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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기계로 벼를 수확하기 전에 논 입구와 모서리에 있는 벼를 낫으로 베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일찍 논으로 나가 전체를 둘러보았습니다. 바짝 마른 논 위에 황금빛 벼들이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수확을 앞둔 논은 모두 6개 필지입니다. 논을 옮겨 다니며 작업을 해야 하는데, 먼저 찰벼를 심어 놓은 800평 논부터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이 도착하자 곧바로 스님이 벼를 베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낫질할 줄 알아요?”
“Yes. I tried sickling.”
(예. 낫질을 해봤습니다.)
“낫질을 못 하는 사람은 한 번에 한 포기씩 벼를 베면 됩니다. 낫질을 잘하는 사람은 한 번에 여러 포기를 베면 돼요. 여러 포기를 베려면 벼를 잡는 방향을 반대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요.”
스님이 직접 낫질을 어떻게 하는지 시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낫질을 할 때는 수평으로 베면 힘이 많이 들어요. 약간 경사진 방향으로 베어야 쉽게 벨 수 있습니다. 이해했어요?”
“Yes!”
“논마다 콤바인이 들어가는 입구와 네 모서리만 베면 됩니다. 콤바인이 논에 들어와서 방향을 바꾸는 자리만 사전에 미리 베어두는 거예요. 콤바인이 모서리를 돌 때는 벼를 베지 못합니다. 네 모서리마다 2미터 정도만 낫으로 벼를 베는 거예요. 가능한한 밑동을 남기지 말고 땅에 딱 붙여서 베어 주세요. 각 모서리마다 두 사람씩 가서 벼를 베어 주세요.”
2인 1조가 되어서 각 모서리로 흩어져 벼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낫으로 벤 벼는 나중에 콤바인에 넣을 수 있도록 논둑 위에 가지런하게 쌓아 두었습니다.
낫질을 잘한다고 했던 베트남 청년들이 예상보다 낫질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베트남은 낫 모양이 한국과 다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방 배워서 벼를 쓱싹쓱싹 베어냈습니다.
“여기는 충분히 됐어요. 다음 논으로 이동합시다.”
건너편 논으로 걸어가서 스님과 청년들은 각 모서리로 흩어졌습니다. 점점 벼 베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2400평 논으로 이동해서 다시 네 모서리로 흩어져서 벼를 베었습니다.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하자 들판은 더욱더 황금빛으로 넘실거렸습니다.
하나의 논을 끝내면 다음 논으로 이동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다음은 느티나무 옆에 있는 300평 논으로 가서 벼를 베었습니다.
그 사이 해는 더욱 높이 떠오르고 햇살도 더 강해졌습니다. 살짝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수지 밑에 있는 윗논으로 가서 벼를 베었습니다. 윗논을 끝내고 아랫논으로 내려와서 벼를 베었습니다. 역시 모서리를 반듯하게 베어냈습니다.
“다 했어요! 수고했습니다.”
논의 모서리를 베어내는 작업을 모두 끝냈습니다. 이제 콤바인이 논에 들어와서 벼를 베고 탈곡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침 울력을 마치고 다 함께 농막 앞에 모여서 참을 먹었습니다. 스님이 홍시와 포도를 가져오고, 베트남 청년들이 베트남에서 가져온 커피를 내려왔습니다.
“이건 홍시예요.”
“정말 맛있어요!”
베트남 청년들은 답례로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틱낫한 스님이 가사를 쓴 노래라고 소개하면서 ‘Happiness in here and now’라는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Happiness is here and now. I have dropped my worries. Nowhere to go, nothing to do. No longer in a hurry.”
(행복은 지금 여기. 근심 걱정 떨쳐요. 아무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요. 서두를 필요도 없어요.)
베트남 청년들은 농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어렸을 때는 기계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농사를 지었어요?”
“전부 손으로 했어요. 모내기를 할 때도 줄을 쳐서 손으로 심었고, 벼를 벨 때도 낫으로 베고, 탈곡을 할 때도 손으로 탈곡을 했습니다. 페달을 발로 밟으면 급치가 박힌 원통이 돌아가면서 알곡이 급치에 걸려 이삭과 분리되는 거예요. 그것보다 더 옛날에는 나무 작대기를 갖고 이삭을 훑어서 알곡을 분리했어요.”
