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9.16 필리핀 민다나오 6일째, JTS 워크숍, 금요 즉문즉설
“수치심이 자주 올라와 괴로워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여기는 필리핀 민다나오 JTS센터입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4시 30분에 JTS센터 기숙사에서 새벽 예불과 기도를 하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민다나오 방문 일정이 거의 끝나갑니다. 오늘은 지난 5일간의 민다나오 방문 일정에 대해 소감 나누기를 한 후 지난 20년 동안의 필리핀JTS 사업을 평가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다 함께 JTS 센터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JTS센터는 약 1만 5천 평의 부지에 넓은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력이 없어서 농사를 알뜰하게 짓고 있지는 못하지만 실험적으로나마 조금씩 작물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바나나, 파인애플, 커피, 고추, 상추, 토란... 많이 심었네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시들시들한 것들밖에 안 보였는데, 잘 키우고 있네요.”

“필리핀정토회에서 거사님들이 오셔서 거름도 주고 농장을 잘 가꿔주고 있습니다. 잡초를 많이 뽑아줘야 하는데 아직 여력이 없어요.”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JTS센터에서 어제 하룻밤을 머문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잘 주무셨어요?”

“네, 아주 잘 잤습니다.”

“은퇴하시면 JTS센터로 오셔서 봉사를 많이 해주세요.”

“그럼요. 밥만 주면 언제든지 봉사할 마음이 있습니다.”

“의식주는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JTS에서 먹이고 입히고 재워줄 수 있으니까 가지고 계신 재능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에 함께 씁시다.” (웃음)

같이 기념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누다가 손님들을 배웅했습니다. 민다나오 방문 기간 동안 정성스레 공양을 준비해준 정토회원들과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9시 30분부터 지난 6일간의 방문 일정과 2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평가 회의 겸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한 명씩 돌아가며 필리핀JTS 활동의 계기와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초창기부터 스님 뒤꽁무니 졸졸 따라서 민다나오를 왔다 갔다 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민다나오를 다녀가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제 인생도 조금씩 변했습니다. 민다나오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초창기에는 학교인가 싶을 정도로 어설펐는데 이번에 돌아보면서 굉장히 관리가 잘 되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바쁘고 정신없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싫은 마음이 들었지만 막상 시작하고 함께 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필리핀뿐만 아니라 인도, 로힝야를 지원한 영상을 보면서 JTS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감동이었어요.”

“민다나오에 오면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지만 한국에 돌아가시면 또 오고 싶을 거예요. 몸은 힘들지만 많이 웃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양 담당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잠이 안 왔는데 막상 받아들이고 나니 연구하면서 재밌게 했습니다. 또 혼자 하면 힘들지만 많은 보살님들과 함께 하면서 즐거웠습니다. 세상에 못할 일은 없구나 느꼈어요.”

“행사 준비를 앞두고 잠을 줄이고 숨을 못 쉴 정도로 바빴어요. 몸은 좀 피곤했지만 20년을 정리하는 시간이 참 감사하고 소중했습니다. 초기에 9시간, 10시간씩 걸어 다니면서 학교를 지었던 역사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학교가 생기고 도로가 생기고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니 기뻤어요,”

“저는 성격이 급해요. 시간을 안 지키면 소화가 잘 안 돼요. 원주민들과 일을 해보면 나온다 하고 안 나오고, 차도 안 오고, 배는 오다가 가버리지... 수행이 절로 됐습니다.”

