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0.28 INEB(참여불교세계대회) 5일째, 분과토론, 술락 90세 생신, 금요 즉문즉설
“위암 수술을 받고도 술을 못 끊는 남편,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INEB(참여불교 세계대회) 5일째 날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5시에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에 다 함께 정토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명상원에 도착하자 묘수 법사님을 비롯하여 몇몇 법사님들이 INEB 참가자들에게 수련원의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변했고, 단풍나무는 빨갛게 물이 들었고, 코스모스는 바람에 흔들리고, 곳곳에 국화가 피었습니다.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아침 안개가 걷히자 저 멀리 희양산이 우람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INEB 참가자들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1 수련장, 2 수련장, 3 수련장을 지나 솔숲 해우소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사람들이 누고 간 똥을 거름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Wow! Does it smell a lot?”

“여기는 바람이 잘 통하고, 톱밥을 같이 뿌려놓기 때문에 공기층이 생겨서 숙성이 잘 됩니다. 그래서 냄새가 많이 나지 않습니다.” (웃음)

솔숲을 지나 대웅전에 도착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다들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습니다.

“부탄에서 오신 분들은 이 정도는 별로 힘들지 않죠? 부탄은 여기보다 훨씬 높은 곳이잖아요.” (웃음)

대웅전에 도착하자 저 멀리 희양산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술락 박사님도 대웅전에 도착하여 주변 경치를 둘러보았습니다.

“박사님, 경치 좋죠?”

“It’s very beautiful.”

“한국의 절은 대부분 단청을 화려하게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검소하게 살기 때문에 단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INEB 참가자들은 그룹별로 스님을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경치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다 보니 벌써 분과 토론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8시 30분부터는 5개의 장소로 흩어져서 분과별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젠더 평등성과 사회적 포용, 변화를 위한 교육, 정신 건강과 불교 성직자 의식, 디지털 보살, 불교 기관에서의 어린이 보호, 5개의 주제 중에 각자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3시간 동안 깊이 있게 토론을 한 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모두 대수련장에 모였습니다. 정토회 대구경북지부에서 많은 봉사자들이 와서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모두 감탄을 하며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력당과 자비당에서는 ‘한국전통차’를 배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딱지치기와 달고나 만들기, 한글 쓰기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딱지가 한 번씩 뒤집어질 때마다 INEB 참가자들은 큰 소리로 환호했습니다.


4 수련장에서는 한복 입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기념사진도 찍고, 수련원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3수련장에서는 연등과 염주를 만드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본인이 직접 한 알씩 꿰어서 염주를 만든 다음 자신의 목에 걸었습니다. 한지에 풀을 칠해서 직접 연등을 만든 다음 다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대수련장에서는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차기, 뒷차기, 돌려차기, 크게 외치며 발차기를 하자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곳은 김치 만들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배추에 양념을 버무려서 직접 김장을 해보았습니다. 두부에 김치를 돌돌 말아 한 입을 먹은 다음 다들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특히 비구니 스님들은 김장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배운 후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한국 문화를 체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오후 3시에 다시 선유동 정토 연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3시 30분부터는 오전에 진행된 분과별 토론 결과를 발표하고 각자 배운 점에 대해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INEB 이사장인 하르샤(Harsha) 님이 오늘 토론을 정리하는 마무리 이야기를 한 후 INEB 본대회인 콘퍼런스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본관 계단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오후 6시에는 홍콩 불교신문에서 온 크레이그 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크레이그 기자님은 이번 INEB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있는데요. 먼저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소감을 말한 후 몇 가지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콘퍼런스를 한 후 행동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기자로서 이런 비슷한 콘퍼런스를 많이 참여했는데요. 대부분 INEB 행사보다 덜 집중되고 분산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콘퍼런스가 갖는 공통점은 좋은 말들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가요?”

“행동을 너무 강조하면 연대가 깨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INEB에서 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정토회는 행동하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정토회가 너무 전면에 참여하면 INEB 참가자들에게 부담이 됩니다. INEB에서 정토회의 역할은 참가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정토회는 실천적인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모든 회원들이 멤버가 될 때부터 늘 실천을 하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나 INEB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너무 실천 쪽으로만 몰고 가면 부담을 갖게 되죠. 남방불교 스님들은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 해도 큰 의식 변화를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 비구니 제도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만 해도 굉장한 충격을 받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참여해서 조금씩 변화를 경험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INEB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40분 동안 인터뷰를 한 후 저녁 예불을 하기 위해 다시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부터는 INEB의 창시자인 술락 시바락사 박사님의 90세 생신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그동안 술락 박사님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며 생신을 축하했습니다.

