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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탄에 도착한 지 3일째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저가 항공을 타고 부탄을 출발하여 독일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니 날이 밝아왔습니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 식당으로 내려와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배 조각으로 티끌 하나 없이 닦아 먹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이틀 동안 정갈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신 타시 박사 님과 모든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틀 동안 덕분에 정말 잘 지냈습니다. 고맙습니다."
비구니 재단을 떠나기 전에 타시 박사 님에게 재단 운영 기금을 보시했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이 모두 하안거를 떠나고 홀로 남아서 스님 일행을 맞이해 준 넌에게도 단주와 용돈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차가 출발하고 아름다운 비구니 재단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스님은 타시 박사 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박사 님은 국왕의 어머니가 전화를 주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어제 국왕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스님께 선물을 못 드렸다고 무척 아쉬워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스님께서 미리 저에게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잘하셨어요.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하는 게 선물입니다.” (웃음)
타시 박사 님은 어제 스님과 미팅을 하고 간 왕실과 내각 책임자들이 이야기해 준 소감도 나눠주었습니다.
“어제 왕실과 내각 책임자들이 스님과 대화를 하고 나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제안해 주신 지속 가능한 행복 국가의 모델을 만드는 것은 부탄 정부가 꼭 해보고 싶었던 사업이었습니다. 책임자들이 가장 감명을 받은 부분은 스님께서 법문과 실천을 따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보통 종교 지도자들은 몸소 실천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법상 위에서 설교만 합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스님 자체가 롤 모델이 되어서 공동체 생활을 하시며 농사일도 하시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계시기 때문에 특히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동안 부탄의 스님들은 주민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역할만 했지 현실에서 불교의 가치를 실천하는 모델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실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육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앞으로는 그런 활동을 많이 보고 견문을 넓히도록 해줘야죠.”
“그래서 제가 정토회 스터디 투어에 참가해 보았습니다. 정토회는 불교적인 가치가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생활 방식을 여기서 모방해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우리 넌(여성 출가 수행자)들을 보면 음식을 함부로 버리고, 불을 켜 놓고 다니고, 전기도 아껴 쓰지 않거든요. 이런 사소한 생활 습관을 항상 제가 지적해야 합니다. 제가 자란 환경과 지금 넌들이 자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맨날 쫓아다니면서 얘기를 하다 보니 잔소리가 되었습니다.”
“생활 습관은 성인이 되면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 절에 들어왔을 때부터 교육해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백일출가를 한 행자들에게 제일 먼저 불교 지식을 가르치지 않고 생활 습관을 가르칩니다.
서울에 있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는 엘리베이터 사용을 할 때 위로 3층 이상 아래로 5층 이상 이동할 때만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실천을 하자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한 번 움직이려면 전기가 엄청나게 소모됩니다. 엘리베이터를 혼자서 타고 올라가면 전깃불 수백 개를 켜는 것과 맞먹는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전깃불 끄기 운동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래서 부탄 정부가 건물을 4층 이상 짓지 못하도록 한 것은 매우 잘한 거예요. 한국처럼 많은 발전이 진행된 상태에서 에너지 절약 운동을 하려면 정말 힘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부탄은 기후 위기를 막는 모델을 만들기에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모르지만요.”
“다음에 스님이 부탄에 오시면 그때는 계획을 잘 짜서 대학생 청년들과 대화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파로(Paro)에 왕께서 직접 만든 대학교가 있습니다. 불교를 가르치는 곳이기도 해서 스님께서 꼭 강의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부탄의 비구니와 넌들에게도 스님의 법문이 필요합니다.”
“네, 다음에 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탄의 비구니 교육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벌써 파로 공항에 가까워졌습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1시간 동안 달려 오전 8시가 넘어 파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있어 타시 박사님과 공항 앞 식당에서 대화를 더 나누었습니다. 그 사이 왕실 직원이 스님 일행의 출국 수속을 밟고 수하물을 부쳐주었습니다.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타시 박사님과 이틀 동안 운전을 해 준 왕실 운전 기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공항으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스님, 곧 다시 오세요.”