“정말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네요.”
“옷도 집에서 만들어 입었어요. 목화를 재배해서 겨울옷을 만들고, 삼을 재배해서 여름옷을 만들었어요. 집집마다 자기 옷은 자기가 만들었습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고 해서 전부 베틀로 베를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어요. 목화로 무명베를 짜고, 누에로는 명주를 짜고, 삼으로 삼베를 짭니다. 여성들은 겨우내 옷 만드는 일을 했어요. 나무를 때서 밥도 해야죠, 옷도 만들어야죠, 냇가에 가서 빨래도 해야죠, 여성들의 삶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남자들은 뭐 했나요?”
“남자들은 겨울이 되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가마니를 짜는 일을 했습니다.”
“수확할 때 마을에서 서로 도와주는 경우는 없었나요?”
“모내기할 때와 수확할 때는 마을 전체가 협력을 했습니다. 그것을 ‘두레’라고 해요. 마을 단위로 공동 노동을 하는 거죠. 모내기를 할 때는 줄을 잡아주면서 해야 하니까 혼자서 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물을 확보하는 것이었어요. 지하수라든지 저수지라든지 논물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비가 오면 농사를 지을 수가 있고, 비가 안 오면 농사를 못 짓기도 했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법회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일어나서 법회를 하기 위해 방송실로 향하고, 베트남 청년들은 사용한 농기구와 장화를 씻고 뒷정리를 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주간반 회원들을 위한 전법회원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전법회원들만 모여서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법회원들이 정일사 정진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정토연수원에서 무변심 법사님이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 입재에 대해 안내를 한 후, 전법회원 모두가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일해 본 소감을 나누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두북 수련원은 가을이 완연히 깊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베트남 청년들과 농사일을 했는데요. 여러 논을 다니면서 모서리에 벼를 베는 일을 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대부분 농촌에서 자라서 부모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거나 거드는 일을 했기 때문에 농사일을 조금씩은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용하는 낫이 다르고 여성들은 농사일을 안 해봐서 좀 서툴긴 했지만, 그래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한국 농촌의 붕괴 현상을 베트남에서 겪지 않으려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한국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밝고 건강해 보였어요.
한국의 부모님들은 경제 형편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자녀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공부 위주로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녀를 과잉보호해서 키운 결과 지식적인 능력은 뛰어난 반면 생활적인 능력은 많이 부족해요. 인간관계도 많이 서툴러서 집에 은둔하는 청년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녀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애완용 동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이번에 베트남 청년들과 같이 지내면서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좀 더 건강하게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중요한 역할은 자녀가 사회 안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입니다.”
이어서 정일사 정진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한 후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떤 소임이 주어지든 애를 써서 열심히 하지만, 순간순간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활동을 그만두고 싶어 진다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어떤 소임이든 받으면 애를 써서 하는 저를 봅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빨리 지치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어떤 상황이 되든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해 버립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하다가 지치거나 하기 싫은 마음이 들면 그때부터는 그만두려는 마음이 슬쩍슬쩍 올라옵니다. 그리고 너무 쉽게 그만둡니다. 정토회에서 스님 법문도 많이 듣고 돌이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불쑥불쑥 활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저를 봅니다. 지금은 어찌어찌해서 괜찮아져도 어느 순간부터는 또 그만두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옵니다. 순간순간 소임이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활동을 그만두지 않고 쭉 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기는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않고 쭉 하면 되지요.”
“쭉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쭉 하려면 쭉 하면 되지요.”
“어떻게 하면 그만두지 않고 쭉 할 수 있습니까?”
