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8.25 금요 즉문즉설
“아내가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저는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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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주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해외에 거주하는 분들과 주간반 시청자들을 위해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33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이제 8월 하순으로 접어들고 또 비가 오면서 무덥던 여름도 한풀 꺾이는 것 같습니다. ‘계절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고, 아무리 더운 여름도 오는 가을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다만 좀 늦게까지 더울 때가 있고, 좀 늦게까지 추울 때가 있을 뿐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계절은 그냥 순환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 계절을 이기는 장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기후위기입니다. 기후위기는 그동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왔던 계절까지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어서 기후 위기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를 언급하며 적게 소비하는 삶의 필요성을 강조한 후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이 농사일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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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끝나고 나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내가 신내림을 받고 나서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현재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을지 질문했습니다.

아내가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저는 어떡하죠?

“작년 12월에 아내가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막상 상황이 벌어지고 나니 인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자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지만 저는 아내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조울증이라는 병이 있고 약을 평생 먹어야 합니다. 정신병원에 세 번이나 입원했었던 젊은 시절에 아내는 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아내 곁을 지키려고 마음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천일 정진을 하겠다며 여든에 가까운 시부모님께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맡기자고 했습니다. 이 일로 아내와 또 갈등을 빚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제가 키우려고 했지만 직장이 멀리 있고 이사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쳐서 마음이 매우 괴롭습니다. 그리고 굿을 하고, 법당을 차리는데 많은 빚을 져서 경제적인 압박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끔 주위에서 결혼해서 함께 살다가 한 명이 수행하겠다고 해서 이혼을 하고 출가하는 경우를 보게 되죠. 남자도 그런 경우가 있고, 여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반대를 하며 갈등하다가 대부분이 인정을 하잖아요. 그런데 부인이 신내림을 받고 굿당을 차리는 것에 대해 질문자가 인정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질문자가 사회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내는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신앙을 갖고 있는 거예요. 신내림을 받는 사람은 신의 어떤 계시를 세상의 무엇보다 우선합니다. ‘이혼해라’ 하고 암시가 오면 이혼을 하고, ‘자식들과 떨어져라’ 하면 자식들과 떨어집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죠. 신내림을 받는다는 것은 신의 종이 되는 겁니다. ‘신에게 무조건 복종한다’ 하는 믿음을 가져야 계시를 받는다든지 초능력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되거든요. 그걸 거부하면 몸에 병이 나기도 합니다. 아직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완전히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신내림이라는 것은 일종의 무의식 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내림을 받아서 무의식의 혼란으로부터 안정을 찾는 것이거든요.

이것을 옛날처럼 종교적으로 보느냐와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느냐와 상관없이 어쨌든 정신 불안의 한 증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치료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신내림이라는 전통적 방법으로 심리적 안정을 갖는 방법도 있습니다.

질문자의 아내가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많은 심리적 불안으로 방황하거나 몸이 아프게 돼요. 그래서 질문자의 아내는 차라리 신내림을 받아서 자기 건강도 찾고, 그 능력으로 굿당을 차려서 수입도 갖는 방법을 선택할 수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굿당을 차리는 것은 아내의 정신적인 불안과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굿당을 차리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로 봐야 해요. 요즘에 절이나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듯이 전통 무속신앙에도 믿음을 갖고 찾아와 돈을 내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신내림을 받는다고 해서 꼭 굿당을 차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거액을 들여서 굿당을 차린다는 것은 마치 요즘 신도가 별로 없는데 큰 절을 짓거나 교회를 지어서 빚을 지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굿당을 차리는 문제는 종교와 관계없이 경제적으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그런 경제 능력이 없다면 아내에게 얘기해야 해요.

‘당신이 신내림을 받고 수행하겠다는 것은 당신의 자유야. 하지만 아이들도 키워야 하니 당신이 굿당을 차리는 경제적 지원은 내가 할 수 없어.’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질문자가 질문자의 아내를 아이들의 엄마로서 보호하고 존중하겠다는 것과 아내에게 굿당을 차려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아내의 신내림 여부와 상관없이 굿당을 차리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아내에게 주식투자나 도박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잖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도박자금을 대든지, 사랑하기 때문에 투자자금을 댄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질문자가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돌보려고 하는 자세는 좋지만 그런 경제적 부담은 수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의 양육 문제의 경우 아내가 못 키울 상황이 되어 이혼하게 되면 어차피 질문자가 키워야 돼요. 그렇게 되면 가능한 질문자가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현재 질문자가 그럴 형편이 안 되고, 아내는 신내림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질문자의 부모님이 돌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 보여요. 아니면 아이들을 위탁 시설에서 돌보게 하는 수밖에 없죠. 질문자의 가족들이 아이들을 돌볼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위탁 시설에 맡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노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는 것보다는 오히려 양육기관에 양육권을 위탁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옛날 가족관계에서는 노인이 주로 아이들을 돌보아왔지만 80세가 된 노인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만약 부모님께서 힘들어도 손자들을 돌보겠다고 하시면, 경제적인 지원은 질문자가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파출부를 보내어 힘든 일을 도와드리는 방식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내가 부처님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지고 수행을 해나가야 할까요?”

