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0.14 행복학교 특강, 청춘 톡톡, 통일의병 워크숍, 베트남 청년들 만남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원하지 않는 아내,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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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베트남 다낭에서 온 청년 단체 VCIL(Vietnam Community of Integral Living) 활동가들이 이틀 전부터 두북 수련원에 머물면서 정토회를 견학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게송을 읊으며 발우를 펴고 조용히 식사한 후 김치로 발우를 깨끗이 닦아 먹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처음 해보는 발우공양인데도 옆 사람을 보며 금방 잘 따라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스님이 베트남 청년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을 환영합니다. 두북 수련원에 온 지 며칠 되었어요?”

“3일째입니다.”

“아침에 농사일할 때 또 이야기 나눕시다.”

뒷정리와 설거지를 한 후 다 함께 농사일하러 밭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베트남 청년들보다 일찍 밭에 나와서 농작물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밤나무 숲에 가서 밤을 주웠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올해는 밤이 잘 안 열렸다는 소식이 있어서 밤을 줍는 사람이 없었나 봅니다. 밤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되었고, 약간 마른 상태로 바닥에 그대로 있어서 금방 한 주머니를 주울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도 농기구와 엉덩이 방석을 들고 속속 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주머니에 가득 담긴 밤을 꺼내 베트남 청년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방금 밤을 주웠어요. 삶아서 먹으면 아주 맛있어요. 밤 알아요?”

“네, 베트남에서는 핫재(hạt dẻ)라고 해요. 한국 밤은 무척 크네요.”

밭 앞에서 다 함께 명심문을 세 번 외친 후 농사팀장의 안내를 받고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Everything has its place.”
(만물에는 제 자리가 있습니다.)

어제는 밭에 거름을 골고루 뿌리고 흙을 갈아엎은 후 평평하게 고르는 일을 했는데요. 오늘은 밭에 비닐을 씌우고, 마늘을 심기로 했습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두둑에 비닐을 씌우고, 한 팀은 통마늘을 쪼개는 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베트남 청년들과 마늘을 쪼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청년은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자랑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농사에 대해 잘 압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죠.”

“베트남이 한국보다 늦게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저랑 경험이 비슷하네요. 저도 어렸을 때 농사를 지어야 했어요.” (웃음)

나이가 서른 살 정도 차이가 나지만 경험은 비슷하다는 사실에 모두가 웃었습니다.

다 쪼갠 마늘을 대야에 담아서 밭으로 향했습니다.

“두둑이 엄청 넓네요. 양쪽에서 심으면서 앞으로 나갑시다.”

스님이 마늘을 심는 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마늘의 뿌리가 아래로, 싹이 위로 향하도록 흙에 꾹 눌러준 다음 흙으로 살포시 덮어주면 됩니다.”

먼저 앞사람이 마늘을 꾹꾹 심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뒷사람이 북삽으로 흙을 살포시 덮어주며 뒤따라갔습니다.



마늘을 심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스님 앞에서 마늘을 심는 베트남 청년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흥이 오른 청년은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베트남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이 노래를 부르자 옆에서 따라 부르기 시작하고, 전체가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스님은 베트남 청년들의 노래를 들으며 흐뭇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농사일할 때 노동요를 불렀어요. 농사일이 힘이 드니까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거든요.”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스님과 베트남 청년들이 일하는 속도가 엄청 차이가 났습니다.

스님은 가져온 마늘을 다 심고 한 두둑을 끝내 가는데 베트남 청년들은 아직 3분의 1도 끝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씨 마늘을 새로 가져오며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밥값을 하겠어요?” (웃음)

스님과 비닐 멀칭을 끝낸 청년들이 모두 두 번째, 세 번째 두둑에 붙어서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두 번째 두둑의 절반, 세 번째 두둑의 3분의 1까지 마늘을 심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꼭 마늘을 다 심겠습니다. 못 하면 점심을 굶겠습니다.” (웃음)


재미있게 울력한 후 길가에 동그랗게 앉아서 다 함께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노동 강도가 셌지만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농사일을 하니까 어릴 적 시절의 기억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가족도 생각나고, 농장도 생각나서 반가웠습니다.”

“농사를 처음 지어봤는데요. 농장에서 인부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경험해서 좋았습니다. 농부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일하니까 더 힘이 났습니다.”

