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30 전법활동가 법회, 산밑밭 지주대 설치
“남편을 이기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작업복을 입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지주대 세우기

오늘은 산밑밭으로 갔습니다. 모종들이 이제 땅에 자리를 잡고 하루하루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지주대를 세우다가 미처 다 하지 못한 세 고랑에 지주대를 박았습니다.




지주대를 다 박고 행자님이 농막에 그물망을 가지러 간 동안 스님은 물을 떠 와서 작물에 주었습니다. 오늘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빗방울은 찔금 바닥에 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작물에 물을 주자 목이 마른 사람이 벌컥벌컥 마시듯 물이 쑥쑥 들어갔습니다.

먼저 많이 자란 호박 모종에 그물망을 쳐주었습니다. 망을 치는 일은 순서에 맞춰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망의 위아래에 줄을 엇갈려 끼우고 지주대에 묶어 준 다음 아래쪽에도 ㄷ자심으로 고정시켜주었습니다.




한 면은 쉽게 작업을 했는데 돌아서 한 면을 마저 작업하는 데 그만 아래쪽 망이 엉켰습니다. 스님은 다시 망을 순서대로 정리한 다음 묶어놓고 줄을 끼웠습니다.



차근차근 망을 다 끼우고 호박 줄기를 망에 걸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길어와 나머지 모종에 물을 다 주었습니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10시부터 전법활동가 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주간반 전법활동가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어제는 가정의 날이었는데 다들 가족과 잘 보내셨습니까? 저희 공동체 성원들은 어제 감자를 수확했어요. 그리고 지난주에 모내기를 마쳤지만 처음이라 서툰 게 많아서 추가로 모를 더 심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웃음)

어제 가정의 날에 두북 공동체가 감자를 수확하고 모심기를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재미있어 보이죠? 보기에는 재미있는데 좀 힘이 들었어요. (웃음) 첫째, 논에 물을 넣기 전에 써레질을 평평하게 해야 하는데, 논이 크고 작업이 서툴러서 한쪽은 산이 되고, 한쪽은 바다가 되어버렸어요. 이런 시행착오를 지금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농사팀 행자들은 ‘내년에는 잘할 겁니다’ 하고 아주 명랑하게 대답했어요. (웃음) 쌀 수확량이 적으면 그냥 밥을 적게 먹으면 되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배워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법회팀장이 지난 한 주 동안 도반과의 관계에서 불편하거나 힘든 점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반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은 활동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실수를 단톡방이나 회의 중에 지적할 때 마음이 불편합니다.”
“도반이 지시하는 말투를 썼을 때 마음이 불편합니다.”
“불평불만이 가득한 도반을 바라볼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약속한 모둠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도반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다른 모둠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이것을 수행이 안 되었다고 지적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직장 일로 바쁘다, 힘들어서 못하겠다. 부정적인 의견을 내어서 회의 분위기를 다운시키거나 의욕이 없는 도반과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회장이 비민주적으로 회의를 진행하거나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화를 낼 때 답답해요.”
“모둠원들의 의견을 듣겠다고 해놓고 막상 회의할 때는 자신의 의견과 다를 때 정색을 하는 모둠장을 볼 때마다 회의에 참가하기가 부담스러워요.”

스님은 발표 내용을 경청한 후 전법활동가들이 어떻게 수행적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물론 앞에서 발표한 내용이 전법활동가 전체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발표한 내용만 놓고 보면 여러분이 전법활동가임에도 불구하고 수행적 관점이 전혀 잡혀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적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마음이 불편하면 내 문제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화가 나는 것도, 짜증이 나는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모두 나의 문제입니다. 수행자라면 이러한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설령 지금 수행적 관점을 갖지 못하더라도, 남의 탓을 한다면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남의 탓을 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곧바로 알아차리고 돌아와야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불편하다고 남을 탓하고 있나요?