“술락 시바락사 박사님의 90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술락 박사님은 INEB의 창립자이시고, 지금까지도 계속 저희를 지도해 주시는 정말 위대한 지도자이십니다. 초기 창립 멤버들이 대부분 돌아가셨거나, 연세가 많이 드셔서 활동을 못 하시고 있는데, 술락 박사님은 90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활동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저는 술락 박사님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스승님들이 나이가 드시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합니다. 둘째, 순서를 안 지킵니다. 시간도 안 지키고요. 스케줄을 안 지키고 그냥 본인 마음대로 행동을 합니다. 셋째, 나이가 들고 유명해지면 보수적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술락 박사님은 90세가 되셨는데도 우리보다 더 진보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절대 말을 길게 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고 순서를 잘 지키십니다. 오늘 모임에도 여러분들이 늦게 왔지, 술락 박사님은 시간 맞춰서 오셨습니다. 정말 이런 분은 드뭅니다.

술락 박사님은 어떤 수행을 하셨기에 그럴 수 있냐고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정말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지위가 높거나 유명해지거나 나이가 들어도 술락 박사님처럼 행동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INEB 참가자들도 모두 큰 박수로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했습니다. 이어서 생일 노래를 부르면서 케이크가 등장했습니다. 케이크에 불을 끄고 모두가 술락 박사님의 90세 생신을 축하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생신 잔치가 시작될 무렵 스님은 저녁에 생방송 강연이 있어서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유튜브에 38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위암 수술을 받고 간경화증 진단을 받았는데도 술을 끊지 못한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위암 수술을 받고도 술을 못 끊는 남편, 어떡하죠?

“남편이 17년 전에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그 뒤로도 술을 여태껏 마시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는 간경화증 진단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술을 못 끊고 있어요. 남편에게 알코올 병원에 입원을 하자고 했지만 남편은 안 한다고 합니다. 남편이 알코올 병원에 두 번이나 입퇴원을 했었는데 별 효과가 없었어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서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 남편이랑 같이 살자니 제 인생이 지옥이고, 헤어지자니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죽을 용기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질문자가 남편에게 '여보, 술이 건강에 안 좋으니까 그만 드세요' 하면 남편이 그만 먹을 사람이에요, 아무리 얘기해도 안 들을 사람이에요?”

“안 들을 사람이니까 제가 이렇게 질문을 하죠.”

"담배 그만 피우라 하면 끊을 사람이에요, 피울 사람이에요?"

"피우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 고민은 술을 먹는 게 좋으냐 나쁘냐, 담배를 끊는 게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남편은 내가 원하는 걸 말한다고 들어줄 사람이 아니잖아요. 들어줄 사람이 아닌데 계속 들어달라고 말한다면, 말을 안 듣는 사람이 고집이 더 센 겁니까? 말을 안 듣는 줄 알고도 계속 말하는 사람이 고집이 센 겁니까?"

"그렇게 술 담배를 계속하면 틀림없이 병에 걸려서 죽을 거잖아요. 저는 부인의 도리로서 남편이 술 담배를 못하게 해야 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을 그냥 두는 건 부인의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 역할을 질문자가 지금까지 했는데도 남편이 안 듣는 걸 어떻게 해요? 이제 남은 방법은 내 말을 안 들으니까 죽여 버리는 거죠. 옛날에는 말을 안 들으면 종도 때려죽여 버리고, 적군도 죽여 버렸잖아요. 죽이지 못하면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놔둬야지 어떡해요?"

"그냥 그런 모습의 남편을 지켜보고 살아가야 하는 건가요?"

"지켜보기 싫으면 질문자가 죽든지요." (웃음)

"그럴 용기가 없어요."

"용기가 없는 게 아니에요. 죽고 싶지가 않은 거죠. 성질이 날 때는 '에이, 죽어버려야지' 하지만 실제로는 죽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질문자가 죽고 싶지 않은 것이나 남편이 술 담배를 끊고 싶지 않은 것이나 둘 다 똑같은 거예요. 질문자가 죽고 싶지 않는 건 옳은 것이고, 남편이 술 담배를 끊고 싶지 않은 건 틀린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남편에게 '내 말 들어라' 하는데 남편이 내 말을 안 듣는 것이나, 남편이 말을 안 듣는 줄 알면서 질문자가 계속 요구하는 것이나, 둘 다 같은 겁니다. 질문자는 잘하고 남편이 잘못하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두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제 눈에 있는 대들보는 못 본다'

질문자는 지금 자기 고집은 안 보고 남의 고집만 보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요? 그냥 놔두든지, 죽여 버리든지, 내가 죽든지,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세요. 어느 게 제일 나아요? 그냥 놔두는 게 나아요, 죽여 버리는 게 나아요, 내가 죽는 게 나아요?"

