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법사 교육을 받고 있는 문수팀 행자님 다섯 명이 울력을 함께 하기 위해 어제 두북으로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할 일은 혼자 사시는 마을 어르신의 밭과 주변에 난 풀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스님이 해외에 다녀오는 동안 마을 어르신은 심장 수술을 하고 오셨습니다. 그 사이 주인 없는 밭은 풀로 뒤덮였습니다.
행자님 두 명이 예초기를 돌리고, 스님과 나머지 행자님들은 낫으로 풀을 벴습니다. 어르신이 일부러 심으신 호박까지 예초기로 다 베지 않도록 먼저 호박 덩굴 주변 풀을 벴습니다.
스님은 계속해서 예초기가 베기 어려운 곳에 가서 풀을 벴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이 지나는 자리마다 풀더미가 가득 쌓였습니다.
길가 축대도 완전히 풀과 덩굴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이곳도 예초기로 베기가 어려워 스님이 낫으로 풀을 벴습니다.
울력을 시작할 때는 날이 흐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햇살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축대에 난 풀을 다 베고 나서 스님은 잠시 그늘에 앉아 쉬었습니다.
“아이고, 손이야.”
스님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뻐근함을 풀었습니다.
풀을 벨 곳은 아직 많았지만, 울력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내일 한 번 더 울력을 하기로 하고, 베어 놓은 풀을 트럭에 실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앞에 모아둔 풀을 싣고, 축대 앞에 모아둔 풀도 실었습니다. 트럭 가득 실은 풀은 퇴비로 만들기 위해 밭으로 옮겼습니다.
울력을 마치려는데 이웃 어르신이 지나가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스님, 오랜만입니다. 아이고, 일을 많이 하셨네요.”
“여기 어르신이 심장 수술을 받으셨대요. 두 달 만에 오니 엉망이 되어 있네요. 하루 만에 다 할 줄 알았더니 내일 또 해야겠어요.”(웃음)
내일 새벽에 다시 와서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발우 공양을 마치고 11시 30분에 다시 작업복을 입고 산밑밭으로 가보았습니다. 스님은 지난 3월, 동남아 답사를 가기 전에 산밑밭에 감자를 심어 두었습니다. 감자 캘 때가 지나서 서둘러 가보았습니다.
먼저 쪽파 뿌리부터 캤습니다.
“이야, 쪽파 뿌리가 아주 실하네요.”
쪽파 뿌리를 캐 뭉쳐 있는 흙을 털어내고 갈라준 다음 두둑 위에 널어 놓았습니다.
쪽파 한 두둑을 다 캐고 감자 두둑으로 넘어갔습니다. 먼저 감자 줄기를 낫으로 벴습니다. 비닐을 걷어내는데 벌써 땅 위로 감자가 보였습니다.
오늘은 관리기 없이 손으로 감자를 캡니다. 스님은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괭이를 가져왔습니다.
“인간 관리기를 한번 사용해 봅시다.”
두둑 가운데에 괭이를 두고 스님이 앞에서 손잡이를 잡고 끌면 행자님이 괭이 머리를 밀었습니다. 관리기와 그럴듯하게 비슷했지만 감자가 다치고, 중심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그냥 호미로 캡시다.”
호미를 가지고 두둑 끝에서부터 감자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쪽파처럼 감자도 잘 됐을까?”
호미로 조심스레 땅을 파자 굵고 동글동글한 감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감자 농사가 잘 됐네요!”
흙이 부드러워 감자 캐기가 좋았습니다. 땅을 팔 때마다 하얀 감자가 알알이 튀어나왔습니다. 수확하는 재미가 솔솔 했습니다.
맞은 편 끝에서는 행자님 두 명이 감자를 캐며 왔습니다. 가운데에서 만날 때까지 감자를 캤습니다. 한 두둑 더 남았지만 4시부터 외부 강연이 있어서 남은 두둑은 다음에 캐기로 했습니다.
감자만 잘 자란 게 아니었습니다. 호박, 오이, 토마토도 옆 두둑에서 쑥쑥 자라 있었습니다.