“일을 다 못 끝내서 미안합니다. 지금이라도 일을 다 끝내고 싶습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일하니까 더 좋았고요. 한국에서도 옛날부터 노동요를 불렀습니다. 여러분이 어릴 적 농사지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저도 어릴 때는 나무를 때서 밥을 했고, 옷도 목화로 직접 만들어서 입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노래를 들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저녁 식사비는 제가 내겠습니다.”

“와우! 노래를 계속 불러야겠어요.” (웃음)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농막으로 내려와 농기구를 씻고 뒷정리를 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경주 남산 순례를 하기 위해 경주로 떠나고,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온종일 방송실에서 생방송 강연을 했습니다.

행복학교 특강

오전 10시에는 행복학교 참가자들과 행복 시민들이 함께하는 행복학교 특강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4,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시골에 내려와 있는데 들녘에는 벼가 노랗게 익어서 황금빛을 띠고 있습니다. 이제 추수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밖에 나가보니 이미 한두 논들이 추수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두북수련원 농장에는 베트남에서 청년 12명이 와서 견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해 서울에서 견학했고, 두북 수련원에서는 농사일도 거들면서 한국의 경제 성장 이면에 농촌이 어떻게 붕괴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베트남도 경제 성장을 하고 나면 한국과 비슷한 모습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베트남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것이 되겠죠. 한국의 발전을 보면서 좋은 점은 본받고, 문제점들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살피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청년들인 것 같아요. 아침에는 베트남 청년들과 같이 밭에 나가서 일을 하다가 강의 시간에 맞춰서 왔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결혼하고 나서 아내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 다툼이 계속된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원하지 않는 아내, 어떡하죠?

“저는 결혼 3년 차의 유부남입니다. 와이프랑 아주 잘 맞지만 딱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건 자녀 문제입니다. 저는 아이를 아주 갖고 싶어 하지만, 와이프는 갖지 않아도 된다는 주의입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이었고, 결혼 전부터 이 문제로 인해 다툼이 잦았습니다. 저는 아이 없이 지낸다는 게 결혼 생활이 발전적이지 않고 마음이 계속 허전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문제로 인해 싸움이 계속된다면 문제가 커질 것 같은데, 이런 마음을 제가 어떻게 다스려야 화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결혼할 때 아이를 갖기로 합의하고 결혼을 했어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하고 결혼했어요?”

“원래 와이프는 아이를 갖지 않자는 주의였는데, 아이를 갖기로 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를 갖는 것에 아내도 동의했어요?”

“네, 동의했습니다.”

“동의했다면 아기를 갖자고 이야기를 하면 되죠. 그런데 만약 아내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혼을 하고 아기를 갖고자 하는 여성과 결혼하면 되죠. 상대가 싫다는데 어떡해요? 내가 아무리 누군가를 좋아해도, 상대방이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 좋다고 하면 성추행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옛날부터 정승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는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다고 하면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이 문제를 가지고 싸울 이유는 없습니다. 아내와 대화를 해보고 아내가 싫다고 하면 그걸 전제로 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아이를 원하지만, 아내가 싫다고 하는 상황에서 아내와 같이 살려면 아내의 뜻에 내가 동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를 포기하면 포기했지, 아이는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아내와 이야기해서 이혼하고 아기를 갖고자 하는 사람과 결혼해야죠. 만약 아내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신체 조건이라고 하면 입양을 해야 하고요. 이렇게 의논해서 결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기를 원했으면 아기를 갖고자 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왜 하필 아기를 안 가지려고 하는 사람하고 결혼을 했어요? 이것은 질문자가 한 선택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생각이 강해서 잘못된 판단을 한 겁니다. ‘네가 지금은 아기를 안 갖겠다고 해도 막상 결혼해서 살면 내 말을 듣겠지’ 이렇게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지 않고 건방진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겁니다.

요즘은 결혼한 남자나 여자가 다른 사람과 연애해도 형사처벌을 못 합니다. 왜냐하면 성인이 자기 신체를 어떻게 쓰는지는 모두 자기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민사 소송을 해서 손해배상 청구는 할 수 있지만, 자기가 자기 신체를 어떻게 사용하겠다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 국가 권력이 형사처벌을 통해 개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과는 다른 세상입니다.