“어떤 점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지금 일이 좀 복잡해진 것밖에 더 있어요? 아내가 신내림을 받고 나서 자기 나름대로 일을 찾아서 갔어요. 그래서 아내가 돌보던 두 아이가 질문자에게 맡겨져서 일이 좀 많아진 것뿐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감당을 못해서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아이들을 맡긴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일인데 거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의심될 만한 게 뭐가 있어요? 아내가 질문자에게 떠넘기고 가버린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것이냐는 문제밖에 없잖아요?”

“사람의 마음이 나약해지니까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괴로워한다고 해결이 되겠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해서 잘 성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싸워서 어느 한쪽 발을 떼는 것이 만만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겁니다. 이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는 정신을 차리고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현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발을 떼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한미일 연합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취하는 것이고, 이전 정부는 균형 외교라는 이름으로 양쪽 발을 다 못 떼고 머뭇거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한테 빌면 미국과 중국이 안 싸우고 사이가 좋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보다 주변 환경이 못해졌지만 그래도 죽을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질문자가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손실을 감수하고 어떤 선택이라도 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이든 국가의 진로든 다 마찬가지예요. 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선택을 하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편리하게는 살고 싶고, 그것 때문에 기후변화는 일어나고, 기후변화는 우리 삶에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기후 변화를 막으려면 소비를 줄여야 하고, 소비를 줄이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모순 속에 사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럴 때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선택에 따른 결과가 손실이든 이익이 되든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는다면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괴로움 없이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에게 일어난 일은 별 일 아니에요. ‘아내가 신내림을 안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과는 달리 신내림을 받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에요. 또 노모한테 맡길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늙은 부모님께 마음의 짐을 주게 된 거예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20대와 30대를 거쳐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아내와 아이들 문제까지 내가 감당해야 하나!’ 하면서 남 탓을 한다면 결혼을 안 했어야죠. 내가 결혼해서 생긴 아이들이니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상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으면 질문자는 또 병이 들어요. 병이 재발하면 집안에 엄청난 혼란이 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편안히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어머니에게 부담이 되겠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좀 맡기고, 주말에는 내가 가서 돕고, 집안일을 돕는 파출부를 좀 부르고, 이렇게 대안을 세워 나가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수행해서 집안의 어려움을 잘 극복했다. 내가 수행했기 때문에 이렇게 극복할 수 있었지, 수행을 안 했으면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이렇게 관점을 갖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더 생기도록 해야지, 믿음이 도리어 혼란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스님의 말씀이 귀에 잘 꽂혔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다시 수행자로서의 삶을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겨요. 일이 생길 당시에는 다 큰일입니다. 남이 볼 때는 별일 아닌데 자기한테는 다 큰일이에요.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별일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조금 여유를 갖고 대응하면 여러분들의 삶이 지금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할 것입니다.”

이어서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네 명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12시가 다 되어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여 찾아온 손님들과 점심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에도 계속해서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저녁 6시에는 스님이 외국인들과 즉문즉설을 할 때 매번 영어 통역 자원봉사를 해주고 있는 제이슨 님이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스님과 식사를 하고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을 위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녁 생방송에서는 4800여 명이 유튜브에 동시 접속을 했습니다.

스님은 시청자들에게 인사말을 한 후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왜 참회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가해자가 참회하면 죄가 없어지나요?

“제가 알고 있는 참회 기도는 알게 모르게 세세생생 지은 업을 간절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업장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요즘 TV에서 끔찍한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하루아침에 음주 운전자로 인해 가장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피해자는 알지도 못하는 가해자로 인해 힘들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가 참회 기도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 죄가 소멸되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는 참회 기도도 이런 경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회 기도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까요?”

“충분히 의문을 가질 만합니다. 참회 기도란 두 가지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종교적인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이치에 맞는지 살펴보는 논리적인 관점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참회 기도가 이치에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치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지만, 질문자가 생각하는 참회는 종교적인 믿음인 것 같아요. 첫째, 참회 기도를 하면 업장이 녹는다는 말은 이치적인 관점이 아니고 믿음의 관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하느님께 회개하면 죄가 사해지고 천국에 간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갠지스 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죄가 다 씻겨버리고 천상에 태어난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믿음의 문제예요. 믿음의 문제에 대해 이치에 맞느냐 안 맞느냐 하고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믿어지면 그렇게 하면 되고, 믿어지지 않으면 안 하면 되는 거예요. 믿음의 문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참회 기도를 많이 하면 업장이 소멸된다는 것은 이치의 문제가 아니고 믿음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은 종교적인 관점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와 기독교도 믿음의 영역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믿음은 논리나 이치를 기반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진짜로 있을까?’, ‘부처님을 믿는다고 도움을 주나?’, ‘나쁜 짓을 많이 한 후에 참회 기도를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나?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되나?’ 이렇게 이치를 따지는 건 종교가 아니에요. 종교는 논리나 이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영역에서 봐야 합니다.