이맘때면 작물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때문에 때를 맞춰 수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기가 적당한 호박, 오이, 토마토는 다 따주었습니다.
초록색 바구니 두 개가 묵직해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이었습니다. 대낮에 두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나니 땀이 많이 났습니다. 서둘러 밭을 내려와 간단히 씻고 2시에 대구로 출발했습니다.
3시 30분에 대구시 교육연수원에 도착하자 안영자 원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관계자 분들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뵙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원장님이 오늘 강연회를 마련한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5년 전부터 매일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마음이 정말 많이 편안해졌어요. 먼저 감사 말씀 드립니다. 날이 갈수록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어느 날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니까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교사들이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팩폭을 해주시더라고요. 스님의 강연을 통해 교사들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페스탈로치가 한 말이나 훌륭한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래요. 밥값만 해도 됩니다. 훌륭한 스승이 되면 좋지만, 모든 교사가 그렇게 훌륭해질 수는 없잖아요.” (웃음)
원장님은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즉문즉설을 예로 들며 오늘도 좋은 강연을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에 강연이 시작되고 스님이 무대 위에 오르자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의 강연 소식을 듣고 대구시에서 400여 명의 교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빈자리 없이 가득 찬 객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느끼며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은 지금이 살기 어렵다고 난리입니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마실 물을 길으러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하고, 식량이 부족해서 굶주리고, 학교는 아예 다닐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이 없거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생존 유지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 문화를 동경해서 미국에 가는 것이 꿈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미국을 동경했던 것보다 그들이 한국을 동경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큰 것 같아요. 그들이 생각할 때는 한국은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죽겠다고 난리죠.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고, 출생률이 제일 낮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높은 자살률은 현재 사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뜻하고, 낮은 출생률은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희망이 별로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하고 합니다. 그들의 고민에 비추어 보면 한국 사람들의 고민은 전혀 고민거리가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것은 타인의 죽음도 아니고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이다’ 하는 말이 있잖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문제가 가장 큰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은 굉장히 좋은 직업에 속합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공무원인 데다 남을 대우하기보다 대우를 받는 직업이니까요. 그러나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못하겠다’, ‘그만둬야겠다’ 하면서 힘들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당에 가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천당에 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거기 가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또 못 살겠다고 할 것이다. 천당에는 왜 술집이 없냐고 난리를 피울 테니까.’ (웃음)
그러니 다른 곳에 가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질문을 신청했지만 그중에 아홉 명이 선정되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한 명 한 명씩 질문과 답변이 오갈 때마다 박수 소리가 점점 더 커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교사가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들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규칙을 어기고, 수업을 방해하고,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교사로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습니다. 무심하게 대처하면 피해를 입은 학생이 민원을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제지를 하면 가해 학생이나 그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거나 화를 내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집착하지 않고 이런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질문자가 말을 조련하거나 애완용 동물을 훈련한다면,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조금 바꿀까요?”
“바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학교의 규칙은 지금 아이들에게 맞게끔 정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훨씬 이전에 정해진 것일까요?”
“규칙을 지금에 맞게 정하려고 항상 아이들과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 맞게 아이들과 학부형이 동의하는 규칙이 정해졌다면 규칙대로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망설일 필요가 없죠.”
“학생과 학부모의 대다수는 규칙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규칙을 따르지 않고 막무가내 식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면 학부모회를 소집해서 먼저 규칙을 설명하고 이의가 있으면 의견을 내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동의를 얻은 다음에도 막무가내 식으로 행동한다면 교장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요즘은 학교가 너무 관료화되어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교장선생님과 학교 선생님들이 사전에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겁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맞게끔 학교 규칙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주제로 논의를 해서 합의를 하는 거죠. 합의된 규칙을 입학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한 후 ‘우리는 아이들을 이렇게 지도하는데 동의하십니까?’ 하고 동의를 구한 다음 그에 따라 조치하면 됩니다. 만약 동의하지 않는 학부형이 있다면 학생을 다른 학교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안내해야겠죠.”