어린아이라고 해도, 설령 내 아이라고 해도 때리면 안 됩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아이를 때리고 괴롭히는 것은 아동학대죄에 해당해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선생님도 아이를 때리면 안 돼요. 요즘엔 아이를 괴롭히는 모든 행동이 아동학대에 해당합니다. 옛날에는 부모가 자기 아이를 때릴 수 있었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때렸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한테 맞는 게 비일비재했습니다. 숙제를 하나라도 안 해가면 손바닥을 때리고,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의자를 들고 무릎을 꿇고 벌을 서게 하고, 심지어 선배들이 수업 끝나면 변소 뒤로 불러내서 폭력을 가하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일상이었죠. 당시 군대는 더 심했는데, 요즘에는 군대에서도 이렇게 못합니다.

옛날에는 상대가 싫다고 해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하면서 계속 따라다니고, 결국 상대가 좋다고 하면 마치 그걸 성취인 양 영웅담으로 여겼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하면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지고, 스토커 취급을 받게 되고, 그래도 따라다니면 형사처벌을 받는 시대입니다.

그것처럼 결혼한 부부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부부 관계를 싫다고 하는데 강제로 하면 성폭행범이 됩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와 의논해서 아내가 동의하면 그렇게 하고, 동의를 안 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내와 계속 살고 싶다면 아내의 뜻에 따라야 하고, 아기를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아내와 이혼해서 아기를 낳고자 하는 여성과 결혼하면 됩니다.

그런데 결혼은 왜 했어요? 아기를 가지려고 결혼했어요? 여성이 아기 낳는 기계도 아니잖아요. 서로가 좋아서 결혼했으면 그걸로 된 거죠. 서로가 아기를 갖기로 합의를 하면 아기를 낳으면 되는 것이고, 한 사람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 조건인데 아기를 원하면 입양을 하면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 의논해서 해결하면 되지, 이걸 두고 싸울 일은 아닙니다.

싸운다는 건 어느 한쪽이 강요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강요하고, 상대방은 거기에 저항을 하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건 싸울 일이 아니라 서로 의논을 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일입니다. 합의점은 네 가지예요. 내가 포기를 하든지, 상대가 포기를 하든지, 반반 양보하든지, 헤어지든지, 이렇게 넷 중 하나를 선택하면 돼요.

어떤 걸 선택하든 괴로울 일도 아니고, 싸울 일도 아닙니다. 서로 원하는 걸 이야기해서, 그중 어떤 해결책을 선택할 것인지만 논의하면 돼요.

그러나 아기를 갖는 건 남자의 요구보다는 여자의 요구가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기를 키우는 일을 주로 여성이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옆에서 도와주긴 하지만 그래도 주된 양육자는 여성입니다.

지금 아내가 아기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데도 아기를 갖고자 하는 것은 질문자가 자기 욕망을 지나치게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아기를 꼭 원한다면 지금의 아내와는 이혼하고 아기를 갖고자 하는 여성과 결혼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어요. 아내와 의논해서 대리모를 통해 아기를 낳는 방법도 있는데, 저는 그런 방식에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 세상에 나온 아이 중에서도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은데, 그런 아이 중 한 명을 입양해서 키우면 되지 왜 굳이 아기를 낳으려고 해요?

정부의 출산 정책도 아기를 안 낳겠다는 사람들한테 자꾸 낳으라고 하면서, 또 다른 한쪽에서는 낙태가 일어나는 것은 방치하고 있어요. 요즘 1년에 신생아 수가 25만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때는 낙태되는 아이들의 숫자가 30만을 넘기도 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그 수가 줄어들긴 했지만요. 한쪽에서는 낙태를 엄청나게 시키고, 다른 한쪽은 아이를 낳으라고 계속 권유를 하는 상황입니다. 생명이 생겼으면 일단 낳도록 도와주고, 자기가 키우기 힘들면 다른 사람이 키울 수 있게 국가에서 제도를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인구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는 동시에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아기를 낳는 것만 해주면 키우는 것은 정부가 맡아서 해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아기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3년 유급 휴가를 줘야 합니다. 우선 생활비를 줘야 하고, 직장도 보장해줘야 해요. 예산이 부족하면 무급 휴가라도 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성들도 경력 단절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많이 낳으라고 하면서 그 힘든 일은 또 개인들이 떠맡으라고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인구가 필요하다면 그만큼 그 일을 책임져 줘야 합니다. 여성이 아기를 키우면 그만큼의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인구가 많을 때는 당신이 낳았으니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말이 되지만, 인구가 부족할 때는 아이를 키우는 비용과 부담을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아이를 낳고 나서 육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여성이 있습니다. 이 여성분은 아기를 낳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남편은 아기를 갖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아내한테 아기를 낳아만 주면 키우는 건 일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을 했대요. 그래서 아기를 낳았는데 정말 이 여성분은 아기한테 젖도 안 먹이고 육아는 일체 신경 안 썼습니다. 육아에 대해서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전부 도맡아서 했어요. 아기만 낳으면 육아는 모두 남편이 책임지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세 명이나 아이를 낳아줬대요. (웃음)

