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7.7 인도JTS 간담회, 금요 즉문즉설
“눈앞에서 7살 아들이 죽었습니다. 다시 환생해서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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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틀 만에 비닐하우스에 가보니 참깨가 쑥쑥 자라 있었습니다. 오늘도 참깨 모종을 옮겨 심는 울력을 했습니다.

“이제 모종이 많이 자라서 옮겨 심으면 제대로 살기가 어려워요. 오늘은 참깨 모종 옮겨심기를 끝냅시다!”

호기롭게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참깨 모종을 솎아내는 일은 까다로워서 스님이 전담했습니다.



스님은 2동에서 참깨 모종을 솎아낸 후 1동 빈 두둑에 참깨 모종을 심고 있는 행자들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자란 모종이 잘 자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잎이 넓으면 금방 수분이 증발해 버려서 새로운 땅에 모종이 자리 잡고 살기가 어려워요. 잎을 좀 떼어준 후에 심어 주세요.”

두 차례 더 배달을 한 후 마지막에는 스님도 함께 참깨 모종을 심었습니다.




1시간 10분 만에 참깨 모종을 다 심었습니다. 네 차례 울력 끝에 모종 옮겨심기가 끝났습니다.

“수고했어요!”

사용한 도구를 씻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어제 찾아온 스님 세 분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인도JTS 스태프들과의 간담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상반기 동안 인도인 스태프들의 소임 변경이 있었고, 상카시아에 활동가 두 명이 파견을 가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 명씩 새로 맡은 소임을 소개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지난 상반기 동안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답사를 비롯하여 JTS에서 한 일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지난 상반기에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에 지진 피해 지역과 홍수 피해 지역, 분쟁이 일어난 지역, 국가 부도에 처한 지역 등을 다니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예전에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둥게스와리 지역보다 더 어려운 곳은 없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번 방문을 통해서 둥게스와리 지역보다 훨씬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여러분도 여러분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조금씩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방문 후에 직접 구호활동을 하고 온 인도인 스태프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인도의 동쪽 지방 아쌈 지역 차크마 마을에는 인도인 스태프인 아짓 지가 다녀왔는데요. 아짓 지가 구호 활동을 다녀온 소감을 말했습니다.

“지난 6월에 직접 아쌈 지역 차크마 마을에 가서 구호활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물을 길러 먼 곳까지 가야 했습니다. 만약 전기가 공급되지 않거나 충전된 전기가 없는 날에는 남은 물로 며칠 동안 살아야 했습니다. 정부에서도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고 있었고, 도와주는 단체도 없었습니다. 그곳의 상황은 우리가 사는 둥게스와리보다 훨씬 더 열악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곳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인도인 스태프들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둥게스와리 지역의 땅값이 오르다 보니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이 20년 전에 땅을 팔아놓고는 지금 다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도인 스태프들 모두가 이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마을개발 담당을 하고 있는 스태프는 그들의 아이들에 대한 JTS의 지원도 중단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JTS의 땅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중단하면 어떨까요?

“JTS의 땅을 가져가려고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JTS의 지원을 중단하면 어떨까요? 땅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아이들도 수자타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고, 약품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의견 차이로 갈등하다 보니까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굶주려도 ‘저 나쁜 놈들은 굶어 죽어야 돼. 도울 필요가 없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북한 아이들이 미사일을 쏘는 것도 아니고, 핵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먹을 수 있게 해야 하고, 학교를 못 가고 있다면 학교를 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둥게스와리의 땅 문제도 부모가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지 그들의 아이들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 대화를 통해서 부모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부모가 도무지 말을 안 듣는다고 그들의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선 더 많은 대화와 설득을 해봐야 하고, 필요하다면 법적인 도움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JTS가 학교를 그만 다니라고 하면 JTS를 원망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된 상황이 부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부모도 원망하게 됩니다. 자신의 부모와 JTS를 미워하게 하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에요.

물론 그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그의 행동을 따라 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돼요.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문제가 확대되거나 계속되지 않도록 조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분쟁을 일으키는 행위가 정말로 본인에게 이익이 된다면 아무리 그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이익 때문에 그렇게 했겠구나’ 하고 이해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분쟁을 통해 그 땅이 그 사람의 몫으로 될 수는 없습니다. 그의 행동은 오히려 그 땅이 JTS의 소유인가 아니면 정부의 소유인가 하는 두 가지 문제만 야기시킬 뿐입니다. 그 사람은 그 땅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서류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소유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 사실을 그에게 충분히 인식시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니 좀 더 시간을 갖고 이 문제를 풀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사람의 자녀들이 수자타아카데미를 다닌다는 사실이 여러분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는 있어요. 그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다른 사람들도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어른들끼리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 분쟁을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돈에 눈이 멀면 도덕이나 양심이 타락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지혜롭게 이 문제를 해결해 보도록 합시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휴대폰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심지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까지 합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아이들을 때리고 화를 냈습니다. 참회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합니다.”

