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08.30 부탄 2일째, 왕실과 내각 책임자 미팅, 백중 회향
“전 세계에서 부탄만이 갖는 장점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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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탄에 도착한 지 2일째 날이 밝았습니다. 어제 부탄에 도착한 스님은 부탄 비구니 재단에서 마련해 준 수도원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6시에 식사를 했습니다. 타시 박사님이 부탄식 국에 된장과 두부를 넣어 끓여주었습니다. 식사를 함께 하며 국왕의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어젯밤에 국왕의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스님을 다시 만나 뵙게 돼서 기뻤고, 무척 좋은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잘 되었네요.”

식사를 마치고 아침 7시부터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아침 10시입니다. 원래는 저녁에 생방송을 해야 하는데 부탄 정부 관계자들과 미팅이 있을 것 같아서 오전에 생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생방송에 접속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히말라야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부탄에 와 있습니다. 그제 저녁에 서울을 출발해서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하고 인도 캘커타를 거쳐서 15시간 만에 이곳 부탄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곧바로 부탄 국왕과 면담을 했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비해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국왕의 어머님이 음식을 만들어 와서 같이 식사하면서 대화를 했습니다. 비록 문화는 다르지만 저도 부탄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고, 이분들도 한국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부탄을 방문한 이유

제가 부탄을 방문한 이유는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인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부탄은 낙후된 나라가 아니라 어쩌면 기후 위기 시대에 가장 앞선 삶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너무 열악한 생활은 조금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소비주의에 물이 들어서 욕망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탄소 제로를 이루려면 우리의 소비량을 많이 낮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비를 낮추라고 하면 엄청난 저항이 따릅니다. 그러나 부탄은 원래 소비량이 적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는 것과 동시에 더 이상 소비를 통해서 만족을 얻는 행위는 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의 길, 소비주의의 길, 물질주의의 길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수행을 통해서 행복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나라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새로운 모델을 우리가 부탄에서 만들 수 있다면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류의 미래에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탄이 가지고 있는 맑은 공기와 물, 순박한 삶과 전통문화를 살려나가는 방향으로 개발을 해나간다면 부탄은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가 됩니다. 그런데 소비주의로 발전시키는 길로 접어든다면 부탄은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됩니다.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가졌다고 스스로를 진단하고 무분별한 개발의 길로 나아간다면 너무나 힘든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제가 얼마나 부탄 정부 관계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는 더 대화를 해 봐야 됩니다. 만약 이 사업이 결정되고 추진이 된다면 우리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동시에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이 지난 이틀 동안 15시간에 걸쳐 부탄에 도착한 모습과 부탄에서 가진 일정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으로 스님의 하루를 간단하게 공유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두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알아차림을 연습하고 있는데 마치 내 행동을 지켜보는 CCTV처럼 느껴져서 피곤하다며 알아차림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했습니다.

알아차림이 CCTV처럼 느껴져서 피곤합니다

“평소 명상을 할 때 감정과 생각을 지켜보고 알아차리면 고요한 내면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요즘 이 알아차림이 일상생활에서 저의 행동이나 마음을 지켜보는 CCTV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식사할 때 ‘밥을 입에 넣는구나’, ‘반찬을 집는구나’, ‘음식을 씹는구나’, ‘음식을 삼키는구나’ 하며 사소한 행동까지도 인지하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금 여기에 늘 깨어 있으라는 수행적 관점에서 볼 때 명상에서의 알아차림과 일상생활에서의 알아차림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제가 알아차림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생활 속에서 알아차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알아차림을 제대로 하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가 들어오고 나감을 알아차리는 것이 왜 피곤합니까? 성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이렇게도 생겼네’, ‘저렇게도 생겼네’ 하는 것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피곤하다면 질문자는 알아차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자신이 알아차려야 된다는 의도를 갖고 있거나, 알아차린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피곤할 수 있어요. 생각을 하면 에너지가 듭니다. 무엇을 해야 된다고 하는 의지를 가져도 많은 에너지가 사용됩니다.

알아차림이 불편한 이유는 첫째,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는 게 병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하는 말처럼 멍청한 게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멍청하고 싶은데 자꾸 소소하게 알아차려지니까 오히려 불편한 거예요. 즉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다르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알아차리고 있는 게 아니라 알아차리려고 애를 쓰거나 알아차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의 알아차림과 명상에서의 알아차림은 차이가 없습니다. 명상을 할 때 초심자는 알아차리고 있는 게 아니라 알아차려야 된다고 애를 쓰고 있거나 알아차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알아차린 상태에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알아차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금방 피곤해집니다. 그러나 가만히 알아차리고 있을 때는 힘들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답답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뚜렷하고 편안합니다. 알아차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나 의지를 가지면 ‘이런다고 뭐가 되나’ 하는 회의도 들고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모두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알아차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입니다.”

