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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다행히 새벽 울력 시간에는 비가 적게 오고 9시 이후로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울력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공동체 법사님들과 산윗밭에서 울력을 했습니다. 어제는 아랫단에 풀을 다 맸고, 오늘은 윗단에 풀을 매기로 했습니다.
윗단에는 모란과 도라지가 심어져 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보다 일찍 밭으로 올라가 먼저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곧 법사님들도 우비를 입고 밭에 도착했습니다. 법사님들은 따로 일을 나눌 필요도 없이 바로 능숙하게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법사님들이 풀을 뽑기 시작하자 스님은 예초기로 고랑에 자란 풀을 벴습니다. 묘당법사님은 예초기로 울타리 주변에 높이 자란 덩굴을 벴습니다.
비가 계속 내렸지만 스님과 법사님들은 멈추지 않고 풀을 계속 맸습니다. 두 시간 내내 쉼 없이 풀을 뽑았습니다.
스님은 예초기로 벨 수 있는 풀을 모두 벤 후 예초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앞치마를 벗자 작업복이 땀으로 다 젖어있었습니다. 호미를 들고 풀이 남은 두둑으로 가서 법사님들과 함께 풀을 뽑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라지를 심어 놓은 두둑 한 줄만 남았습니다. 스님과 모든 법사님들이 마지막 남은 한 줄에 붙어서 풀을 뽑았습니다.
“자, 이제 갑시다. 수고했어요!”
“와, 끝이 나긴 나네요.”
다행히 비가 쏟아 붓기 전에 풀 뽑기를 마쳤습니다. 법사님들은 뿌듯하고 개운한 얼굴로 밭을 나왔습니다.
개울에서 사용한 도구와 장화, 장갑을 깨끗이 씻어 농막에 가져다 놓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9시가 넘어 법사님들과 아침 공양을 한 후 10시에는 인근에 있는 노인 요양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는 두북 마을 어르신들이 몇 분 생활하고 계십니다. 동네에서 자주 뵙던 분들인데 최근에는 얼굴을 못 뵈어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요양병원 원장님에게는 책을 사인해서 선물하고, 보시금과 토마토 10상자, 수박 15통을 전달했습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들을 잘 모시겠습니다.”
스님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어르신을 병상까지 모셔다 드린 후 요양병원을 나왔습니다.
오후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울력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울력을 쉬고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공동체 법사님들은 모두 각자의 수행처소로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비가 하루 종일 폭포수처럼 쏟아져 저녁에는 원고 교정을 본 후 일찍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주말에 행복학교 특강에서 나눈 즉문즉설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너무 행복한데, 기분이 나쁠 때는 너무 힘듭니다. 이번 행복학교 수업에서 마음의 출렁거림에 대해 이해하면 마음의 파도가 잠잠해진다고 배웠습니다. 마음의 출렁거림이 +30과 -30 사이를 오가는 정도가 좋다고 배웠는데, 절댓값이 클수록 좋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최근에 제가 북한산 정상에 갔을 때 주위 광경을 보고 가슴 벅찬 +100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 상황에서 +100의 감정을 못 느낀다면 슬플 것 같습니다. +100의 감정도 안 좋은 건지 알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마음의 출렁거림이 -30에서 +30보다는 -30에서 +100 또는 0에서 +100 사이를 오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
“인간의 심리 현상은 +100이 되면 나중에 -100이 되고, +30이 되면 나중에 -30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에요. 예를 들어, 아들이 태어나서 +100이 되었다면 그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으면 거의 혼을 잃어버려서 -100이 됩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있어서 행복하다’ 하면서 +50이 되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 슬퍼서 -50이 됩니다.
마음이 +100이 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져서 마음이 들뜨게 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만큼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아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지금 기분이 좋구나’ 이런 정도로 좋아하고 말아야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좋아하면 나중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괴로워집니다. 질문자가 괴로움 없이 즐거움만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스님께서는 즐거움만 갖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늘 전깃불을 켜놓고 살던 사람은 갑자기 전깃불이 안 들어오면 원래 전깃불 없이 살던 사람보다 더 큰 불편함을 느낍니다. 똑같이 어두운 상황이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는 서로 다릅니다. 늘 문화생활을 즐기던 사람은 지구환경 위기가 도래해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게 되면 원래 문화생활 없이 살던 사람보다 더 큰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문화생활을 못 즐긴 사람보다 오랫동안 문화생활을 즐겼던 사람이 더 좋은 조건에 놓여 있잖아요. 그런데 왜 더 힘들까요? 그래도 옛날에 한 번 즐겨봤으니 아예 못 즐긴 사람보다 불만이 적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이나 동남아 사람이나 똑같이 ‘지금 경제가 어렵다’ 하고 말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동남아 사람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뜻이고, 한국에 사는 여러분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경제가 어렵다’ 하는 얘기는 앞으로 한국의 국민소득이 3만 5천 불에서 35만 불로 올라가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선풍기가 없다가 새로 생기면 선풍기만 있어도 만족합니다. 그런데 늘 에어컨만 틀다가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불편해집니다. 똑같이 선풍기를 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편함의 정도가 이렇게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는 만큼 계속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마실 물이 없고, 치료할 약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을 때는 물질적 개선과 함께 행복도 역시 함께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물질적 개선이 되어도 행복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습니다. 보통은 물질적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행복도가 함께 올라가는데, 소비에 중독이 되면 아무리 물질적 개선이 이뤄져도 오히려 행복도가 떨어집니다.
마약도 그렇습니다. 마약을 한 번 먹는다고 중독성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처음에 한 번 먹었을 때는 기분 좋음이 100이에요. 그러나 같은 양의 마약을 두 번째 먹으면 기분 좋음이 100보다 낮아집니다. 기분 좋음이 두 번째 먹어도 100이고, 세 번째 먹어도 100이고, 열 번째 먹어도 100이라면 마약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먹었을 때 기분 좋음이 100이라면, 두 번째 먹었을 때는 기분 좋음이 90이 되고, 세 번째 먹었을 때는 80이 되고, 네 번째 먹었을 때는 70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 느낀 100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양을 점점 늘려야 합니다. 처음에는 1g을 먹었다면, 두 번째는 1.5g을 먹어야 하고, 세 번째는 2g을 먹어야 하고, 이렇게 양을 점점 늘려가야 같은 기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중독 현상이 일어나고 몸을 해치게 되는 겁니다. 처음 미량으로 먹었을 때는 몸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사용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몸이 망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런 심리 작용을 잘 알아서 감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으면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기분 좋은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기분 좋음이 지나치게 크면 같은 높이로 아래쪽으로도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겁니다. 이런 원리를 미리 알고 있으면 고통이 오더라도 ‘옛날에 즐겼으니까 이 정도 과보는 당연히 받아야지!’ 하고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이 감소하게 됩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내일도 아침부터 농사일을 한 후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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