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0.17 발우공양(베트남 청년들), 밤 줍기, 울산교육청 강연
“왕따를 당해 자살한 학생이 자꾸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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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5박 6일 동안 두북 수련원에 머물며 정토회를 견학했던 베트남 청년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죽비 소리에 맞춰 소심경을 외우고 조용히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로 베트남 청년들이 두북 수련원에 머문 지 6일째가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발우에 밥을 담는 모습이 어느덧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베트남 청년들을 대표하여 VCIL 단체 대표인 티엔(Tien)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법륜 스님과 공동체 여러분의 지원과 보살핌 속에 두북 수련원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스님께서 저희와 함께 보내주신 시간들이 특히 더 감사합니다. 스님이 빈틈없이 바쁜 일정을 가지고 계신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시간을 저희와 함께해 주셔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저희들은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일찍이 틱낫한 스님이 ‘65년 동안 비구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이념, 종교, 철학보다도 우애, 형제애, 인류애가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지난 5박 6일 동안 맺은 귀하고 소중한 우정, 형제애, 인류애를 미래에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이런 교류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 참가자들 대표해서 후옹(Huong)도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저희를 맞이하느라 준비하시고 함께 하느라 바쁘셨을 텐데 저희가 가면 부디 조금이라도 휴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베트남 청년들을 위해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여러분이 배운 것들이 여러분 개인의 인생과 여러분이 베트남에서 하는 활동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북 정토수련원은 버려진 폐교를 재활용한 곳입니다. 우리가 버려진 폐교에서 생활하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검소한 생활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버려진 것을 재활용한다는 관점을 가지면 여러분 누구나 어디에서나 이 방식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꼭 큰 건물이 있어야 하고, 물질적 지원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주위에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하듯이 건물도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을 잘 활용하면 새로운 일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기

만약 여러분이 서울에 있는 정토회관만 보고 간다면 ‘우리는 이런 건물이 없어서 못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곳 두북 수련원을 보고 가면 ‘아!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겠네’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 가서도 여러분 주위에 낡은 것이 있거나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활용하면 되니까요. 여러분이 보셨다시피 저희들이 생활하는 장소는 폐교가 되어 버려진 건물입니다. 농사를 짓는 땅도 저희가 구입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을 여기저기에서 얻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무엇이 없어서 안 된다’ 이런 생각보다는 항상 내가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베트남 청년들에게 영어로 번역이 된 스님의 책과 용돈을 선물했습니다.

“Kam-sa-ham-ni-da”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Một(못), Hai(하이), Ba(바)”

(하나, 둘, 셋!)

베트남 청년들은 설거지와 뒷정리를 한 후 두북 수련원을 떠날 채비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8시부터 내일모레 정토회를 방문하는 베트남 상가 불교위원회를 맞이하기 위한 실무 준비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이동하고, 숙박하고, 충분히 교류하고 갈 수 있는지 꼼꼼하게 점검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곧이어 오전 10시에는 인도성지순례 실무 준비 회의를 했습니다. 내년 1월에 떠나는 인도성지순례는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30주년인데요. 기념행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각 성지마다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할지, 점검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영어 정토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있는 키스톤 님이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키스톤 님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두북 수련원에서 농사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공동체에 들어와서 살고 싶은데 허락이 안 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정토회 공동체에 들어와서 살고 싶은데, 깨달음의 장을 안 해서 안 된다고 합니다.”

“왜 깨달음의 장을 안 했어요?”

“영어로 깨달음의 장을 진행하는 안내자가 없습니다.”

“숫제 백일출가를 하면 안 돼요?”

“백일출가도 깨달음의 장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한번 방법을 찾아볼게요.” (웃음)

“감사합니다.”

이어서 그 자리에서 JTS 활동가들과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30주년을 맞이하여 홍보관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의논했습니다.

의논을 마친 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밤나무숲으로 갔습니다. 성지순례 회의를 함께한 실무자들과 키스톤 님도 함께 했습니다.




이미 동네 할머니들이 한차례 밤을 주워 간 데다 떨어진 지 오래된 밤만 남아있었습니다. 밤이 별로 없자 스님은 개울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물에 떨어진 밤은 사람들이 잘 안 주워가요. 대신 썩은 밤이 많아요.”


정말 물속에는 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바구니에 밤송이 채로 빠르게 담았습니다.


바구니 한가득 밤과 밤송이를 주워 다시 밤숲으로 올라왔습니다. 길에서 밤송이를 까서 밤만 담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이 많다 보니 꽤 많은 밤을 주웠습니다.




실무자들은 여기까지 함께 울력을 하고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스님은 산밑밭으로 갔습니다. 찬바람 속에서도 호박과 오이가 자라 있었습니다.


금방 수확을 마치고 밭을 나왔습니다.

“자, 이제 산윗밭으로 갑시다.”

산윗밭 주변에도 밤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밭을 올라가는 길에도 작은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빠르게 밤을 주웠습니다.


굵은 밤이 열리는 밤나무 아래로도 가보았습니다.