“네,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다.”

“알아차리고 있는지 조금 더 뚜렷하게 점검해 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알아차려야 한다고 의도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이것이 알아차리고 있는 거구나’ 이렇게 스스로 점검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백중 기도를 회향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을 마치고 백중 기도 회향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추구하기 때문에 종교로서의 불교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편입니다. 저도 법문에서 종교로서의 불교에 대해서는 설명을 별로 안 하기 때문에, 정토회에서 천도재나 백중 기도를 접하게 되면 매우 어색해하거나 왜 이런 걸 하는지 분별심을 갖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살아오면서 종교를 갖게 된 건 그 역사가 5천 년이 훨씬 넘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찰나 무지가 일어나고, 어려움에 닥칠 때면 두려움이 생기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수행은 그럴 때 어떤 의지처를 찾기보다는 자신의 무지를 깨우쳐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수행의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수행이란 종교도 모두 수용하는 것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수행자의 길을 간다고 해도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형제가 죽거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 죽으면 수행적 관점은 온 데 간 데 없고 정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옆에서 아무리 정신을 차리라고 말을 해줘도 정신이 잘 안 차려집니다. 이런 모습을 두고 혼이 빠졌다고 말하죠. 그럴 때 수행적 관점으로 돌아오면 좋겠지만, 사람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종교적인 위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지향하되, 현실에서는 종교로서의 불교와 철학으로서 불교도 일부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백중기도, 동지기도, 정초기도는 모든 정토회 회원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의식에 거부감이 든다는 사람은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토회의 원래 목적인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추구하되 종교로서의 불교도 수용할 수 있다는 사람만 이런 기도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종교로서의 불교는 기독교를 배척하거나 다른 종교를 배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도 배척하지 않고, 종교가 없는 사람도 배척하지 않는데, 하물며 종교로서의 불교를 왜 배척하겠어요?

제가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주로 말하니까 종교로서의 불교를 배척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생은 많은 길 중에 자기가 선택해서 가는 겁니다. 그중 정토회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선택해서 가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선택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선택의 일부도 수용해서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타자리(利他自利)의 도리를 행하는 날

백중은 한국 문화의 전통에서는 노동해방절이기도 합니다. 이날은 옛날부터 하인들을 비롯하여 얽매여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루 동안 해방된 날이었습니다. 하인들이 주인에게 용돈을 받아서 시장에 가서 술도 먹고, 놀이도 하고, 하루 동안 아무런 구애 없이 자유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하인들에게 밥상을 차려주지 않았는데 백중에는 하인에게도 밥상을 차려줘서 주인으로 대접했습니다. 서양에서는 노동절이 5월 1일이지만, 우리의 전통에서는 음력 7월 15일이 노동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급 차별, 성 차별, 신분 차별 등 얽매여 있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기념일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만큼 오늘은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서, 장구 치고, 북 치고, 여러 가지 전통 놀이를 하면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는 날입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할로윈 데이, 화이트 데이 이런 것만 챙길 것이 아니라 이런 우리의 전통도 잘 살리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성차별과 계급 차별이 거의 사라졌죠.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열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불법 체류자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면회하고 위로하는 날로 백중을 승화시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에 가는 기준으로, 목마른 자에게 물을 줬는가, 배고픈 자에게 밥을 줬는가,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혔는가, 병든 자를 구했는가, 나그네 된 자를 위로했는가, 감옥에 갇힌 자를 면회 갔는가, 이렇게 여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사회에서 가장 작은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네가 어떻게 했느냐가 천국에 가는 기준이지, 교회에 얼마나 다녔는지, 돈을 얼마나 보시했는지가 천국에 가는 기준이 아니라고 하신 겁니다.

