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0.29 INEB(참여불교세계대회) 6일째, DMZ 방문, 공개 심포지엄, 영어 즉문즉설
“스님이 통찰력을 갖기까지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INEB(참여불교세계대회) 6일째 날입니다. 오늘 프로그램을 끝으로 한국 정토회 주관으로 진행된 2022년 INEB 행사를 마치게 됩니다.

INEB 참가자들은 문경 선유동 정토연수원에서 지난 4박 5일 동안 머물면서 모든 프로그램을 원만하게 잘 마쳤습니다. 마지막 날 프로그램은 DMZ로 이동하여 평화선언문을 함께 낭독한 후 서울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공개 심포지엄을 하는 것입니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5시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아침 해가 떴습니다.

DMZ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며

창밖으로 철책선이 보이고 휴전선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임진각에 도착해 모두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임진각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 전쟁과 그 이후의 민족 대립으로 인한 슬픔이 새겨져 있는 곳입니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 한반도의 북쪽 끝인 신의주까지 달리던 기차가 멈추어 있었고, 철교는 전쟁 때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 있어 전쟁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다리를 통해 한국전쟁 때 국군포로 1만 2천여 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을 했습니다.


스님은 INEB 참가자들과 망배단으로 가서 잠깐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500만 명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피난을 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이 1000만 명이 넘습니다. 명절이 되면 북한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북쪽을 바라보고 절을 합니다. 북쪽 고향을 향해 절을 한다고 해서 ‘망배단’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정토회에서는 매년 1월 1일을 기해서 3일 동안 평화를 기원하며 1만 배 절을 합니다.”

“It's such a sad reality.”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INEB 참가자들은 철조망 앞으로 다가가 북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각자 리본에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적어서 철조망에 걸어 두었습니다. 다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INEB 참가자 모두가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관람석에 자리하자 스님이 왜 우리가 이곳에 왔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산과 물과 하늘과 바람, 모두가 구분 없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지만, 어느 날 이렇게 서로 적이 되어 왕래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치르면서 서로를 많이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속에는 증오심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 증오심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고 하는데도 오히려 반기는 마음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나 다른 먼 나라를 도우면서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증오심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무기가 국경 양쪽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 바깥에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라는 강대국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다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전쟁으로 번져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남한에는 핵발전소도 아주 많습니다. 만약 이런 핵발전소에 북한이 쏜 미사일이 터지거나, 남한이 핵발전소에서 미사일을 만들어서 북한을 향해 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진정하고 생각을 해보면, 전쟁은 엄청난 피해를 줄 뿐 양쪽 모두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풀자고 하면, 많은 국민들이 ‘왜 약자가 된 것처럼 비굴하게 구느냐’ 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냅니다.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이유는 우리가 비굴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평화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갈등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념이나 믿음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화를 내기에 앞서 마음을 조금만 가라앉히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명상만 한다고 평화가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은 평화의 출발입니다. 이곳 DMZ에서 여러분과 함께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의 평화를 기원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평화선언문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DMZ 평화선언문

On this fine fall day, as we stand here today surrounded by nature’s beauty, let us bear witness to a horrific history of suffering. The Korean War began in 1950 and lasted for three years. It pitted fathers against sons, brothers against brothers, mothers against daughters, sisters against sisters. At the end of three years, 3 million people were killed, properties were destroyed and the land was devastated. And it remains divided to this day.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날,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서 있는 오늘, 참혹한 고통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발발해 3년간 지속됐습니다. 전쟁은 아버지와 아들이 갈라서고 형제와 형제가 갈라서고 어머니와 딸들이, 자매와 자매가 갈라서게 했습니다. 3년간 300만 명이 죽고 재산이 파괴되고 땅이 황폐해졌습니다. 그리고 분단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This happened because different people had different ideas of what Korea should be and how people should live. Those differences became hatred and disdain that launched bombs, bullets, and knives against innocent people and caused untold suffering that continue to resonate today beneath our very feet on this symbolic ground.

한국이란 나라가 어떠해야 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차이는 증오와 경멸이 되어 무고한 사람들에게 폭탄, 총알, 칼을 쏘았고 오늘날에도 이 상징적인 땅에서 우리의 발아래에서 계속 울려 퍼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일으켰습니다.

Unfortunately, such suffering is not unique. Similar suffering is occurring throughout the world today and have occurred throughout the history of humankind. Let us recognize that the three poisons of greed, anger, and ignorance continue to create an institutionalized structure of violence that ever lead to injustice and suffering.

