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8.11 안거 회향식, 금요 즉문즉설
“욕구는 일어날 수 있지만 집착하면 괴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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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보름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안거 기간 동안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900여 명의 대중과 함께하는 온라인 명상수련을 진행한 후 봉화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여 50여 명의 공동체 대중과 안거 수련을 계속했습니다.


수련을 하는 중에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예보가 있어서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봉화 정토수련원 곳곳을 정비하는 울력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장마로 인해 산에서 흙이 밀려 내려와서 건물 주위에 수로를 새로 파고, 부서진 다리를 보수했습니다.






막힌 수로를 뚫어서 다시 빗물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고, 빗물받이에 쌓인 흙도 제거하고, 수련원 곳곳에 무성하게 자란 풀도 베어냈습니다.



다행히 태풍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갔고, 오늘은 보름 동안의 안거를 마무리하며 회향식을 했습니다.

50여 명이 큰 원을 그리고 둘러앉아 한 명씩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하는 가운데, 도반들의 소감을 경청했습니다.


“저는 몸이 아파서 사업을 이야기하면 그저 그럴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스님이 정토회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사업을 이야기하실 때 고목나무에 꽃이 피듯이 가슴속에서 설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웃음)

“개인적인 고민을 꺼내놓고 이야기한 후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욕구가 일어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발생한다는 말씀이 정말 좋았습니다.”




“늘 스님을 쫓아가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스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대가 힘들다고 말하면 '어쩌라고?' 하는 식으로 외면할 때가 많았는데, 상대가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받아들이고 나니 참회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성제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괴로움이 생겼을 때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자각조차 못했습니다. 스님에게 질문했고 결국 집착이 원인이라는 답변을 듣고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스승이 지적을 해줘야 겨우 자각이 되었는데,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망설이는 바람에 시작도 못해보는 일이 많았는데, 스님이 부탄 개발을 통해 미래 문명의 대안을 만들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해보면서 대안을 만드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소감 나누기를 한 후 마지막으로 대중 모두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보름 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며 부지런히 탁마한 대중을 격려한 후 수행적 관점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보름 동안 진행된 공동체 안거를 잘 마쳤습니다. 일주일간 명상수련을 통해 자신에 대해 스스로 조금씩 알아갔고, 사흘간 정일사(자자 수련)를 통해 도반들의 도움으로 그동안 자각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틀간 모둠 토론을 통해 우리가 함께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가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흘간 공동체 전체가 모여서 개인의 고민과 사업의 방향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붓다를 닮은 공통의 DNA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 개개인은 스스로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도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야 하며, 전 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다시 정토회의 싹을 틔우고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각자가 수행자의 DNA를 체화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마지막 나흘간 나눈 대화는 함께 수행자의 DNA를 만들어가는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아라한과를 증득할 만큼 깊은 수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오백 아라한이 다시 모여서 3개월간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그 수가 많으면 견해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백 아라한이 모여 부처님 말씀의 요지가 무엇인지 정립하고 실천 덕목인 계율을 확립했습니다. 사람은 오백 명이었지만 법은 하나로 통일이 되도록 정비를 했기 때문에 오백 명이 여러 지역에 흩어져 그 싹을 틔웠지만 그 오백 개의 싹은 거의 동일한 나무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물론 후대에 불법이 좀 변질될 때도 있었지만 비교적 그 원형을 오래도록 유지하며 이어져 왔습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매년 하고 있는 안거는 각자 개인의 고뇌에서 벗어나도록 서로 돕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상가 전체가 모여서 붓다를 닮은 공통의 DNA를 만드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방금 전 안거를 마친 여러분들의 소감을 잘 들었습니다. 그 소감을 들은 제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선재, 선재로다!’

다시 말해 ‘착하고 착하구나!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이런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앞서 있고, 어떤 사람은 조금 뒤에 있고, 어떤 사람은 출발선에 있을 뿐, 우리 모두는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길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갔는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모두는 같은 방향으로 출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넘어져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넘어진 뒤에 다시 일어났고, 어떤 사람은 넘어질 뻔하기도 했고, 각자 여러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이 길을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차이일 뿐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설령 넘어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길을 가는 과정에 해당합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진 것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잘해 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각자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다시는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 이렇게 다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 넘어져도 괜찮다.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기만 해라.’

