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30 울력, 수행법회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하는 방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햇살을 받은 꽃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8시부터 온라인으로 정토불교대학 평가 회의를 했습니다. 30여 분 간 회의를 하고 바로 울력복으로 갈아입고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먼저 상추에 덮인 비닐을 벗겨주었습니다. 겨울 동안은 비닐이 따뜻한 온실을 만들어 주어 상추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날이 따뜻해져 낮에도 비닐을 덮어두면 상추가 익을 지경입니다.


일의 시작과 끝은 연장을 챙기는 일입니다. 톱은 날을 하나하나 갈고, 망치로 두드려 이를 맞췄습니다. 낫도 갈고 이음새가 헐거운 장대 톱도 꽉 조여 주었습니다.




오늘은 산소 주변 나무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트럭을 타고 산길을 올라가는데 움푹 빠진 곳에 바퀴가 빠져버렸습니다. 차를 밀어도 보고 바퀴 아래 엉킨 나무뿌리도 치워보았지만 차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묘당법사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묘당법사님을 기다리는 동안 바로 옆에 차를 세워둘 수 있도록 덩굴을 치웠습니다.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땀이 나네요.”

곧이어 묘당법사님이 트랙터를 타고 나타나 트럭을 끌어내 주었습니다.

트럭을 한쪽으로 세워두고 결국 연장을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산길을 지나는데 키 큰 나무 사이사이로 진달래가 소복하게 피어있었습니다.


산소 입구에는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웃자란 백일홍과 목련나무부터 가지를 쳤습니다.



사다리를 길게 늘여 높은 소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길게 늘어져 다른 나무를 가리는 가지와 죽은 가지, 부러진 가지를 정리해주었습니다.




아찔한 높이에서 스님은 톱집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행자들이 다음 나무는 자신들이 올라가겠다고 했습니다.

“만약 사고라도 나면 여러분 부모님께 무슨 말을 듣겠어요? 부모님들에게는 저보다 행자님들이 더 중요해요.”

스님은 위험하다며 한사코 직접 올라갔습니다.

소나무 가지치기를 마치고 개나리도 키를 맞춰 잘라 주었습니다. 무거운 전지가위를 들고 팔을 올려 가지를 치니 금세 어깨가 아팠습니다. 떨어진 개나리가 별처럼 땅을 수놓았습니다.



개나리까지 다듬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다시 연장을 들고 산길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길을 내려가던 스님이 문득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텃밭으로 돌아와 사용한 연장을 정리했습니다. 송진이 덕지덕지 묻은 톱은 수세미로 깨끗이 닦아두었습니다.

아침에 온몸을 웅크리고 있던 목련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여러 가지 업무 처리를 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입장하자 스님도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3월 중순부터 대승불교의 수행법인 ‘육바라밀’ 강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에 대해 강의를 했고, 오늘은 정진바라밀과 선정바라밀에 대해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님은 두북 수련원의 봄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두북 수련원에는 오늘 낮 기온이 21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초여름 같이 날씨가 더울 정도였어요. 산에 가서 가지치기를 했는데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봄이 완연히 찾아왔습니다.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가운데 산기슭이며 들녘에는 봄나물이 여기저기 솟아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고, 출근해서는 사무실에서만 있다 보니 봄이 오는지 가는지도 잘 모르죠? 저처럼 시골에 살면, 나뭇잎도 종류마다 돋아나는 순서가 다르고, 꽃도 종류마다 피는 순서가 다르다는 게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상기후 때문에 그런지 꽃 피는 순서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다양한 종류가 동시다발로 막 피어나고 있습니다.” (웃음)

이어서 어제 봄나물을 캤던 영상을 보여준 후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함께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정진바라밀’입니다. ‘정진(精進)’이라는 단어에서 ‘정(精)’은 순일함을 뜻합니다. 마음이 잡다하지 않고 순일하다는 뜻입니다. ‘진(進)’은 물러서지 않고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순일하게 가지고 물러섬이 없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정진’이라고 합니다.