불행히도 그러한 고통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고통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인류 역사에 걸쳐 발생해왔습니다. 탐욕, 분노, 무지라는 세 가지 독이 불의와 고통을 초래하는 제도화된 폭력의 구조를 계속 만들고 있음을 인식합시다.

We are all gathered here today as representatives of engaged Buddhism because we recognize that Buddhism deals with everyday suffering of everyday people. Engaged also means to connect with one another intentionally and humanely in a camaraderie of honesty and truth to lessen the suffering by dismantling structural violence wherever we encounter it.

불교가 일상생활의 고통을 다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오늘 이곳에 참여불교의 대표자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참여”라는 말은 또한 의도적으로 그리고 인도적으로 정직하고 진실된 동지애로 연결됨을 의미합니다. 이는 구조적 폭력을 해체함으로써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함입니다.

On this day, surrounded by admirable friends and colleagues, we bear witness to one another and declare that we will always remain engaged to help the vulnerable, embrace the different, and protect the marginalized. Therefore, we declare we will:

오늘, 우리는 존경할 만한 친구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서로에 대해 증언합니다. 약자를 돕고 생각이 다른 이를 포용하며 소외된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노력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을 선언합니다.

Bear witness to the hungry and feed them.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겠습니다.

Bear witness to the sick and treat them.
병든 이들을 치료하겠습니다.

Bear witness to the children without access to schooling and educate them.
배우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겠습니다.

Bear witness to the discrimination and protect human rights.
차별을 철폐하고 인권을 보호하겠습니다.

Bear witness to the refugees and provide shelters for them.
고향 떠난 난민을 보호하겠습니다.

Bear witness to the violence and resolve peacefully.
어떤 문제든 폭력을 쓰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겠습니다.

May all living beings be happy and peaceful.
생명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평화와 안락이 깃들기를!

Sādhu! Sādhu! Sādhu!
사두! 사두! 사두!

마지막으로 다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며 명상을 하였습니다. 종이 울리고 간절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평화 명상을 마친 후 전 세계 19개국에서 온 참가자들이 각자 자기 나라의 언어로 “No War, Yes Peace” (전쟁은 가고, 평화는 오라) 하고 외쳤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도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다시 버스에 탄 스님은 왜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이 되었는지 설명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버스가 도라산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도라산 전망대는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는 남한의 최북단 전망대입니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허락을 받은 사람만 출입이 가능한 곳입니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설치된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DMZ와 개성공단, 개성시, 북한 선전마을, 송악산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INEB 참가자들은 한국이 아직 전쟁을 끝내지 않은 분단국가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분단의 현장을 보고 난 후 버스는 DMZ를 벗어났고, 서울 시내로 진입했습니다. 고층 건물들 사이로 도로마다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전쟁으로 인해 한 줌의 재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버스 안 즉문즉설

서울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하는 길은 많이 막혔습니다. 주말이어서 차를 타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INEB 참가자들과 버스 안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척 궁금해했습니다.

버스 안에서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아침부터 슬픈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침부터 너무 슬픈 현장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북한은 지금 식량 부족으로 인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한 시간만 내려오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도시가 서울입니다.”

“It's sad news, but it's news we really need to know.”
(슬픈 소식이었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을 보면 대개 인종이 다르거나, 문화가 다르거나, 종교가 다릅니다. 또 이런 이유를 대면서 분쟁이 생기는 걸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부부 싸움과 같은 남북의 분단 상황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양쪽이 같은 민족이고, 문화도 같고, 언어도 같은 데도 불구하고 70년 동안이나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종, 종교,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 분쟁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인데도 권력적 경쟁이 불씨가 되어 전쟁을 치렀고, 아직도 이 싸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강대국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분단이 되면서 분쟁이 발생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내부의 증오심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주변국들이 분쟁을 우려를 하고, 우리 내부의 증오심은 과거보다 더 커진 상태입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누가 더 정통성을 가진 정부인가를 두고 체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은 북한을 가리켜 공산괴뢰정부라고 비난하고, 북한은 남한을 가리켜 미국의 허수아비라고 비난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7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정치적인 정통성 경쟁을 하고 있는 거예요.”

“So I think education is very important.”
(그래서 교육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반도의 분쟁은 인종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거나, 종교 갈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속의 증오심 때문에 지속되는 갈등입니다.