설문조사의 내용 중에 도반과 사이가 안 좋아서 모둠을 옮겨 달라는 요청도 있었는데, 이것은 남편과 같이 살기 어려워서 이혼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남의 탓을 하면서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물론 수행적 관점을 놓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도대체 정토회에 와서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해서 전법행자가 되었는지, 불교대학을 진행할 때 학생들에게 뭐라고 가르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마음이 불편하면 그것은 나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가뭄이 심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들다면, 비가 오고 안 오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입니다. 여름에 더워서 괴롭거나, 겨울에 추워서 괴롭다면, 이것도 자기 문제입니다. 수행자라면 여름에 더우니까 외출을 안 하거나 옷을 얇게 입고 나가든지, 겨울에는 추우니까 외출을 자제하고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가면 됩니다.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비가 와서 힘들다’, ‘가물어서 힘들다’, ‘더워 죽겠다’, ‘추워 죽겠다’ 하는 건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등산을 하다가 힘이 들면 내 체력에 비해 이 산이 높은 줄 알고 다음에는 조금 낮은 산을 등산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산이 왜 높나?’, ‘산이 높아서 문제다’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더 많이 운동하고 싶으면 산 밑에서 시작해서 걷거나, 오르막길을 오르기 힘들면 산 중턱까지 차를 타고 가서 올라가거나, 이렇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조절할 줄 아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도반들도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세상 사람들이에요. 도반들 중에도 자기 말만 하는 사람도 있고, 약속 시간에 안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명령조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남편이 명령조로 말해요’, ‘우리 상사가 늘 야단을 쳐요’라고 질문하듯이 이건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괴롭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수행의 과제입니다.

도반들도 이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에 비슷한 특성을 갖는 건 당연합니다. 도반도 세상 사람이니까 성격 급한 사람도 있고,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도 있고, 피곤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질문자처럼 관점이 안 잡힌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 전법활동가 중에도 수행적 관점이 안 잡힌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관점이 잡혔는지 안 잡혔는지는 논할 일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내 문제로 보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설문 조사에서 문제 제기한 내용들은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일반 회사에서 설문 조사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전법활동가라면 수행적 관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수행을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해서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수는 있어요. 그러나 이 불편한 마음이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수행적 관점을 놓친 것입니다.

원칙에 어긋나는 사안에 그냥 순응하고 있나요?

지회장이 민주적으로 회의를 운영하지 않아서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이것은 내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지회장의 비민주적 회의 진행을 그냥 두고 보면서 순응하는 것은 전법활동가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수행의 문제이지만, 전법활동가라면 다수 대중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반영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이미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법륜 스님이라도 이 약속을 안 지키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나빠서 문제제기를 하면 수행적 관점에 어긋나지만, 원칙에 어긋나는 사실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토회는 자기 수행과 함께 세상을 좀 더 민주적이고 평화롭게 만들자는 사회 실천 운동도 하고 있기 때문에 원칙에 어긋나는 사안에 대해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도반이 회의 참석도 안 하고, 법회도 결석하고, 나누기도 안 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건 내 문제입니다. 그러나 전법활동가로서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일이 아니라 모둠장에게 이렇게 건의를 해야 해요.

‘저 도반은 진행자 소임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회의 참석도 안 하고, 법회도 결석하고, 나누기도 안 하는 사람이 어떻게 진행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할 줄 알아야 전법활동가입니다. 모둠장에게 건의를 했는데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지회장에게 말하고, 그래도 안 되면 지부장에게 말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정토회 대표에게 건의를 할 수 있도록 이미 정토회 안에 공식적인 절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토회 대표에게 건의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네 번이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할 때는 법사님과 상담을 할 수 있습니다. 법사님은 수행적 관점에서 마음이 불편한 것에 대해 상담을 해주지만, 제안한 내용이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면 ‘왜 정토회가 개선을 못할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법사단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합니다. 단, 문제제기를 할 때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화를 낸다면 수행적 관점을 놓쳤다는 측면에서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적 관점을 놓친 것에 대한 지적은 받고, 잘못된 운영에 대해서는 개선을 요구하고, 개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실천 활동도 해야 합니다.