다시는 넘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에 또 넘어지면 ‘나는 안 되나 보다. 내가 문제야’ 하면서 자신을 학대하게 됩니다. 남을 탓했을 때는 비교적 쉽게 돌이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탓했을 때는 쉽게 돌이키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쁜 행동은 확실히 잘못했다고 자각할 수 있지만 나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잘 돌이켜지지 않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욕구는 일어날 수 있지만 집착하면 괴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나쁜 꿈을 꿀 때는 꿈을 깬 뒤에 고개를 흔들며 다시는 그 꿈을 꾸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좋은 꿈을 꾼 뒤에는 꿈을 깨고 나서도 미련이 남아서 다시 눈을 감습니다. 꿈속의 세계에서는 좋은 꿈을 꾸는 것과 나쁜 꿈을 꾸는 것이 지옥과 천당만큼이나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꿈을 깬 분상에서 보면 좋은 꿈이나 나쁜 꿈이나 모두 그냥 꿈일 뿐입니다. 그래서 꿈을 깬 분상에서는 좋은 꿈이 꿈을 깨는 데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나쁜 행동을 했다면 스스로 자각하기도 쉽고, 옆에서 알려주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 것에 대한 집착은 그것이 집착인지 아닌지 자각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주말마다 산행을 너무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런 행동이 뭐가 문제인가? 이런 것도 안 되나?’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괴로움은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하는 것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은 모두 꿈의 분상에 불과합니다. 괴로움은 좋은 행동이든 나쁜 행동이든 집착하는 데에서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으로서 욕구나 욕망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집착을 집착인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착인 줄 모르기 때문에 법문을 들을 때만 잠시 깨우치고 일상에서는 괴로움이 반복되는 겁니다. 연습이 부족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백 번 잘못해도 백한 번째는 일어나기

물론 분명히 자각했음에도 괴로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수행을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찰나 무지가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 번 잘못하면 백한 번째에는 일어나고, 천 번 잘못하면 천한 번째 일어나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게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집니다. 수행적 관점을 놓쳐버리면 어떤 해결책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수행이 잘 된다’, ‘수행이 안 된다’ 하는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되고, 수행적 관점을 분명히 가졌는지를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게 분명하다면 되고 안 되고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 주변에서 너무 닦달하지 말고 좀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계율을 어기는 것을 합리화하자는 뜻이 아니라 잘 안 되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의 기다림과 포용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출가 공동체의 원칙도 분명히 지키면서 또한 많은 사람의 현실을 수용해서 포용력도 갖게 될 거예요. 포용을 하더라도 중구난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배척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중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거를 마치면서 ‘중도’의 실천적 의미를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인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공동체 지부가 중심이 되어 해나가야 할 사업들을 이야기하면서 정토회의 미래 비전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기후 위기입니다. 정토회가 미래 사회에 대한 대안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한정된 대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대안을 두고 문명 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 또는 대한민국만 잘 사는 것을 목표로 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적어도 지속 가능한 인류 문명을 염두에 둔다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쪽으로 우리들의 삶의 방향이 잡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먹고, 입고, 소비하는 수준이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지는 않는지 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검소하게 잘 지내왔다 하더라도 2차 만일결사를 새로 시작하는 지금 시기에는 의식주의 수준을 재검토해서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가 정토회를 보더라도 ‘저렇게 살면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지는 않겠구나’, ‘저렇게 살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는 되어야 우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떳떳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마음을 깨달아서 스스로 행복해진 사람이 세상 전체가 공멸로 가는 것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결코 완전한 해탈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행복하면서 동시에 세상에 대해서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적어도 나쁜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의 생활 태도는 어떻게 가져야 할지 좀 더 상세하게 정리해서 실천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새로운 모델 만들기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해보려고 하는 공동체 모임은 세계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가 앞으로 부탄 정부와 함께 해보려고 하는 프로젝트는 그동안 해온 공동체 운동과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이 프로젝트는 어떤 이해관계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하나의 지역을 선택하여 개발하면서 그곳에서 정토회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지속 가능한지 실험해 보려고 하는 ‘문명 전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새로운 문명의 샘플을 하나 만들어서 붓다가 추구했던 삶을 현실에서 구현해 보려고 하는 시도입니다. 부처님이 ‘상가’라고 하는 계급차별도 없고 성차별도 없는 작은 샘플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어 놓았듯이 정토회도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새로운 모델을 세상에 내어 놓아 보자는 계획을 세운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프로젝트는 인력이든, 기획이든, 재정이든, 지금까지 정토회가 해 온 일보다는 한 차원 더 높은 단계에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토회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방식으로 일을 해왔기에 소꿉놀이처럼 해도 크게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한 지역을 선택해서 이에 동조하든 안 하든 그곳에 사는 모든 대중을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의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대중이 동조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인류 문명사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토회를 창립할 때부터 ‘문명 전환’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는 각자가 처한 위치에 상관없이 인류 모두가 가져야 할 관심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토회가 지금 두북 수련원에서 하고 있는 일들 역시 미래 문명의 샘플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고, 혼자 사는 노인들을 돌보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더 나아가 버려진 물건들을 유통시키고 재활용하는 일 등 모든 일들이 미래 문명의 모델이 될 수가 있습니다. 돈을 많이 투자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창고나 폐교를 이용해서 지속 가능한 작은 모델을 만들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로 확산을 시킬 수도 있고요.