정토회에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크게 3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평화재단을 설립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연구, 교육, 대중운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둘째, 구호단체인 JTS를 설립해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셋째, 좋은벗들(Good friends)이라는 단체를 설립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과 난민 문제를 돕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넘어온 난민을 지원하고, 그 사람들이 남한에 왔을 때 정착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마치 부부싸움과 같다는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과 정토회의 활동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12시가 넘어서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점심 식사를 한 후 공개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맡은 패널, 축사자들과 2층 카페에 모여 사전 미팅을 했습니다.


INEB 공개 심포지엄

오후 2시부터는 “Buddhism in a Divided World”을 주제로 INEB 공개 심포지엄 생중계를 시작했습니다. 세계의 위기 상황을 담은 영상을 시청한 후 스님이 무대에 올라 생중계 시청자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희는 지난 5일 동안 문경 연수원에서 평화, 지구환경, 팬데믹, 세 가지 주제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비록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대화를 통해 우선 위기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고 앞으로 함께 해결해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5일 동안 저희들이 논의한 내용을 한국에 있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세계는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루하루 살기에 바빠서 이런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위기가 오지 않는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위기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고, 여기에는 교육이 아주 중요합니다.

평화, 지구환경, 팬데믹의 근본적인 원인

나아가 왜 이런 위기가 찾아왔는지에 대한 원인을 밝혀야 합니다. 원인을 규명하다 보면 결국 우리들의 욕망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소비주의 가치관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담배, 알코올, 마약 중독보다도 중독성이 훨씬 심각합니다. 담배, 알코올, 마약 중독이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을 해친다면, 소비주의 가치관에 중독된 것은 사람과 자연, 지구 전체의 건강을 해칩니다.

소비주의 중독은 기후 위기를 초래합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기후 위기로 이어지고, 이는 식량 부족, 전염병 확산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여전히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 문제의식은 개인의 행복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욕망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래서 욕망의 충족을 통하지 않고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 앞에 닥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절제를 가르쳐야 할 종교가 오히려 욕망을 부추기고 복을 비는 것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종교부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개개인은 소비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가 참여불교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각성만으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생겨난 문제라면 그 상처만 치료하면 되지만,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고통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사회적 실천 요소가 많습니다. 이것을 요즘 실천적 불교, 즉 ‘인게이지드 부디즘(engaged Buddhism)’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가 인게이지드 부디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실천이 없는 불교는 오늘날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더 이상 특정 종교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함께 나서야 합니다. 종교를 넘어서서 비종교인이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함께 나서야 합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지난 일주일간의 INEB 대회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이번 대회 전 기간 동안 다뤄진 내용을 갈무리하는 2022 INEB 대회 선언문을 키쇼어 투크랄(Kishore Thukral) INEB 집행위원회 위원이 낭독했습니다. 선언문에는 평화, 기후위기, 펜데믹, 성평등, 비구니 수계, 교육, 아동 보호, 디지털 기술, 정신 건강, 각 부분에 대한 행동 계획이 담겼습니다.

이어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대신하여 김대현 종무실장님이 축사를 대독 했습니다. 스님과 20년간 함께 종교인모임을 함께 해온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 목사님도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하르샤 나바라트네 INEB 이사장이 ‘분열된 세계에서 영성과 믿음의 역할’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패널들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한국기독교 민주주의재단 이사장인 안재웅 박사, 스리랑카 비구니 제도 복원에 앞장서고 있는 카우파하나 피야라타나 테로(Kaupahana Piyaratana Thero) 스님, 주한 핀란드 대사 페카 메쪼(Pekka Metso), 라오스 여성운동가 슈가-멩 응(Shui-Meng Ng), 그리고 태국 트랜스젠더연합(Thai TGA)의 공동 창립자인 후아 부냐피솜파른(Hua Boonyapisomparn) 님은 평화, 지구환경, 펜데믹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참여불교와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패널들은 당위적인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카우파하나 스님은 90년대 말 스리랑카 내전 당시 정부와 저항세력 간 평화를 구축했던 경험을 나누며 분열된 세계에서 진정한 종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 아닙니다. 종교의 역할은 사람들이 화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종교인으로서 우리는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슈이 멩 웅님은 라오스의 사회 활동가 이자 남편인 솜바스 솜폰(Sombath Somphone)의 실종된 후 느꼈던 고통과 성찰을 들려주었습니다.

“제 남편이 사라진 이후 10년 동안 저는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제 남편이 사라지기 전에 저는 제가 합리적이고, 굉장히 활발히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공동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기 전에 나의 내면을 살펴봐야 한다. 나를 성찰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겠느냐.’