“학교를 지었을 뿐인데 민다나오 평화에 기여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한 번은 저희가 지원하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여 회의를 하는데 종족별, 종교별로 다 다른 옷을 입고 서로 같이 앉지도 않았어요. 그런 사람들이 학교를 계기로 소통을 시작했어요. 또 학교가 생기니 마을에 사람이 늘고, 사람이 느니까 정치인들도 관심을 가지고 원주민 마을에 지원이 시작됐어요. 알게 모르게 마을에 일어난 변화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소감을 이야기하다 보니 지난 6일뿐만 아니라 20년의 감동이 다시 한번 물결처럼 번졌습니다. 한 분은 감동적인 변화도 있지만, 여전히 주민들이 자립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하는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이에 대한 답변과 더불어 종합적으로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다들 수고들 하셨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강행군을 했는데도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함께한 점에 대해 먼저 감사드리고요. 필리핀JTS 20주년 기념행사도 100% 참가는 못 했지만 그래도 교통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필리핀정토회 회원들이 식사 준비를 정성껏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발심’이라고 합니다. 발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개인의 욕구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되겠다’ 하는 욕구인데, 나쁜 의미는 아니고 그냥 사적인 이익 또는 사심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둘째, '원(願)'이라고 표현하는 공심입니다. 만약 본인이 살 집을 지으라고 하면 굉장히 마음을 내서 짓겠죠. 본인이 살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해 준다고 하면 죽기 살기로 지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일어나는 마음은 사심이지 공심은 아니에요.

JTS의 목표는 사람들의 공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JTS는 민다나오에 많은 학교를 짓고 있는데, 학교는 일종의 공적인 영역입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공심을 불러일으키는 제일 좋은 소재가 학교입니다. 상수도를 마련하는 것도 일종의 공심이지만 그것보다는 학교를 짓는 것이 더욱더 공심에 들어갑니다. 수돗물은 본인이 쓰는 것이지만 학교는 자신의 자녀가 사용하는 공간이지 본인이 사용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인도의 불가촉천민마을에서도 구호활동을 해보면 이 공심이 일어나기가 좀 어렵습니다. 불가촉천민들은 교육을 전혀 안 받아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육을 시켜준다는 것에 대해 별로 고마움을 몰라요. 교육보다는 차라리 옷이나 식량을 주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은 돈이 50배, 100배가 더 드는 데도 별로 고마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공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게 힘듭니다.

그러나 공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자꾸 업무 효율을 추구하다 보면 주민들에게 공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그냥 노동자처럼 대우해서 일을 해치워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JTS가 코이카(KOIKA) 지원 사업을 포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코이카 사업은 1년 안에 마쳐야 하는데 주민들이 같이 안 하면 사업을 3년이고 5년이고 늦춰야 되거든요. 그러면 JTS가 코이카로부터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의 공심을 일으키는 일을 소홀하게 돼요.

학교 건물을 지어주는 게 목표일 때는 건물을 잘 짓는 것이 성과가 되지만, JTS의 목표는 학교 짓는 것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의 공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학교를 짓는데 참여해야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남이 와서 학교를 지어주면 자기 아이를 학교에 잘 안 보냅니다. 자기 아이를 보내지 않을 학교를 무엇 때문에 자신이 짓겠어요.

일단 학교 짓는 일에 마음이 일어나면 상수도 공사에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상수도 공사는 마을 주민들만의 협력으로 가능하지만, 학교는 또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학교는 교육부가 참여를 안 하면 교사가 안 와요. 초기에 지은 학교들은 교육부가 처음부터 참여를 안 하다 보니 교사를 보내주지 않아서 운영이 안 됐거든요.

필리핀JTS의 20년 활동을 돌아보면 실패한 것도 있고 성공한 것도 있지만, 어제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교육청 사람들이 참석했고, 지방정부에서 시장, 군수를 비롯해 부지사까지 와서 참석했고, 마을 리더들도 참석했기 때문에 성공적입니다. 100% 만족할 만한 건 아니지만 일단 성공적이에요.