미래 문명의 대안을 만들겠다고 해서 그것이 금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내용이 그 안에 들어가야 하는지 하나씩 구체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청년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주택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자녀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교통 통신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미래 문명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토회가 이 모든 것을 다 감안해서 샘플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중 몇 가지라도 종합적으로 고려한 샘플을 만들어 나갈 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이런 비전을 토대로 자신의 에너지를 어떤 곳에 사용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입장을 분명하게 가져야 몸이 피곤하거나 먹는 게 부족하거나 해도 어지간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입장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겁니다. 먹는 것에 흔들리고, 입는 것에 흔들리고, 견해 차이에 흔들리고, 감정에 흔들리느라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해요. 그것은 마치 아내가 남편을 미워하고, 남편이 아내를 미워하고,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는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것과 하등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런 일에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어떤 희망을 만드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여 있는 겁니다.

밥을 하든, 회계를 맡든, 농사를 짓든, 지속 가능한 미래 문명을 만드는 이 길 위에 여러분 모두가 함께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여러분이 무슨 일을 맡게 되든 자긍심을 갖고 당당하게 활동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2023년 안거 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저녁에 생방송을 해야 해서 곧바로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하고, 대중들은 보름 동안 머문 봉화 정토수련원의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고 원래 상태로 돌려놓은 후 각자의 처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차로 세 시간을 달려 저녁 7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7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57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가볍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어제는 태풍이 한반도를 종단했습니다. 피해가 있었지만 그래도 워낙 사전 준비를 많이 했고, 큰 태풍일 거라고 짐작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피해가 적었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내가 형님과 갈등이 생겨서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며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갈등이 생기면 인연을 끊습니다, 어떡하죠?

“아내가 제 형님에게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후로 독단적으로 행동해서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13년이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자존심이 엄청 강하고, 화도 많고, 고집도 세고, 오지랖도 매우 넓습니다. 5년 전에 당뇨병이 심해졌는데 제 충고를 무시하고 살다가 심장 수술도 받았습니다. 평소에 아내는 아이들한테도 큰소리를 많이 치고, 사람들의 다름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여러 번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하면, 자기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훈계하듯이 큰소리로 따지고 싸워서 아예 인연을 끊는 타입입니다. 13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내가 인연을 끊은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작년 말에는 저희 형님하고 갈등이 생겨서 인연을 끊었습니다. 문제는 형님으로 인해 제가 좋아하는 어머니한테까지 피해가 가고 있다는 거예요. 형님은 젊을 때 이혼을 하고 어머니와 둘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머니를 뵈러 자주 갔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저희 형님이 있는 곳이라면 제사는 물론 각종 가족 행사에도 가지 않습니다. 아내는 형님을 마주치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고 합니다. 형이 문자로 몇 번 사과도 했지만 아내가 안 받아줘요. 제가 화해시키려고 하면 아내는 그럴 거면 이혼하자고 대놓고 말합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데 아내의 좋은 점은 뭐예요?”

