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4.17 영어 즉문즉설, 행복학교 1만 발대식, 일요명상
“메타버스는 인간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8시부터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300여 명의 외국인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오늘은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메타버스 회사에 다니는 분인데 불교 사상과 메타버스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메타버스는 인간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I work for a Metaverse company. Metaverse, which has been in the news recently, is a convergence of virtual reality and digital second life. What is Sunim's take on Metaverse? How will this dual life, one in virtual reality and the other in physical reality, affect one's true inner life? Will owning a metaverse mansion in a virtual New York City ever be the same as owning a physical mansion in a physical New York City, one of the most expensive cities both in the virtual Metaverse and in the physical world? How do you connect the virtual and the physical reality to ideas in Buddhist Emptiness - that concepts don't have inherent value and the value is relative to the person's perspective?”
(저는 메타버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뉴스에 많이 등장하기도 한 메타버스는 가상현실과 제2의 삶의 융합입니다. 스님은 메타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상현실과 물리적 현실에서의 이 이중생활은 진정한 내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현실에서든 메타버스 안에서든 제일 비싼 도시인 뉴욕에 메타버스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언젠가 현실 건물을 가진 것과 같아지긴 할까요? 메타버스가 모든 것은 고유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가 관점에 달려있다는 불교 사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절에 들어와서 살았는데 메타버스에 대해서 어떻게 잘 알겠어요? (웃음)

하지만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메타버스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도 다 가상현실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라고 말할 때 이 세계라는 것은 각자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아는 것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할까요? 눈으로 보고 알죠. 귀로 듣고 알죠. 코로 냄새 맡고 알죠. 혀로 맛보고 알죠. 손으로 만져보고 알죠. 머리로 생각해보고 압니다. 이 이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세계입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은 이 세계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의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모두 같다고 착각을 합니다. 이것이 모든 고통의 원인입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아는 게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판단도 다르고, 믿음도 다르고, 느낌도 다릅니다. 물론 공통점이 있지만 똑같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각자 다른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갈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믿음과 너의 믿음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판단과 너의 판단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와 의견이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갈등의 원인이에요. 확실한 것은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들었는데도 서로 달리 보이고 달리 들었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카메라나 녹음기라면 동일하게 나타날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똑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인식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사물을 보고 듣는데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것을 봐도 다른 생각이 나고 다르게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의 인식 작용에 대해서 불교에서는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각자 서로 다른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몸은 같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신작용은 각자의 가상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술이 무엇인가 하는 기준에 따라 값이 계속 올라갑니다. 그래서 한 병에 천만 원 하는 술도 있습니다. 그들은 비싼 술을 가지고 서로 자랑도 하고 재력을 뽐내기도 합니다. 그들의 동호회 모임에서는 좋은 술에 대한 경쟁까지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술을 먹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은 술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술병이 깨졌든지, 술을 잃어버렸든지,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러나 좋은 술에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이 됩니다.

담배나 마약도 마찬가지예요. 거기에 중독된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좋은 마약, 좋은 담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담배나 마약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은 부, 지위, 명예에 대해서 굉장한 가치를 두고 서로 부러워하고 열등의식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부, 지위, 명예에 의미를 두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굉장한 가치를 지니지만 거기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은 부, 지위, 명예가 담배나 마약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가상현실 속에서 뉴욕에 빌딩을 샀다가 잃어버렸다고 합시다. 가상현실 속에서는 큰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러나 가상현실 속에서 나오면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것처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가상현실과 같아요. 가상현실 속에서 나와 버리듯이 여러분들이 사로잡힌 한 생각으로부터 나와 버리면 아무 일도 없습니다.

현실세계에서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면 의미 있게 느껴지던 것들이 그 속에서 나와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현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괴로움도 사실은 각자의 가상현실에 불과한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나라고 할 것이 없다’ 하는 의미에서 ‘무아(無我)’를 이야기하셨고, ‘항상 하는 것은 없다’ 하는 의미에서 ‘무상(無常)’을 이야기하셨죠.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괴로울 일이 없다(열반적정, 涅槃寂靜)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현실에 집착하며 살듯이 미래 세대는 가상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집착하며 살아갈 겁니다. 어차피 우리가 현실세계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가상현실이기 때문에 현상은 똑같아요. 아이가 가상현실 속에서 자기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울 때 그런 아이를 보고 엄마가 ‘컴퓨터를 꺼라. 엄마가 볼 때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현실에서 누가 죽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슬퍼할 때도 그 사로잡힘 밖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된다’라고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정신 현상이 곧 가상현실이에요.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라고 아무리 말해도 여러분들은 이해가 안 되죠? ‘현실을 포기하라는 거냐?’ 하고 자꾸 아우성치잖아요. 그런데 만약 미래 세대가 가상현실 속에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회사도 다니다가 그걸 잃어버렸다고 막 울고불고하면 여러분들은 미래세대에게 뭐라고 얘기하겠어요? 컴퓨터 끄라고 할 거 아닙니까.