그분은 요즘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기 할 일을 하고 다니는데, 아기를 두고 이렇게 다니면 어떡하냐 싶어서 그 집에 한번 가봤는데 실제로 엄마가 아이를 전혀 안 돌보고 있었습니다. 여성은 아기 낳는 것까지만 하고 육아는 모두 남편이 담당하고 있었어요.

제가 이런 경우까지 봤기 때문에 질문자한테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기 낳는 문제는 당사자가 어렵다고 하면 그 의견을 수용하는 게 좋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이었는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아내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이야기를 해보고 둘 다 좋은 쪽으로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내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서는 안 되고 많이 이해해야 합니다.” (웃음)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다 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 달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청춘 톡톡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청춘 톡톡 생방송을 했습니다. 1,700여 명의 청년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회적 이슈 2가지에 대해 방청객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토론할 주제는 ‘은둔과 고립 청년’, ‘소비주의’입니다. 청년들은 은둔하는 청년들이 왜 갈수록 늘어나는지, 청년 세대의 명품 소비가 왜 증가하고 있는지, 다양한 의견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습니다.


토론을 경청한 후 스님이 이에 대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소비주의의 대안으로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부유층 안에는 늘 소비 중독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아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좀 더 보편화되어 일반인에게까지 확산이 된 겁니다. 소비주의, 향락주의, 사치 문화가 보편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면 옛날에는 왕만 담배를 피우다가 그다음에는 귀족까지 담배를 피웠고, 일반인 남자들만 담배를 피우다가, 여성들도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것을 평등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담배는 나에게도 해롭고 타인에게도 해롭기 때문에 우리가 본받을 일도 아니고 가능하면 지양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600년 전 부처님과 제자들은 왕위도 버리고, 사치와 향락도 버렸습니다.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그러고도 아주 유유자적하게 살았습니다. 재벌들에게도 손 내밀지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왕의 권위에도 고개 숙이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자유를 누리는 길을 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관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소비주의와 그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과거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들어서 괴롭다며 어떻게 하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과거의 선택에 대해 후회가 되어서 괴롭습니다

“저는 과거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많아서 현재 선택을 하는 것이 두렵고 꺼려집니다. 과거의 선택으로 지금이 있다는 사실이 괴롭습니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해서 지금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선택을 잘못해서 제가 원하는 삶을 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습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나고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만, 만약 질문자가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면 질문자는 또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한 선택이 잘못된 것 같지만, 우리는 항상 그 시점에서는 자기가 제일 옳다는 선택을 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겁니다.

질문자가 선택을 잘못한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금 생각하면 ‘중학교 때 놀지 말고 공부할걸’ 이런 생각이 들죠. ‘그때 노는 것을 선택하지 말고 공부하는 선택을 했으면 좋았겠다’라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그 시점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그 선택이 더 옳다고 생각이 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100년 뒤에 인류를 생각하면 소비주의는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바보 같은 짓이지만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안 갑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다 잘 온 거예요. 다 순간순간 제일 나은 길을 선택해서 온 결과 여기에 온 것입니다. 지금 뒤돌아보니 좀 잘못 온 것 같기도 하죠, 하지만 그때 순간순간은 다 잘 선택해서 온 거예요.

