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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제7차 백일기도 중 1일째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제7차 백일기도에 입재하고 첫 번째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전 7시부터 외국인 천일결사자들을 위한 영어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북미 동부에서 5명, 북미 서부에서 6명, 유럽과 아시아에서 5명, 총 16명이 입재를 했습니다. 다 함께 영어로 삼귀의를 했습니다.
“I take refuge in the Buddha. I pay homage and reverence to the Buddha.”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부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I am delighted to learn the Dharma. I vow to practice diligently with the knowledge that everything is the result of my own deeds.”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I am proud to be a disciple of the Buddha. I vow to become a bodhisattva, liberating all sentient beings from suffering.”
(부처님 제자 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땅에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지난 100일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영상과 수행담을 함께 본 후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 천일결사 수행법이 어떤 원리에 의해 짜여 있는지 자세히 설명한 후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외국인 천일결사자들을 환영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 미국, 영국에서 입재한 분들이 각각 하나씩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런던에서 입재한 분은 천일결사의 10대 목표 중 모자이크 붓다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질문했습니다.
“정토회 천일결사의 목표에 ‘모자이크 붓다를 실현한다’ 하는 내용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붓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검소하고, 겸손하고, 당당하고, 지혜롭고, 자비롭고, 능력 있고, 이처럼 많은 붓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붓다를 닮으려면 너무 막막합니다. 붓다의 흉내를 내려면 가족을 버려야 하는데 가족도 못 버리겠고, 직장도 못 놓겠고,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사는 것도 어렵고, 길거리에서 걸식하는 것도 어렵고, 나무 아래에서 자는 것도 어려워요.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붓다를 삶의 모델로 삼고 있다 해도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모자이크 붓다’를 실현하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우리가 붓다의 많은 특징을 다 가지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만 갖자는 운동이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붓다의 특징이 1000가지라면 내가 그중의 하나는 따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거죠. 붓다의 특징 한 가지만 따라 하는 우리들 1000명이 모이면 붓다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비록 세속에 살더라도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조그마한 보시를 행하든지, 남을 돕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든지, 화를 조금이라도 덜 내든지, 이런 일들은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이처럼 붓다의 모양 중의 일부를 닮아보자는 겁니다. 그런 특징 중 하나를 닮든지, 그런 특징 하나 중에서도 1000분의 1을 닮든지, 누구나 조금은 닮을 수 있다는 거예요. 쉽게 설명하면 이런 뜻입니다.
‘붓다의 특징이 1000가지라면 그중 한 가지를 닮아보자. 그것도 어렵다면 그 한 가지 중에서도 1000분의 1은 내가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해서 백만 명이 모이면 우리도 붓다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붓다의 모습에서 그 한 조각을 내가 담당해서 우리 모두가 모자이크 붓다를 만들어 나가자.’
이렇게 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족하지만 정토회라고 하는 상가 공동체는 붓다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자이크 붓다’의 뜻입니다.”