"셋 중에 아무것도 나은 게 없는데요."

"길이 그거밖에 없어요. 오늘 이 자리에서 선택을 하세요. 내가 죽든지, 꼴 보기 싫으니까 죽여 버리든지, 나도 못 죽겠고 죽이지도 못하겠으니 그냥 놔두든지,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해요."

"선택할 게 없어요. “

"어느 하나라도 선택해야 하는데, 선택할 게 없다는 것은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어차피 남편은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울 겁니다. 그럴 때 남편 건강도 나빠지고 나도 그런 남편과 싸워서 괴로운 게 낫습니까, 남편만 건강이 나빠지고 나는 괴롭지 않은 게 낫습니까?”

"남편이 술 먹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그냥 놔둬도 제가 너무너무 괴롭다니까요."

“질문자가 혼자 괴로워하는 거죠. 남편이 술 먹고 행패를 피워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괴로워요?”

"지금 남편의 몸이 망가져 있는데 술 먹고 담배를 피우면..."

"내 말도 안 듣는 남편인데, 몸이 좀 망가지면 어때요? 내가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기가 알아서 죽겠다니까 잘 됐잖아요. 내가 남편을 죽이면 내가 감옥을 가야 하는데 지금 남편은 본인이 알아서 죽겠다잖아요. '술 담배 많이 해서 빨리 죽어라' 하면서 그냥 놔두세요. 술도 더 사다 주고, 담배도 더 사다 주면서 '이왕 죽을 거면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먹고 죽어라' 이렇게 얘기도 하세요.

‘여보, 술 더 드세요.’

‘왜?’

‘그래야 빨리 죽죠’

이렇게 말하면서 자꾸 옆에서 시중을 좀 드세요.”

"스님 법문을 찾아보니까 ‘술은 남편한테 보약이니 많이 드세요'라고 기도하라고 하시던데, 저는 그 말씀에 동의를 못해요."

“동의를 못하면 질문자만 괴롭죠. 동의를 하면 안 괴롭고, 동의를 못하면 괴롭고, 차이는 그거밖에 없어요. 본인이 안 괴로우려면 동의를 하고, 괴로우려면 동의하지 마세요. 동의도 안 할 거면서 스님한테 묻긴 왜 물어요?” (웃음)

"무슨 또 다른 답변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스님한테 질문하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스님 말에 동의도 안 할 사람이 무엇 때문에 질문을 해요? 내가 이렇게 고집이 세다는 것을 자랑하러 나왔어요?"

"세 가지 모두 현답이 아니에요. 스님!"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사는 것이지 정답은 없어요. 내가 죽어버리면 남편이 술을 먹든지 말든지 내가 모르게 되는 것이고, 남편이 죽어버리면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볼 일이 없어지는 것이고, 둘 다 못하겠다면 차악과 최악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래요? 어차피 남편은 술을 먹을 사람인데 '술 많이 드세요' 하면 남편만 술 먹고 나는 안 괴로울 수 있잖아요. '술을 절대 먹지 마라' 하면 그래도 남편은 술을 먹고 나는 괴로워요. 둘 다 괴로운 게 낫겠어요, 한 명만 괴로운 게 낫겠어요?”

"그냥 제가 죽는 게 낫겠어요."

"질문자가 죽으면 남편의 병이 나아요?"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혼자서 잘 살겠죠."

"나 죽고 남편 혼자 잘 살게 놔두는 게 나아요, 나도 살고 남편도 혼자 잘 살게 놔두는 게 나아요?"

"제가 그 모습을 보느니 그냥 죽는 게 편할 것 같아요."

"질문자의 고집을 보니 남편의 고집은 고집도 아니네요. '내 성질대로 안 되느니 까짓것 죽어버리지'라고 할 정도로 아주 성질이 강하네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하는 꼬라지를 보느니 차라리 내가 죽어버리지’라고 한다고 해서 푸틴이 지금 전쟁을 그만두나요?”

“그만두지 않죠.”

"그러면 푸틴이 전쟁하는 게 피해가 커요, 질문자의 남편이 술을 먹은 게 피해가 커요?"

"저한테는 남편이 술을 먹는 게 피해가 더 커요."