“그만두지 않고 쭉 하면 된다니까요.” (웃음)
질문자가 어리둥절해 있자 스님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자유와 해탈은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거기에 내가 구애받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구애를 받게 되는 이유는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두 가지 감정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고 싶다’ 하는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하기 싫다’ 하는 감정입니다. 하고 싶을 때 해도 되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싶을 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남성이 길 가는 여성의 종아리를 만지고 싶다면, 그것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하면 안 되는 일을 자기 욕망대로 해버리면 손실이 따릅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손실을 감수하든지, 손실을 피하려면 하고 싶어도 안 하든지,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싫을 때 안 해도 되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하기 싫다고 안 하면 손실이 따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안 하고 손실을 감수하든지,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하기 싫어도 하든지, 두 가지 외에는 다른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고 싶더라도 손실이 생기면 멈출 줄 알고, 하기 싫더라도 손실이 생기면 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의 감정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져 버리면 이 세상의 어떤 일을 하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멈출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도 있고, 이렇게 그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수행이란 하고 싶을 때 멈출 줄 알고, 하기 싫을 때 할 줄 아는 것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습을 하지 않는 보통 사람이라면, 하고 싶으면 해야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절반의 자유와 절반의 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고 싶어도 멈출 줄 알고, 하기 싫어도 할 줄 아는 연습이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음’과 ‘하기 싫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비만이 걱정된다면 저녁을 먹고 싶어도 딱 멈추는 것입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것이 싫지만 그냥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나고 싶을 때도 일어나고, 일어나기 싫을 때도 일어나고, 그렇게 꾸준히 연습하면 싫고 좋음이 그다지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가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가끔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그냥 하는 겁니다. 물론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면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싫으면 안 하고, 좋으면 하고, 늘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하기 싫어도 그만두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간단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3년을 하기로 했으면, 3년 동안은 싫어도 하고, 좋아도 하는 겁니다. 하기로 한 것은 그냥 하는 거예요. 저녁을 안 먹기로 했으면, 안 먹고 싶어도 안 먹고, 먹고 싶어도 안 먹는 겁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절을 하기로 했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고,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나고,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합니다. 순간순간 마음은 저항이 일어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까르마가 반응하는 것이니 내버려 두고 ‘나는 하기로 한 것은 한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싫은 마음이 일어나서 그만두는 것은 까르마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목표는 까르마를 극복하는 것이니까 싫은 마음이 일어나도 그냥 하는 겁니다. 등산을 하기로 했으면 다리가 아파도 가고, 다리가 안 아파도 가잖아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절을 하기로 했으면 하기 싫어도 하고, 하고 싶어도 하는 겁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기로 했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고,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나면 됩니다.
이것을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정진한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일어나기 싫으면 안 일어나는 것은 특별히 연습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굳이 연습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한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시면 좋겠어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는 겁니다. 이래도 하고, 저래도 하고, 그것을 ‘꾸준히 한다’ 하고 말하는 겁니다. 수행이란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농구선수가 연습할 때 골에 공이 들어가도 다시 던지고, 골에 공이 안 들어가도 다시 던지는 것처럼, 연습할 때는 골에 들어갔느냐 안 들어갔느냐가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골에 들어가도 다시 던지고, 안 들어가도 다시 던지고, 그렇게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하면 골에 들어갈 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것입니다. 좋아도 하고, 싫어도 하고, 꾸준히 하다 보면, 나중에는 좋고 싫은 감정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래도 하고, 저래도 하고, 그냥 해보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법회를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 30분부터는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전법플랫폼 개발, 종합웰빙 사업 방안 등 정토회의 중장기 계획과 비전에 대해 검토하고 의견을 나눈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베트남 청년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 스님이 직접 한국 불교의 역사와 정토회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여기 있는 지도를 보겠습니다.”
스님은 지도를 보여주며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이 엊그제 경주남산 순례도 다녀오고 불국사도 다녀왔지만 한국 불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이제야 한눈에 이해가 된다며 모두 기뻐했습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가장 나이가 어린 청년인 후이(Huy) 님이 했습니다.