부처님께서도 부처님께 올린 공양의 공덕과 똑같은 공덕을 짓는 방법은 배고픈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고,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외호(外護)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백중을 맞이하여 내가 어떤 마음을 내고, 어떤 행동을 해야 조상영가님들이 천도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소외받고, 고통받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위로할 때 바로 나의 고통도 천도되는 동시에 조상영가님들 역시 천도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보살필 때 나의 고통이 사라집니다.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를 할 때 나에게 진정한 이익인 자리(自利)가 생깁니다. 또한, 내가 수행정진을 통해서 괴로움이 없는 자리(自利)를 얻을 때, 그것이 곧 타인에게도 큰 이익이 되는 이타(利他)가 되는 것입니다. 수행은 내가 먼저 괴로움이 없는 곳으로 나아가서 그것이 곧 타인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관점이고, 베푸는 행위는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곧 나에게도 돌아와 이익이 된다는 이타자리(利他自利)의 관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백중은 이타자리(利他自利)의 도리를 행하는 날입니다.

오늘 법회가 끝나면 백중을 맞이하여 저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비롯해서 윗대 분들께 천도재를 지내게 됩니다. 불교의 천도재는 보통 위로 7대의 조상까지 지냅니다. 어쩌면 인도 문화가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부모님만 명단에 올렸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서는 나를 있게 해 주신 7대의 인연 있는 조상영가님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면 좋겠습니다. 꼭 나의 조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호국영령들, 민주투사들, 산업역군들 등 억울하게 돌아가신 많은 영혼들이 모두 오늘을 기해서 원한을 놓고 편안하게 영면하길 기원하는 마음을 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법사님들의 집전 하에 다 함께 천도재를 지내겠습니다.”

이어서 전 세계를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백중기도 막재를 함께 지냈습니다. 염불 소리에 맞춰 인연 있는 모든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한 후 지난 49일 동안 진행된 백중기도를 모두 마쳤습니다.

9시 30분부터는 식당에서 타시 박사님과 회의를 했습니다.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동안 JTS가 어떤 원칙을 갖고 지원 사업을 해왔는지 스님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JTS는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고 어떤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입니다. 필리핀에서는 JTS, 교육청, 지역정부, 마을주민들, 이렇게 4개의 단체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완공이 되면 교육청에서는 선생님을 파견하고, 학교를 인가해 주고, 교과서를 제공합니다. 지역정부는 학교 부지를 정비하고 건축 기술자를 제공합니다. 마을주민들은 땅을 기증하고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JTS는 시멘트, 철근, 목재 등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제공하고, 학교가 완공되면 교실 안에 책상, 걸상, 칠판 등 교육 기자재들을 제공합니다. 가난한 동네의 경우 JTS가 아이들을 위한 교복과 학용품도 제공합니다. 그러나 장애인 학교를 지을 때는 넓은 지역에서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참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지역정부가 땅과 노동력을 책임지고 제공합니다. JTS는 자재를 공급하고 건축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감독합니다. 이것을 비율로 계산하면 JTS가 부담하는 것과 지역에서 3개 그룹이 부담하는 것이 70 대 30 정도 됩니다.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얼마 전에 파키스탄에 홍수 피해 지원을 했을 때는 지원하는 식료품 15가지를 JTS가 모두 구입하여 제공하고, 그것을 운반하고 배분하는 것은 현지 단체가 JTS와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진행했습니다. 이 경우는 비율로 계산하면 JTS의 부담과 현지 단체의 부담이 90 대 10 정도 됩니다.

JTS가 노동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하게 되면 노동을 제대로 했는지 감독을 해야 하는데 외국 단체가 현지 사람에 대해 감독을 하게 되면 갈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노동력은 현지에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술자들은 관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건비에 대한 책정이 적절한지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JTS와 현지 사람들이 협력해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면 공동의 성과가 되고, 각각이 경비도 절약하게 되어서 그 결과가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JTS의 취지를 현지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국제구호단체가 노동에 대한 인건비를 다 지급하고 있고, 현지 사람들도 모든 비용을 국제구호단체에 청구하는 분위기가 당연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JTS처럼 활동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만약 JTS의 원칙을 수용하는 현지 단체가 있다면 JTS의 지원은 계속 진행됩니다. 필리핀에서는 지역정부가 이에 동의해서 연간 3개 내지 4개의 학교를 계속 건축해서 지금은 70여 개의 학교를 지었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현지 NGO가 이런 원칙에 동의해서 8차에 걸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JTS의 이런 원칙에 동의하면 서로가 기쁜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진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 동의가 안 되면 오해가 자꾸 생깁니다. 앞으로 부탄 정부와 JTS가 협력해서 오랜 기간 많은 일들을 해나가려면 이런 원칙에 대한 상호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탄 정부도 자신들의 예산으로 이 사업을 추진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모든 자재를 JTS가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대략 하위 20퍼센트의 주민들을 지원한다는 관점을 갖고 사업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실태 조사를 한 다음 농업 개량, 생산시설 마련, 주택 개량, 병원과 학교 건축, 도로 건설 등을 하나씩 해나가야 합니다.”

