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0.13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법회, 대경지부 회원의 날, 금요 즉문즉설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외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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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음력으로 8월 29일인 오늘은 용성조사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지 13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토회에서는 매년 이 날을 기념해 용성조사님의 삶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기념법회가 열리는 아도 모례원으로 가기 위해 아침 7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1시간 30분 동안 달려 9시에 아도 모례원에 도착했습니다. 곳곳에 많은 봉사자들이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입구에 들어서자 모두가 열렬히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법당으로 이동해 먼저 1부 행사로 역대 전등 조사들을 기리는 다례재를 지냈습니다.


다례재를 마치고 오늘 기념 법문을 설해주러 오신 혜총 큰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혜총 큰스님은 한국 불교의 큰 어른이신 자운 대종사를 40년 간 시봉하였고, 조계종 전 포교원장을 역임하며 불교계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오신 분입니다. 특히 도문 큰스님과 인연이 깊으셔서 오늘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법문을 특별히 요청드렸습니다.

혜총 큰스님은 스님을 보자마자 두 손을 꼭 잡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법륜 스님! 21세기의 부처님 아니십니까? 전 세계에 법륜 스님의 원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스님은 삼배로 큰스님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어서 한국 불교의 발전을 위해 어떤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10시 정각이 되어 기념법회를 하기 위해 마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정토회 대구경북지부 회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용성조사님의 행장을 낭독한 후 경상북도 문화체육국장님이 도지사님의 기념 축사를 대독해 주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 모두가 유튜브 생중계를 온라인으로 시청하며 기념행사에 함께 했습니다.

다음은 혜총 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큰스님은 용성조사님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읊으셨다고 하는 게송을 낭독한 후 용성조사님의 유훈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정토회와 법륜 스님의 노고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법륜 스님은 국내외를 다니면서 조금도 자기 시간을 갖지 않고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받들어서 전 세계로 전법을 하고 있습니다.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사는 분이 이 시대에 없습니다. 저도 용성조사님의 제자인 자운 스님을 40년 간 시봉했고, 나이 팔십이 되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지만, 법륜 스님의 활동은 역사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아주 험난한 지역에 가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용성조사의 유훈을 실현하고 있는 법륜 스님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모두 박수)

조계종에 72년 동안 몸을 담고 있는 저도 법륜 스님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항상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스님의 활동 모습을 보고 많은 정토회 회원들이 감동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 분의 훌륭함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용성조사님의 제자가 정말 많습니다. 해인사, 범어사, 신흥사 등 수많은 본사가 용성조사님의 문도이지만 그 유훈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도 남은 여생은 용성조사님의 유훈 실현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경전 구절을 하나 읽어준 후 정토회 회원들의 수행 정진을 당부한 후 법문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법륜 스님이 용성조사 오도일을 맞이하여 기념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법상 옆에 마련된 단상 앞에 서서 기념행사가 열리는 이곳 아도모례원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은 아도모례원입니다. 아도모례원은 신라불교 초전 법륜 성지입니다. 불교는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것은 약 2000년 전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남쪽에는 가야, 북동쪽에는 부여가 있던 5국 시대에 우리나라로 불교가 전래되었습니다. 공식 기록으로는 A.D 67년에 우리나라보다 중국에 먼저 불교가 전래된 것으로 나옵니다. 당시 중국은 후한의 명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해상로를 통해 인도에서 가야로 불교가 먼저 전래가 되었습니다. A.D 48년에 인도에서 아유다 공주와 장유화상이 바닷길을 통해 가야에 와서 불교를 전파했습니다. 중국보다 20년이 더 빠릅니다. 그러나 삼국사기라는 정사에는 이런 기록이 없습니다. 당시 역사가들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져있어서 불교의 전래가 중국보다 빠른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생긴 결과인 것 같습니다.

가야불교가 A.D 48년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약 2000년의 불교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신라는 주변국과 지리적 상황이 달랐습니다. 신라는 산악지형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국과 통하려면 서남쪽으로는 백제와 가야로 막혀있고, 북쪽으로는 고구려로 막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문물이 다른 나라보다 좀 더 늦게 전래가 되었습니다.

머슴살이를 하면서 이 땅에 처음 불교를 전한 사람

당시 고구려에 와 있던 아도화상은 신라에 불교를 전하려고 했지만, 신라는 불교를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즉, 신라는 외래사상을 금지하는 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국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라 왕실을 통한 불교 전파 대신 당시 국경 지역이던 이곳 선산으로 왔습니다. 나중에는 신라의 세력이 커졌지만, 당시에는 작은 국가였습니다. 그때는 고구려가 매우 강성하던 장수왕 시대였습니다. 국경 변이라고 하더라도 승복을 입고 승려 신분으로 불교를 전하면 신변이 위험해지니까 아도화상은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고 당시 이곳의 촌장이던 모례 장자의 머슴이 되었습니다.