적응하는 것과 개선하는 것, 수행자의 길

부처님의 가르침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되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괴로워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개선을 위해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보살의 마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제기한 문제를 살펴보면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이 불편한 것은 수행적 관점을 놓쳐서 그렇습니다. 이 차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서 정토행자의 길에 대해 바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일사 정진 기간이니까 우선 내 마음이 불편한 건 내 문제라는 관점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를 위한 실천 활동도 언제든 기꺼이 참여하십시오. 정토회의 문제점에 대해 사정없이 문제 제기해도 좋습니다. 욕설이나 비난만 하지 않으면 돼요. 세상의 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명이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말에 대답도 하기 싫을 정도로 남편에게 숙여지지가 않는다며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마음이 숙여지지가 않고 남편을 이기고 싶어요

“정일사 정진 때마다 남편에게 숙이겠노라고 다짐하며 정진을 합니다. 그러나 할 때마다 ‘내가 왜!’ 하는 마음이 들며 화가 납니다. 법사님이 주신 명심문이 ‘함께 살아주어서 고맙습니다’입니다. 아무리 명심문을 외어도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고, 머리만 아픕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쓸 때에도 걸림이 있고, 남편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잘 살펴보니 제 열등감 때문입니다. ‘나다!’ 하고 내세우지 않으면 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집니다. 이번에도 숙여지지 않으면 저는 또 예전처럼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뿌리를 뽑아서 고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렇게 답답하고 화가 나는 남편하고 왜 삽니까? 이혼하면 되죠.”

“...이혼하면 제가 손해인 것 같습니다.”

“왜요?”

“남편이 아주 착합니다.”

“뭐든지 누가 얘기하면 싫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이 질문자의 까르마입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일단 거부를 하게 돼요. 그런데 잠시 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예 못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남편에 대해 무엇이 이익인지 계산을 해보게 되는 거죠.

‘착한 남자이고, 돈도 잘 벌잖아. 그래도 이 사람과 사는 게 나한테는 좀 더 낫겠다.’

이렇게 머리가 굴러가기 때문에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감정적으로는 싫은 거예요.

남편이 나에게 이익을 주는 게 많아서 좋다면 질문자는 ‘을’이 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자꾸 사정하고 부탁하는 입장이라면, 그 사람이 ‘갑’이고 내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이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렸다면, 그 사람이 ‘갑’이고 나는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을’이 안 되려면 내가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야 해요. 인생을 ‘갑’으로 살려면, 즉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바라는 게 없어야 합니다. 내가 뭔가 바라는 게 있으면 거기에 집착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꼭 다 내려놓는 것만이 수행은 아니에요. 내가 뭔가를 취하면, 다시 말해 인연을 지으면, 그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과보를 받을 각오를 하는 거죠. 남편한테 경제적으로 조금 기대어 살려면 잔소리를 좀 들어야 하는 거예요. 남편 입장에서는 자기가 베풀어주고 있으니까 ‘갑질’을 하려 드는 게 당연하잖아요. 질문자는 그냥 무작정 ‘숙여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힘들게 느껴지는 겁니다.

‘이건 내가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힘들 일이 없습니다. 내가 돈을 직접 벌지 않고 빌려서 풍덩풍덩 썼으면 나중에 갚아야 하고, 갚을 때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게 되잖아요. 반대로 내가 돈을 상대에게 빌려주면 목에 힘을 주게 되잖아요. 이렇게 빚을 갚을 때는 내가 돈을 주면서도 ‘감사합니다. 잘 썼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문자도 남편한테 숙이면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해야 해요. 남편 덕분에 본인이 이익을 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의 욕심은 ‘이익’도 보고 싶고, ‘갑질’도 하고 싶은 거예요. 전법활동가 노릇도 하고 싶고, 일도 좀 덜 하고 싶고, 이런 마음이 오랜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는 절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한 줄 알아야 해요. 지금은 ‘내가 무조건 숙이겠습니다’ 이렇게만 생각하니까 자꾸 비굴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뭐 때문에 숙여야 해? 내가 뭐가 못나서? 안 그래도 지금 약간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는데 여기서 더 비굴하게 살란 말이냐?’

이런 마음이 있으니까 자꾸 남편에게 저항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감사한 줄 알아야 해요.

‘제가 부족한데도 이렇게 저와 함께 살아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무작정 숙이는 기도를 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내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이렇게 기도하세요.