출국 수속이 이미 끝나 있어서 곧바로 탑승구로 갈 수 있었습니다.
오전 9시 4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였지만 탑승객이 모두 타자 비행기는 9시 23분에 이륙했습니다.
구름 위에서 새로 출판할 책의 원고를 교정하는 사이 비행기는 인도 시간으로 오전 11시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줄을 서 있는데 비행기에 함께 탑승한 부탄 여성이 스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한국과 한국 드라마를 무척 좋아한다며 한국말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 너무 아름다워요. 한국 사람들도 다 아름다워요."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학생도 아름다워요."
한국말로 계속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한국에 와 봤어요?"
"아니요. 돈이 없어요." (웃음)
“한국에 오면 제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구경시켜 줄게요. 언제든지 오세요.”
“제가 돈을 벌어서 10년 뒤에 꼭 갈게요.”
한류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델리 공항을 나오니 인도 성지순례 스태프로 봉사했던 김은희 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저녁 9시 10분에 아부다비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9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간이 난 김에 델리 불자회 우정민 회장 부부를 만나 근황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회장님이 운영하는 가게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차를 마시고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회장님 댁으로 갔습니다.
스님은 서울을 출발해 부탄에 있는 3박 4일 동안 한 번도 씻지 못했습니다. 부탄 숙소에서 차가운 물만 나오는 데다 일교차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회장님 댁에서 4일 만에 처음으로 목욕을 하고 오후 5시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델리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쉬어 가세요.”
불자회 회장님은 스님의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하며 배웅해주었습니다. 부탄 일정 동안 통역을 하기 위해 미국에서 온 국제지부장 김지현 님은 델리에서 작별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스님도 출국 수속을 밟은 후 밤 9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아부다비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오늘 밤 숙소는 비행기 안입니다. 밤하늘 위에서 잠도 자고 이동도 하고 숙소 경비도 절약합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금요 즉문즉설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둘째 아이가 대학생입니다. 입학 이후 학교에 가지 않아 학사 경고를 받은 것을 알게 되어 야단쳤습니다. 중 2 때부터 학교생활이 원만하지 않았고 가출을 두 번 하였고, 보호관찰도 받고 심리 상담도 받았으나 sns로만 친구들을 만나고 모든 생활을 거짓으로 살고 있습니다. 현재 가출한 지 3주가 되어 갑니다. 화가 났다가 울기도 하고 걱정과 불안으로 힘이 듭니다. 뭐가 그리 답답한 건지도 모르겠고, 다 내려놓고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건지, 집으로 돌아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대학에 들어갔으면 성인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이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미성년자일 때는 최종적인 결정을 보호자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호자의 대부분이 부모이고, 부모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보호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성인이 되면 자유인입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어요.
사회생활은 모든 것이 다 계약 관계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계약 관계입니다. ‘월급을 얼마만큼 줄 테니 너는 이런 업무를 해라. 대신에 이런 사항은 지시 받아야 한다’ 이렇게 전부 계약 관계를 맺은 다음 마음에 안 들면 계약을 해지합니다. 계약을 위반하면 회사에서도 나가라고 할 수 있고 나도 그만둘 수가 있어요.
대학에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 가든 안 가든 성인은 자유예요. 내가 학교에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돼요. 아이는 이제 성인이기 때문에 대학을 안 가겠다고 하면 학비를 안 대주면 되지 아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야단을 치게 되는 것은 아직 질문자가 성인인 아이를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자녀가 성인이 되면 계약 관계로 봐야 합니다. ‘내가 학비를 댈 테니 너는 학교에 다닐래?’ 하고 물어보고 동의하면 학비를 대 주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고, ‘나는 형편이 안 되니 학교를 다니든 말든 너 알아서 해라’ 하고 학비를 못 대주면 아이는 돈이 없어 안 다니든지 자기가 벌어서 다니든지 하면 됩니다. 엄마가 학비를 대 주겠다고 해도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싫다면 안 다녀도 되는 거예요.
