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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생방송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오늘도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화엄반 행자님들과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행자님들 중 절반은 산윗밭으로 가서 풀을 뽑고, 절반은 윗논으로 가서 모심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논으로 갔습니다.
논에 도착하니 향존법사님이 벌써 도착해 아랫논에서 피를 뽑고 있었습니다.
“스님, 피가 벌써 올라오고 있어요.”
“피는 향존법사님이 봉사자들과 뽑아주세요. 지금은 모 심는 게 더 급합니다.”
행자님들이 논장화나 스타킹을 갖춰 신고 윗 논 앞에 모이자 스님이 간단히 모 심는 방법을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모심기를 처음 해보는 행자님도 있었습니다.
“모는 뿌리부터 잘 갈라줘야 합니다. 뿌리가 뜯기면 안 돼요. 모는 4-5개씩 뜯어서 물 위로 뜨지 않도록 잘 심어줘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한 사람당 5줄씩 맡아서 심읍시다.”
“네!”
멀리서 보아도 모가 심어져 있지 않은 크고 작은 빈자리가 보였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기는 고속도로도 있고, 휴게소도 있네요. 올해는 논에 한 번 안 들어가나 했더니 농사팀 행자님들이 기회를 여러 번 주네요.” (웃음)
각자 구역을 정해 차례로 논에 들어가 모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 날씨가 선선했습니다. 허리를 숙여 모를 심을 때마다 물에 비친 그림자도 똑같이 모를 심었습니다.
스님은 제일 가장자리에서 모를 심으며 중간중간 논 안쪽으로 모도 전달해 주었습니다.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모를 보충해서 심고, 다시 논의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행자님들이 사시예불 전까지 울력을 한다고 하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어딜 가려고요. 오늘은 논에서 예불을 드리세요.” (웃음)
스님과 행자님들은 쉬지 않고 꼬박 2시간을 모를 심었습니다.
“오늘 어차피 다 못하겠네요. 제가 반대편 행자님과 만날 때까지만 울력을 하고 마칩시다.”
8시 30분이 다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남은 모는 오후에 화엄반 중 일부 행자님들이 남아 심기로 했습니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전 9시 30분부터 세계행복시민대회에 참석했습니다. 2021년 1월에 온라인 행복학교를 시작한 이후 심화과정까지 이수한 행복시민이 4천 명을 넘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행복시민모임에서 활동해 온 것을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시간입니다.
행복센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후 4.19 역사탐방, 해양쓰레기 청소 활동, 이주노동자 돕기 활동,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주거를 개선해 주는 활동 등 전국의 행복시민모임에서 진행한 다양한 실천활동들을 영상으로 만나보았습니다. 지역마다 상황에 맞게 많은 실천활동들을 자발적으로 펼친 모습들을 보니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스님이 행복시민들을 위해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행복시민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환경 실천을 하는 것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운동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운동을 함께 공유하는 행복시민대회가 열리게 된 것에 대해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스님과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섯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딸이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에 결혼하고 손녀를 낳고 나서도 자신을 멀리한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저에게는 시집을 간 딸과 아직 미혼인 아들이 있습니다. 시집을 간 딸이 외손녀를 낳고 나서 어렸을 때 저한테서 상처받았던 일을 들먹이며 저를 원망하고 만나주지 않고 있습니다. 사위와는 한 번씩 전화로 소통하면서 지내는데, 딸이 외손녀를 감춰두고 저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외손녀가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잊어버릴까 봐 두렵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모두 감내해야 할 업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와 딸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가면 좋을까요?”
“딸이 어렸을 때 본인이 딸에게 한 행동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외손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네요. 아빠한테 상처를 입어서 더 이상 아빠를 보기 싫다고 하니까 이제는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어릴 때 원하는 대로 못 해주었으니까 지금이라도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알았어, 어릴 때 너한테 마음의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어릴 때 못해 준 것을 해줄 수도 없고,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이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네가 만나러 오고 싶으면 전화해 주고, 만나러 오고 싶지 않으면 안 와도 좋다. 아빠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고 딸과의 관계를 바삭하게 정리하는 게 좋겠다 싶습니다. 지금 나이가 70살이나 된 사람이 손녀를 보고 싶다고 징징대고 있는 것보다는 바삭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아요. 질문자는 딸을 키운다고 본인이 고생한 것만 생각하지 딸이 상처 입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안 날 거예요. 딸이 아빠한테 상처를 받아서 만나기 싫다고 하니까 우선 ‘그래, 내가 그때 너의 어린 마음을 못 살폈구나. 미안하다’ 하고 사과부터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때는 네가 원하는 대로 못 해줬지만, 지금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아빠는 네가 행복한 게 중요하니 아빠 걱정하지 말고 너 좋을 대로 살거라’ 하고 딸을 놓아주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다음에 너의 상처가 풀리거든 연락해라. 그때 우리 다시 만나자’ 이렇게 말해주는 게 좋습니다.