“스님을 보면 참으로 현명하시고 박학다식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세상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대해서도 잘 알 수가 있나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우선 고생을 많이 해야 합니다. 감옥에도 갇혀 보고, 왕따도 당해 보고, 비난도 받아 보고, 어려움도 겪어 보고, 굶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게 되면 일단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아상(我相)이 사라집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는 붓다담마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붓다담마는 사물이나 현상을 부분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바라봅니다. 이것을 통찰적 지혜라고 해서 ‘통찰지’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전체적으로 살피면 아무런 괴로움이 없습니다. 이런 이치를 마하야나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공(空)이라고 하고, 테라밧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이라고 합니다.
또한 주어진 상황에 맞게 세세하게 판단하는 것을 ‘분별지’라고 합니다. 통찰지가 있으면 괴로움이 없고, 분별지가 있으면 대중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분별지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볼 때 무엇은 옳고 무엇은 그르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바라보면 지혜의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사실을 ‘이런 일이 있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살면서 고생을 아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을 했지만 곧바로 이해가 안 될 거예요. 머리로 아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고, 아는 걸 바탕으로 직접 하나씩 경험을 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식은 진리가 아니고 다만 세상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정보입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저는 제 나이가 일흔이지만 경험한 것으로 따지면 300살 인지도 모른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제가 자란 환경이 많은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한국 농촌의 모습은 300년 전 사람들이 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가 살아온 환경을 잘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300년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살아온 경험 자체가 저한테는 빅데이터가 되는 것이죠. (웃음)
그리고 저는 구호 활동을 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를 다닙니다. 대부분 어려운 나라들을 방문하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는 그들과 같은 삶의 모습으로 생활을 합니다. 이런 활동들도 저한테 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 같아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지난 열흘 동안 한국에서 공부한 게 도움이 됐습니까?”
“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견학하면서 배운 경험을 잘 살려서 여러분이 사는 곳에서 좋은 활동을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자는 것은 지금 당장은 좋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 놓고 보면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게 없습니다. 이런 것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 오히려 삶의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데에 장애가 됩니다. (웃음)
좋은 음식을 먹겠다, 좋은 옷을 입겠다, 좋은 집에서 자겠다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좋은 담배를 피우겠다, 좋은 술을 먹겠다, 좋은 마약을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담배라고 하더라도 담배를 아예 안 피우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좋은 술이라고 하더라도 술을 아예 안 마시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좋은 마약이라고 하더라도 마약을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모두 건강에 해로울 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중독이 되면 거기로부터 헤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붓다는 왕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세상 그 누구보다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집을 가졌지만, 그 중독성에서 벗어나서 아주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부처님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반면, 세상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매일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얼마나 많은 신경을 씁니까? 자기가 힘들게 노동한 돈을 전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집에 씁니다. 특히 집을 사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씁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 수행자로 지내면 일단 먹는 것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옷은 늘 똑같은 옷을 입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서 자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건강하게 생활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행복해 보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실제로 불행합니다. 이미 지나친 소비주의에 중독되어서 건강성을 많이 잃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만 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생활력이 떨어집니다.
여러분은 잘 먹고 뚱뚱한 게 좋아요? 여러분처럼 날씬한 게 좋아요? 세계에서 비만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베트남입니다. 이것은 베트남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가장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미국에 가보면 비만인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영양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음식을 줘서 해결할 수 있지만, 비만이 된 사람은 스스로 자각하지 않는 한 옆에서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이건 중독성으로 인한 문제이기 때문에 돈을 아무리 줘도 해결할 수가 없어요. 음식을 과다섭취해서 비만이 된 사람을 해결할 수 없듯이, 소비에 중독된 것도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한국처럼 사회가 발전한 나라라고 반드시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은 스님이 베트남에 가서 활동을 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네. 베트남에서도 즉문즉설과 같은 법회를 진행하시면 아주 인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제가 베트남으로 가서 활동을 할까요?”
“네, 꼭 오세요.” (모두 웃음)
스님의 질문에 베트남 청년들은 아주 기뻐했습니다. 내일 아침 발우공양 시간에 작별 인사를 하기로 하고 저녁 7시에 대화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전법 회원들을 위한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전법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오전처럼 정토연수원에서 무변심 법사님이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 입재에 대해 안내를 한 후, 전법회원 모두가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정일사는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전법회원들의 정기 수련 프로그램의 약자입니다. 출가한 스님들이 일 년에 두 번 안거를 통해 수행의 깊이를 더해 가듯이 정일사는 수행자인 전법회원들의 안거에 해당하는 집중 정진 프로그램입니다.