궁금한 점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더 이상 질문이 없자 마지막으로 미얀마와 스리랑카에 구호 활동을 다녀온 후 현재 태국 국경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방콕 공항에 머물고 있는 JTS 활동가의 소감을 들은 후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다음 일정을 위해 방송실을 나오고, 인도인 스태프들과 한국JTS 활동가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오프라인으로 마음 나누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57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이곳 두북 수련원에는 장마가 와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날씨가 시원해진 장점이 있는 반면 아주 습합니다. 저는 여기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데 장마철에는 풀이 엄청나게 빨리 자랍니다. 풀을 매고 돌아서면 또 자라 있어요. (웃음)

장마철에는 방 안에 습기가 많기 때문에 곰팡이도 슬고 몸도 아플 수 있으니까 다들 건강을 잘 챙기셨으면 합니다. 또 시골에 계시는 분들은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를 대비해서 항상 유의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여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7살 아들을 눈앞에서 잃었다며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눈물을 흘리며 질문했습니다.

7살 아들이 죽었습니다. 다시 환생해서 올 수 있을까요?

“계곡에서 7살 아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살려달라는 아들을 구하려고 물속에 들어갔지만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오랜 시간 물속에 갇혀 있던 모습과 왜 구해주지 않았냐고 꿈에 나타나서 울던 모습은 제 가슴에 각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들이 환생할 것이라는 생각에 시험관을 시작했는데, 그때 충격 때문인지 여자로서의 기능을 거의 다 잃어버려서 다른 사람보다 힘든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4년째 시험관을 하고 있는데 아직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엄마다 보니 내 새끼가 다시 올까 하는 기대가 버려지지 않습니다. 아이를 놓아주어야 무주고혼이 되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해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잘 되지가 않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환생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녀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자식을 잃었기 때문에, 그것도 직접 보는 앞에서 잃었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자에게는 지금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계속 집착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떨치려 해도 안 떨쳐지는 거예요. 그러니 우선 병원에 가서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가족이 자살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경우에도 이런 충격을 받습니다. 만약 자식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할 때 엄마가 쫓아가서 손을 잡았는데 끌어올릴 힘이 없어서 결국 자식이 떨어져서 죽었다면 그 엄마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합니다. 또 자기가 운전하는 차를 뒤로 돌리다가 자식이 그 차에 치어 죽었을 때도 큰 충격을 받습니다. 세월호 충격이 큰 이유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온 국민이 봤기 때문이에요. 그냥 배가 전복을 했고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다면 고통이 덜한데, 그 과정을 국민들이 생중계로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났고 정치적인 소용돌이까지 겪게 된 거예요.

자식을 잃는 것만 해도 엄청난 충격인데, 질문자는 자식이 죽어가는 과정을 본인이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질문까지 하는 것을 보면 미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그런 정도의 경험을 하게 되면 대부분 실성을 합니다. 혼이 나간 상태가 되는 거죠. 정신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질문자는 그 충격에 정신을 잃은 겁니다. 그러나 아이가 죽는 걸 확실히 본인 눈으로 봤기 때문에 아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어요. 그러니 아이가 환생을 해서 다시 내 아이로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붙잡고 있는 겁니다.

물론 질문자가 건강하다면 아이를 하나 더 낳을 수는 있겠죠. 그럴 때는 ‘첫째 아이는 잃었고, 둘째 아이를 새로 가졌다’ 하고 말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이에요. 그런데 이런 충격을 받으면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의 환생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돌아가신 스님이 환생을 했다고 해서 어린아이를 선정해서 ‘린포체’라고 합니다. 이것은 믿음에 해당합니다. 어떤 믿음을 갖느냐는 본인의 자유예요. ‘하나님을 믿어도 됩니까?’ 이렇게 물으면 저는 ‘너 알아서 믿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생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도 믿음에 해당하기 때문에 누가 답할 수가 없어요.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고 싶으면 안 믿으면 됩니다. 믿음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아이를 너무 그리워하다 보니 환생을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의 환생이 백 퍼센트 믿어진다면 이런 질문을 안 할 겁니다. 환생을 원하지만 안 믿어지는 구석이 있으니 이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아이가 죽은 충격 때문에 정신적으로 병이 든 것입니다. 옛말로 하면 혼이 빠졌다고 할 수 있어요. 정신을 잃어서 세상일이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러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종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었으면 새로운 몸을 받아야 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부르면 영혼이 떠나지를 못합니다. 이것을 ‘무주고혼’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기독교인이라면 ‘천국에 잘 가라’ 하고 인사를 해야 하고, 불교인이라면 ‘얼른 극락에 가라’ 하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죽어서라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그리고 질문자에게 아이가 필요하다면 ‘둘째 아이를 갖겠다’ 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몸에 이상이 있어서 둘째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포기해야겠지요. 어떻게 내가 원하는 걸 다 할 수가 있습니까? 무리해서 아이를 갖게 되면 장애아를 갖거나 뱃속에서 유산을 하게 되어서 더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또 아이를 잃었다’ 하면서 다시 더 큰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우선은 지금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정신질환 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나는 지금 아이가 죽은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이다’ 이렇게 자각하고 빨리 정신을 차려서 남편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과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힘으로 안 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수행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도 행복하게 살게’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게 좋습니다. 정신이 좀 차려졌어요?”