“이상한 일이네요. 밤이 없네요.”

누가 벌써 주워갔다면 빈 밤송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조차 없었습니다.


“아이코, 벌써 강연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이제 내려갑시다.”

작업복을 갈아입고 2시 50분에 울산과학관으로 출발했습니다.

울산교육청 초청 강연

오후 3시에는 강연을 하기 위해 울산과학관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4월 새로 당선된 천창수 울산시 교육감이 두북 수련원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며 스님의 강연을 요청한 적이 있었고, 이후에도 한상철 울산교육청 교육국장이 이곳 마을 출신이어서 스님을 찾아와 한 번 더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강연이 열리는 울산과학관에 도착하자 천창수 교육감을 비롯하여 300여 명의 교사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의 소개에 이어서 오후 4시에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천창수 울산교육감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강의를 위해 사전 신청을 교사들에게 받았는데 3분 만에 마감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들 가슴속에 질문 한 가지씩은 갖고 여기 오셨을 겁니다. 300명의 질문을 다 받기는 어려울 것 같고,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선생님들이 오셨으니까 10명의 질문만 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법륜 스님의 강의를 통해 여러분 모두 좋은 깨달음을 얻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보낸 지난 5일을 이야기하며 학교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시골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서 황금들녘을 이루고 있고요. 며칠 전부터 벼 베기가 시작이 되어서 제가 사는 시골에도 벌써 20퍼센트 정도는 벼를 벤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을 공부하기 위해 온 베트남 청년들 12명과 지난 5일을 함께 보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한국이 어떻게 빠르게 발전했는지, 그 발전의 이면에 농촌이 어떻게 해서 붕괴가 되었는지, 그리고 베트남은 앞으로 30년 후에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한 후 오늘 아침에 떠났습니다.

어제는 베트남 청년들과 논에 들어가서 벼를 베었습니다. 기계로 벼를 베더라도 기계가 들어가는 입구와 모서리는 기계로 작업하기 어려워서 낫으로 벼를 벴습니다. 한국 청년들 중에는 낫질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베트남 청년들은 ‘낫질을 할 줄 아느냐?’ 하고 물으니까 대부분 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베트남은 한국의 30년 전 모습이다 보니까 청년들이 농사일을 제법 잘하더라고요.

경제 수준으로 말하면 베트남은 아직 한국보다 한참 뒤지는데, 청년들의 정신적인 건강 상태로 볼 때는 베트남 청년들이 한국 청년들보다 훨씬 더 밝고 여러 가지 면에서 진취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렇게 경제 성장을 해서 1인당 GDP가 높다고 해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한국의 아이들은 좋게 말하면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애완동물처럼 키워져서 학교에 오니까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이 지금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과도기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

옛날 학교 교육은 선생님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자님도 가르치는 기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학교의 주인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스승 밑에 있는 계급이 한 등급 낮은 사람이 되죠. 그래서 선생님을 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됩니다.


반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배우는 사람이 학교의 주인입니다. 학교는 모르는 사람이 배우는 곳입니다. 모르는 사람을 알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학생이 학교의 중심이고, 선생님은 학생이 모르는 것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교육청은 그런 선생님들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되죠.

그동안 우리의 교육 문화는 전통적으로 선생님이 학교의 중심이었습니다. 최근에 들어와서 아이들이 학교의 중심이 되어가는 일종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이죠. 이런 과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 많은 혼란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질문을 신청했지만 두 시간 동안 일곱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본인이 가르치던 학생이 왕따를 당해서 자살을 했는데, 계속 그 학생이 생각이 난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왕따를 당해 자살한 학생이 자꾸 생각납니다

“제가 6년 전에 근무한 중학교에서 학생 한 명이 왕따를 당해 가방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살한 학생의 학우였던 아이들을 제가 계속 가르치면서 졸업까지 시켰는데 졸업식을 할 때도 그 학생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제가 그 일이 있었던 이후로 금강경도 꾸준하게 읽고, 등산도 자주 다니며, 마음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닦아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고, 잊을만하면 자살한 학생이 생각나곤 합니다. 앞으로 교직 생활을 계속 이어가려면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질문자는 좋게 말하면 연민이 크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트라우마를 입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받은 충격이 상처가 되어서 그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고 가슴이 아파지는 겁니다. 슬픈 마음을 연민이나 자비심으로 볼 게 아니라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죽은 학생을 기억하거나 마음을 아파한다고 해서 죽은 학생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질문자에게 고통만 따르게 됩니다.