“네, JTS의 원칙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이어서 여성출가자 교육기관을 어떻게 지원할지,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의 시범 지역을 어디로 선정할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지난번에 부탄을 답사하고 나서 약속했던 여성출가자 교육기관(넌너리) 지원에 대해 어떻게 실행해 나갈지 하나씩 점검해 보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며 타시 박사님이 제안했습니다,

“부탄까지 왔는데 팀푸에 있는 성이라도 둘러보시면 어떨까요? 왕궁으로부터 갑자기 면담하자는 연락이 오면 둘러보다가 왕궁으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럽시다.”

1시 30분에 셈토카종(semtokha Dznog)으로 출발했습니다. 부탄에 머무르는 동안 왕실에서 보내준 차와 기사님이 항상 어디든 데려다주고 있습니다.


셈토카종은 팀푸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역사가 깊은 종입니다. 종(Dzong)이란 요새, 성, 사원이 합쳐진 건축물입니다. 셈토카종은 부탄을 최초로 통일한 나왕남갤이 세웠습니다.

부탄에는 수도인 팀푸에도 고층 건물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5층 이상 건물을 못 짓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탄에 와서 높은 건물을 잘 보지 못했는데 성이라 그런지 아주 높았습니다. 새하얗고 높은 성벽 안으로 들어가자 큰 사원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천을 들어 올리자 빨간 승복을 입은 부탄 스님들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기도하는 스님들에게 삼배를 하고, 관세음보살상을 참배한 후 보시를 하고 나왔습니다.


이어서 부탄을 최초로 통일한 나왕남갤의 동상이 모셔져 있는 곳을 참배했습니다.

“여기 와서 창밖을 보세요. 절벽이에요.”

요새답게 창밖으로 절벽이 보였습니다.


성을 한 바퀴 돌고 나와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차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오르더니 한 곳에 멈췄습니다. 팀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상게강 산 정상 부근이었습니다. 스님은 차에서 내려 전망을 둘러본 후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았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한국식당 산마루에 들렀습니다. 지난번에 부탄을 답사할 때 와 본 곳입니다. 한국인 사장님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 다시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부탄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국왕과 면담을 하러 왔어요. 하노이에서 캘커타, 캘커타에서 부탄으로 왔어요.”

“아유, 왜 그렇게 힘들게 오셨어요?”

“중이 편하게 다니면 안 되죠.” (웃음)


차를 다 마시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식당을 나왔습니다. 다음은 전왕이 명상을 하며 머무는 곳 근처를 지나갔습니다.

“이곳은 옛날 궁궐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요. 왕이 개발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전왕도 한번 만나보면 좋겠네요. 저와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아요.”

“네, 그럴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전왕을 만나보셔도 좋겠어요.”

왕실 직원이 보초를 서고 있는 곳을 지나가자 경례를 했습니다.

“왜 경례를 하는 거예요?”

“왕의 손님을 태운 차량이라 알아보고 경례를 하는 겁니다.”

차는 이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렸습니다.

“팀푸의 면면을 보여드리려고 옛 도로를 이용해서 비구니 재단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멀리 부탄 비구니 재단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높이 51m의 청동 불상 도르덴마 아래쪽에 비구니 재단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부처님 아래 저희 비구니 재단이 있습니다.”


오후 5시 30분이 되어 부탄 비구니 재단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원교 교정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타시 박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왕실에서 직접 부탄 비구니 재단으로 찾아와서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왕의 비서실장과 내각 비서실장이 스님을 찾아뵙고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녁 8시가 되어 왕실 직원들이 도착했습니다. 모두 다 부탄 정부에서 가장 높은 직위와 경험을 갖고 있는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국왕 비서실장은 어제 국왕과의 면담을 하고 나서 스님의 소감이 어떠했는지 질문했습니다.

“지금 부탄 정부로서는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하는데, 어제 국왕의 브리핑을 듣고 나신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스님은 솔직하게 소감을 이야기한 후 스님이 제안한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부탄만이 갖는 장점이 무엇일까요?

