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5 결사행자회의, 정토경전대학 선불교의 발전
“어디를 가든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안녕하세요. 오늘은 2차 만일결사 준비를 위해 결사행자들과 함께 하루 종일 천일준비위원회 회의를 하는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8시부터 평화재단 임시 운영위원회 회의를 하고 나서 9시에 천일준비위원회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만일결사를 회향한 기간이라서 결사행자들이 다음 천일을 준비하기 위해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주어진 회의 시간으로는 토론이 부족해서 오늘은 하루 종일 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결사행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회향 기간에는 결사행자들에게 결정권이 주어져 있긴 하지만, 대중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준 후 대중의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을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대중이 충분히 이해가 안 되어서 생긴 문제라면 공청회를 통해서 최소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서 결정을 내리는 게 좋겠습니다.”

이어서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에서 준비한 여러 가지 안건들을 발표한 후 다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면서 국내외 지부, 지회, 모둠 편성을 어떻게 할지, 지원국의 구성은 어떻게 할지, 행정 체계는 어떻게 잡을지 등 정토회의 조직 구성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결사행자회의를 한 후 미쳐 결론을 내지 못한 안건들은 다음 회의에서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에는 정토경전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선불교의 핵심 사상이 담긴 육조 혜능 대사의 육조단경에 대한 공부를 마쳤고, 오늘은 혜능 조사 이후 선불교가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 그 역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우리가 선불교를 공부하는 이유는 ‘어떻게 역사의 비주류가 역사의 주류로 등장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교훈으로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작은 씨앗이 점점 커서 고목이 되는가 하는 거예요. 콩 씨앗이나 보리수 씨앗이나 싹이 트면 처음에는 모양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콩은 1년 만에 사라지고, 보리수는 거대한 고목이 됩니다. 선불교는 역사적으로 마치 보리수와 같이 발전했습니다.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공부하려는 내용이에요.

선불교를 공부하는 이유

나중에 보리수와 같은 거대한 고목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는 근본 씨앗이 되는 DNA가 만들어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령 그런 DNA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금방 세상의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시절인연을 만나야 그때 가서 호평을 받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중국의 선사들도 역사적으로는 위대한 스승이라고 불리지만 당나라 당시에는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교종에 해당하는 화엄종, 천태종, 정토종 등 각종 불교 종파가 100이라면, 그중 선종(禪宗)은 1도 안 되는 수준이었어요. 그 1도 안 되는 작은 세력의 선(禪)을 10이라고 하면, 그중에 1도 안 되는 것이 혜능 문하의 남종선(南宗禪)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미미한 세력이었는데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주류로 등장했는지 알기 위해 과거 역사를 공부하는 거예요. 그걸 통해 우리가 미래에 어떤 길을 가야 되겠느냐 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세속과 타협하면서 가야 될까? 아니면 어렵더라도 근본을 유지하면서 가야 될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지금 선불교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지, 옛날 역사에 불교 종파가 어땠는지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얘기를 해야 하니까 여러분에게 이렇게 자료를 보여주면서 얘기하는 겁니다.

하루 일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선불교는 점점 확산이 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선종은 자신들의 절도 하나 없었어요. 마치 대승이 소승의 절에서 살다가 쫓겨났듯이, 당시 선종은 교종이나 율종의 절에 가서 얹혀살면서 수행을 한 수준이었어요. 그러다 백장 회해(百丈懷海) 선사 때 가서야 참선을 하는 자신들의 사찰을 독립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때 청규(淸規, 청정한 규율)라는 것이 나옵니다. 백장 선사가 기존 불교의 규율을 집대성하고 보완하여 선불교 수행자가 지켜야 할 생활 규범을 정리한 것이 백장 청규입니다.

당시 선사는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스님(출가수행자)들이 일을 해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스님들이 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일도 해서 생활을 꾸렸습니다. 백장 선사는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루 일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뜻으로, 노동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하는 가운데 선을 한다는 소위 ‘선농일치(禪農一致)’라는 말도 나오고, 차를 마실 때도 선을 한다는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도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당시 선불교는 조금씩 자리를 넓혀갔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존 불교에 비해서는 세력이 미미했습니다.