참회 기도를 해서 세세생생 지은 업장을 소멸한다고 믿으면 누가 좋을까요? 내가 좋습니다. 그렇게 믿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두려움을 없애고자 하는 거예요. 이렇게 믿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입니다. 내가 그렇게 믿고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열심히 절하고 참회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믿음의 영역을 이치로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믿어지면 믿으면 되고,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되는 거예요.

둘째, 논리적인 관점으로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을 때렸거나 물건을 훔쳤거나 하면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갔겠죠. 그럼 피해를 입은 사람이 반드시 복수를 하려고 할 겁니다. 맞았으면 언젠가 나를 때리려고 할 것이고, 물건을 잃어버렸으면 언젠가 되찾으려고 할 거예요. 누군가로부터 욕설을 들었으면 자기도 언젠가 그만큼 욕설을 하려고 할 것이고, 괴롭힘을 당했으면 언젠가 되갚아주려고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하고 자각을 하면, 과거에 지은 인연의 과보가 나한테 일어날 때 억울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과거에 지었던 인연과보를 지금 받는 거구나’ 이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과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과보를 받아도 괴롭지는 않은 거예요. 내가 내 잘못을 받아들이면 어떤 과보를 받아도 괴롭지는 않게 됩니다. 괴롭지 않은 것이 수행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과보가 두려워서 안 받고 싶어 하죠. 과보를 안 받고 싶으니까 힘 있는 존재에게 싹싹 빌어서 어떻게든 과보를 피하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힘 있는 대상에게 빌면 과보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수행의 관점은 내가 지은 인연과보를 기꺼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보가 돌아올 때 괴롭지 않습니다. 손실이 생겨도 괴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빚을 갚는 것이니까요. 한 대 맞아도 괴롭지가 않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의 대가이니까요. 괴롭지 않은 것이 참회이고 업장 소멸입니다. 이치로 따지면 이런 원리에 의해서 ‘내가 정말로 잘못했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이 진정한 참회입니다. 자각을 해서 자기가 미리 자기에게 벌을 주는 거죠. 자기가 예전에 지은 과보를 백 배, 천 배, 만 배로 갚는 것입니다.

보시란 ‘내가 살아오면서 너무 욕심을 부렸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내 재산 중 일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미리 베푸는 거예요. 돈을 빌려준 사람이 찾아와서 ‘빚 내놔라’ 할 때 빚을 갚는 게 아니고 미리 빚을 갚아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베풀면 공덕이 되는 거예요. 이치로 따지면 내가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나중에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가능성이 있고, 또 내가 빚을 많이 졌다면 상대가 ‘빚 갚아라’ 하기 전에 미리 갚아버리게 되는 거죠. 베푸는 행위는 빚을 갚는 행위이기 때문에 베풀면 공덕이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업장 소멸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수행이란 이렇게 이치를 따져서 나의 잘못을 자각하고 베풀어서 업장을 소멸하는 거예요.”

“요즘 참회 기도를 하는 동안 계속 의문이 들어서 기도에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숙제를 하듯이 참회 기도를 했는데,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참회 기도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진정한 마음으로 참회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어머니와 함께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가업승계를 저에게 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 지금 일선학교에선 고교학점제라는 명목으로 학생이 수학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게 합니다. 수학을 배워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과연 이렇게 접근해도 될까요?

  • 저는 평소에 받는 것보다 베푸는 것에 더 큰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편입니다. 이런 제가 불행한 사람들에게 티끌만큼이나마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정토회 전법행자대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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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노으리

선택에 따른 결과가 이익이든 손해든 책임지는 자세를 가진다면 괴로움 없이 살수 있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책임을 안지려고 하니 갈등과 번뇌가 생기는거 같아요 오늘도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선택을 잘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겠습니다

2023-09-01 07:09:32

드림하이

힘 있는 대상에게 빌면 과보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수행의 관점은 내가 지은 인연과보를 기꺼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보가 돌아올 때 괴롭지 않습니다. 손실이 생겨도 괴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빚을 갚는 것이니까요. 한 대 맞아도 괴롭지가 않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의 대가이니까요. 괴롭지 않은 것이 참회이고 업장 소멸입니다.

2023-08-31 17:13:04

강혜경

저도 내가 지은 인연과보를 기꺼이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8-30 06: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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