예를 들어 누가 나한테 욕을 하고 비난을 해도 내가 빙긋이 웃으면서 ‘아이고, 불쌍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내가 부처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그 사람이 욕할 때는 절대 그 선택을 못 하고 같이 욕을 하게 되는 선택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택을 잘못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다 자기 나름대로 선택을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래서 과거를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후회가 되는 겁니다.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지금 기꺼이 받아야 해요. 공부를 안 했으면 좋은 대학에 못 간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일을 안 했으면 지금 돈이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남자 친구가 잘생겨서 좋아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면 그때 잘생긴 걸 선택한 결과를 내가 받아들여야 해요.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때는 그게 좋았던 겁니다.

이런 경험이 축적돼서 ‘지금 좋다고 결과가 좋은 게 아니구나’ 하고 알았잖아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뭔가 좋은 것을 선택할 때는 멈춰서 다시 살펴봐야 해요. 지금 좋은 것이 쥐약일 수도 있고, 미끼일 수도 있고, 낚싯밥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하기 전에 잠시 멈춰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좋으면 곧바로 선택하잖아요. 지금 싫으면 다 외면하잖아요. 그래서 좋고 싫은 감정에 너무 끄달리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좋고 싫은 감정을 따라 선택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다 최선을 다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뭘 잘못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런데 와서 뒤돌아보니 ‘빙 둘러왔네’, ‘잘못 왔네’ 이렇게 느끼게 되는 거죠. 그러니 지나간 일은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때 좋은 걸 따라가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앞으로는 그 당시에 좋은 마음이 생기면 오히려 멈추고 한 번 더 살펴봐야겠다.’

이걸 경험 삼아서 앞으로는 이런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만약 그 순간에 좋은 걸 선택하고 싶다면 나중에 결과를 받아들이면 돼요. 지금 질문자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망설여지는 것은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두렵기 때문이에요. 돈을 빌렸으면 돈을 갚아야 합니다. ‘예전에 돈을 빌리고 갚아보니 이자 쳐서 갚는 것은 힘들더라’ 하는 경험이 생겼다면 지금 당장 궁해도 돈을 빌리지 말아야 하는 거예요. 요행을 바라면 안 됩니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만,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겁날 게 없어요.”

“네, 제가 책임지는 것을 조금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남자하고 만나서 연애를 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아이가 생기는 결과가 나올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책임을 져야죠. 만약에 남자가 떠나버리면 혼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러한 결과들이 벌써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잠재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연애를 할 때는 그런 결과가 생긴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돈을 빌릴 때는 이자 쳐서 갚아야 하는 결과가 예정되어 있잖아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헤어질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보고 딱 한 번에 마음이 들었다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딱 한 번에 떠나갈 가능성도 있는 겁니다.

원인이 있다는 것은 이미 결과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남자가 배신했다.’, ‘여자가 배신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인연 과보를 몰라서 그래요. 배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 사람을 좋아했다 저 사람을 좋아했다가 하는 것은 그냥 사람의 마음 작동입니다. 계약서를 써놓고도 해약을 하잖아요. 상대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동안 고마웠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굉장히 이기주의적입니다. 내가 싫으면 그냥 떠나면서, 상대가 떠나면 의리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리의 문제가 아니라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 세상의 생리입니다. 만났다가 헤어질 때 ‘3년 동안 만나서 좋았다’ 이렇게 서로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오후 4시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평화재단 통일의병 워크숍

잠시 쉬었다가 곧이어 오후 4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통일의병 진행자과정 워크숍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매년 농사체험 프로그램과 병행하여 진행을 해왔는데 올해는 온라인으로 워크숍을 열게 되었습니다. 평화재단 통일의병은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9층 강당에서 워크숍을 하루 종일 진행했는데요.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스님에게 법문을 요청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모임을 운영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고민과 의문을 질문했습니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전쟁의 위험과 통일의병의 역할, 사회운동을 할 때 수행의 필요성, 통일의병이 갖추어야 할 자발성과 헌신성 등 여러 가지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통일의병의 역할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직장에 다니면서 돈만 벌고 사는 삶을 넘어서서 좀 더 보람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겁니다.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적어도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통일을 이루어야 미완성의 대한민국을 완성의 대한민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통일을 이루어야 2,500만 북한 주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안보적 대결 상황에서 북한 정부가 자기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한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정전체제가 평화 체제로 전환이 되고, 북한 권력도 외부로부터의 붕괴 위험에서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아마 내부 통제를 덜 하겠죠. 북한 주민들의 삶과 인권이 개선되려면 남북이 협력해서 점진적으로 평화와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이 되려면 합의를 해야 하고, 합의하려면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이룰 수 없고 점진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일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서 통일의병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권력 욕구를 따라 흘러가더라도 우리는 정의감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꾸준히 해나갈 때 많은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로 가려면 많은 사람이 참여를 해야 하니까 종교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포용해서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기 고집만 하고, 공심(公心)은 별로 없고, 출세에만 관심 있는 사람까지 포용해서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하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 사람도 끝까지 포용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해결책이 안 나옵니다. 가능하면 같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고 대화를 하지만, 그래도 안 되면 일부는 포기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원칙은 지키되 너무 경직되지 않게 모임을 운영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의병들은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어 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베트남 청년들과 대화