딸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 독립을 했고, 스스로 알아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자꾸 부모에게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 깔끔하게 딸과의 관계를 정리해 주고 이제는 자기 인생을 사세요. 행복학교도 열심히 다니시고, 행복시민 활동도 부지런히 하시면 됩니다.
어린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유치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든지 하면 되잖아요. ‘내 손녀가 보고 싶다’ 하고 생각하니까 징징거리게 되는 거예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나이가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어린애처럼 징징거리고 있는 꼴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딱 정리를 하세요. 젊었을 때 자기 성질대로 산 과보(果報)를 받아야지 그걸 피해 가려고 하면 됩니까? 질문자가 애걸복걸하면 더욱더 딸한테 상처를 줍니다. 그러니 딱 끊으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 저도 마음을 확실히 정리를 해서 딸한테 그렇게 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자꾸 변명을 하면 안 돼요. ‘내가 너 잘 되라고 그랬지 상처 주려고 그런 얘기를 했겠니?’ 이런 얘기는 딸에게 변명처럼 들릴 뿐입니다. 딸이 상처를 입었다고 하면 ‘그래, 내가 미안하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죠. ‘그게 상처받을 일이냐? 그럼 아빠가 그 정도 야단도 못 치냐?’ 이렇게 말하면 더욱더 악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딸이 상처를 입었다고 하면 ‘미안하다. 어릴 때 내가 너의 마음을 두루 못 살펴서 미안하다’ 하고 말해줘야 해요. 큰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 마음을 내가 헤아리지 못했다는 뜻이에요.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아빠는 네가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나중에 아빠하고 대화가 필요하면 그때 서로 연락을 하자. 아빠도 지금 행복학교 다니면서 많이 변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변화된 아빠를 볼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하고 딸을 놓아주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부부든 부모자식이든 친구든 바싹하게 쌀 과자처럼 끊어줘야 합니다. 끈적끈적 엿처럼 붙어 있으면 갈수록 인간관계가 시끄러워져요. 동물들을 한번 보세요. 새끼가 어릴 때는 어미가 입에 있는 것도 먹여줄 정도로 챙기다가도 다 자라면 관계를 딱 끊고 삽니다. 이것이 자연 생태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계속 끈적거리는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맨날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와 딸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가 아닌 딸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제가 좀 징징대는 소리를 한 것 같아요. 직시를 해서 딱 정리를 하라는 말씀을 들으니까 제 마음이 한결 시원해졌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고민 없이 편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욕심을 최대한 버리는 것만이 그 해답일까요? 사람이 아무 욕심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무슨 재미로 살 수 있을까요?
왜 스님께서는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항상 참회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지요? 도리어 참회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기본적인 욕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수준까지의 지원을 해야 하며, 그 기준은 무엇이 될까요?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개인은 실질적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미약한 것 같아 우울한 생각이 불쑥 듭니다. 제가 너무 지나친 생각을 하는 걸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질문한 분들의 소감을 들어 본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행복시민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쩌면 작은 일이고, 소수의 사람들이 갖는 관심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일은 기후 위기가 찾아왔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일류의 절대 빈곤 퇴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세계 평화를 생각해 볼 때, 개인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도 가장 앞서가는 활동입니다. 앞으로 모든 인류가 이 길을 가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어떤 종교를 갖든, 어떤 나라에 소속되어 있든 관계가 없습니다. 이 일은 한국 사람만이 해야 될 일도 아니고, 불교나 기독교만 해야 될 일도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앞으로 누구나 이렇게 살아가야 모든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자부심을 갖고 내가 가진 시간과 돈, 재능을 나누어서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행복시민운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행복시민의 다짐을 함께 낭독한 후 큰 박수와 함께 세계행복시민대회를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정토 환경담마토크에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오늘 행사를 맞이하여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는 환경 실천에 관심이 많은 400여 명의 대중이 모였습니다. 오전에는 환경 영화를 관람하고, 점심에는 다양한 환경 실천 부스를 체험했습니다.