스님은 정진을 시작하는 전법회원들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전법회원은 모두가 수행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2주간 수행에 집중하는 안거 기간에 들어갑니다. 정토회의 정체성은 수행 공동체입니다. 즉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정토회는 사회실천 운동도 하고, 전법도 하고,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이 정토회의 정체성이 아니에요. 정토회의 정체성은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고 행복해지도록 한 후 그런 토대 위에 전법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돕고, 지구환경을 살리는 실천도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남을 위하기 이전에 자기를 아름답게 가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이 근본 바탕이고, 항상 수행이 먼저입니다.
과거에는 여러분도 돈이 먼저이고, 출세가 먼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삶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잖아요. 그런데 부처님 법을 만나고 정토회를 만나서 수행이 먼저라는 관점을 가짐으로 해서 마음도 아주 가벼워지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이 좋은 법을 이웃과 같이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여러분은 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하고, 보시를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사회 활동과 전법 활동이 여러분에게 또다시 부담을 주는 일이 됐습니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좋은 일들이 여러분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어서 그로 인해 도반과 갈등도 생기고, 마음에 부담도 되고, 인생이 쫓기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 거죠. 그래서 다시 세상살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예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직장을 그만둘까’, ‘이혼을 해버릴까’, ‘집을 나가버릴까’ 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은 ‘정토회를 그만둘까’, ‘전법회원을 그만둘까’, ‘임원을 그만둘까’ 하는 식으로 과거와 똑같이 마음이 돌아가게 된 겁니다. 그러나 ‘전법회원을 그만둔다’, ‘수행을 그만둔다’, ‘정토회를 그만둔다’ 이런 해법은 부부지간에 갈등이 있으니까 이혼해 버리는 해법과 하등 차이가 없어요. 직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두어 버리는 해법과 똑같은 겁니다. 수행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닙니다.
‘직장이 문제가 아니고, 남편이나 아내가 문제가 아니고, 그 원인은 나의 어리석음에 있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로 돌이켜서 세상의 관계는 그냥 두고도 내가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 힘으로 전법도 하고, 사회 실천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거꾸로 이런 활동들이 부담이 되어서 또 수행을 놓치고 있어요.
그래서 일 년 중 두 차례는 혹시 우리에게 이런 모순은 없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또 사로잡히고 지쳐서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거죠. 그래서 일만 하기에도 벅찬 상황일지라도 이 기간 동안은 추가로 정진을 해야 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추가로 정진을 하는 것이 힘든 일 같죠? 그런데 여러분은 옛날에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서 불교대학도 다니고, 경전대학도 다니고, 실천 활동도 했지 않습니까? 그때도 무척 바빴지만 내적 스트레스가 없어졌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진이라는 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입니다.
불교대학 진행하랴, 경전대학 진행하랴 무척 바쁘겠지만, 이 기간만이라도 정진을 더 우선시해야 바쁜 가운데 수행자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활동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 활동을 오래 지속할 수 있어요. 아무리 좋은 일도 중간에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일시적인 효과만 나지 결국은 활동이 중단될 수밖에 없어요.
개인을 위해서도, 정토회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여러분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나도 좋고 너도 좋게 됩니다. 그런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정일사 기간에는 집중해서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처럼 3개월은 정진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2주는 정진을 하자는 의미에서 정일사 프로그램이 마련된 거예요. 정진을 하면서 각자 본인이 가진 문제점을 도반과 나누며 함께 풀어 나가자는 취지입니다. 오늘부터 2주간 정일사 정진이 진행되니까 여러분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활동을 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밤 9시가 되어서 법회를 마쳤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발우공양을 함께 하는 것을 끝으로 베트남 청년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오전에는 인도 성지순례 실무준비팀과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울산교육청 초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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