"전 세계를 두고 봤을 때 어느 게 피해가 더 커요?"

“푸틴이 전쟁하는 게 피해가 더 크죠.”

"그런데 왜 푸틴은 놔둬요? 죽으려면 푸틴 때문에 죽어야지, 왜 남편 때문에 죽어요? 푸틴도 보고 살면서 왜 남편은 보고 못 살아요? 폭탄을 터뜨려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도 보고 살면서 술 좀 먹는 사람을 못 봐주나요?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질문자는 자기 성질대로 안 되면 '까짓것, 죽어버린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주 황소고집이에요. 질문자와 같은 여자하고 살면 술을 먹을 수밖에 없겠어요. 저렇게 답답한 사람과 한집에서 어떻게 살아요? 남편도 속이 답답하니까 술을 먹는 겁니다. 그렇다고 술 먹고 싸울 수도 없고 해서 술을 더 먹는 거예요. 남편도 질문자를 보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심정인 겁니다.”

“그건 제가 남편한테 물어볼게요. 나 죽이고 싶어서 술 담배를 하느냐고.”

"질문자가 먼저 죽으면 이제 남편을 말리는 사람도 없으니 술 담배를 더 잘할 수 있게 되죠. 그러니 질문자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되는 겁니다. 질문자가 죽어서 남편이 술 담배를 딱 끊고 건강하게 살게 된다면 죽을 만한 가치가 있어요. 내가 지금 푸틴을 향해 '당장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해라. 철수 안 하면 내가 죽는 꼬라지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서 내가 분신을 하든지 자살을 하면 푸틴이 전쟁 멈출까요? 푸틴은 전쟁을 계속할 겁니다. 그러면 나의 죽음은 개죽음이 되는 거예요. 만약 내가 죽어서 푸틴이 전쟁을 멈춘다면 숭고한 희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효과도 안 나는데 왜 바보 같은 짓을 해요?"

"그만큼 제가 사는 게 지옥입니다."

"저는 질문자가 남편 때문에 지옥에 사는 게 아니라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지옥에 산다고 생각해요. 매일 지옥 속에서 살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사세요."

"알았습니다."

“저는 질문자의 남편이 술을 덜 먹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스님이 남을 고칠 능력이 있으면 자기 남편부터 고쳐야 되겠어요, 푸틴부터 고쳐야 되겠어요?”

“푸틴이요.”

"그래요. 푸틴도 못 고치는데 질문자의 남편을 어떻게 고치겠어요? 스님한테 남편을 고쳐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질문자가 고칠 수 있는 것은 남편이 아니고 질문자 자신밖에 없어요.

길은 딱 두 가지입니다. 남편이 술을 못 먹게 하는 것은 질문자가 이제까지 노력해 봐도 안 됐어요. 안 된다고 인정하고 앞으로는 그냥 술을 먹게 놔둘 것인가, 고칠 수 있다고 착각하고 계속 노력을 할 것인가, 두 가지 중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계속하는 게 좋겠어요, 안 고쳐지는 줄 알면 잔소리를 그만하는 게 좋겠어요?"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좀 말귀를 알아듣네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실컷 먹어 보고 죽으십시오' 이렇게 남편을 좀 응원해 주면 어떨까요? 그래야 질문자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이 이렇게 간단한데 왜 지옥에서 계속 살려고 해요? 지옥이 그렇게 좋으면 계속 그렇게 사세요. 자기가 좋아서 저렇게 사는 걸 어떡하겠어요?

제가 어릴 때는 전부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 일을 봤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에는 구더기가 바글바글 하잖아요. 구더기가 위로 기어 올라오다 떨어지는 일을 계속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 마음에 너무 불쌍해 보였어요. 그래서 구더기들을 채로 건져서 물에 깨끗이 씻어서 하얀 사기그릇에 담아놨어요. 그랬더니 구더기들이 다 기어 나와서 다시 변소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볼 때는 변소가 똥통이지만 구더기가 볼 때는 변소가 자기 집이었던 겁니다.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사는 꼴이 우리가 볼 땐 지옥이라서 아무리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알려줘도 정작 본인은 나오기 싫다고 하는 겁니다. 계속 괴로워하면서 사세요. 본인이 그렇게 살겠다는데 어떡합니까.”

"네, 잘 알았습니다."

“어떡하겠어요? 이제 잔소리를 그만할래요, 계속할래요?”

"노력을 좀 해보겠습니다."

"잔소리를 그만하기 위해 노력할 게 뭐가 있어요? 그게 노력할 일이에요, 딱 그만두면 되는 일이에요?"