저는 고통 속에서 남편의 말을 떠올리고 저 자신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고통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깊이 살펴봤습니다. 세상을 둘러보니 그것은 저만의 괴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수십만 명의 실종자들이 있었습니다. 활동가로서 우리들은 내면을 살펴보기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가기 일쑤입니다. 저는 괴로운 경험을 통해서 성찰 없는 사회활동은 굉장히 얄팍하고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면을 성찰하는 것이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패널들의 발표가 끝나고 짧게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술락 시바락사 박사님의 폐회사를 끝으로 2022 INEB 대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참가자 전체가 기념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며 다음 INEB 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저녁 식사를 한 후 7시 30분부터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강연이 정토회 국제지부 주관으로 정토사회문화회관 6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습니다. INEB 참가자들 중 일부도 즉문즉설을 같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다양한 홍보 매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아왔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청년 한 명은 스님처럼 통찰력을 갖고 싶은데 통찰력을 기르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통찰력을 갖기까지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나요?

“스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스님께서 오늘의 스님이 되시기까지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스님의 지혜와 통찰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게 전부예요. 궁금한 거 있으면 더 물어보세요.” (웃음)

“스님처럼 되고자 하면 그게 유일한 길인가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저한테는 그게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 했고, 가정 형편상 겨우 중학교를 갔기 때문에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살아야 했어요. 고등학교에 가면서 겨우 공부를 조금 할 만했는데 그때 절에 들어가게 됐죠.

한국은 학벌 사회인데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뒀으니까 내세울 만한 학벌이 없었어요. 또, 절에 있는 동안에는 승려들의 행동을 보고 실망감을 느껴서 절 밖으로 나왔습니다. 승려로서 가질 수 있는 기득권이 있었는데, 절을 떠났으니 그런 기득권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감옥에도 다녀오고, 고문도 당했습니다. 절을 떠났으니까 승려 사회에서는 배제된 것과 다름없었어요.

이렇게 차별도 받아보고, 왕따도 당해보고,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겪어봤습니다. 그런 위기 속에서도 항상 어떻게 자기만의 긍정성을 가질 것인지가 중요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저한테는 좋은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내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다. 전생에 지은 복이 많아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일을 했다. 어릴 때부터 일을 한 것이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내 힘으로 살았기 때문에 일찍 자립할 수 있었고,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살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이렇게 고생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이 아주 많습니다. 제가 인도네시아에 지진이 났을 때 구호 활동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저녁에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화 몇 마디만 하면 그 사람들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었어요.

‘농토를 몇 헥타르나 경작해요?’

‘1헥타르 정도 됩니다.’

‘아이들은 몇 명이나 있어요?’

‘네 명 있어요.’

‘큰 애는 몇 살이에요? 이제 중학교 정도 갔겠네요?’

‘네.’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중학교에 못 보냈겠네요?’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금방 알아냅니까?’

이때쯤 되면 통역하는 사람도 놀랍니다. 제가 몇 마디만 듣고도 그 사람의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형편이 제가 어릴 때 살던 우리 동네와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정보를 대학을 나온다고 파악할 수가 있겠어요? 명상을 오래 한다고 알 수가 있겠어요? 이런 것은 다 어릴 때 고생을 해 본 경험에서 나오는 거예요. 제 얘기를 통역해 주던 사람은 오히려 자기는 인도네시아 사람인데도 잘 모르는 걸 스님은 금방 알아낸다고 말합니다. (웃음)

마을 집을 방문해서 살림살이를 살펴보면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금방 알아낼 수 있어요. 집을 쭉 둘러본 다음 ‘부엌 바닥을 이렇게 높이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인이 깜짝 놀랍니다. 남편과 20년 넘게 살았는데도 그런 걸 신경 안 써주는데, 스님은 한 번 보자마자 자기의 어려움을 알아주니까 놀라는 거예요. 제가 그걸 알 수 있는 건 어릴 때 자라면서 작업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봤기 때문이에요. 이런 걸 모르는 사람들은 마치 스님이 뭐든지 다 알고 있는 신통력을 가진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는 제가 어렵게 자란 경험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건 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조언을 할 때 고생을 많이 하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제 생각에 저는 현재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제가 많은 걸 배우기 위해서는 일부러 고생 거리를 만들어야 할까요?” (모두 웃음)

