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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에서 기획위원회, 평화재단, 공동체 법사단 등 여러 단위와 하루 종일 회의를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7시부터 조찬 모임,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간담회, 오찬 모임을 연달아 하며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쉼 없이 미팅을 한 후 오후 1시 30분부터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기획위원들은 지난 한 달 동안 분과별로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결과를 발표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먼저 전법 플랫폼 기획안, 콘텐츠 저작권 관리 방안, 영어로 읽어주는 즉문즉설 영상 제작 방안, 동남아 답사 후 후속 지원 활동 방안에 대해 각 분과에서 논의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준비된 안건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을 한 후 기획위원들은 스님에게도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동남아 답사 후 후속 활동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스님께서 동남아 지역을 답사하고 온 이후 그 후속 사업으로 다문화 사업팀을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무처 내에 다문화 사업팀을 신설한 후 지부에는 각각 다문화 사업 담당자를 배치하고, 지회별로는 실천 활동으로 다문화 가정 지원 사업을 전개해 보자는 초안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해야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두 가지 조사를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들의 실태에 대해 조사하면 좋겠어요. 각 나라별로 노동자 인구, 결혼한 인구가 지역별로 얼마나 살고 있는지 등 기초 자료를 먼저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다문화 가정의 실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초대해서 충분히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어요. 스리랑카 노동자의 경우 한국에 약 2만 명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데 그중에 6천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담마프렌즈(주한 스리랑카 불자 모임)의 대표가 초파일에 정토회를 방문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런 사람을 초대해서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어디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와 같은 경험적인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문화 가정을 돕는 일은 어차피 국내에서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이니까 전국적으로 조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사를 해보니까 스리랑카 출신 스님이 한국으로 파견을 오는 게 좋겠다고 판단이 되면 스리랑카의 어떤 단체에 요청할 것인지. 스님이 체류하는 동안 숙소 제공은 어떻게 할 것인지, 스님이 각 지역으로 법문을 하러 다닌다면 장소는 어떻게 섭외할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 합니다. 이럴 때 다문화 가정에 대해 관심이 많고 사회의식이 있는 스님을 초청해야지 아무 생각도 없는 스님이 오게 되면 곤란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선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상세하게 조사를 해야 해요.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국제지부와 해외지부에 있는 분들에게도 조언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노동 이민을 간 사람들은 그 나라의 종교 단체에서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었을 때 가장 좋았는지 자신의 경험을 잘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 내용들을 미리 조사해서 샘플을 만들어 놓으면 맞춤형으로 지원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아이들을 지원한다고 합시다. 그 아이들은 베트남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 사람인데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경우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자기 엄마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서 베트남어를 가르쳐주는 일을 하는 게 필요합니다. 베트남어 작문대회, 베트남어 웅변대회, 베트남어 노래대회 등을 열어서 상을 주면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또 그들이 불교 신자일 경우에는 법회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현재 정토회가 갖고 있는 공간인 일산 정토법당, 동래 정토법당,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비롯하여 전국의 으뜸절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 추가로 공간이 필요할 경우 광주, 대전, 천안 같은 곳은 JTS가 안산에 다문화센터를 만들었듯이 지역별로 다문화센터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꺼번에 다 만들 수는 없으니 우선 정토회가 갖고 있는 공간을 활용하면서 점차 확대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코로나 이전에 정토법당이 전국에 200개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다문화 인구가 20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하니까 그들을 돌보려면 코로나 이전에 정토법당의 숫자만큼 다문화센터가 있어야 해요. 현재 상황에서 보면 행복운동특별본부에서 지역별로 만들고 있는 행복센터가 최소한 200개는 만들어져야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지역에 공간을 다 확보할 필요는 없어요. 가령 다문화 아이들을 돌보는 사업을 한다면 그 공간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거나 빌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설문조사와 더불어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우선 해봐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모델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실험적으로 해본 후 점차 확대해 나가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론을 마친 후 해외 미디어 동향과 영문 홈페이지 분석 결과, 홍보 제안서 등을 함께 공유한 후 기획위원회 회의를 마쳤습니다.
곧이어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근활동가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평화재단의 연구 사업과 교육 사업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 운영 방안과 관련하여 활동가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스님은 어제 모내기를 하고, 예초를 하면서 몸이 많이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엊그제 세계 행복시민대회에서 소개하지 못한 즉문즉설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지원을 할 때 지원하는 사람과 지원받는 사람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다 보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고민이기에 스님의 답변이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해 드립니다.