사홍서원으로 입재식을 마친 후 외국인 천일결사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이어서 오전 10시부터는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주간반 전법활동가 40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만일결사를 회향하기 전까지 남은 1년 동안 정토회가 집중해야 할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정토회는 이번 10차 천일결사를 회향하는 동시에 1차 만일결사를 회향하게 됩니다. 1차 만일결사를 회향하기까지 지금부터 13개월이 남았습니다. 남은 13개월 동안 해야 할 일은 지난 30년을 잘 마무리하는 것과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정토회에서는 2차 만일준비위원회도 마련하고, 다음 첫 번째 천일을 준비하는 상임천일준비위원회도 마련해서, 각각 2차 만일과 다음 천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법활동가 여러분은 새로운 준비보다는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죠. 마무리를 잘하려면 처음에 출발할 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출발에 따르는 마무리를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1차 만일결사를 진행해 오는 동안 중간에 합류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법회를 듣고 계신 분들도 대부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가 처음에 어떤 목표로 출발했는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함께 가고는 있지만 ‘남이 장에 가니 나도 거름 지고 장에 간다’ 하는 식으로 그냥 따라가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웃음)
물론 정토회 일반 회원들은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적어도 회원 중 전법활동가는 목표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전법활동가 한 명 한 명이 정토회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온전히 파악하고 있어서 그중 한 사람을 아프리카에 던져 놓아도 거기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자라서 정토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 능력이나 성숙도가 법륜 스님만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법륜 스님과 같은 DNA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똑같은 내용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이것이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우리가 해내야 할 정토회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정토회 회원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지만 제2차 만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법활동가 한 분 한 분이 작은 법륜스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의 관점도 바르게 잡아야 하고, 우리의 원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크기는 작더라도 젖을 주고 밥을 주면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것과 같아요. DNA가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남은 1년 동안 여러분은 작은 법륜 스님이 되기 위한 내용을 충분히 인지하고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남 얘기하지 말고, 세상 얘기도 하지 말고, 나부터 내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나부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법을 전하고, 나부터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절이 있느냐 없느냐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 절을 짊어지고 태어났습니까. 과거에 아도 화상, 순도 화상, 마라난타 대사가 전법을 하실 때 절을 짊어지고 왔습니까. 마음 하나 가지고 와서 이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예전에는 ‘절이 없어서 전법 못 한다’, ‘스님이 없어서 전법을 못 한다’, ‘불교 병원이 없다’, ‘불교 유치원이 없다’ 이런 것들이 늘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변변찮은 노인복지시설 하나 없다고 불평을 하곤 했는데 그것은 불교가 아니고 사회사업입니다.
나부터 수행해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나부터 내 이웃에 전법을 해서 전법사가 되고, 나부터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나라도 해서 실천 활동가가 되어야죠. 부처님도 혼자서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시작해서 다섯 사람, 열 사람, 스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으로 늘어났고, 그래서 승가 공동체가 이루어진 겁니다. 처음부터 다 마련해 놓고 시작한 것이 아니에요. 음식을 얻어먹으면서 시작했고, 옷을 얻어 입으면서 시작했고, 나무 밑에서 자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조건에서 부처님도 하셨는데, 우리가 왜 못하겠어요? 그렇게 혼자서라도 시작해서 변화를 일으켜보자고 시작한 것이 만일결사입니다. 그때 출발할 때 세운 목표는 누구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마다, 즉 전국의 읍면동 3500개에 수행 도량을 만들어서 수행도 하고 전법도 하고 실천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면서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전환했고, 이제는 수행하고 교육하는 것이 온라인으로 모두 가능해졌습니다. 온라인 불교대학, 온라인 경전대학, 온라인 수행법회, 온라인 즉문즉설, 온라인 명상수련, 온라인 교육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여러분의 집과 방이 모두 법당이 되었습니다. 30년 전에 세운 목표가 자기 집을 법당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자기 집을 내놓아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되니 내 집에서 먹고 자면서 온라인이라는 가상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굳이 집을 내놓지 않고도 자기 집을 법당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목표 달성이 아주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온라인으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진행하면서 전법을 하게 되었으니까 법사 수계를 하지 않았는데도 사실은 법사처럼 되었습니다. 이처럼 온라인이 되면서 방식은 조금 바뀌었지만 만일결사의 목표는 이미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 세운 계획이 그대로 실현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의 법당 총무 정도이면 어느 정도 법륜스님의 DNA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지금 온라인 법당의 총무 격인 전법활동가 여러분이 그 정도 준비까지 되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은 1년 동안은 교육과 연수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활동도 필요하지만 자기 정진이 매우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각자 자신이 맡은 소임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정토회가 세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가입니다. 정토회가 세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 소중합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의 수행 정진이 깊어질수록 모자이크 붓다가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 명 한 명이 불가능하면 목표 성취를 못하게 되는 것이고, 한 명 한 명이 가능하면 목표 성취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백일기도 기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지역 실천 활동의 방향에 대해 한 명이 질문하고 스님이 답변한 후 전법활동가 법회를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감을 땄습니다. 차가 지나다니는 골목길에 감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길 위에 달린 감만 우선 따기로 했습니다.