“글쎄요. 좋은 점은 상황 판단을 순간적으로 잘한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못하는 생각도 하는 것 같아서 좋았는데 막상 결혼을 해서 살아 보니까 성격이 불같고 큰소리를 많이 칩니다. 불덩이가 뜨거우면 내려놓으면 되는데 어리석게 그걸 내려놓지 못하더라고요. 제가 ‘그래봤자 당신만 손해다, 왜 그렇게 인생을 힘들게 사느냐’고 해도, 본인은 사십몇 년을 이렇게 살아서 편하다고 계속 고집을 부려요. 제가 옆에서 조언을 해도 잘 안 통합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왜 같이 사는 거예요? 그렇게 아내한테 불만이 많으면서 아내가 이혼하자 하면 '잘됐다' 하고 이혼해 버리면 되잖아요.”

“이혼도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저희 형님도 이혼을 했는데, 저까지 이혼하면 어머님이 충격이 클 것 같아요. 저는 직장 다니면서 혼자 살 수 있는데 아직 애들이 걸리고요. 저희 쌍둥이 아들딸이 지금 12살입니다.”

“애들은 엄마가 키우고 질문자는 양육비만 꼬박꼬박 지불하면 되잖아요. 그러고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아이들을 만나면 되죠.”

“이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아내하고 같이 살기가 어렵다고 얘기하잖아요. 성질이 불같고, 맨날 남하고 싸워서 인연을 끊고, 남편 말 안 듣고 고집부리고, 건강도 제대로 관리 안 한다고요. 질문자 얘기만 들으면 아내가 문제가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과 같이 사는 게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제가 희생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좀 힘들더라도 저만 희생하면 일단 아내도 편하고 애들한테도 좀 좋지 않을까 해서요. 저 혼자만 편하게 살면 안 되니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요.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자기가 선택을 했잖아요. ‘형님도 이혼했는데 나까지 이혼하면 어머니에게 충격이 될 거다, 엄마를 생각해서도 이혼 안 하는 게 좋겠다, 애들을 생각해서도 이혼 안 하는 게 좋겠다. 나만 조금 참으면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질문자가 지금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질문자 얘기대로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이혼을 안 하는 게 좋겠다면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어머니, 아내가 어머니를 보기 위해 한 번 다녀간 후 제가 이혼하는 게 낫겠어요? 어머니한테 안 오더라도 제가 이혼 안 하고 사는 게 낫겠어요?’

어머니는 '아이고, 나한테 안 오는 건 괜찮다. 이혼하지 말고 살아라' 이럴 거예요. 애들한테도 '엄마랑 이혼하고 내가 너희를 돌보는 게 낫겠냐, 엄마하고 같이 사는 게 낫겠냐?' 물어보세요. 애들도 '아이고, 아빠 엄마하고 같이 사는 게 낫다'라고 할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이 좋은 상황이잖아요.

아내가 형님이 싫어서 시댁에 안 가는 게 무슨 대수라고 그렇게 고민을 해요? 질문자는 본인이 희생한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질문자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사실은 희생을 안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가 시댁에 안 가겠다는 게 무슨 문제예요? 아내가 '이혼을 했으면 했지 시댁에 안 가겠다' 하면 '그러면 집에 있어라' 하고 혼자 다녀오면 되죠. 질문자까지 못 가게 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보통 사람은 그럴 때 남편도 못 가게 한단 말이에요. 질문자를 못 가게 안 하는 정도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죠. 아내가 싫다는데 왜 어머니한테 끌고 가려고 그래요?”

“저희 어머니가 애들을 너무 좋아하세요.”

“그럼 질문자가 애들을 데려가면 되잖아요. 왜 가기 싫다는 아내를 억지로 데려가려고 해요? 이런 상황을 보면 질문자가 아내를 위해 희생한다는 말에 별로 설득력이 없어요. 아내의 그런 특징을 인정도 안 하면서 질문자가 희생을 하기는 뭘 해요? 지금 질문자도 자기 식대로 하겠다는 거예요. '어머니한테 너랑 애들이랑 같이 가야겠다. 네가 안 가겠다는 게 말이 되냐?' 지금 이러고 있는 거예요.

