시고 매일매일 부지런히 정진을 잘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법 회원들은 지금이 정일사 수행 기간이니까 매일 300배 절을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는 벼를 베고 타작하는 일이 한창일 때에 여러분들을 뵙지 않겠나 싶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수행법회를 마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차에 올라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스님은 공동체지부 활동가들과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베트남불교 상가위원회의 정토회 방문 프로그램에 대한 실무 준비를 최종 점검했습니다. 혹시 빠트린 것은 없는지, 미진함이 없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했습니다.

차로 3시간 30분을 달려 밤 12시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나가 베트남불교 상가위원회에서 오는 스님들을 영접한 후 조계종 총무원으로 함께 가서 총무원장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조계사를 둘러본 후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하여 정토회에 대해 안내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8

0/20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3-10-24 16:24:42

오늘도행복

감사합니다.

2023-10-24 14:04:19

무구의

고맙습니다.

2023-10-23 21: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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