가상현실 속에서 겪는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은 가상현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겪는 고통은 사로잡힘 때문에 일어납니다. 어떤 것에 딱 사로잡힌 상태는 가상현실 속에 빠진 것과 똑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화폐라는 것도 사실은 그냥 종이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가치가 생기는 겁니다. 그게 바로 가상현실이에요. 그 가치를 서로 믿고 교환하는 겁니다. 가상화폐도 마찬가지예요. 가상화폐에 의미를 부여하고 교환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현실의 화폐와 똑같은 겁니다. 그런 것처럼 가상현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서 사고팔고 생활하는 미래세대는 가상 세계가 곧 현실입니다.

그래서 가상현실은 나쁜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와의 교환을 인정하느냐입니다. 현실 세계와의 교환을 인정하면 현실이 되는 거예요.

옛날엔 직접 물물교환을 했습니다. 그런데 물물교환이 불편하니까 화폐를 만들어서 교환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 화폐도 하나의 가상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폐가 신뢰를 잃어서 종잇조각이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잖습니까? 그런 신뢰가 일정한 기간 동안 유지되면 우리는 현실이라고 인지하게 됩니다.

가상현실이 점점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해서 괴로움이 생기고 어떻게 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지 훨씬 더 이해하기 쉽게 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윤리니 도덕이니 종교니 하는 것도 사실은 다 가상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tually that is very insightful. You are so wise and that&s why I asked this question because I work for a metaverse company and actually we are in a very early stage because of the metaverse, using our insights or using our wisdom if we could somehow influence creating a good metaverse then that will be very helpful and that&s why I&m asking these questions to you. Because we are in a very beginning stage, if we have to create an ideal metaverse, what will be that metaverse for you?”
(깊은 통찰력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혜롭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제가 메타버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기초 단계에 있습니다. 저희의 통찰력과 지혜로 도움이 되는 좋은 메타버스를 만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기초 단계에 있기 때문에 스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메타버스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정신작용 자체가 가상현실에 속합니다. 가상현실 속에 들어가서 그걸 보고 그걸 들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이미 현실이 됩니다. 여기에 가상현실에서 의미 부여가 된 가치를 현실 가치와 교환할 수 있게 인정해주면 메타버스 자체도 실제 현실이 된다는 겁니다. 문제는 교환 가치를 인정할 거냐 말 거냐는 문제예요.

지금 제가 여러분들을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보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은 다 가상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이 제 눈에 이렇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이렇게 생겼는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파장을 통해 눈으로 들어온 빛을 뇌의 시신경에서 받아들여서 여러분들의 얼굴을 인식하는 겁니다. 이것도 가상현실이에요. 실제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한 번 가상현실을 잘 개발해보세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윤리, 도덕은 조금 있으면 하나의 꿈처럼 지나갑니다. 앞으로 사람이 어머니 뱃속이 아니라 인공 자궁에서 태어나게 된다면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하고 큰 차이가 없잖아요? 만약 복제까지 된다면 그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요. 이때 무엇을 갖고 가치라고 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옳으니, 그르니, 맞니, 틀리니 하는 것도 다 관념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기술적으로 말하면 가상현실은 새로운 기술에 해당하지만, 이미 우리의 삶이 원래 가상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현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의 정신 현상을 잘 연구하면 가상현실에서 구축할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들을 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기술적으로는 아직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해 내는 한계가 있습니다. 소리, 빛과 같은 파동은 이동시킬 수가 있어요. 그러나 냄새와 맛은 파동이 아니고 분자로 구성된 물질이잖아요. 물질을 이동시키는 기술은 아직은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꿈속에서 음식을 먹었을 때 맛을 느꼈습니까? 꿈속에서 여러분들이 냄새를 맡았습니까? 꿈속에서 어떤 감촉을 느꼈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가상현실에서 얼마든지 실현이 가능합니다. 물질을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인간의 뇌가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거예요.