손수건 만들기, 채식 요리 먹기, 흙퇴비화 체험, 용기에 담아서 떡 먹기, 환경퀴즈 풀기 등 재미난 부스들이 많았습니다. 하나씩 재미있게 체험을 하다 보니 환경 실천에 대한 인식이 쑥쑥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스님과 환경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환경담마토크’를 시작했습니다. 서울 회관과 두북 수련원을 이원 생중계로 연결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기후 위기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기후 변화가 홍수처럼 갑자기 닥쳐오면 ‘아! 이거 큰일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조금씩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이 기후 변화로 인해 생겨난 것임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기후 변화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캐나다의 산불이 뉴욕과 워싱턴의 공기를 오염시켜서 환경 문제에 가장 둔하고 국제적 협력도 잘하지 않는 미국도 그 피해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기후 변화가 방치된 이유는 기후 변화를 초래하는 CO2 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들이 주로 선진국인데 그 피해는 대부분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의 후진국이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기후 변화에 별로 관심을 안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그 피해 면적이 점점 넓어져서 런던이나 모스크바가 여름 기온이 40도까지 오르는 등 세계 곳곳에서 위기의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하는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에 큰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가 대안이 되지는 않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분배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지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측면에서는 똑같습니다. 어쩌면 사회주의가 물질주의 속성이 더 강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사회주의가 몰락했을까요? 그 이유는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소비하는 소비주의 경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후 위기를 막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소비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본다면,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이 살아가신 삶의 모습이야말로 기후 위기 시대에 새로운 문명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정토회가 하는 일은 단순히 불교를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새로운 문명을 찾아가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미래에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가는 실험이 바로 정토회가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환경 실천들이 무슨 큰 영향력이 있겠는가 싶겠지만, 우리들의 작고 어리석은 소비가 이런 큰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걸 생각하면 반대로 우리의 작은 실천이 또한 이 기후 위기를 막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환경단체들이나 정부의 환경 정책들이 갖는 허점은 바로 말과 정책만 있고 실천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비를 줄이는 실천을 하는 것이 핵심인데,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큰 틀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일회용 컵을 쓰냐 안 쓰냐 하는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서울 회관에서 참가자들이 질문하고, 두북 수련원에서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일곱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주변에서 환경 운동은 국가나 기업에서 해야지 개인이 한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며 어떻게 대응을 하면 좋을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평소 환경 보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여러 환경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간혹 너 하나 한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국가나 기업에서 앞장서서 해야지 다 부질없는 짓이야’ 하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하는 분들을 만나면 불편한 감정이 생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수행자로서 환경보호에 앞장서야 하는데 너무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듭니다. 어떻게 하면 강요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환경 보호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을까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일을 하느라 화내고, 짜증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차라리 알리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환경운동 단체가 아니고 수행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화내고, 짜증 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수행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환경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나도 옛날에 그랬어’ 이렇게 받아들이고 그런 반응에도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그렇게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문제 제기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너 하나 바뀐다고 무엇이 변하냐?’ 하고 묻는다면 그 말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물어 보면 됩니다.
‘그럼, 제가 안 바뀌면 환경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요? 지금 당신의 말은 어차피 환경 보호는 필요 없다는 관점인가요?’
상대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것도 하나의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느낄 때는 아직 환경 위기가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지구 역사에서 기후의 변화는 여러 번 있었고, 그 속에서 생물 종은 계속 변화해 왔고, 우리 인간도 발전해 왔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하고 대답해야지 이 문제로 논쟁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래서 먼저 상대가 ‘환경 위기는 심각하고 그것은 극복해야 한다’ 하는 관점을 갖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가?’ 하고 대화를 나눌 수가 있겠죠.
첫째, 정부와 기업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실천을 안 하면서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면 그들이 변화하겠습니까? 그러니 정부나 기업은 변하지 않더라도 나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기를 막아내든, 못 막아내든, 나부터 조금이라도 소비를 줄이는 것이 변화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내가 그런 실천을 하면 투표를 할 때도 환경 정책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내가 실천을 안 하면 환경 정책을 중요시하는 투표를 안 하게 돼요. 국민이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으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출마를 할 때는 환경 문제를 중요한 이슈로 다뤄야 당선될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바뀌는 것이 정부의 변화에 원동력이 되는 거예요.
둘째, 소비자들이 바뀌어야 기업이 제품을 만들 때 ‘RE100에 가입한 제품인가’, ‘이 제품은 청정에너지를 썼느냐’, ‘이 제품은 재활용이 되느냐’ 이런 것을 충족하는 제품들을 생산합니다. 우리가 소비를 바꾸면 기업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품을 생산했는데 안 팔리면 기업은 망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각성해서 친환경 상품을 구입하면 기업은 친환경 상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문제 제기한 정치적 변화와 기업의 변화는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투표권자인 나, 소비자인 나가 변화의 주체인 겁니다. 이런 투표와 이런 소비를 하려면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선 그분의 말에 동의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이렇게 말하면 되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첫째, 작은 실천이라도 함으로써 환경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둘째, 투표권을 행사해서 정부의 정책을 바꾸게 할 수 있고, 소비자의 권한을 갖고 기업의 문화를 바꿀 수도 있어요. 그래서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그분과 대화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환경 실천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사홍서원을 하며 환경담마토크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이어 오후 4시부터 지난 2박 3일 동안 온라인 주말 명상수련을 했던 참가자들과 수련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했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부지런히 명상을 해 온 참가자들은 화상회의 방에 모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먼저 소감문 발표를 했습니다.
소감문 발표를 경청한 후 스님이 궁금한 점에 대해 답변을 한 후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저녁 5시가 되어 온라인 주말 명상 회향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저녁식사를 하고 6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4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밤 10시가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후에는 정토회 기획위원회 위원들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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