‘여보, 저하고 살아줘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면 무의식 세계에서 조금씩 그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상대가 고맙게 느껴지면 뭐든 주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에요. 이번에 죽순을 뽑아서 삶은 후에 동네에 사시는 80대 90대 할머니들께 가져다 드렸어요. 어르신들은 직접 죽순을 뽑거나 삶기가 어렵잖아요. 그랬더니 이분들이 농사지은 걸 한 아름씩 가져와서 저한테 주었어요. 그냥 받으셔도 되는데 굳이 답례를 하시더라고요. 이게 사람 마음이에요. 상대가 고맙게 느껴지면 뭐라도 주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배우자가 주거나 부모가 주거나 자식이 주는 건 당연히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맙다는 생각이 안 드니까 은혜를 갚으려 하거나 답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도 안 나오고, 행동도 안 나와요.

여러분 중에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전법활동에만 전념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직장생활을 한번 해보면 전법활동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남편 덕택에 직장 안 나가고 전법활동에 전념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내가 진짜 복 받은 사람이구나. 당신 덕분에 내가 이런 좋은 활동도 하고, 시간 여유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 고마워.’

이런 마음이 딱 들면 남편이 뭐라고 해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돼요. 그러니 감사한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이 말을 듣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해요.”

“감사합니다.” (웃음)

“억지로 참으면서 무작정 숙이는 것과 마음에서 고마움이 우러나서 숙이는 것은 다릅니다. 남편이 뭐라고 하든, 심지어 욕을 하더라도, ‘감사합니다’ 하고 말해 보세요. 이렇게 항상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아봐요. 그러면 점점 좋아질 겁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법회 후 정일사 정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손을 든 사람들의 질문을 더 받지 못하고 법문을 끝냈습니다.

이어서 108배 정진을 함께 했습니다. 정진을 마치고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나누기를 하고 전법활동가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인도 성지순례 준비팀과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내년 1월에 떠나는 인도 성지순례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는 만일결사 회향 기념으로 1,250명이 순례하는 프로그램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참가 인원이 많다 보니 새로 연구해야 내용이 정말 많았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평화재단 국제 심포지엄 준비팀과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준비 사항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5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과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연말에 1차 만일결사 회향을 앞두고 많은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긴 시간 토론을 했습니다.

연달아 회의를 하다 보니 오후가 다 지나가고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활동가들을 위한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도반과의 관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관련하여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올해 하반기 정토회 일정에 대해 공유해 주었습니다. 1차 만일결사 회향과 2차 만일결사 시작을 앞두고 많은 행사들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10월 말에는 세계 참여불교 대회가 정토회 주최로 한국에서 열립니다. 해외 불교 지도자 100여 명이 와서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문경 수련원, 두북 수련원을 이동해 다니며 행사 진행을 하게 될 거예요. 국제대회이기 때문에 아주 큰 행사입니다.

11월 말에는 만일결사 회향 기념 수련이 있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은 가능하면 다 참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12월 4일에는 정토회 제1차 만일결사 회향식이 있습니다. 이 행사는 지난 30년을 마무리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행사입니다.

과거 30년을 마무리하고 미래 30년을 준비하는 시간

내년 1월 말부터 2월 초에는 인도 성지순례를 갑니다. 이번 인도 성지순례는 한 번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만일결사 회향을 할 때는 그동안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이 모여서 다시 한번 성지순례를 가보자는 취지예요. 지금까지 정토회가 인도 성지순례에 최대로 많이 간 인원이 500명이었어요. 그러나 금강경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랐던 ‘1250명의 아라한’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에 이번에는 만일결사 회향 기념으로 1250명이 인도 성지순례를 가려고 합니다.

내년 3월에는 2차 만일결사 입재식이 있습니다. 이 행사를 위해 2차 만일결사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져서 현재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에 이르는 전체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전체 일정을 미리 알고 있어서 각 부분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30년을 마무리하고 다음 30년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보니 정말 바쁘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방송실을 나오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한 후 저녁에는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 중 인간 붓다 과목의 첫 번째 수업을 강의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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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2-06-07 18:01:08

큰바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06-04 22:51:07

보리수

인생을 ‘갑’으로 살려면, 즉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바라는 게 없어야 한다!! 함께 살아 주어, 고맙습니다~

2022-06-04 20: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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