“한국 속담에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 한다’ 이런 말이 있어요. 고생을 하면 그만큼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생은 삶을 배우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그렇다고 일부러 고생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걸 피하려고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공부 거리이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불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꼭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지 않아도 된다. 꼭 부처님처럼 밥을 얻어먹고, 옷을 주워 입고, 잠을 나무 밑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붓다를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현재 먹고, 입고, 자는 환경에 대해 불평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스승인 부처님은 밥을 얻어먹고, 옷을 주워 입고, 잠을 나무 밑에서 잤는데, 우리가 먹는 음식은 부처님이 드셨던 음식보다 낫고, 우리가 입는 옷은 시체를 덮었던 분소의보다는 낫고, 우리가 자는 곳은 나무 밑보다는 낫습니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겠어요? 그러니 불자라면 부처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 불평을 한다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가난한 나라에 구호활동을 하러 많이 가는데, 먼 거리를 걷고 나면 트럭 뒤에 태워만 줘도 무척 고맙습니다. 그러니 트럭 뒤에 타고 가는 게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러다가 승용차를 타면 아무리 낡은 승용차라도 트럭보다 훨씬 낫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게 힘들다는 사람도 있는데, 비행기를 타면 아주 편합니다. 때가 되면 밥도 주고, 화장실도 있잖아요. 공항에서 자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비행기 값을 아끼려고 3일을 공항에서 지낸 적도 있어요. 공항에서 자면 화장실도 있죠, 샤워장도 있죠, 여름에는 에어컨도 틀어줘요. 게다가 공항에서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무 곳에서나 자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이런 관점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니 세상 일을 하는 게 힘들지 않습니다. 욕심을 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겁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는 건 지금 욕심을 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읽고 외운다고 해서 붓다의 제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삶을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그 가르침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걸식을 했다는 건 ‘먹는 것으로 불평하지 말라’ 하는 뜻입니다. 시체를 쌌던 분소의를 옷으로 입고 지냈다는 건 ‘입는 옷으로 불평하지 말라’ 하는 뜻입니다. 나무 밑에서 지냈다는 건 ‘자는 집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 하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혼자 사셨어요. 여러분은 가족과 함께 살잖아요. 그런데 무슨 불평이 있어요? 승려가 되면 직업도 버려야 하는데, 여러분은 수행자로 살면서도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좋은 조건이에요?

만약 지금 느끼는 행복이 무엇인가 갖춰졌기 때문에 느끼는 행복이라면, 세상 모든 것은 무상(無常) 하기 때문에 그 갖춤이 해체되면 괴로움으로 떨어집니다. 만약 마음에 맞는 이성 친구가 있어서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것이 곧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그 이성 친구와 헤어지면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이 돼요.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좋아야 해요. 이성 친구와 만날 때는 만나서 기쁨이 되고, 헤어질 때는 그동안 만나서 즐거웠다고 인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걸 배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이러해서 행복하다’ 하는 조건부 행복은 반드시 그 조건 때문에 불행하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여성분이 상담을 하러 왔는데, 남편과는 사이가 안 좋지만 아이가 하나 있어서 아이 때문에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어요. 자기한테는 아이가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그분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삶에 있어서는 그 아이가 핵폭탄입니다’

선(禪)은 이렇게 한 마디로 말했을 때 알아듣는 거예요. 그 원리를 길게 설명하면 그게 곧 수트라(sutra, 경전)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손을 들고 질문한 사람들과 대화를 다 마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스님이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참가한 외국인들이 스님 앞으로 달려와 인사를 건네고 기념사진을 찍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러시아, 네팔, 덴마크,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참석했습니다.

“제가 너무 심하게 말하지 않았나요?”

“정말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국제지부, 청년지부 봉사자들과 함께 ‘PEACE!(평화)’를 외치며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수고했어요. 고맙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INEB 이사회가 정토사회문화회관 9층 중강당에서 열리고, INEB 참가자들의 대부분이 비행기 시간에 맞춰 인천공항으로 이동해 각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갑니다. 스님은 INEB 참가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저녁에는 일요명상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7

0/200

보각

고생을 사서한다는 말씀이 와닿았고, 이성 친구 때문에 좋으면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만나서 좋고, 헤어지면 다른 사람 만날 수 있어서 좋고, 그렇구나 싶습니다.

2022-11-17 15:55:09

김영주

감사합니다

큰 깨우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2-11-16 00:49:49

이임숙

김사합니다

2022-11-14 17:56:39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