아도화상은 이곳에서 모례 장자의 양 떼와 소 떼를 키우며 아주 성실하게 일했다고 합니다. 이런 노력으로 모례 장자 집안의 부는 자꾸 늘어났고, 또 그 성실함에 감동해서 하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례 장자의 누이동생은 하인 신분이던 아도화상을 사모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중국은 동진이 망하고 송나라를 거쳐 양나라가 들어섰는데, 양나라는 불교를 굉장히 옹호한 나라였습니다. 각국에 사신을 파견해 불교를 전했고, 그 사신이 마침 신라에도 왔습니다. 그리고 향을 주고 갔는데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신라의 왕은 신하를 보내어 전국을 다니며 그 물건에 대해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결국 아는 사람이 없어서 국경 변의 모례 장자의 집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사신이 향에 관해서 물으니 아도화상이 대답하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천한 신분이던 하인이 그 물건에 대해 알고 대답하니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도화상은 본인이 원래 승려라는 신분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 신하를 따라 수도인 서라벌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향은 불교에서 기도할 때 피우는 물건이고 이것을 피우며 기도하면 신령스러운 일이 일어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마침 왕의 공주가 병들어 있었고, 왕은 아도화상에게 공주의 병을 낫게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도화상이 기도를 했는데 마침 병이 나았습니다. 아도화상이 기도해서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인도나 중국은 당시 선진국이니까 어떤 약초나 처방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일로 왕은 불교를 허용했고, 서라벌에 절을 지어 아도화상이 머무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왕이 죽자 보수 세력이 불교를 다시 금지했습니다. 결국 아도화상은 쫓기다시피 모례 장자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집 밑에 굴을 파고 숨어서 불법을 전했습니다. 그 후로 이 집에는 얼굴이 검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졌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보면 ‘얼굴이 시커먼 오랑캐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역사 기록에는 이들을 한문으로 ‘묵호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전법의 초심이자 전법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아도화상은 불교를 전하면 생명이 위협받는 그런 어려운 시대에 머슴살이를 하며 주인의 신뢰를 얻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냥 머슴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신분이 귀한 승려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 모례 장자나 그 식구들이 얼마나 감동했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아도화상이 도망쳐 왔을 때 신고하지 않고 땅을 파서 숨겨 주었습니다. 모례 장자의 누이동생은 아도화상을 존경하여 결국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신라불교의 시작이 이랬습니다.

그 후 약 백 년 동안 불교가 국가의 공인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국민들 사이에는 물밑으로 전법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로마 시대에 기독교를 금지했지만 낮은 신분 계층에서 계속 퍼지다가 결국 공인을 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것처럼 대다수 신라인들이 불교를 믿었지만 공식적으로 금지된 상태에서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신라는 결국 불교를 공인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의 초기 전법 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전법을 할 때 큰 절이 있어야 한다거나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법을 전하는 아도화상의 정신입니다. 하인이라는 낮은 신분에서도 오히려 주인의 마음을 얻는 이런 성실함이 전법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가야불교도 법을 전하기 위해 한 여성이 수만 리의 바닷길을 건너와서 왕실과 결혼해 낳은 자식들을 출가시켰는데 그 수가 일곱이나 됩니다. 역사적으로 불교를 탄압하거나 외래 문명이 들어와도 이런 헌신성이 있었기 때문에 영남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불심이 매우 깊은 것입니다.

오늘날 정토회도 어떤 큰 후원을 받거나 과거로부터 내려온 유산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나무 밑에서 혼자 전법을 시작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부처님과 같은 전법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먼저 개인의 인생이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전법을 할 수 있습니다. 법을 전하기에 앞서,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병든 자에게는 약을 줘야 합니다. 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부처님을 믿으면 물을 주겠다’ 하며 조건을 내거는 전법 방식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부처님의 좋은 법을 값싸게 취급하지 않겠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불교가 새로 일어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새로 일어난 것은 부처님의 전법 정신과 닮은 아도화상의 전법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명맥만 유지하던 불교를 새로 일으켜 세운 사람

조선왕조 500년간 한국 불교는 세계 종교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사대문(四大門) 안에 있는 절은 모두 없애버렸으며, 스님은 속퇴시켜 버리거나 강제 노역을 하게 했으며 천민으로 신분을 강등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민층과 여성들의 신심에 의해서 한국 불교의 명맥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용성조사님은 이름만 간신히 이어 나가고 있던 불교를 부처님의 진실한 법으로 바로 세우는 활동에 전념하셨습니다.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를 강조하시며 근대불교 중흥조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의 불교 중흥 운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불교의 지성화입니다. 용성조사님은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불교의 ‘5대 수행법’을 정립하셨습니다. 석가여래 부촉법을 재정비하여 부처님의 바른 법을 계승한 한국 불교의 법맥을 복원하셨습니다.