그러나 필리핀의 경우 한국처럼 자원봉사 방식으로 운영하기에는 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필리핀 사람들은 우선 본인들부터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되니까요.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해준 필리핀 자원봉사자들도 대부분이 대학 교수라든지, 충분히 자기 직업이 있고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도 자원봉사 방식을 확대하려면 그런 분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원주 대표님 이하 필리핀JTS 활동가들, 그리고 또 과거에 활동하셨던 분들의 고생과 노력 덕분에 어제 20주년을 함께 축하하고 앞으로를 설계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내일 토요 천일결사기도용 법문을 촬영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필리핀JTS 활동가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사업을 평가하고, 미래 20년을 설계해 보기 위해 그동안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필리핀JTS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향훈 법사님이 민다나오 사업의 지난 20년을 평가한 자료를 발표하고, 각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현안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곳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그러나 지켜야 할 원칙을 어떻게 고수해나가야 할지 깊이 토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워크숍을 마치고 오후 5시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기 위해 센터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현지인 가정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이 한국인 시청자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생방송하도록 하기 위해 센터 주변에 인터넷이 가장 잘 되는 곳을 사방팔방으로 물색했습니다. 다행히 가정집 한 곳을 섭외하여 생방송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집주인이 마련해 준 공간은 처마 밑이었습니다.

“방 안에서는 인터넷이 안 돼요?”

“처마 밑이 인터넷이 가장 잘 돼요.” (웃음)

집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정토회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네요.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생방송을 하고요.” (웃음)

결국 처마 밑에서 생방송을 했습니다. 간단하게 조명을 설치한 후 생방송 15분 전에 리허설을 진행하고, 한국 시간으로 저녁 7시 30분 정각에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4천 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 제가 있는 이곳은 필리핀 민나나오입니다. 여기는 오지이기 때문에 인터넷이 되는 데가 없는데 이 집은 인터넷이 잘 된다고 해서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남의 집 처마 밑에 와서 여러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웃음)

집 밖 도로변에 앉아서 생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 차가 다니고 개소리가 들리고 사람 소리가 들리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는 전기가 불안정해서 강의를 하다가 전기가 나가버릴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오늘 즉문즉설은 거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남의 집이라서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지난주에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에 가스 스토브 10만 개를 전달하고 온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부한 작은 돈이 난민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화상회의 방에 들어와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수치심이 들 때가 많아 괴롭다며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수치심이 자주 올라와 괴로워요, 어떡하죠?

“저는 학창 시절에 따돌림과 괴롭힘을 겪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에 화가 많이 느껴지고 사람이 싫고 두려워요. 사람을 피하는 대인 기피증이 있고, 무기력증과 자살 충동을 자주 느낍니다.

또 수치심이 자주 올라옵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수치심이 문득 느껴져서 괴로울 때가 많아요. 이런 정신적 증상들 때문에 일상생활과 준비하고 있는 시험에 지장이 있습니다. 제 인생이 계속 답보 상태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을 극복하고 싶은데 스님께 방법을 여쭙고 싶습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사실 얼굴을 내놓고 말하기를 굉장히 두려워하거든요. 모자를 푹 쓰고 가능하면 얼굴을 남한테 안 보이려고 합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질문할 때도 보면 얼굴을 가리고 질문을 하고, 온라인상에서도 ‘얼굴을 가리고 질문할 수가 없느냐’ 이런 문의도 하는데,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정도면 상태가 좀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말도 또박또박하고, 얼굴도 드러내는 걸로 봐서는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자살 충동을 느꼈다 하니 거의 정신질환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일단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치료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치료를 하고 약을 먹으면 졸린다든지 답답하다든지 이런 증상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일종의 부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하나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조절하면 완전히 낫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극단적 선택, 즉 자살을 하지는 않습니다.

약을 중간에 끊거나 아예 병원에 안 갔거나 하게 되면 어떤 충동을 느낄 때 극단적 행동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치료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어릴 때 왕따를 당했든 뭘 했든, 정신이 건강하면 그런 것에 상처를 별로 안 입습니다. 그때는 기분은 나쁘고 상처가 되지만 시 간이 흐르면 다시 자연치료가 됩니다. 우리가 만약에 어떤 사람하고 연애를 하다 헤어졌을 때 그때는 굉장히 막 죽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점 잊혀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고 하면서 자연 치유가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도저히 잊지 못해서 나중에 따라 죽는다면, 세상에서는 그것을 순애보라고 할지 몰라도 정신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연애하다가 헤어지거나, 결혼하다 이혼을 하거나, 가족이 죽거나 했을 때 정신적인 충격이 오는데, 정신이 원래 건강하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회복이 안 되고 과거의 상처가 계속 남아 있다면 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증상을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않고 만성화되면 여러 가지 정신적 어려움을 겪게 돼요.