“알겠습니다. 교장선생님한테 적극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규칙에 대한 조정은 선생님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 모두가 함께 동의해서 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해진 규칙하에 학생이 세 번 정도 규칙을 어기는 것은 좀 봐줘야 해요. 규칙을 어겼다고 무조건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항상 융통성과 예외는 있어야 하니까요. 학생이 규칙을 어겼을 때는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니까 안 돼’ 하고 경고를 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하나하나 쌓아 놓아야 합니다. 규칙을 세 번이나 어기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한 번 어겨서 주의를 주었고, 두 번 어겨서 주의를 주었고, 세 번 어겨서 주의를 주었으니, 이제는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어 안 되겠다. 부모님을 데려 오너라.’
그런 후 학부모를 불러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규칙을 한번 어겼다고 불러서 이야기하는 건 좋지 않아요. 이런 방식으로 학부모와 함께 의논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심리 불안이 심해 보이면 병원 진료를 받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고, 수업에 적응을 못 하는 경우라면 아이에게 맞는 특수 학교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고, 이렇게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지 아이가 문제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아이의 상태가 지금 다니는 학교와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아이의 신체적인 조건에 장애가 있든, 정신 불안증이 있든, 아이가 더 새로운 것을 원하든, 어떤 이유 때문에 이곳과는 맞지 않는 겁니다. 서로 안 맞는 것이지 잘못된 아이는 없습니다. 다만 교실 현장은 아이를 한 명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여러 명을 가르치는 곳이니까 규칙에 맞지 않는 아이는 그 아이에게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경우인지, 아니면 자기에게 손실을 끼치는 경우인지, 이 점에 대해서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경우라면 나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고, 자기에게 손실을 끼치는 경우라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아이가 졸고 있다고 선생님이 야단을 치거나 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조는 행동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든지, 아니면 조는 것은 본인에게 손해이기 때문에 흔들어 깨워서 수업을 듣도록 해야지요. 혹시 ‘네가 감히 내 수업 시간에 졸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이를 위한 태도는 아닙니다. 아이의 행동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사람을 보호해야 하므로 아이에게 주의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규칙을 수정하거나, 규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규칙을 적용할 때 신중해야 됩니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계속 떠들어서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라면 그 아이를 격리시켜 주어야 합니다. 학교도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격리하는 이유는 그냥 내버려 두면 또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네가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벌을 받아라’ 하는 징벌적인 방식은 올바른 조치가 아닙니다. 법은 예방적이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없다면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잘못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다음에도 또 잘못할 가능성이 있다면 격리를 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할 권리는 없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떠들려면 운동장으로 나가서 떠들어라’ 하고 말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떠들 수 있는 교실을 따로 만들어서 그 교실에 가서 놀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새로운 방법을 연구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해진 법은 없습니다.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학교 선생님들의 전체 분위기가 어떠한지, 교장선생님의 성향이 어떠한지 등등 많은 요소를 감안해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 해봐도 안 된다면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내 좋을 대로 하는 겁니다. 어떤 때는 떠드는 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버려 두기도 하고, 그러면서 적절한 길을 찾아나가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어떤 문제를 완벽하게 푼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금 개선해 보겠다는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합니다. 말을 안 듣는 것이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수행적 관점입니다. 그래도 강아지보다는 훨씬 더 말을 잘 듣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말을 안 들어도 강아지보다는 말을 잘 듣지 않아요?”