자식이 집을 나갔으니 걱정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심정을 갖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질문자가 자식에게 집착하고 있으면 괴롭기만 합니다. 자식이 집을 나가도 괴롭고, 다시 집에 들어와도 괴로운 거예요. 집을 나가면 걱정이 되어서 괴롭고, 집에 들어오면 공부 안 하고 맨날 sns만 보는 것이 괴로워요. 아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미성년자이니까 아무리 속을 썩여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성인이 됐으니 ‘죽든지 살든지 너 알아서 해라’ 하고 단호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어떤 요구가 있으면 성인과의 계약 관계이니 엄마의 요구 조건을 이야기해야 해요. 집을 나가서 살겠다고 하면 ‘너 알아서 해라’ 하고 말하면 되고, 방을 구해 달라고 하면 ‘내가 돈을 빌려 줄 테니 너는 어떤 식으로 돈을 갚을래?’ 하고 물어보면 됩니다. 그렇게 계약해서 지내면 돼요.
‘나는 돈을 못 주겠다. 집에 방이 하나 있는데 이 방을 무료로 쓰면 되지 뭣 때문에 밖에 가서 돈을 쓰냐? 네가 벌어서 네가 쓰면 다행이고, 없으면 그만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아이가 그렇게 집을 나가면 이성을 만날 수가 있죠. 성인이면 누구나 다 이성을 만날 자유가 있습니다. 부모라도 간섭할 수가 없어요. 스무 살이 넘은 딸이 집을 나와서 60대 남자와 결혼을 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어요. 법적으로도 부모의 승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마음에 안 들면 결혼 축하를 안 해 준다든지, 결혼식에 안 간다든지, 결혼 자금을 안 준다든지, 그런 건 부모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간섭은 할 수 없어요. 옛날에는 성인이 되면 성인식을 했습니다. 성인식을 하면 다음 날부터 어른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성인을 대할 때는 모든 것을 명령식으로 하면 안 되고, 계약 관계로 보고 합의점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부모도 자식 때문에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질 필요도 없고, 자식도 부모 때문에 구속 받을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계약 관계를 맺게 되면 구속되는 부분이 생깁니다. 회사의 직원이 되면 회사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기 때문에 구속이 되는 것과 같아요. 아이가 대학을 가겠다고 하면 학비를 대주는 대신에 공부는 어느 정도 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가 있습니다. 공부를 안 하면 학비를 끊겠다고 하면 되지 학교를 안 갔다고 아이를 야단치는 것은 아직 자식을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집에서 아이가 누워 자든지, 밥을 안 먹든지. 방 안에서 sns를 하든지, 질문자가 야단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부모 자식 관계를 생각해서 ‘엄마가 보기에는 그런 행동이 시간 낭비 같은데 어때?’ 하고 조언을 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말도 잔소리라고 여겨서 듣기 싫어하면 안 해야 합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을 나가면 ‘알아서 잘 살겠지’ 하면 되고, 집에 들어오면 옛날 인연이 있으니까 받아주면 돼요.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싫으면 조건을 내걸면 됩니다. ‘집에 들어오려면 이런 약속은 지켜라. 안 그러면 들어오지 마라’ 이렇게 이야기하면 돼요. 질문자가 그런 조건을 안 붙이고 싶으면 모든 걸 무료로 제공해도 됩니다. 그러나 무료로 제공했다고 해서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가지면 아이가 집에 들어와도 아무 문제가 없고, 집을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좀 직설적으로 말해서 아이가 내일 죽었다고 연락이 와도 질문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장례식을 치러 주는 일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을 딱 가져야 자식이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안 됩니다. ‘부모인데 어떻게 자식을 그렇게 둡니까?’ 이렇게 말하려면 저한테 묻지 말고 그냥 본인이 알아서 하세요. 그것은 자연의 원리도 아니고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집착을 못 놓는다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성인을 어린아이로 취급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와도 고뇌이고, 집을 나가도 고뇌가 되는 겁니다. 관점을 딱 바꾸면 집에 들어와도 아무 문제가 없고, 집을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성인은 본인이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 내버려 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새가 다 크면 둥지를 박차고 나가야 하는 겁니다.