해가 저물고 저녁 8시부터는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청년 단체 VCIL(Vietnamese Community of Independent Learners)은 20대 청년들이 모여 활동을 시작했고, 주로 대안 교육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운동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지향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베트남 청년들은 불국사를 둘러보고 경주 남산을 순례하고 왔습니다. 빡빡한 일정에 조금 피곤한 기색이 보였지만 스님의 얼굴을 보자 다시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스님은 오늘 하루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국 그리고 정토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불국사와 경주 남산을 가보니까 어땠어요? 두북 수련원에서 지내는 건 어때요?”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좀 힘듭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공기가 상쾌해서 산뜻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산행을 해서 피곤할 텐데 길게 얘기하면 안 되니까 한 시간만 대화를 나누고 마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한국에 와서 또는 여기서 지내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세요.”

베트남 청년들은 다양한 질문들을 스님에게 했습니다.

  • 108배를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 정토회는 기존 불교와 어떻게 다른가요?

  • 저는 가톨릭 신자이고, 종교와 상관없이 사회 실천을 하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토회의 철학이 무척 좋은데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 경주 남산에서 머리가 잘린 불상에 관한 일화를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새로운 불교운동을 시작할 때 한국 사회 주류 불교의 반응은 어땠나요?

  • 인간은 환경에 무척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정토회와 인연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나요?

한 청년은 왜 주류 불교에 속하지 않고 새로운 불교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왜 주류에 속하지 않고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나요?

“한국에서 주류 불교에 속하지 않고 이런 새로운 불교 운동을 하게 된 사회적 배경이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스님은 왜 주류에 속하지 않으셨나요?”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 과정을 겪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국의 전통 불교는 군사독재와 봉건적 잔재 아래에 있었습니다. 당시 불교는 농민, 노동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군사독재의 편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통 불교의 한계를 자각했습니다. 내가 불자라는 것이 자랑스럽지 못했어요.

그래서 ‘불교가 원래 이랬을까?’, ‘이것이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불교의 근본사상과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가 믿는 불교는 종교화된 불교이지 원래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는 정치권력이나 왕의 밑에서 그들의 복을 빌어주는 그런 종교가 아니었어요. 부자에게 붙어서 먹고사는 사람이 수행자가 아니었어요. 붓다는 오히려 왕과 부자들을 깨우쳐주는 인격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철저한 계급사회 속에서도 부처님은 계급제도와 계급차별을 부정하셨어요. 여자도 한 사람의 인격으로 인정하고 여성의 출가를 허용함으로써 성차별도 부정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끼리 싸우면 어느 한 나라를 편드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무익함을 설파해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복만 빌었지, 부처님이 어떻게 살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우리가 믿고 따르는 불교는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들이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게 아니에요. 2600년 전 붓다의 가르침에 이미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가 다 녹아 있었습니다.”

질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약속한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아쉽지만 내일 저녁에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베트남 청년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베트남에서 가져온 차와 전통 모자인 농(Nón)을 선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모레 베트남 불교협회에서 큰스님들이 오시는데, 이 모자를 쓰고 안내를 하면 되겠네요.” (웃음)

스님이 농을 직접 쓰자 베트남 청년들은 너무 잘 어울린다며 아주 기뻐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내일 일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전국의 행복 시민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역사 기행을 하고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에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베트남 청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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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3-10-26 15:22:16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10-26 15:21:50

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2023-10-20 15: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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