“네.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이유는 아이에게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학생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가 있습니다. 아이를 하나만 낳아서 기르다 보니 어릴 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자라잖아요. 그래서 학교에 와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내가 조금의 역할이라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임해보면 좋겠습니다. 옛날처럼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때와는 아이들이 자란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냥 밥값만 하면 됩니다, ‘페스탈로치 교육은 못 되더라도 밥값은 하고 있다’ 이렇게 관점을 갖고 해 나가시면 훨씬 가볍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밥값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그런데 잘 안 될 겁니다. 첫째, 선생님이라는 권위의식 때문입니다. ‘학생이 어떻게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안 들어?’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죠. 만약 대부분의 선생님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사고를 치거나 정학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면 아이들의 마음을 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착실한 학생들이 교육대학에 진학해서 선생님이 되기 때문에 ‘학생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하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으면 안 일어나야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바람직한 길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늘 우리가 함께 모색해 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모르기 때문에 잘 가르쳐줘야 합니다. ‘이것이 몇 번짼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모르는 아이에게는 열 번 아니라 스무 번이라도 가르쳐준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즉문즉설도 사람들이 제가 말한 대로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짜증 나서 어떻게 계속하겠어요? 결혼은 자기들끼리 해 놓고 왜 스님한테 해결책을 물어요? 그리고 제가 말한 대로 합니까? 대부분 제가 말한 대로 안 한다는 사실을 저도 다 알아요. 그러나 하고 안 하고는 당사자의 자유이고, 저는 올바른 길을 알려줄 뿐입니다. ‘실천 여부는 그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다만 알려줄 뿐이다’ 이런 관점을 갖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겁니다. 스스로 방법을 못 찾거나 도저히 능력이 안 되면 그럴 때는 ‘밥값만 한다’ 하고 생각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이쪽 학부형이 항의하면 ‘네, 알았습니다’ 하고, 또 저쪽 학부형이 ‘왜 떠드는 학생을 그냥 두느냐?’ 하고 항의를 하면 ‘네, 죄송합니다. 그 학생이 문제가 좀 있어서 제가 앞으로 잘 해결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됩니다. 반대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의 부모가 전화해서 항의하면 ‘다른 학생들이 항의해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식이 야단맞으면 좋아할 부모가 없어요. 항의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돼요. 항의 전화를 받고 덜덜 떨 이유가 없습니다. 대신에 절대 아이를 때리면 안 됩니다. 때리는 행위는 무조건 아동 학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성질을 내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도 해서는 안 돼요. 그것도 다 폭언에 들어갑니다. 그래도 밥값은 한다는 관점을 갖고 가볍게 임하면 다른 직업에 비해 괜찮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마다 아이들의 영양을 체크하는 영양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심리를 상담하고 병원에 연결해 주는 일입니다. 사실은 심리 상담사가 학교마다 또는 동사무소마다 배치되어 있어서 정신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몸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반면에 정신 질환에 대해서는 그냥 방치하는 수준입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무슨 말만 하면 화가 폭발합니다. 글씨 쓰자 하면 연필을 부숴버리고 책을 찢는 등 이상 행동을 보입니다. 제가 어떤 마음을 먹어야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요?
법륜스님은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해박한 지식으로 명쾌한 답을 주시는데요. 자기만의 공부 방법 같은 게 있으신지 알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저주하는 저주 의식이 실제로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검색해 보니 현직 무당들이 실제로 저주 의식을 하고 있는데, 실제 저주를 받으면 어떡해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학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애정 결핍이 있는 학생에게 최선의 지도는 무엇일까요? 학부모는 성적에만 집중하고 아이를 정서적으로 케어하지 않습니다.
80세를 넘어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속상해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딸로서 아버지께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민원인에게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서 밤에 잠이 안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강연을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별로 자긍심이 없다면 교사를 그만두셔야 합니다. 억지로 일을 할 이유는 없잖아요. ‘나는 청소하는 게 더 편하다’, ‘나는 배달하는 게 더 편하다’ 하고 생각한다면 직장을 옮기셔도 됩니다. 너무 돈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요. 인생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너무 억압하면서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게 아니라 내 성질대로 안 되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면 마음을 좀 바꾸셔야 됩니다. 아이들은 모르니까 배우러 온 것입니다. 한 번 가르친다고 알아들으면 학생이 아닙니다. 열 번 스무 번 똑같은 얘기를 해줘야 해요. 너무 욕심 내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무대 아래에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교육연수원을 나와 곧바로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농사일을 한 후 오전에는 주간 반을 위해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울주군 초청 공감 콘서트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저녁 반을 위해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2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