“부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 점을 늘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하는데 부탄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스님께서 생각하시기에는 부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첫째, 부탄은 자연환경이 매우 좋습니다.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을 갖고 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많습니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지역일 것입니다. 둘째, 의사결정이 아주 빠른 왕국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아주 겸손하고 민주적입니다.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어서 중간에 계획이 무산될 염려가 적습니다. 셋째, 인구가 적습니다. 넷째, 국민들의 소비 수준이 낮습니다. 물론 이것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전통문화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건적이지 않고 민주적입니다. 여섯째, 종족이나 종교가 다른 소수자의 저항이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일곱째,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국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탄만이 갖는 장점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프로젝트를 더 힘차게 추진해야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제가 제안한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는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첫째, 경비를 외부에 구걸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탄 정부와 정토회가 합의하면 바로 추진할 수 있습니다. 둘째, 경비가 많이 들지도 않습니다. 한 개의 지역에 샘플을 만들어서 성공하면 나머지 지역에 확산하는 것이 굉장히 쉽습니다. 하나의 성공적인 샘플을 부탄 전체로 확대할 때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샘플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지원받기도 쉽습니다. ‘여기 와서 보라’ 하고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저의 제안은 미래의 첨단 기술을 도입해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자는 것이 아니고, 좀 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부탄이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낼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것이 오히려 유리합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개발이기 때문입니다. 첨단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전원 속에서 더 느리게 더 전통을 지키며 더 편안하게 사는 삶을 추구합니다. 한 군데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것이 아니고 여러 군데에 조금씩 흩어져서 사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그래야 탄소 제로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살고 있는 부탄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개발입니다. 부탄을 더욱 부탄답게 만드는 개발입니다. 제가 제안한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석학이 필요한 개발이 아니고 부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개발입니다.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도 기쁨이 생길 수 있는 길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정한 수준 이상은 개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욕망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개발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도 기쁨이 생길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붓다 담마가 필요합니다. 수행을 통해서 욕망을 적절하게 절제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부탄은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굉장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내각 비서실장은 부탄에서 젊은이들이 자꾸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부탄의 젊은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 고민입니다

“부탄은 최근에 외부의 원조에 자꾸 의지하다 보니 부탄이 갖고 있는 장점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성공의 기회를 찾아 해외로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젊은이들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고 부탄의 장점도 살려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탄의 젊은이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외국에 나가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삶을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 중에 몇 명은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많은 상처를 입고 탈락하게 될 겁니다. 세계무대에 나가면 인종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돈은 많이 벌 수 있을지 몰라도 행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둘째,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된다면, 돈은 많이 벌지 못할지라도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기 때문에 개인의 보람은 매우 클 것입니다. 청년들이 가진 재능은 모두 국민들의 지원으로 얻은 것인데, 그 재능을 왜 외국에 가서 사용합니까? 자신의 재능을 국민들을 위해 사용할 때 훨씬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프로젝트에 부탄의 많은 청년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길 바랍니다. 아니면 공무원이 되어서 이 프로젝트에 헌신적으로 참여해도 좋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청년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차단하고 해외 출국을 막는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본인들이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네, 스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은 부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어디인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자연환경에 맞는 생산물을 어떻게 재배하면 좋은지 여러 가지 노하우를 알려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스님의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조했습니다.

“제가 말한 것이 이해는 돼요?”

“YES!”(네!)

“저의 제안은 부탄이 갖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것입니다. 30년 전에 전왕이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제안했던 그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합해서 GNH를 실현한 샘플을 하나 만들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 와서 GNH에 대해 질문하면 ‘저기에 있는 마을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하게 살지만 당당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붓다는 왕위를 버리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두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왕실과 내각 책임자들은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 스님을 배려해 대화를 마쳤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스님은 단주와 영문 희망편지 책을 선물했습니다.


왕실과 내각 책임자들은 스님에게 아주 공경스럽게 인사를 한 후 스님이 먼저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본인들끼리 다시 열띤 회의를 이어나갔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저가 항공을 타고 이동하는 날입니다. 부탄을 떠나 델리로 이동한 후, 다시 델리에서 아부다비 공항으로 이동하고, 다시 아부다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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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숙

스님의 명쾌하신 말씀 고맙습니다.

2023-09-15 07:10:12

대용

스님의 혜안과 구체적이고 꼼꼼한 실행에 감탄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올라 옵니다. 감사합니다

2023-09-15 06:10:04

구자정

부탄 프로젝트 꼭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2023-09-11 07: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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