아이가 사고를 치든 치지 않든 그것은 질문자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는 사고를 치면 그 책임이 부모에게 있지만, 성년이 되었으면 부모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어요. 아이가 스스로 변상을 하든지 변상을 하지 못하면 감옥에 가든지 하면 될 일입니다. 질문자는 아이가 감옥에 가는 게 안타까워서 변상을 해주고 싶어 하는데 그래도 되지만 그것은 성인이 된 아이의 인생에 간섭하는 것일 뿐입니다.
아이에게 답답한 것을 못 견디는 성질이 있었다면 그것은 정신 질환입니다. 아이에게 정신 질환이 있다면 그에 맞게 관계를 맺어야 해요. 아이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속이 답답해서 못 견디기 때문에 부모가 잔소리를 하면 뛰쳐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아이가 병원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그것은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요즘 아이들은 약간의 정신 질환이 있으면 그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합니다. 부모마저 아이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출하거나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이해해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을 수 있어요. 그러나 부모라면 그것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건강하면 됐다. 공부가 뭐 그리 중요하냐.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부모가 탁 트여 있어야 합니다. 질문자와 같은 성격이라면 앞으로 다른 자녀들과도 갈등이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으면 자유롭게 살도록 하고 더 이상 관여하지 말아야 해요. 자녀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는 대신 너는 무엇을 하겠니?' 하고 자녀의 의사를 물어봐야 합니다. 서로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해요.
누구나 한 번은 실수할 수 있어요. 그러나 두 번은 실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사람과는 관계를 잘못 맺을 수 있지만, 두 사람 내지 세 사람과 관계를 잘못 맺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제 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 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정신을 차려서 이번에 한 실수를 다음에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이 없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어떤 일이 생기든 거기에 구애 받지 않고 내 마음의 자유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해탈이에요.”
“아이가 앞으로 집에 돌아오면 스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이가 원하면 그렇게 관계를 맺고, 그걸 원치 않는다면 아이를 성인으로 존중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 아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런 아이를 둔 부모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가 집을 나갔는데 부모가 어떻게 발을 뻗고 사느냐’ 하고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고뇌하다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집을 나갔더라도 미성년자가 아니라면 부모의 책임이 아니에요. 미성년자라면 경찰에 신고했을 때 찾아주지만, 성인이면 신고해도 찾아주지 않습니다. 사고가 일어났다든지 아니면 납치가 됐다든지 하는 특수한 경우에만 찾아줄 뿐, 본인이 선택해서 집을 나갔는데 부모가 애걸복걸한다고 해서 경찰이 찾아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인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어려움을 겪을까 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매정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방법이 없는 것을 자꾸 궁리하면 점쟁이에게 점을 치러 가거나, 굿을 하거나, 절에 가서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돈이 들 일만 자꾸 생길 뿐이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살든 죽든 그것을 선택할 권리가 아이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자녀가 스무 살이 넘으면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 하고 남은 인생을 내 배우자와 만끽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이 주로 남편을 버리고 애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살아요. 그것은 인생을 잘못 선택하는 겁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남자와 여자가 있어요. 내 남편을 챙겨야지 남의 아내가 되거나 남의 남편이 될 사람을 챙기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그렇게 집착을 해서 아이를 키우면 사회에 장애를 일으키는 사람을 만들기가 쉽습니다. 아이들을 조금 자유롭게 키우면 좋겠습니다. 애완용 동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사람으로 키운다는 관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아부다비 공항을 경유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후 온라인으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저녁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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