결국은 인간이 개발하는 모든 것은 인간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기술적으로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잘 연구하시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들을 많이 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insightful answers.”
(통찰력 있는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메타버스에 대해 질문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Sunim, I think your answers were very very insightful actually. You said that we are already living in a virtual world, that concept that we are already living in the virtual world was made more clear to me when we compare it against the metaverse and how we can easily come out of our virtual world as easy as just coming out of a metavers by switching off the computer. You also said that the metaverse will be ideal when all our six senses that we have can be experienced in the metaverse. Your idea of that smell is not really kind of simulated in the metaverse that was actually a very novel idea. Although I've been working in the metaverse for such a long time I haven't really thought about that particular piece, so again you were very insightful. Thank you very much.”
(스님, 실제로 매우 통찰력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저희가 이미 가상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컴퓨터를 꺼서 메타버스에서 나오는 것만큼 쉽게 가상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지 비교했을 때 제게 더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스님은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섯 가지 감각이 모두 메타버스에서 경험될 수 있을 때 메타버스가 이상적일 것이라는 말씀 해주셨습니다. 스님이 언급하신 후각에 대한 부분은 현재 메타버스에서 시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매우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 관련된 일을 오랫동안 해왔음에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다시 한번 스님의 통찰력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아침 9시 30분이 훌쩍 넘었습니다.

곧이어 오전 10시부터는 행복학교 1만 명 모집을 위한 발대식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진행자들 모두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각자 나름대로 슬로건을 준비해 와서 발표하면서 발대식을 시작했습니다.

“일만이 그렇게 만만하니? 만만!”

“어기야 디어라! 쉽다! 일만!”

“행복을 전해보자 일만 시민에게, 갈수록 보람 있고 행복하구나!”

“만, 만, 만이 왔어요. 행복이 만이 왔어요. 일만 명 달성했어요!”

온라인에서 지각 변동을 일으키겠다는 혈기왕성한 의지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격려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외치는 구호를 들으니까 다음 2차 만일결사 3년의 활동 목표까지 다 달성이 될 것 같네요. 전체가 1만 명을 모집한다는 게 아니라 지부별로 1만 명을 모집하겠다는 얘기죠? 네,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는데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지부별로 만 명씩 모집하면 9만 명은 모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하세요. (웃음)

저는 여러분들이 목표 달성을 못 할까 싶어서 격려하려고 했는데 그럴 일은 없어 보여요. 좀 말려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뭐 이 좋은 일을 말릴 필요는 굳이 없잖아요.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그냥 안 말릴 테니까 마음껏 하시기 바랍니다. (웃음)

행복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행복학교는 행복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다 참가할 수 있는 학교입니다. 모두에게 문이 활짝 열려있고, 누구나 가볍게 참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관계 편을 공부해보고 마음에 들면 심화 과정을 또 해 보고, 그래서 ‘나도 이런 행복 운동을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행복 시민이 될 수 있는 운동입니다. 지극히 자발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눈 있는 자 와서 보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눈만 뜨면 보인다, 내 손아귀에 숨겨진 비밀은 없다!’ 이렇게 아주 확실하게 말씀하셨어요. 당시로 보면 얼마나 화끈한 표현입니까. 부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과거로부터 전승된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계율이나 경전, 그런 것에 근거해서 진리는 검증할 수가 없다. 자기가 직접 체험해보고 검증할 수 있다.’

눈 감은 사람은 진리를 알 수 없고, 눈 있는 사람은 눈을 뜨고 보라는 겁니다.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셨어요. 눈뜬 사람들의 고백도 아주 분명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눈을 뜬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 주신 것과 같고, 덮인 것을 확 벗겨서 보여주신 것과 같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신 것과 같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확 밝혀서 비쳐 주신 것과 같다!’