둘째, 불교의 대중화입니다. 용성조사님은 일반 대중들도 부처님의 법을 알 수 있도록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한글로 최초로 번역하신 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경전이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양반을 제외한 서민이나 여성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을 믿는 마음만 있고, 부처님의 법을 모르는 불교 신자가 되어 복을 빌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세조(1461년)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을 두어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긴 했지만, 1471년(성종 2년)에 간경도감이 폐지된 이후에는 용성조사님이 처음으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해서 누구나 부처님 법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불교에 대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울 시내에 대각사를 창건해서 어린이 법회, 부녀 선방, 청년회 활동 등을 활발히 하셨습니다. 또한 불교 신자가 되는 의식을 제정하셨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구리가 장자에게 설했던 삼귀의, 오계를 복원하여 일반인이 재가 수행자가 되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재가 수행자들이 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용성조사님의 활동은 획기적이고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용성조사님이 말씀하시는 불교의 생활화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에 불교가 정의롭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선농일치(禪農一致)를 구현하셨습니다. 3.1 운동의 막후 기둥이 되셔서 일제 치하에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 드러나지 않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때 태극기로 깃발을 만들어 흔들자고 제안을 하셨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시대를 열자는 의미로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제안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용성조사님은 사회의식이 매우 강한 분이셨습니다. 유학을 간 적이 없지만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시어 대한민국의 독립을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이 평생 동안 불교 중흥 운동과 민족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이곳 아도모례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번뇌가 없는 안심입명의 경지에 이르셨기 때문입니다.

낙담하는 청년 세대에게 힘을 실어주는 공간

아도화상의 창의성, 개척 정신, 전법 정신은 불교를 넘어서서 우리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도모례원은 신라불교의 초전 법륜 성지로서만 역할을 할 게 아니라 낙담하는 대한민국 청년 세대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정신적인 토대가 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불교인들은 절에 신도가 없다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아도화상의 전법 정신을 배우고 계승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되살려서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초전 법륜 성지를 관리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과거의 경전 내용만 파고드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과거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서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싶나요? 저는 부처님의 바른 법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새로 일어서도록 하고, 더 나아가 세계인들이 행복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용성조사 오도 137주년을 기념하는 데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용성조사님의 깨달음 정신과 아도화상의 전법 정신을 미래에 되살려가겠다는 다짐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용성조사님이 평생 행하신 나라의 독립과 불교 중흥의 원을 이어받아 오늘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정토회 회원 모두가 다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서 사홍서원으로 기념식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내빈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체육국과 문화예술과에서 공무원들이 많이 참석했는데요, 식사를 함께 하며 이곳 아도모례원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의미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떻게 개발을 해나가면 좋을지 여러 가지 의견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참고해서 다시 설계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스님이 열정적으로 해준 설명 덕분에 공무원들도 모두 감동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대구경북지부 회원들은 삼삼오오 흩어져서 각자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곳곳에 아도화상과 모례장자, 용성조사님의 업적을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서 회원들 모두가 아도모례원을 한 바퀴 돌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대구경북 지부 회원의 날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포항지회에서 국악 가락에 맞춰 멋진 공연을 보여주며 행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서 지회별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주, 구미, 달서, 동대구, 수성, 포항을 비롯하여 경전대학 학생들까지 열띤 구호와 노래로 자신들의 지회를 소개했습니다. 재미나게 준비한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회원의 날 행사를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웃음과 박수를 뒤로 하고 스님이 연단에 올라와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부터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홉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같은 부서에서 직원들과 일할 때 의견 충돌이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듭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때 의견 충돌이 일어나거나 말이 안 통하는 경우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하면 마음이 많이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같은 부서에서 한 팀이 되어 일하는 직원과는 의견을 나누고 조율을 할 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인정해도 문제 해결이 안 됩니다. 어떤 때는 제 감정을 다스리기가 너무 힘들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이럴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상대를 대해야 할까요?”