이 트라우마를 치료하려면 이 경험을 한 차원 높게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들을 항상 잘 살펴야 합니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정신적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아이들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살펴도 사고는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최대한 적게 나오기 위해서는 항상 아이들의 심리가 어떠한지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그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가르치게 될 아이들이 친구들과 학교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심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면, 한 아이의 죽음이 여러 아이의 목숨을 살리는 길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살면서 잠깐의 실수와 방심으로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혼자 아픔을 삭이는 것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실수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는 길은 괴로워만 하거나, 절이나 기도를 해서 반성하는 게 아니고,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에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낙태를 하고 나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어떤 스님이 ‘당신의 아이가 지금 울고 있으니 천도재를 지내서 달래주어야 합니다’ 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저는 ‘낙태한 것을 정말 참회한다면 이 세상에 아이를 낳고도 못 키우는 수많은 부모들을 돕는 관점을 가지세요’ 하고 얘기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갖게 되면 내가 한순간의 실수로 한 아이를 잃었지만 열 명의 아이를 살리는 것이 됩니다. 한 아이를 잃어 지옥에 갈 죄를 지었다면 열 명의 아이를 살려서 천국에 갈 복을 짓는 것이 자신의 죄책감과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거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죽은 내 아이를 위한 천도재에 천만 원을 쓰는 것보다는 열 명의 아이를 살리는데 매달 일정 금액을 보시해서 10년 동안 천만 원을 쓰는 것이 괴로움을 승화시키는데 훨씬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잘못을 하는 게 꼭 잘못된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잘못을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잘못을 통해 부족한 줄 알고 겸손해져야 어려운 사람들과 소통도 하게 되고 그들을 돕는 마음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을 읽는 것보다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을 더 살피고 자주 상담해 주는 것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땅에서 넘어지면 땅을 딛고 일어나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넘어지면 앉아서 울지 말고 일어나서 다시 길을 가는 자세가 필요해요.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인류 문명의 발전은 실패와 실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냥 버섯을 보자마자 '독버섯이구나' 하고 바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독버섯을 먹고 누군가 죽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독버섯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실패와 실수를 딛고 인류는 여기까지 발전해 온 거예요. 수많은 교통사고를 통해 얻은 사례와 자료를 통해 신호등은 어떻게 만들고, 교통 체계는 어떻게 세우고, 도로는 어떻게 만들어야 안전한지 알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죄악시하거나 처벌 위주로 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실수하고 잘못하여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딛고 일어나서 실수를 교훈으로 삼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한 교사의 죽음이 많은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 아픔은 슬픔과 분노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현직으로 일하는 교사들 중에도 심리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학부형들이 와서 행패를 피우면 엄청난 상처를 입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미연에 발견하고 치료해서 또 다른 사고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생을 먼저 마감한 교사를 위해 애도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분노하기보다는 이런 아픈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고 교사에게도 좋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도 과거에 수없이 많은 교사들이 죽음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다 개인 문제라고 여기고 어영부영 지나갔는데, 이제는 그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제도적으로도 보완이 필요한 문제로 밝혀지게 된 겁니다. 정치인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는 맞지만 자칫 정파적으로 흘러가 버리면 다시 논쟁이 될 여지가 높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대한민국의 안전 불감증 문제가 대두되었고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정치적 쟁점이 되어 찬반 문제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안전 불감증은 변화의 동력을 상실하게 되었잖아요. 그것처럼 지금 일어난 교권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 쟁점화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문제는 항상 이 방향 또는 저 방향으로 가게 되는데, 지나치게 정치 쟁점화가 되면 도덕성이 희석됩니다.

단죄는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단죄보다는 그것을 승화시켜서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점을 두면 좋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내 주장은 옳고, 상대 주장은 틀리다’ 이렇게만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 진보가 아니에요. 진보란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현재의 조건에 맞게끔 과제들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보수는 가능하면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진보는 변화에 더 초점을 두는 것이에요. 진보와 보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변화를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종교에 의지하면 심리적 위로는 되지만 대부분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폐단이 있습니다. 개인이 잘못한 것은 반성해서 개선하면 되지만, 사회는 승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이 제 속을 꿰뚫어 보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여야 대립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에 누구를 뽑아야 할까요?

  • 교실에서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다 보니 저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까요?

  • 함부로 말하는 학생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 사촌이 어릴 때 제 아들을 많이 때리고 물건을 훔쳤습니다. 고3이 된 사촌에게 사과와 보상을 받고 싶어요. 이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 나이가 들어 기억력도 나빠지고, 시력도 안 좋아졌는데, 교사를 그만두어야 할까요? 아직 연금이 나올 나이가 아닌데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까요?

  • 무너져가는 교권을 회복하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 행동하고 싶지만, 겁이 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교사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그 해법은 무엇인지 함께 모색해 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교사들은 두 시간 동안 지혜를 나누어준 스님에게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교육감을 비롯하여 교육청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에 스님은 교육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마음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교육감님은 제도 개선을 위해 많이 애써주세요.”

“예, 잘 알겠습니다.”

서둘러 차에 올라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밤하늘에 예쁜 초승달이 떠올랐습니다.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고 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경주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온 후,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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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님 말씀에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과거의 자신의 잘못을 지나치게 자책하고 힘들어했었는데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23-11-07 13:31:05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3-10-24 17:34:00

감로음

잘못을 하는 게 꼭 잘못된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잘못을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잘못을 통해 부족한 줄 알고 겸손해져야 어려운 사람들과 소통도 하게 되고 그들을 돕는 마음도 낼 수 있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2023-10-23 19: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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