시절 인연을 만난 선불교

당나라 말기 840년에 무종이 황제로 즉위를 했는데, 무종은 도교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창폐불(會昌廢佛, 회창은 무종의 연호)이라고 불리는 불교 탄압을 했는데, 4600개나 되는 절을 폐쇄시켰고 당시 30만 명 정도 되던 승려 중 26만 명을 강제로 환속시켰습니다. 낙양이나 장안 같은 수도에 있던 많은 절이 다 없어지고 4개만 남을 정도였고, 각 성이나 주에는 절이 1개만 남을 정도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서울 안에 있는 절을 다 없애버려서 산속에 있는 절만 남게 됐듯이 폐불 정책을 펼쳤습니다.

폐불을 한 이유는 무종이 선약을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도교의 사술에 심취한 것도 있지만, 당시 불교의 지나친 사찰 건립, 사찰에 땅이나 재물이 많이 보시되면서 세수에 차질이 생긴 문제, 군역을 기피하려고 출가한 승려들이 많아진 현상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이 동시에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창폐불로 인해 기존의 불교는 일시에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종은 폐불 정책에 별로 영향을 안 받았어요. 선종은 국가나 고관대작, 부자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적인 불교 탄압에 큰 영향을 안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무종이 즉위 후 6년 만에 갑자기 죽고, 다음 황제로 선종(宣宗)이 즉위했습니다. 이 분은 폐불령을 없애고 불교를 다시 복원을 시켰는데, 특히 선불교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폐불 정책이 없어지고 불교가 다시 활발하게 되니까 선종(禪宗)은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기득권에 안주했던 주류 불교인 교종은 다시 일어나기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비해서 선종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고, 선종 귀의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당나라 말에서 송으로 넘어올 때는 결국 선종이 주류 불교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선종이 급격하게 흥기를 하니까 당연히 종파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당나라 말기에 가면 다섯 개의 큰 종파인 오종이 생기게 됩니다. 오종이 송 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임제종의 세력이 아주 커지고, 나머지 4개는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다시 임제종 안에 황룡파와 양기파 두 개의 파가 나오게 되었고, 이를 합해서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고 부릅니다. 선종도 다시 크게 일곱 가지 종파로 분류가 된 겁니다.”

이어서 스님은 선불교의 오가칠종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각 종파가 가르친 핵심 사상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선종의 다섯 개 종파는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선(禪)의 종지(宗旨)는 모두 같습니다.

임제가 말했다. 불법에는 인위적인 꾸밈이 없다. 오직 여기에서 꾸며대지 않는 평상시의 생활일 뿐이다. 변소에 가고 옷 입고 밥 먹고 피곤하면 눕는다. 어리석은 자는 웃겠지만 지혜로운 자는 알 것이다. 이르는 곳마다 주체적이면 머무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거기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도 주인이 안 되잖아요. 자기가 주인이 되는 자세를 갖지 않고 항상 남에게 의지해서 살아가죠.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제가 스승을 만나서 경험한 것을 얘기해 드릴게요. 오래전에 도문 큰스님께서 저에게 인도성지순례를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작년에 갔다 와서 안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큰스님께서,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냥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듣고 아무 준비도 안 하고, 맡은 책임도 없이 큰스님을 따라갔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다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공항에 가서 보니 비행기가 없었어요. 그러자 같이 갔던 신도들이 ‘스케줄에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비행기가 없다잖아요!’ 하면서 도대체 누가 이 스케줄을 짠 거냐고 웅성웅성 불평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일에 관여를 안 했고 그냥 따라간 거니까, 비행기를 타든 기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나는 이 일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큰스님이 저를 부르시면서 벽력 같은 소리로 야단을 치셨어요.

‘이 놈! 내가 너한테 비행기가 없다고 몇 번을 얘기했느냐? 그런데도 네가 계속 비행기가 있다고 고집을 했는데, 와 보니 없지 않으냐!’

이렇게 야단을 치시고 사정없이 제 뺨을 때리셨어요. 그러자 신도들이 옆에서 그걸 보고 ‘아이고, 스님! 저희가 그냥 버스 타고 갈게요’ 하면서 불평이 쑥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원래 인도에 오려고도 안 했고, 그냥 오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왔는데 날벼락을 맞은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마음이 안 좋으니까 몸까지 아팠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행이 같이 나가자고 하는데 저는 몸이 아파서 오늘은 그냥 누워있겠다고 했습니다. 매일 이동하는 일정이었는데 마침 그날은 같은 숙소에서 하루를 더 묵는 일정이었거든요. 저는 전에 가봤으니 쉬겠다고 얘기하고 숙소에 남아 있었는데 큰스님께서 오셨습니다.