제가 1차적으로 조언하고 싶은 것은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선행되고 나서 자가 치료를 해야 해요. 병이 발병하면 처음에는 자가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되고, 그다음에 좀 안정을 되찾으면 자기 스스로 자기를 치료해야 됩니다.

세상의 눈치를 너무 볼 필요가 없어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들의 생각이지 나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나무가 크네’, ‘꽃이 예쁘게 피었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식물은 전혀 신경을 안 쓰잖아요.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람쥐가 작네’, ‘코끼리가 크네’ 하고 아무리 말해도 동물들은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을 전혀 안 써요.

그것처럼 타인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해서 신경을 안 써야 합니다. 그들의 평가는 그들의 생각일 뿐이지 나하고 관계없는 일입니다. 남이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 안 하는 자세가 매우 필요합니다. 내가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내가 그들의 노예라는 겁니다. 그들이 웃으면 나도 따라 웃고, 그들이 화내면 나도 따라 화내고, 그렇다면 나는 원숭이처럼 흉내 내는 존재잖아요. 남의 시선에 상관하지 않는 것을 굳이 수행문으로 표현하면 이겁니다.

‘나는 길가에서 자라는 한 포기 풀입니다.’

남이 나를 밟든지 말든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태도를 갖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어도 정신적으로 상처가 있으면 그렇게 안 됩니다. 그래서 병이라고 하는 거예요.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 놓아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돼요. 놓아야 하는 걸 몰라서 쥐고 있는 건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놓아야 하는 걸 아는 데도 안 놓아진다면 병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니 아직 한 번도 병원에 안 가봤다면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제가 지금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먹고 있는데, 그게 근본적인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약을 먹는 것이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적어도 약을 먹고 있는 동안은 충동적 행동을 하지 않아요. 약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약을 끊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순간에 충동적인 행동을 선택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낫지는 않지만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은 방지할 수 있어요. 또 어떤 병은 약을 먹더라도 악화가 되지만 악화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 꼭 좋아져야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치료받아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약 먹는 것을 멈추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의식이 홱 바뀌어 버려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효과가 있고 없고를 따지지 말고 반드시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이렇게 자꾸 기도를 해보세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절을 계속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게 기도를 한번 해보시면 좋겠어요.”

“네, 그리고 수치심이 자주 드는데 수치심을 어떻게 바라봐야 될지 여쭙고 싶습니다.”

“수치심이 느껴진다는 건 질문자가 뭐라도 된다는 얘기잖아요. 자기가 풀인데 무슨 수치심이 있어요? 만약에 다람쥐가 수컷 하고 교미를 할 때 사람이 지나가며 본다고 수치심을 느끼겠어요? 개가 교미를 할 때 사람이 지나가며 본다고 수치심을 느낍니까?”

“아니요.”

“제가 좀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를 너무 내세운다는 반증입니다. 질문자처럼 예민한 사람은 ‘나는 한 포기 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수치스러울 게 없습니다. 나를 자꾸 의식하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가르쳐주신 대로 수행을 열심히 해서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열심히 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열심히 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생각처럼 안 되면 또 '나는 안 돼' 하며 또 문제가 되거든요. 자꾸 뭘 열심히 하려는 것도 큰 병이에요. '빨리 나아야 한다' 이것도 병입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뭐든지 천천히 해야 되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열심히'라는 말은 빼고 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옆집은 작은 구멍가게였습니다. 손님들이 계속 오가자 주인아주머니가 일찍 문을 닫아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부모님께서 요양병원을 설립하여 사업을 이어 나가게 하려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가 너무 힘들어 한의대를 졸업할 자신이 없는데, 부모님의 좌절이 걱정됩니다.