“수행은 일반 종교나 도덕과 많이 다릅니다. 일반 종교나 도덕은 주로 ‘좋은 마음을 내라’, ‘잘해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수행은 ‘사실을 직시하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어떤 일을 두고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때 ‘사실은 무엇인가?’ 하고 살피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 사람이 생각하는 사실은 이렇고, 저 사람이 생각하는 사실은 저렇다면 두 사람이 아무리 토론해도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럴 때 사실은 무엇일까요? 두 사람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둘 중에 누가 옳은가?’ 이렇게 사실을 확인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네가 틀렸다’ 이렇게 접근하면 상대는 오히려 자기가 더 옳다고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화가 더 납니다. 사람의 심리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작동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접근하면 나에게 화가 안 납니다. 서로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나에게 화가 안 일어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네가 틀렸어’ 하면 내가 화를 내면서 접근하게 되고, ‘서로 다르구나’ 하면 화를 내지 않으면서 접근하게 됩니다. 그러면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상태에서 대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가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대화의 출발입니다. 대화할 때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하는 전제를 갖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겁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대화를 하니 목소리가 높아지고, 한두 번 이야기해서 안 되면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러나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대화를 하면 화가 안 일어나고 스트레스 없이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대화를 나눠 보고 나서 각자의 방식대로 하자고 합의를 해도 되고, 한 사람이 양보해서 상대의 말대로 해보자고 합의를 해도 되고, 반반씩 섞어서 해보자고 합의를 해도 됩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 여러 해결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상대가 굴복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 방법은 다른 해결책이 없는 막다른 외통수입니다. 내 생각대로 되든지 안 되든지 둘 중의 하나밖에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첫째, 내가 화나지 않고, 둘째, 여러 가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서로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 첫째, 한 사람이 포기하는 방법이 있어요. 현명한 사람은 내 생각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 방법이 제일 쉬워요. 왜냐하면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네 생각대로 한번 해 보자’ 이러면 길게 토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이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제일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거예요.

내 생각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 싶으면 상대에게 내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해서 상대가 동의할 때까지 설득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의견을 버리든지, 상대가 의견을 버리든지, 반반씩 타협을 하든지, 그것도 안 되면 따로따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지간에 방 안의 온도 문제로 의견 차이가 생겼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덥다고 하고, 한 사람은 춥다고 할 때, 첫 번째 해결책은 춥다는 사람한테 맞춰 온도를 높이는 겁니다. 반대로 덥다는 사람이 옷을 좀 벗는 겁니다. 아니면 온도를 중간으로 맞출 수도 있습니다. 각자 방을 따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아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상대가 아예 남의 말을 안 들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죠?”

“상대가 내 말을 안 듣는다고 말하는 것은 본인이 남의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럴 때는 상대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생각이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어보고 따로 할지, 반반씩 할지, 내가 포기할지, 상대가 포기할지 합의를 하면 됩니다. 나보고 포기하라고 하면 포기하면 되고, 내가 포기를 못 하면 나머지 셋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서로 포기를 못 하면 반반씩 섞든지, 따로 하든지, 안 하든지, 결정을 내리면 돼요.”

“제가 포기를 하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인 것 같네요.”

“그것이 제일 쉬운 방법입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내 주장을 포기할 때 내가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손해를 본 것이 아니고 여러 해결책 중 하나를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늘 내가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스님도 늘 포기하는 건 아닙니다. 꼭 필요한 일은 밀고 나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포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고, 인연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일에 따라서, 조건에 따라서, 해결책을 찾아나가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유정법(無有定法)입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웃고 손뼉 치고 공감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현장에서도 즉석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눈 후 오후 3시에 즉문즉설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보람 있으셨나요? 날씨도 좋았고, 모처럼 아도모례원에서 법회를 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셨네요. 오늘 휴가 내서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많은 분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휴가를 내서 온 사람들이 많네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큰 박수로 회원의 날 행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전 특별법회에 이어 오후 '대구경북지부 회원의 날'까지 오랜만에 긴 시간 동안 야외에서 법회를 했습니다. 화창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전법의 원을 다지고, 도반들과 화합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에 아도모례원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창밖으로는 노랗게 물든 가을 들판이 계속해서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단잠을 자며 피로를 풀었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자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4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시청자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정말 선선한 가을 날씨입니다.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금 들녘이 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미 추수가 시작되고 있고, 감나무에는 감이 붉은 색깔을 아주 진하게 띠기 시작했어요. 이런 좋은 가을날에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25년 결혼 생활 동안 아내에게 거짓말을 반복해 온 삶을 참회하고 싶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외도를 했습니다