부부도 사이가 나빠지면 이혼을 하는데, 아내가 형님하고 갈등이 생겨서 안 만나는 게 뭐가 문제예요? 질문자는 지금 조그마한 일을 문제 삼아서 큰 사건을 벌이려고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자기 고집대로 안 되니까 털끝만 한 일로 큰 손해를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다음 달에 저희 조카가 결혼식을 해서 친척들이 다 모입니다. 저희 형님이 가면 아내하고 애들은 안 갈 거거든요.”

“친척의 결혼식에 좀 안 가면 어때요? 조카가 결혼하는데 아내가 꼭 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아내의 불편한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체면만 생각하고 있어요. 질문자가 희생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내가 볼 때는 전혀 양보하려는 마음이 없어요. 질문자의 말대로 아내가 한 번 상처를 입으면 화해를 안 하는 성격이라면, 안 살려면 몰라도 같이 살려면 인정을 해야 합니다. 아내를 우선 생각해서 '아내를 보호하려면 형님을 안 만나는 게 좋겠다' 이렇게 정리를 해야죠. 그래서 아내가 형님이 싫어서 시댁에 안 가겠다고 하는 정도는 수용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나까지 못 가게 하면 조금 문제가 있지만 결혼식 같은 행사에 안 가겠다는 정도는 수용해 줄 수 있지 않아요? ‘알았다, 결혼식은 나 혼자 다녀올게’ 이러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상대방 가족들에게 미안하면 축의금을 좀 많이 내면 됩니다. 둘이 가서 30만 원을 낼 걸 혼자 가서 50만 원 내면 되잖아요. 부부 사이에서 그 정도의 요구는 수용해 줘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자기가 기분 나쁘니까 애들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애들을 놔두고 가면 되지요. 결혼식장에 애들이 꼭 가야 합니까? 10살 남짓한 아이들이 결혼식에 가서 뭐 해요?”

“제가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나 봅니다.”

“질문자는 부인의 아픔은 보지 않고 자기 체면을 더 중요시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에요. 부인의 성격이 좋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부인의 성격이 그렇게 생긴 걸 어떡해요? 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갈등이 해결될 수 있어요. 이런 문제는 결혼생활에서 부차적입니다.”

“이혼하지 않으려면 늘 집사람에게 맞춰주면서 살면 될까요?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면 좋을까요?”

“같이 살려면 아내에게 맞춰야 합니다. 아내가 ‘안 가겠다’ 하면 ‘그래라, 다음에 가자. 나 혼자 다녀올게’ 하면서 뭐든지 흔쾌하게 좀 받아줘 봐요. 그러면 별 일 아닙니다. 부부가 화합해서 사는 것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보다 백배 더 중요합니다. 질문자는 티끌 같이 작은 것을 문제 삼아서 가장 중요한 가정을 깨려고 하고 있어요.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겁니다. 부인의 성격이 그렇게 타고난 것은 부인의 문제이고, 그런 성격을 가진 여자하고 같이 살 건지 말 건 지는 질문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같이 살겠다고 결정했으면 상대를 존중해야 해요.

이혼해서 나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정말 큰일입니다. 그러니 사소한 것들은 수용해 주고 이혼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남의 결혼식장은 질문자 혼자 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어머님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할까요? 집사람에게 신경을 더 써야 할까요?”

