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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전과 저녁에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진행된 INEB 스터디 투어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 달려 아침 8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10시 정각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INEB 스터디 투어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INEB(참여불교국제연대) 방문단이 정토회를 견학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각국의 스님들과 활동가들이 정토회 활동을 배우기 위해 10년 전부터 해마다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년 동안 중단이 되었다가 올해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9개 나라에서 19명이 방문했습니다. 그동안 남방불교 스님들이 많이 오셨는데, 올해는 중국에서도 두 분의 스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들은 매일 수행하고 전법하고 사회실천을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입니다만, 남방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 불교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법에 대한 이해도 부족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불법은 ‘전생에 죄가 많아서 여자로 태어났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부자로 태어났다.’ 하는 식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점점 불교에서 멀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동남아 스님들이 정토회를 견학하면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내용이 자원봉사 시스템이었습니다. 자원봉사 시스템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대중들이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관점이 충분히 잡혀야 하고, 매일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무런 자발성이 없는 자원봉사는 강제 동원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INEB 스터디 투어는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 행복학교의 커리큘럼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 명상수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연수와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매일 아침마다 어떻게 수행을 하는지, 정기적인 법회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 등 정토회의 운영 방식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게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사회실천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우기 위해 현장에 가서 이야기도 듣고, 같이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북 수련원에서는 감자 수확도 같이 했습니다. (웃음)
한국에 왔으니까 봉암사, 운문사, 불국사, 조계사 등 큰 사찰도 탐방했고, 그 외 불교계에서 실천 활동을 하는 NGO 활동가들과 만남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전체 프로그램 중에 70퍼센트는 정토회에 대해서 공부했고, 나머지 30퍼센트는 한국과 한국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어서 INEB 스터디 투어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마지막 소감문 발표 시간에 참여불교의 최고 모델이 정토회인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이번 행사를 통해 세계 전법의 씨앗이 동남아 각국으로 널리 퍼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어서 주말에 전국 으뜸절에서 회원들이 실천활동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전법 회원들이 포살을 하는 날이어서 수행법회 시간을 단축해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두 명의 질문만 받았습니다.
치우치지 않는 삶이란 중심이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지 않을까요? 정토회 활동이나 스님이 불철주야 활동하는 모습들도 어떤 이에게는 한쪽으로 편중되었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저는 억울하고, 손해 보고, 상처받은 마음들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자유롭고 싶은데 이런 마음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끈질기게 중독처럼 저를 괴롭힙니다. 어떡하죠?
즉문즉설 마치고 포살 법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왜 전법 회원이 되면 포살을 해야 하는지 스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정토회의 전법 회원은 모두 계율을 받은 사람입니다. 계율을 받은 사람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물론 저절로 계율이 지켜지면 수행할 필요가 없겠죠. 계율을 지켜야 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계율을 지키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계율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자신을 돌이켜서 ‘아, 내가 놓쳤구나!’ 하고 다시 계율을 지키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놓쳤구나!’ 하고 돌이키는 것이 참회입니다.
수행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정리해 놓은 것이 기본 5계입니다. 그러나 전법 회원이 되면 기본 5계를 현대 사회에 맞게 재해석한 18계를 받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매달 15일에 포살을 해야 하지만 정토회에서는 두 달에 한 번 포살을 하고 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계율에 따라 스스로 참회하고, 그것을 대중 앞에 드러냅니다. 혼자서 돌이켜서 반성하는 것을 ‘참회’라고 하고, 대중 앞에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을 ‘포살’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모두 5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계율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관점을 갖지 못하고 나를 구속하는 것처럼 느끼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부처님은 우리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가르침을 펼쳤는데 그것이 속박으로 느껴진다면 계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일반 회원의 수준에서는 계율을 받는 것에 대해 속박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현재는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해도 수계를 하지 않고 전법 회원이 되어야 계율을 받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계율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 계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율을 받으면 반드시 포살을 해야 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포살을 하는 것이니까 전법 회원들은 수행법회가 끝나면 모두 포살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를 마친 후 전법 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포살을 했습니다. 포살계본을 하나씩 읽고 내가 어긴 계율이 있을 때마다 세 번 절을 했습니다. 포살이 끝나고 나누기 자리에서는 어떤 계율을 어겼는지 드러내어 참회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오후에는 농사일을 쉬고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스님은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포살을 해야 하기 때문에 두 명의 질문만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나서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든다며 어떻게 수행 해야 하는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얼마 전 도둑이라고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황당한 일도 다 있네’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억울한 마음이 많이 올라왔고 일상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다음날에는 증거도 없이 소리만 지르던 상대가 환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게 되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내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건지 억울한 마음이 예전보다 더 세게 올라왔습니다.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으로 삼아라’ 하는 보왕삼매론의 의미를 잘 알아서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을 드립니다.”
“질문자는 지금 수행자의 관점을 놓치고 복을 구하는 기복 불교의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억울한 일은 더 이상 안 당했으면 좋겠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사고가 안 났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는 세상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 아닌가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부처님께 빌고, 하느님께 빌고, 굿도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믿는 종교잖아요.