“행복시민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서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 음식, 의약품, 교육, 집, 전기 등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느 수준까지 지원을 해야 하며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지원하는 사람은 마음이 안타까워서 더 많은 지원을 하고자 하는 집착이 생길 수 있고, 지원을 받는 사람은 동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중도를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는 크게 세 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생활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도와야 합니다. 누군가가 아이를 낳고 나서 키울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닌 남이 낳은 아이라 하더라도 키워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도 다닐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내 아이가 아니라 남의 아이라 하더라도 초등학교는 다닐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갖고 있는 물이라도 나눠주어야 합니다.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갖고 있는 밥이라도 나눠주어야 합니다. 옷을 입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갖고 있는 옷이라도 나눠주어야 합니다. 잠을 잘 곳이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자는 방이라도 비워서 잘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픈데도 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먹던 약이라도 나눠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사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여섯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6절까지를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고 의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눈 후 이렇게 말합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 들었을 때 치료하지 아니하였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그랬습니까’ 하니 이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이렇게 굉장히 직설적이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이죠. 교회에 얼마나 다녔느냐,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이런 것들이 천국에 가는 기준이 아니고, 천국에 가는 기준으로 딱 여섯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난민이 된 사람들을 구호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감옥에 갇힌 자를 위로하는 것이 천국에 가는 기준이라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가 되자 슬퍼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큰 공덕을 얻게 되는데, 만약 부처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시면 누구에게 공양을 올려야 합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난다여, 걱정마라.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나에게 올린 공양과 똑같은 공덕이 있는 것이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둘째,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셋째,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이다.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외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거의 내용이 비슷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부처님께 드리려고 했던 음식도 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진정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라는 겁니다. 배고픈 사람을 외면하고 절에 가서 불상 앞에 공양을 올린다면 그것은 부처님을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마실 물이 없는 사람들에게 물을 주고, 옷이 없는 사람들에게 옷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천국에 가는 길이고, 그것이 곧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이제 불교 신자인지 기독교 신자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도 가르쳤고, 부처님도 가르쳤던 것입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싸우라고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행복학교에서는 그가 어느 종교를 믿든, 어느 종파에 속하든, 그런 것은 전혀 따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남도 괴롭히지 않고, 지구 환경을 지키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오는 일을 하는 곳이 행복학교입니다. 그가 믿는 종교가 무엇이든, 그가 가진 사상과 이념이 무엇이든, 그가 사회주의 국가에 살든 무슬림 국가에 살든, 이런 것은 하등 따지지 말자는 겁니다.
둘째, 돕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상대의 동의를 얻는 것도 필요합니다. 나는 상대를 사랑하지만 상대는 내가 싫다고 하면 성추행이 됩니다. 그것처럼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할아버지의 집이 너무 낡았어요. 그래서 ‘집수리를 해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싫습니다’ 하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런데도 집수리를 하면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일이 됩니다. 내가 보기에는 할머니가 사용하는 부엌이 너무 지저분해 보여요. 그래서 ‘제가 부엌을 청소해 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싫어’ 하고 대답했어요. 그런데도 부엌을 청소하면 할머니를 괴롭히는 일이 되는 겁니다.
일단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돕겠다는 마음을 내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상대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상대의 요청이 있는 일을 해주는 것이 좋아요.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이곳에 학교가 필요 합니까?’ 하고 물어본 후 상대가 ‘예, 필요합니다’ 하고 대답했을 때 학교를 지어줘야 합니다. ‘물이 필요합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예, 필요합니다’ 하고 대답했을 때 물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가 ‘물은 필요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데도 ‘우리가 핸드펌프를 설치하기로 했으니까 무조건 설치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만약 ‘우리는 행복시민으로서 좋은 일을 뭐라도 하나 해야 한다’ 하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놀부 심보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됩니다. 흥부는 제비의 다리가 이미 부러진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것을 치유해 줘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부는 복을 받기 위해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려서 치료를 했잖아요. 오늘날 우리가 하는 좋은 일들 중에는 놀부 심보로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상대가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을 벌여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를 도울 때는 상대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셋째, 상대가 원하는 일을 내가 다 해줄 수도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는 요청들을 내가 다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런 경우는 ‘죄송합니다’ 하고 거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갖 요청이 있어서 현장을 답사해 보면 실제로 사는 데에 별로 지장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청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죄송합니다. 저희는 기본 생활만 지원할 수 있지 그 이상을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 가지를 점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지원을 하면 됩니다. 첫째,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서 도와야 합니다. 둘째, 상대가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셋째, 내 능력과 조건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이 말씀해 주신 세 가지를 잘 파악하여 중도를 잘 지키면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자유롭고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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