긴 장대를 이용해서 감이 달린 나뭇가지를 탁탁 꺾어서 아래로 내렸습니다. 아래로 내린 감은 모양이 다치지 않게 나뭇가지를 제거해 주고, 주황색 감만 박스 안에 나란히 담았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공동체 성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온라인 공청회를 시작했습니다. 여름 안거 이후 말석에 앉은 바라지가 최대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발우공양 작법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실험 중인데요. 그동안의 쟁점에 대해 유수 스님의 발표를 듣고, 전체 구성원들의 의견도 수렴했습니다.
이어서 2차 만일결사 방향, 농사와 유통, 으뜸절의 장기적인 비전에 대해 각 위원회에서 토론한 내용을 발표하고 스님의 조언도 함께 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연극, 영화, 방송, 문화 예술인들이 봉사하는 수행모임 길벗 회원들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해마다 여의도에서 열리던 강연이 코로나 확산 이후 작년부터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 마련된 방송실에서 200여 명의 방송·영화·연극인들과 온라인으로 만났습니다.
요즘 스님의 일상을 영상으로 보여준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다섯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3년 전에 스님에게 했던 질문을 상기하며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3년 전에도 이 문제를 스님께 질문드린 적이 있는데요. 아내의 명령조의 말에 욱 하게 됩니다. 아내가 어릴 때부터 농구부 주장을 했고 20년 정도 운동을 해서 일상생활을 할 때 제게 굉장히 명령조로 얘기해요. ‘10시까지 있을 거 아니면 내려오지 마’ 이렇게 굉장히 단호하게 얘기하면 저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욱 하게 됩니다.
3년 전에 스님은 ‘예, 선배님!’이라고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6개월 정도를 정말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아내가 명령조로 ‘이거 하지 마!’ 이러면 ‘예, 선배님!’이라고 답해서 저도 웃고 아내도 웃으면서 장난처럼 잘 넘어가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정말 화가 나는 가운데 이를 꽉 깨물고 ‘예, 선배님!’ 하게 되었고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방에서 아이가 울어서 아내와 제가 같이 가려고 할 때 아내는 ‘좀 있다 와. 10시까지 애 볼 거 아니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순간 욱 했지만 아내가 나가고 생각해보니까 좋은 뜻인 건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보면 두세 시간은 놀자고 매달릴 테니까 좀 더 쉬다가 오라는 뜻이구나. 나를 배려한 뜻인데 말투가 그렇구나.’
그때는 이렇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이라도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런 말에 욱 해서 ‘뭐라고?’ 하면서 싸우게 됩니다. 그러면 아내는 더 정색하게 되고요. 아내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싶어서 이렇게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아내가 경상도 사람이에요?”
“아뇨, 서울 사람입니다. 오히려 제가 경상도 사람이에요.”
“서울 사람이 어떻게 그럴까요? 부모님 중에 경상도 분이 계신가요?”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보기에는 어릴 때부터 농구부 주장을 20여 년간 했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된 걸 어떡하겠어요? 3년 전에는 ‘예, 선배님’ 하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약발이 다 떨어졌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다른 말을 줄게요. ‘영어야!’ 이렇게 해보세요. 저 말은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라는 뜻이에요.” (웃음)
“불편함이 딱 느껴질 때 저 말은 영어라고 생각해 보라고요?”
“명령조로 하는 말 자체를 영어라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 내가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데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 개 같은 놈!’ 이러면 외국인은 내가 욕하는 줄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모르겠죠.”
“그런데 내가 확 인상을 쓰면서 ‘사랑해!’ 이러면 외국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욕하는 줄 알겠죠.” (웃음)
“그래요. 말이라는 형식은 사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말을 담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아내는 그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그걸 어떡하겠어요? 그걸 시비하면 죽을 때까지 시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말을 할 때 인상을 쓰면서 말하거든요.”