노력하고 애를 쓰거나, 게으름에 빠지거나

누구나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정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딱히 어려움이 없으면 아무리 정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막상 하기가 싫죠. 정진을 하기 싫을 때는 안 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정진을 하면 결과적으로 좋습니다. 결과가 좋은 건 알지만 감정으로는 하기가 싫죠. 이럴 때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해버리면 게으름을 피우는 게 됩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범부중생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 이익이 되니까 싫어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익이 되기 때문에 공부하기 싫지만 공부를 하고, 봄에 일하기 싫지만은 일하는 거예요. 봄에 꽃놀이하고 싶지만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고, 여름에는 더우니까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고 싶지만 김을 매고 작물을 가꿔야 하고, 가을에 단풍 구경을 하고 싶지만 수확을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늘 그렇습니다. 아기를 낳았으면 직장 다녀와서 피곤해도 아기를 돌봐야 하고,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아줘야 해요. 돌봐야 할 가족이 있으면 밥을 해야 하고, 청소를 해야 하고, 하기 싫어도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럴 때 싫다고 안 하는 것은 게으름이에요. 싫어도 할 일은 하는 것을 일컬어 ‘노력한다’, ‘부지런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노력하는 것과 부지런한 것은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이잖아요. 물론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게으른 것보다는 부지런한 게 나아요. 그러나 부지런하다고 괴로움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기 싫은 걸 하니까 심리적으로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그걸 참으면서 일을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은 ‘부지런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만화책을 본다고 합시다. 밥 먹으라고 해도 안 듣고 만화책만 보고, 화장실에 앉아서도 만화책만 봐요. 그럴 때 ‘부지런하다’라고 표현하지 않잖아요. 잠도 안 자면서 밤새 게임에 빠졌을 때 ‘게임을 참 부지런히 한다’ 이렇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그 일에 집중할 때는 밥을 안 먹어도 좋고 잠을 안 자도 좋은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중했을 때 결과가 점점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일을 하면 결과가 나빠지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 기호에 맞다는 이유로 열심히 한다면, 이것은 ‘욕망’ 또는 ‘집착’에 해당합니다. 반면에 그 일을 하면 결과가 좋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 기호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게으름’에 해당합니다. 감정적으로는 싫지만 이걸 하면 결과가 좋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억지로 한다면, 이것은 ‘노력’ 또는 ‘부지런함’에 해당합니다.

금방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하는 방법

정진바라밀이란 생각을 싹 바꿔서 싫은 감정에 구애받지 않고 행동하는 거예요. 주어진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딱 받아들여서 그냥 해버리는 거예요. 농사일을 예로 들어 보면, ‘하기 싫다’라는 생각 없이 봄에 밭 가는 일을 그냥 즐기는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그냥 노는 것보다는 촉촉한 흙을 밟고 만지는 게 더 재미있다.’
‘그냥 노는 것보다는 나물 뜯는 게 더 재미있다.’

이렇게 농사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스트레스가 없어집니다. ‘바라밀’이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스트레스가 없어야 해요. 스트레스가 있으면 ‘노력’, ‘정진’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바라밀’이라는 이름은 못 붙여요. 정진바라밀은 마음을 순일하게 해서 물러섬이 없이 가되 부담 없이 꾸준히 해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한번 하기로 했으면 멈춤 없이 꾸준히 하는 거죠.

부처님께서 이걸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낙숫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져서 바위가 뚫어지려면 수천 년에서 수만 년은 걸려야 하지만, 낙숫물은 그걸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다만 꾸준히 할 뿐이에요. 다른 말로는 ‘소가 풀을 뜯듯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소가 풀을 뜯을 때 먹기 싫어서 억지로 게으름을 피우며 뜯지 않습니다. 막 허겁지겁 뜯지도 않습니다. 그저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풀을 뜯습니다.

운동 삼아, 놀이 삼아

조급하게 애를 쓰면 금방 지치게 됩니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나태하면 일의 진척이 없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저는 ‘그냥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하기로 했으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새벽 5시에 땡 하고 알림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서 그냥 기도하는 겁니다. 하기 싫은 날도 절을 하고, 하고 싶은 날도 절을 하고, 비가 와도 절을 하고, 눈이 와도 절을 하고, 그냥 꾸준히 절을 하는 거예요. 물러섬이 없고 중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악물고 죽기 살기로 애쓰면서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나갑니다.

이것을 ‘정진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유익한 일을 즐기듯이 하는 거예요. 농사일을 할 때도 그냥 운동 삼아 또는 놀이 삼아 할 때 스트레스가 없어져요.”

이어서 다음 주제인 ‘선정바라밀’에 대한 법문이 계속되었습니다.

“선정(禪定)바라밀은 줄여서 ‘선(禪)’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줄여서 ‘정(定)’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계정혜(戒定慧)’를 이야기할 때는 ‘정’이라고 부르고, ‘참선(參禪)’을 이야기할 때는 ‘선’이라고 부르죠. 어떤 선지식은 선과 정을 나누어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안으로는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 선(禪)이고, 밖으로는 일체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것이 정(定)입니다. 선(禪)은 번뇌 망상이 없도록 안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을 뜻하고, 정(定)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는 바깥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을 뜻합니다.

선정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요건

선정이 되려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첫 번째, 마음이 편안해야 해요. 마음이 들떠도 안 되고, 침울해도 안 되고, 편안해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하려면 한가해야 해요. 사람의 마음은 한가할 때 편안해집니다. 한가하다는 건 할 일이 없다는 뜻이에요. 특히 명상을 할 때는 아무 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 할 일이 없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런 마음이 되어야 ‘뭘 해야지’라는 욕구가 안 일어납니다. 할 일이 없어야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돼요. 아무 할 일이 없는 한가함 속에서 편안함을 유지하는 게 선정의 첫 번째 요소이자 선정의 바탕입니다.