“정상적인 남자라면 집사람에게 더 신경을 써야죠. 스무 살이 안 된 미성년자라면 부모가 더 중요하지만, 결혼을 한 이후에는 부인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은 불효와 아무 관계가 없어요. 결혼을 한 남자는 내 가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내 가정을 팽개치고 남의 시선만 자꾸 신경 쓰고 있는 거예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정신을 좀 차려야 해요. 부인의 성격을 핑계로 잡아서 모든 것을 다 부인의 잘못이라고 덤터기를 씌우고 있는 겁니다. 부인의 불같은 성격은 문제가 있는 게 맞아요. 하지만 부인의 관점이 모두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어요. 애들이 엄마하고 같이 사는 것에 크게 문제가 없으면 아내의 성격은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 살아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내는 성격이 저렇다고 인정하면 돼요. 어머니가 ‘며느리는 왜 안 왔냐?’ 하면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아내의 성격이 좀 강한 게 있어서 한 번 삐지니까 잘 안 돌아오네요. 어머니가 좀 이해해 주세요. 같이 가자고 요구하다가는 이혼할 수도 있어요. 이혼하는 것보다는 시댁에 안 오는 게 낫잖아요.’

그러면 시어머니가 ‘그래, 맞다’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지 이혼하라고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혼하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속이 썩으실 것 같습니다.”

“속이 썩어도 어떡해요? 이 세상에 속이 하나도 안 상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남북이 전쟁을 안 하면 좋지만 지금 남북의 지도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쟁을 하려고 그러잖아요. 여야가 싸우지 않으면 좋겠지만 지금 서로 원수가 되어서 맨날 싸우잖아요. 그런 모습도 보면서 우리가 살잖아요. 남북이 싸워서 주는 피해가 더 클까요? 아내가 형님과 싸워서 주는 피해가 더 클까요?”

“남북이 싸우는 것이 더 큰 피해를 줍니다.”

“질문자는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주는 것을 보고 살면서도 왜 작은 것을 못 보고 사느냐는 거예요. 그러니 아내와 형님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사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서로 보기 싫다고 하면 ‘그래, 보지 마라’ 이렇게 말해줘야 해요. 부인이 시어머니를 보러 안 가는 것보다는 나와 부인이 이혼하는 것이 아이들한테는 더 큰 충격을 안겨줍니다.”

“그럼 아내가 형님을 죽을 때까지 안 봐도 될까요?”

“죽을 때까지 안 봐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보기 싫은 마음이 없어질 때까지 원하는 대로 해라’ 이렇게 마음을 갖되, 한 번씩 얘기는 해 봐야 됩니다. 시댁에 갈 때마다 ‘오늘 시댁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이렇게 물어보고 안 가겠다고 하면 ‘그래, 알았다. 다음에 가자’ 이렇게 말하고 넘어가면 돼요. 아예 안 물어보면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되니까 한 번씩 물어봐주기는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살다 보면 마음이 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네, 잘 알았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로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다 자기식대로 하려고 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질문자는 자꾸 상대가 자기식대로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내 식대로 하려는 데서 생긴 문제라는 관점을 가지셔야 합니다.”

“아내의 성격을 인정하고 좀 힘들더라도 맞춰가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자꾸 자기 체면만 생각하면, 질문자가 엄마를 생각하거나, 형님을 생각하거나, 친구를 생각하거나, 친척을 생각할 때마다 부인은 더욱더 상처를 입게 됩니다. 부인 입장에서는 ‘저 인간은 내 생각은 안 하고 남 생각만 한다’ 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까지 고려하기보다는 부인을 더 생각하는 게 좋아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소중한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한테 아무 도움 안 되는 바깥사람들에게 자꾸 정신을 팔고 다니면 안 됩니다. 그런 성격적인 어려움을 갖고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같이 살아주는 부인한테 조금 더 애정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남의 눈치보다는 아내의 성격을 인정하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미워했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편이 시어머니 집에서 살게 되어 시어머니도 미워졌습니다. 이제는 아들의 얼굴에서 시아버지가 보입니다. 저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 8년간 시어머니의 치매 병시중과 친정엄마 병시중을 하며 아이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저를 많이 원망합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며칠 전 넷째 아이를 교통사고로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하루하루가 슬프고 힘듭니다.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황망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스님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9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오전에는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경전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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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또 넘어져도 괜찮다.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기만 해라.’

2023-08-30 19:58:53

월등명

가슴이 따뜻해진 스님의 하루였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023-08-29 07:33:10

이해원

스님과 함께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언젠가 돌아갈테지만 가능한 오래 우리들 곁에 머물러 주세요.
통일은 보셔야지요.

2023-08-20 16: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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