‘많이 아프나?’
‘감기가 심한지 몸이 안 좋습니다.’

그때 큰스님께서 살짝 제 귀에 대고 말씀하셨어요.

‘너 아직도 그 생각을 하고 있느냐?’

이 말씀이 무슨 뜻이겠어요? 제가 아직도 어제 그 일에 딱 사로잡혀서 마음이 안 풀렸다는 거죠. ‘나는 인도에 안 오겠다고 했는데 왜 나한테 죄를 덮어씌우나’ 이런 생각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아직도 그 생각을 하느냐고 일침을 가한 겁니다. 이렇게 문답을 통해 자기 마음의 상태를 보도록 하는 것이 선불교입니다.

내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인도에 왔든 일단 인도에 왔으면 당연히 주인 된 자세로 살피고 필요한 일을 해야 되는데, ‘그냥 따라만 오면 된다’ 하는 그 말에 집착해서 아무런 책임도 안 지고 있다가 된통 혼이 난 거죠. 우리는 어떻게 왔든 일단 왔으면 주인으로서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건방지게 나서라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든 항상 주인이 된 자세로 임해야 된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이 ‘저건 남의 일이니까’, ‘저건 내 책임이 아니니까’ 이렇게 핑계를 대고 주인 된 자세를 갖지 않죠. 한 편으로는 ‘내 아들이니까’, ‘내 남편이니까’, ‘내 부모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너무 집착을 해서 문제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내 아들이 아니니까’, ‘내 남편이 아니니까’, ‘내 부모가 아니니까’ 하는 생각으로 너무 외면해서 문제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양 극단에 치우치는 병폐입니다. 집착하지 않되 항상 주인 된 자세로 모든 것에 임해야 합니다.

중국 불교의 과거와 현재

역사 속에서 보면 선불교는 크게 두 개의 다른 특징을 갖고 발전해 나갔습니다. 하나는 간화선이고, 다른 하나는 묵조선입니다.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참구 하는 수행법이고, 묵조선(默照禪)은 오직 묵묵히 마음을 관찰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경지에 가면 저절로 맑아진다는 수행법입니다. 우리나라는 간화선이 주류이고, 일본은 묵조선이 주류입니다. 간화선은 임제종의 일부에서 형성되어 나왔고, 묵조선은 조동종의 일부에서 형성되어 나왔습니다.

물론 현재 선불교의 모습은 여러 가지 부작용과 한계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여러 종파들의 지금의 모습을 보지 말고 처음 출발했을 때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 정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들은 처음 출발할 때 남녀, 계급, 빈부 등 아무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보고 인간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하는 관점을 가졌습니다. 우리 역시 선불교가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갈 때 본래 붓다의 가르침을 이 땅에 실현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불교는 송나라 다음에 원나라, 명나라 대까지 중국불교의 주류로서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혼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사라졌거나 소수로 전락했고, 결국은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정토종만이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남았습니다. 그 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국 안에서 불교가 많이 쇠퇴했다가 요즘 다시 중국에서 불교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선지(禪旨)가 사라지고 주로 복을 비는 정토종 계열이 부흥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작용을 알아서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오늘 강의를 듣고 종파의 역사가 어떤지, 다섯 개 종파의 이름이 무엇인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런 걸 외우라는 게 아니에요.

‘불교의 본질이 무엇을 믿고, 죽어서 어디 가고, 이런 게 아니구나.’
‘책을 많이 보고 공부하는 게 불교가 아니구나.’
‘내가 내 마음의 작용을 알아서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불교이구나.’

여러분들이 이것을 자각하기 바랍니다. 무엇을 믿느냐, 누가 어떤 얘기를 했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런 관점에 대해서 선불교에서는 더욱더 아니라고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다음 시간에는 한국 불교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기로 하고 생방송 수업을 마쳤습니다. 경전대학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갔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인도 성지순례 실무준비팀과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을 한 후,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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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옥

오지랖과 잘 구분 지어서 주인 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024-01-12 20:41:05

법련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집착도 방관도 아닌 주인되기,
명심하겠습니다!

2023-01-25 11:12:17

토촌

수처작주 입처개진/ 도문 스님한테서 뺨 맞은 사건.... 한 순간이라도 주인된 마음자리를 잃지 마라. 당장 대들어야 할 텐데...참 어렵네요. 감사합니다.

2023-01-17 12: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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