그런데 한가하면 망상이 일어나거나 졸음이 와요. 그래서 두 번째, 마음이 한 군데에 딱 집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定)’은 ‘편안함’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집중’이라고 번역합니다. ‘독서삼매(讀書三昧)’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책 읽기에 집중하거나 게임에 집중하듯이 마음이 한곳에 딱 집중이 되어야 해요.

세 번째, 알아차림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한 가운데 한곳에 집중이 된 상태에서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해요. 이걸 ‘소소영영(昭昭靈靈)’이라고 해요.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반대가 멍한 거죠.

군대에서 보초를 서는 사람은 시야에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지 분명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엄청나게 긴장을 해야 알아차림이 있죠. 그런데 선정은 이런 것과는 다릅니다. 군대에서 보초를 서는 경우 알아차림은 있지만 긴장이 되어 있어요. 마음이 편안하지가 못합니다. 그렇다면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며 편안하게 있는 게 선정일까요? 그것도 아니에요. 그것은 편안하긴 하지만 멍청한 상태입니다. 집중이 되어 있지 않고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예요.

그래서 선정이 되려면, 첫째, 편안한 가운데 한가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한곳에 딱 집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셋째, 분명한 알아차림이 있어야 합니다. 명상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마음을 콧구멍 끝에 딱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집중한 상태에서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문지기가 편안한 가운데 성문 앞을 딱 주시해서 오가는 사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과 같아요. 긴장한 가운데 알아차리면 그냥 문을 지키는 것일 뿐이고, 편안한 가운데 알아차리면 문을 지키는 가운데 선정을 닦고 있는 겁니다.

바닷가에 앉아 있을 때는 어떻게 선정을 닦을 수 있을까요? 그냥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편안한 가운데 바다를 주시하면서 파도가 들어오고 파도가 나가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립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감촉에도 끄달리지 않고, 지나간 과거 생각이나 미래 생각에도 끄달리지 않습니다. 생각에 골똘히 빠져 사색하는 게 아니에요. 생각에 빠지는 게 아니라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걸 알아차립니다. 이처럼 대상을 분명히 알아차리는 것을 ‘선정’이라고 합니다. 크면 크고, 작으면 작고, 들어오면 들어오고, 나가면 나가고, 이 상태를 알아차리는 거예요.

생각을 멈추면 비로소 알아차려지는 것들

다른 말로는 ‘생각을 멈춘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생각은 잘 안 멈춰져요. 수없는 연습을 해야 생각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러면 책을 읽을 때 책에 딱 집중이 되고, 상대하고 대화할 때 상대의 대화에 딱 집중이 되고, 운전할 때 운전에 딱 집중이 되고, 일할 때 일에 딱 집중하게 됩니다. 고추를 딸 때 여러분은 빨간 것을 딴다고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파란 것도 따고 그러잖아요. 집중을 안 하고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한곳에 딱 집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선정을 닦는 방법은 마치 운전교습소에서 연습을 하는 것과 비슷해요. 연습할 때는 앉아서 연습하지만, 숙달이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딱 집중이 됩니다. 허둥지둥 살면 ‘산란하다’ 이렇게 말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려고 늘 노력하고 애를 쓰면 ‘선정을 닦는다’ 이렇게 말하고, 애쓸 것이 없을 정도로 아무런 집착이 없고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관심을 두면 어디든지 딱 집중이 되고 분명한 알아차림을 유지하게 되면 ‘선정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선정바라밀이 되면 힘들다거나 쉬어야 한다는 것이 없어져요. 이것이 가장 잘 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정을 닦는 것조차도 일삼아 합니다. 일을 할 때 힘이 들 듯이 명상도 막 긴장해서 잘하려고 해요. 최고의 휴식이 명상인데, 명상도 일삼아 하니까 명상이 끝나면 하루 종일 쉬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즉석에서 궁금한 점에 대해 현장 질문을 받았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오늘은 낮에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스님의 발걸음에 고단함이 느껴졌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 정토불교대학 강의 준비와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저녁에는 정토불교대학 제2강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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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

귀한 법문 마음에 새깁니다()()()

2022-04-22 11:31:48

실상

정진바라밀은 마음을 순일하게 해서 물러섬이 없이 가되 놀이섬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라는 설명 잘 들었습니다. 한번 하기로 했으면 멈춤 없이 스트레스없이 탁 믿고 꾸준히~!

2022-04-12 08:31:16

지명화

귀한법문 감사합니다.
편안한 가운데 분명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연습 잘 해보겠습니다.

2022-04-08 12: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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