“결혼 25년째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아내의 화난 모습을 보는 것이 귀찮고 무서워서 늘 크고 작은 거짓말로 방어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내의 잔소리와 화난 모습에 점점 화를 쌓아갔고, 아내가 화를 심하게 냈을 경우에는 아내 앞에서 가위로 제 손을 찍는 등 자해를 하였습니다. 정신과를 다니며 상담을 받고 약물 복용을 하였지만 아내에게는 거짓말을 반복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아내에게 회사에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하며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외도를 하였고, 결국 아내에게 마음의 지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제라도 뉘우쳐 부부 상담 클리닉을 받으며 참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좋은 소리만 듣고 싶은 욕심에 제 인생은 늘 거짓말만 일삼아 온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내를 속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질문자의 마음에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겁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행동을 하긴 했지만, 본인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심리가 너무 불안하니까 거짓말을 하든지, 술을 먹고 잊어버리든지, 바깥에 가서 딴짓을 하든지 해서 어떻게든 살려고 한 겁니다. 심리가 불안한 것을 해결하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친 거예요. 윤리 도덕적으로 보면 질문자가 부인한테 나쁜 짓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보면 아내한테 상처를 받아서 자신감이 없어지고 도망을 가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그게 사는 길이었어요.

아직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는 않았고,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는 않았고, 외도는 했지만 남을 괴롭히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지 않았고, 자잘한 거짓말은 했지만 남한테 사기를 쳐서 크게 손실을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술을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힌 것도 아닙니다.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니 너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는 남편이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그건 질문자의 정신적인 상처 때문에 생겨난 일입니다.

법원에서 판결을 내릴 때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일어난 사건일 때는 잘못에 대해 처벌하기보다는 치료를 받도록 합니다. 그런 점을 이용해서 나쁜 짓을 해놓고는 정신 질환자인 척하며 처벌을 면하려고 하는 부작용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 정신적인 질환 때문에 생긴 문제는 처벌한다고 해결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정신 질환은 자기 의지로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도 정신 질환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인한테 죄를 지었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까 지금부터는 치료를 잘 받아야 됩니다. 과거에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자꾸 생각하지 말고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질문자의 심리를 살펴보면 부인에 대한 열등의식이 크게 남아 있습니다. 밖에 가서 돈을 주고 여자를 만날 때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부인한테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서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부인을 대할 때 마음이 편안해야 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자꾸 죄의식을 가지면 부인을 대할 때마다 자꾸 움츠러 들어서 관계가 더 나빠집니다.

죄의식은 더욱더 질문자를 위축시키니까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부부클리닉 상담을 해서 죄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병인 줄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겠다’ 이렇게 미래를 보고 살아야 됩니다. 자꾸 과거에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앞으로 질문자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세상에게도 좋습니다. 옛날 얘기를 자꾸 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망상에 빠진 거짓말 괴물이 아니라 치료를 잘 받아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아내에게도 다시 한번 사과합니다.”

“자꾸 사과하거나 남을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질문자의 그런 모습을 되돌아보면 자기 위선처럼 느껴질지도 몰라요. 남을 걱정하지 말고 본인이 살 걱정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질문자의 심리는 항상 불안하고 위축이 되어 있습니다. 아내 앞에 서면 어린애가 잘못해서 엄마한테 야단맞는 것 같은 그런 심리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를 할 때도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경우는 부부 클리닉을 받으면 의사가 자세하게 안내를 해줍니다.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이런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하고 나부터 치료를 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우선 정신과 치료와 부부 클리닉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다 나누고 나니 밤 9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심리적으로 어렵다든지, 건강이 안 좋다든지, 어려운 사연을 가진 네 분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은 것 같네요. 어떤 날은 밝을 때가 있고, 어떤 날은 가라앉을 때가 있고, 이런 게 인생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주어지는 대로 대응을 해야 됩니다. 닥친 일을 피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좀 담담하게 받아들이세요. 지나고 보면 다 별일 아닙니다. 지금 큰일처럼 느껴질 뿐이지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닙니다. 나중이 아닌 지금 별일 아닌 줄 알고 담담하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유튜브 실시간 채팅창에는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댓글들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오프라인 강연과 온라인 강연이 함께 어우러진 날이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과 발우공양을 하고 함께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행복학교 특강, 청춘톡톡, 평화재단 통일의병 간담회를 하고, 저녁에는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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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3-10-30 08:18:01

해탈광

자기 나름대로는 그게 사는 길이었어요......
이해의 통로가 넓어지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2023-10-22 21:59:59

보각

감사합니다

2023-10-20 14: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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