"딱 그만두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남편도 마찬가지예요. 술 마시는 게 딱 그만둬지지가 않아서 계속 그러는 겁니다. 질문자가 남편보다 더 심하다는 걸 얘기해 주려는데 본인은 인정을 안 하잖아요. 질문자가 그만둬지지 않는다면 남편도 그만둬지지 않는 것을 질문자가 이해를 해야 돼요. ‘남편도 끊고 싶지만 안 끊어지는구나’ 이렇게 이해가 되어야 해요."

“이제 이해가 조금 되려고 하는데 아직 용납이 안 되네요.”

"그런 남편 누가 만났어요? 누가 강제로 결혼시켰어요, 질문자가 좋아서 만났어요?"

"제가 좋아서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자기 눈을 찌른 거죠. 그걸 누구한테 한탄하려고 그래요? 남편에게는 술을 탁 끊으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잔소리도 하나 탁 못 끊잖아요. 남편이 술 담배를 탁 끊었으면 좋겠다면 오늘부터 남편 얘기하지 말고 나부터 잔소리를 탁 끊어버리세요. 노력해 보겠다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고요. 지옥에서 탁 벗어나는 게 나아요, 한참 노력하고 생각해보고 벗어나는 게 나아요?"

"탁 벗어나는 게 나아요."

"탁 벗어나려면 지금 탁 끊어야 합니다."

“네, 알았습니다. 탁 끊겠습니다.”

“남편이 술을 먹는 여자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행사하기 싫다 이겁니까? 권리 행사 자체가 안 되고 있어요. 남편이 너무 꼴 보기 싫고 밉다면서요. 남편이 술을 많이 먹고 담배를 많이 피워야 빨리 죽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는 남자랑 한번 살아볼 수도 있고 좋잖아요. 그러니 빨리빨리 남편에게 술을 먹여요. 오늘부터 더 독한 걸 먹이겠다고 작전을 바꿔 봐요. 술을 매일 사서 갖다 주세요. 담배도 매일 사주면서 '왜 오늘은 한 갑밖에 안 피우냐? 세 갑을 피워야지' 하고 말하는 겁니다. 남편이 '당신 왜 이렇게 바뀌었어?' 하면 웃으면서 '당신이 얼른 죽어야 내가 시집 한 번 더 가죠' 하고 약을 좀 올려요. 그렇게 인생을 좀 재미있게 살면 좋을 것 같아요. 술 먹고 담배 피우는 남자 하고도 농담해가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남편의 인생이 불쌍해요.”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요. 술 먹고 담배 피우며 인생을 즐기고 있는데요. 질문자가 잔소리를 자기가 못 끊어서 그렇죠. 자기 고집 때문에 그런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유튜브 실시간 댓글창에는 오랜만에 즉문즉설에 걸맞는 재미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며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17세 아들이 있는데 사춘기가 되면서 급격히 인간관계를 어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아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요?
  • 유럽에 유학을 다녀왔지만 제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즉문즉설을 마치고 다시 정토 연수원으로 돌아오자 술락 박사님의 생신 잔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술락 박사님으로부터 항상 깊은 영감을 얻고 활동을 해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축하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술락 박사님과 INEB에 헌정하는 개인의 약속을 종이에 적어서 나무에 걸었습니다. 희망의 나무에 불빛이 켜지고, 태국에서 온 소년이 아름다운 피리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전통 공연을 함께 보았습니다. ‘태평무’라는 한국 무용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자 모두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판소리 심청가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추임새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자 모두가 추임새를 따라 하며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공연 덕분에 아주 즐겁게 술락 박사님의 생신 잔치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INEB 5일째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정토연수원을 출발하여 DMZ로 향합니다. 오전에는 DMZ를 방문하여 남북 분단의 아픔을 느끼고 평화 명상을 한 후, 오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INEB 행사를 마무리하는 공개 심포지엄을 하고, 저녁에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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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숙

감사합니다

2022-11-11 15:46:10

임효신

감사합니다.

2022-11-06 07:27:26

이윤정

구더기 이야기를 듣더니 질문자가 좀 깨달은것 같아요.
구더기를 깨끗한 물로 씻어서 사기그릇에 건져놓으면...다시 똥으로 기어들어간다는 말씀. 마치 질문자와 어리석은 이들의 현실을 이해하기 쉽고 명료하고 잊어버릴수 없는 이야기..구더기 이야기는 어리석은 자를 깨우치는 우문현답 이십니다.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2022-11-05 21: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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