“환생을 믿어도 될까요?”

“질문자가 믿고 싶으면 믿어도 되고, 안 믿고 싶으면 안 믿어도 돼요. 기독교는 하느님을 믿고, 티베트 불교인들은 환생을 믿고, 인도인들은 윤회를 믿고,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은 용왕을 믿잖아요. 믿음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가까운 사람이 죽고 난 뒤에는 그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천국에 갔다’, ‘극락에 갔다’, ‘다시 돌아온다’ 이런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가 형성이 된 거예요. 그래서 믿음에 대해서는 진위를 논하면 안 돼요. ‘저 사람은 저렇게 믿는구나’ 이렇게 바라봐야 합니다. 믿음은 맞느냐 아니냐를 따져서는 안 됩니다. 믿어지면 믿으면 되고,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됩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서로 다를 뿐이지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가 좋은 곳에 가도록 하려면 제 마음에서 빨리 놓아주기 위해 조금씩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노력할 것도 없고, 놓아줄 것도 없어요. 그냥 ‘잘 가’ 이러면 돼요. 지금 이 자리에서 ‘잘 가’ 하고 말해 보세요. 오늘 못하면 1년이 지나도 못해요. 1년이나 시간을 끌 필요가 없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걸 어떡하니? 잘 가라!’ 이렇게 한 번 말해 봐요.”

“잘 가.”

질문자는 여전히 울먹이며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다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말은 ‘잘 가라. 하지만 가지 마라’ 이런 뜻이에요. 그러지 말고 뒤끝이 딱 올라가야 해요. ‘잘 가!’ 이렇게 말해 봐요.”

“잘 가.”

또 질문자는 울먹이며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다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것도 안 돼요. 아직도 울고 있으면 가지 말라는 얘기랑 똑같죠. 딱 끊어지는 맛이 있어야 해요. 뒤끝을 딱 올려서 말해 보세요.”

“잘 가!”

“그래요. 이렇게 하면 오늘 다 해결되었어요. 더 이상 노력할 게 없습니다. 인생은 노력할 것이 없어요. 그냥 내려놓으면 되지 내려놓으려고 노력한다는 말은 놓기 싫다는 뜻입니다. 내려놓는 데 무슨 노력이 필요해요?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하는 말은 담배를 끊기 싫다는 말이에요. 그냥 담배를 안 피우면 되는데 무슨 노력을 해요? 남편이 있어요?”

“네.”

“그럼 질문자가 늘 울면서 지내는 게 남편에게 도움이 될까요? 웃고 사는 게 남편에게 도움이 될까요?”

“남편과 같이 울고 있어요.”

“그럼 셋이 다 물에 빠져 죽는 게 나아요? 아이는 죽었다 하더라도 나머지 두 명은 잘 사는 게 나아요?”

“저희가 잘 살아도 되는 건지 진짜 모르겠어요.”

“잘 살아도 돼요. 아이가 보기에도 부모가 잘 사는 게 좋겠어요, 맨날 울고 있는 게 좋겠어요?”

“잘 사는 게 좋죠.”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이제 아이는 보내주고 질문자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세요. 시험관 아기를 만드는 것도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마세요.

‘아이가 죽으니 이렇게 슬프구나. 자식은 괴로움의 덩어리구나. 두 번 다시 안 낳아야겠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안 될까요?”

“지금까지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 살아온 게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살았거든요. 힘들어도 시험관 아기를 포기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1년 정도 더 울고 내년부터 웃으세요. 지금까지 울면서 지낸 세월도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수렁에 빠져서 일 년 정도 더 울어도 됩니다.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다가 장애아를 낳거나 유산해서 3년을 더 울어 보세요. 그러면 정신이 좀 차려질 겁니다. 자식이 죽었는데 웃음이 어떻게 나요? 울어야죠. 오늘부터 웃고 살 것인지, 3년 후부터 웃고 살 것인지, 본인이 선택하면 됩니다.

웃으며 살아도 자식은 안 돌아오고, 울면서 살아도 자식은 안 돌아와요. 어차피 돌아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우는 게 나을지 웃는 게 나을지 잘 생각해 봐요. 오늘 제 이야기를 이해하셨으면 병원에 안 가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내일부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감사합니다.”

계속 울먹이던 질문자가 마지막에 입가에 미소를 보이자 스님도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동생이 기독교인데 하느님을 믿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고 마음이 편안해 보입니다. 저는 부처님을 믿고 싶은데, 혼자 수행해야 된다는 생각에 괜히 외롭습니다. 어떡하죠?
  •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가진 25살 딸아이와 사이가 좋지 않아 연락을 못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었으니 가만히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저의 잘못을 빌고 화해를 해야 할까요?
  • 국제 개발과 구호 활동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왜 현지인들은 참여를 안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현지인들의 무관심, 반발, 소극적 참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생방송한 후 경전대학 학생들과 그동안 배운 내용에 대한 궁금함을 해소하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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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경

잘가라 민준아
잘가
잘가

2024-06-04 01:04:13

닉네임

저도죽는것있어서지금 죽고싶어요

2024-03-07 10:03:08

드림하이

감사합니다

2023-08-27 16: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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