불법은 이렇게 분명하고, 간단하고, 단순하고, 심플합니다. 지금 불교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행동은 안 하고 자꾸 머리만 쓰는 사람들이 용어를 만들고 이론을 만들어서 그런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전통을 짊어지고 가야죠. 어쩌겠습니까. 사실 승복은 입고 다니기가 많이 불편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승복을 입으라고 얘기한 것도 아니에요. 부처님은 그냥 길거리에 버려진 다 떨어진 옷을 주워 입었어요. 그런 옷은 앉기도 편하고 일하기도 편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원래 정신에 입각하면 그렇게 화끈하고 편하고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런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하나의 전통이고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라는 이름을 갖는 한 약간 불편해도 이런 옷을 입고 이런 모양을 하고 이런 용어를 쓰고 이런 형식을 갖추고 불교를 전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행복학교는 불교라는 용어를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무거운 짐을 질 필요가 없어요. 용어나 형식, 예식의 짐도 모두 버리고 부처님이 당시에 말씀하셨듯이 ‘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 이렇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만든 것이 행복학교입니다. 마치 식당을 차리고 앞에 음식을 진열해 놓은 후 ‘먼저 먹어보고 맛있으면 들어와서 드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같아요. 이것보다 더 분명한 게 어디 있습니까.

내가 사는 사회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가진 행복시민

숨어서 몰래 하는 것도 아니고 확 드러내 놓고 하면 됩니다. 숨겨진 비밀 같은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학교는 세력이나 돈을 모으자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사는 사회에 대해서 좀 책임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거잖아요. 그들끼리 모여서 회비를 내어서 스스로 관리하고, 그들 스스로가 자기가 사는 지역의 환경을 위해서 환경 실천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마음공부를 하는 모임이 행복학교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 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전쟁이 안 일어나도록 내 나라 내 국민을 내가 지키자는 겁니다. 종교, 단체, 이념, 믿음이 달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진보든 보수든 이념은 각자 알아서 할 일입니다. 믿음도 알아서 할 일이지 행복학교는 거기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좀 화끈하고 투명하게 해 보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눈치 보고 겁먹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이런 일은 있는 그대로 얼굴 드러내고 투명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우리에게는 자랑스럽고 좋은 일이고 당당한 일입니다. 이런 데서 여러분들 자신이 우선 좀 당당해져야 합니다. 격려를 하려고 했더니 여러분들이 먼저 앞서 나가 주시고 먼저 마음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나갑시다.”

스님으로부터 기운을 듬뿍 받은 행복학교 진행자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한 후 다 함께 오늘을 기념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1만! 됐다!”

우렁차게 구호를 외친 후 사홍서원으로 발대식을 마쳤습니다.

한편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은 오전에 비닐하우스 주변 잡초를 맸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스님도 잠시나마 함께 울력을 하려고 했지만 전날 돌 나르기 울력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하여 울력은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오후에는 통일의병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온라인 일요명상

해가 지고 저녁 8시 30분부터는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참여자들에게 연둣빛으로 물들어가는 한국의 봄날을 소개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한국은 산천의 나무들이 연두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꽃보다 이파리 색이 더 예뻐요. 이런 좋은 봄날 여러분의 마음도 봄과 같이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신청한 질문 한 가지에 대답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관심을 콧구멍 끝에 둡니다. 이때 관심을 둬야 한다는 의도는 내려놓고 다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면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각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코 속으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공기의 흐름이 피부를 자극해서 느껴지는 감각입니다. 이렇게 가만히 호흡을 느껴 봅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이 끝나자 다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해 보니 어땠는지 자신이 느낀 바와 의문을 채팅창에 올려 주세요.”

실시간 채팅창에 수많은 소감들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스님이 직접 한 줄 한 줄 읽어주며 소감을 함께 나눈 후 명상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엄나무 순을 따고 오전과 저녁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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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안켜도,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의 뇌가 메타버스를 들락날락 하고 있는가 !̆̈ 를 이렇게 깨우쳐 주시네요. ㅎ̊̈

2022-04-28 05:22:44

실상

현실이 사실 가상현실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몸은 같은 현실이지만 생각과 느낌은 모두 다른 메타버스속에 살고 있는데 같아야한다는 사로잡힘이 괴로움을 만드는 것임을 이해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2022-04-27 06:04:40

보리수

이미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메타버스와 같다!! 각자 경험하는 세계가 다르므로, 한 생각 내려놓으면 괴로움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것~ 흥미롭습니다. 스님의 통찰력. 인갼의 심리와 의식을 깊이 연구한 불교 전통도 찬탄합니다. 고맙습니다~

2022-04-23 19: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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