지금 누가 잘못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지금 억울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내 마음을 돌이켜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하는 수행의 관점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에요. 매일 아침마다 모든 괴로움은 나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빚어진다는 수행문을 읽으면서도 입으로만 외우고 관점을 놓치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바로 기복적인 마음입니다. 누구나 다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부처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고, 법륜 스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질문자라고 안 일어나겠어요? 수행은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나게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억울한 일이 안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종교예요. 종교를 믿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와 달라고 간절히 빌어야 하지만 수행자는 누군가에게 빌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오해해서 그런 일이 생겼을 수도 있고, 나를 모함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가끔 생깁니다.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을 때 저는 인도적 지원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왜 북한을 돕느냐? 너는 빨갱이냐? 차라리 북한에 가서 살아라.’ 하고 비난을 했습니다. 사람이 굶어 죽는다고 해서 돕는 것인데 그런 비난을 들으면 억울하죠.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법륜 스님은 빨갱이다.’ 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법을 어겼다면 법으로 처리하면 되겠죠. 그러나 그냥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그런 사람도 세상에는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 물건이 없어졌고 그곳에 질문자만 있었으니까 ‘저 사람이 가져갔나?’ 하고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안 그랬다.’ 하고 당당하게 말하면 될 일입니다. 오해가 지나쳐서 도둑으로 형사고발을 하면 법정에서 해명 하면 됩니다. 살다 보면 날씨가 추워서 덜덜 떨어야 할 때가 있고, 날씨가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릴 때가 있듯이, 조금은 불편을 겪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누구나 종종 겪을 수 있는 일이에요. 도둑의 누명을 쓰는 일뿐 아니라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적절하게 대응 하면 됩니다.
누구나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면 내가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됩니다. 상대가 고소를 했는데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항소하면 됩니다.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게 되더라도 그에 맞게 법적인 조치를 취하면 되지 억울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수행자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법적인 시스템이 나에게 불리하게 되어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내가 왕조시대에 태어났다면, 왕권에 저항하다 죽든지, 왕권을 받아들이고 살든지, 둘 중에 한 가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만약 내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독재에 항거하다 죽든지, 독재를 받아들이고 당분간 그렇게 살든지, 둘 중에 한 가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을뿐더러 그걸 억울해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에요.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하는 말의 뜻은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는데도 안 되는 것을 자꾸 생각하면 자신만 괴롭다는 의미입니다. 핵심은 원망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해탈과 열반이 수행의 목표입니다.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하지 마라, 이런 것이 핵심은 아니에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하면 안 된다’, ‘이혼을 하면 안 된다.’, ‘결혼을 여러 번 하면 안 된다.’ 하는 정해진 법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이런 윤리와 도덕을 내세우는 것이지 불교는 어떤 선택을 하든 괴롭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혼자 살아도 괴롭지 않아야 하고, 결혼해서 살아도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독재 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면 감옥에 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그러니 만약 독재 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가게 되면 감옥에서 편안하게 있어야 합니다. 그걸 억울해한다면 이치를 모르는 겁니다.
상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질문자가 사실을 밝히면 되는 거예요. 사실을 밝힐 수가 없고 다른 방도가 없다면 욕 좀 얻어먹고 배상을 좀 해주면 됩니다. 날씨가 춥든 덥든 비난을 받든 오해를 받든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집착이고 어리석음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은 수행적 관점이 아니라 기복적 관점입니다. 수행이란 이번에는 내가 막 휘둘려서 괴로워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별일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빙긋이 웃으면서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 화살을 맞을지언정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잖아요. 한마디로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하고 싶다면 정토회로 오지 말고 다른 종교를 찾아가서 기도 하세요.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잠깐 수행적 관점을 놓쳐서 화나고 짜증 나고 괴로워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은 금방 돌이켜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로 해야지 원망과 분노를 갖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독재 정권에 항거해서 민주화운동을 해도 괜찮고,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환경운동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분노를 갖고 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자신이 괴롭습니다. 둘째, 폭력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습니다. 폭력은 또 다른 고통을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거예요. 붓다의 가르침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그 일을 하되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정토회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합니까?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 적게 소비하고 검소하게 살기 위한 다양한 환경 실천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도 많은 활동들을 합니다.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도 수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덧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세상을 외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분노하거나, 큰일을 하지 못했다고 나를 학대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는 수행자가 아닙니다. 좋은 일도 욕심을 내면 괴로워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만, 수행자는 ‘내가 괴로운가, 괴롭지 않은가?’ 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괴로움이 없어야 합니다. 괴로운 이유는 내가 선택할 결정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이 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정토회에 나오지 말고 다른 절에 가지 그래요? 왜냐하면 정토회는 질문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질문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저에게 그런 능력이 있으면 모든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죠. 전쟁도 일어나지 않게 하고, 가뭄이나 홍수, 산불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죠. 그런 능력이 있다면 더 큰 일을 하지 무엇 때문에 질문자가 욕을 얻어먹지 않도록 하는 그런 작은 일에 힘을 쓰겠어요?
수행자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죠. 늘 상황에 휘둘리지만, 곧바로 알아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수행문을 읽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입으로만 읽고 현실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는 거예요.”
“네, 제2의 화살을 다시는 맞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겠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화살이 되어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행이란 자기를 돌이켜 깨우쳐서 괴로움에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한순간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괴로움에 빠진 겁니다. 화가 날 수도 있고, 그래서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욕심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돌이켜야 합니다. ‘아, 내가 놓쳤구나’, ‘그래서 내가 괴롭구나!’ 하고 수행자의 자세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외에도 한 분이 더 질문을 했습니다.
수행법회를 일찍 끝내고 곧바로 포살을 시작했습니다. 일반 회원들은 마음 나누기만 하고 화상회의 방을 나가고, 전법 회원들만 남아 18 계본에 대해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모든 전법 회원들이 포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청정해지는 날이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는 대구로 이동하여 대구교육연수원 초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돌아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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