  • 저는 채식을 하기 때문에 남편한테 고기 요리를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남편이 매우 불편해 하고 불만이 많습니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 저는 권리가 침해되어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 화가 납니다.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직장 내 당연한 문화로 되어 있어 말하지 못했어요. 주인의식을 갖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 오지에서도 전 세계와 대화를 할 수가 있네요. 전기불도 안 나가고, 인터넷도 안 끊기고, 한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JTS가 민다나오에서 하고 있는 일

민다나오는 인구가 2,500만이나 사는 필리핀의 남쪽에 있는 큰 섬입니다. 이곳은 필리핀 정부 입장에서 볼 때는 반군 지역이에요. MILF(Moro Islamic Liberation Front)라고 하는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이 활동하는 곳인데, 정부군도 못 들어가는 분쟁 지역입니다. 분쟁 지역이다 보니 학교가 없어서 아이들이 공부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JTS에서는 MILF 반군 지도자를 만나서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서 공부를 해야 되지 않느냐' 하고 설득해서 학교를 세웠습니다.

원주민들은 주로 산 위에 살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조상 대대로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인데, 가톨릭 세력이 들어오면서 산 위로 쫓겨나서 살게 되었습니다. 교통이 불편하니까 원주민 아이들은 학교도 못 가고, 거의 원시적으로 삽니다. 그래서 JTS에서는 각 부족마다 학교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다나오는 공산 반군(NPA)이 활동하는 분쟁 지역이기도 합니다. 공산 반군이 활동하는 지역에도 학교가 없기 때문에 JTS에서는 이곳에도 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소수민족이든 무슬림이든 신체장애가 있든 관계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합니다. JTS가 민다나오에 처음 왔을 때가 20년 전입니다. 그때만 해도 장애인 교육 기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JTS에서는 이곳에 최초로 장애인 특수학교를 만들었고, 그 학교를 다녔던 학생이 벌써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그 학교에 와서 장애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사례도 생겼습니다. 또 초기에는 아주 외진 곳에 학교를 세웠는데, 그 학교를 다녔던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이 된 사례도 생기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은 그래도 소수 종족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소수 종교라고 차별하지 않고, 성차별도 거의 하지 않고, 계급 차별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서 우리는 사실 괴로울 일이 별로 없어야 합니다. 먹고 입고 자는 조건이 훨씬 좋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우리는 또 우리대로 괴롭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괴로움은 끝이 없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 외부 조건 때문에 괴롭다고 탓한다면 문제를 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돌이키는 마음공부가 필요한 거예요.

이 세상이 지금보다는 평화롭고 행복해지도록

그렇다고 뭐든지 다 마음만 먹으면 된다고 단언하는 것도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곳 민다나오와 같은 곳에는 학교가 있어야 되고, 차별이 없어져야 되고, 분쟁이 없어져야 되고, 약이 있어야 되고, 사회적 개선도 필요합니다.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을 도와야 되고, 배부른 사람을 배고픈 사람을 도와야 되고,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을 도와야 되고, 어른은 아이를 돌봐야 되고, 젊은이는 늙은이를 돌봐야 되고,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우리가 갖게 된다면 이 세상이 지금보다는 좀 더 평화롭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오지를 다니고 있는 거예요. 다음 주에는 한국에 가서 여러분들을 뵙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생방송을 할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준 집주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다시 JTS센터로 돌아왔습니다.

밤하늘에는 오랜만에 별이 초롱초롱 빛이 났습니다. 스님은 필리핀JTS 활동가들과 풍등을 날리며 민다나오 구호활동 20년을 함께 축하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JTS센터를 출발하여 가가얀데오로 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가서 필리핀 교민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밤 비행기를 타고 다음날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JTS 후원하기 ► https://www.jts.or.kr/donation/donation.html

전체댓글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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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다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022-09-22 16:17:48

노현정

수치심에 대해 이렇게 명쾌한 답을 주시다니요, 올 한해 얽히고 설킨 감정이 싹 풀렸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9-21 21:21:31

정경임

필리핀에서의 JTS의 활동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되었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스님, 그리고 봉사자 여러분 존경합니다.

2022-09-21 10: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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