“그러면 이제 헤어지는 수밖에 없죠.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살아요? 농구장에 있을 때 농구선수처럼 행동해야지, 왜 집에서 남편한테 농구팀 주장 노릇을 해요? (웃음)
주로 학교 선생님들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학교 선생님인 아이들이 오히려 좀 문제가 있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아이들은 비록 학교에서는 선생님한테 야단맞을 수도 있지만, 집에 오면 엄마나 아빠와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직업이 선생님인 사람은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다 보니 집에 와서도 자기 아이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선생님 역할을 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심지어 명절에 외갓집에 가도 친척 아이들이 어느 방에 누가 자는지 다 정해주고 눕는 순서까지 정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 번째, 아무개! 두 번째, 아무개! 세 번째, 아무개!’ 이러는데,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내도 20년 동안이나 선수 생활을 했다면 습관을 고치기가 매우 어려울 거예요. 나중에 아내를 즉문즉설에 한번 보내주세요. 그러면 제가 ‘같이 살려면 고쳐라’ 이렇게 얘기할게요. (웃음)
그런데 워낙 오래된 직업병이라 고치기가 어려워요. 진의가 아니라 그런 말버릇이 습관이 된 것이라면 질문자가 ‘아내는 영어를 한다. 저건 영어다’ 이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인이 영어를 하듯이 아내는 그런 말버릇이 있는 겁니다. 아내가 쓰는 언어가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중국어라고 생각하든지, 영어라고 생각하든지 상관없어요.
어쨌든 ‘저건 영어야!’ 이렇게 한번 받아들여 보세요. 그러면 또 몇 달은 괜찮을 거예요. 그러다 약효가 떨어지면 ‘저건 중국어야!’ 또 이렇게 받아들이고요. 그래도 안 되면 그땐 제가 또 다른 말을 해드릴게요.” (웃음)
“아내와 육아를 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많이 듣고 나면 숨이 찹니다. 그럴 때마다 제 ‘동굴’로 도망가고 싶어요. 등산을 가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간절해집니다.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한량이셔서 가족을 다 팽개치고 평생 혼자 놀러 다니셨거든요. 저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커서, 혼자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죄책감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갑갑함의 연속이에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아내의 말을 듣고 따르기가 어렵고요.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디에 가야 해’ 이렇게 육아 스케줄을 막 정해 줍니다. 아내가 제 템포보다 너무 빨라서 숨이 찹니다.”
“모든 생활에서 다 그래요? 아니면 육아 관련해서만 그래요?”
“세탁물 찾아오는 일에 이르기까지 일반 가정사에서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른 건 다 좋은 사람입니다.”
“옛말에 ‘기술자는 곤조가 있다’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곤조는 근성이라는 일본말입니다. 기술자는 다 한 성격 한다는 뜻이에요. 어떤 사람이든 자기가 그 분야에서 잘 알게 되면 남의 말을 잘 안 들어요. 자기가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은 음식과 관련해서 아무리 말해봐야 그냥 귓등으로 듣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음식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또 부산이 고향인 사람들은 아무리 옆에서 길을 알려줘도 그냥 귓등으로 듣습니다. 부산 지리는 자기가 잘 알거든요.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이렇게 깨닫게 됩니다.
‘아,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전문인 것은 남의 말을 잘 안 듣는구나.’
이럴 땐 상대방의 권위도 상관없어요. 그 분야는 누가 뭐래도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성격적으로 고집이 센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본인이 그 분야를 잘 알 때 고집이 생기는 거예요.
육아는 질문자보다 아내가 더 잘 알잖아요. 살림에 대해서도 아내가 더 잘 알잖아요. 그래서 아내가 질문자에게 지시를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질문자는 전문가 말을 들어야 할까요, 안 들어야 할까요?”
“전문가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요. 그러니 아내가 이것저것 시킬 때마다 ‘전문가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 아내가 지시할 때마다 ‘영어다’, ‘전문가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그 분야에서는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 아내가 전문가이니까 아내의 말은 전문가의 말입니다. 그러니 ‘알았습니다’ 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자꾸 해보세요. 명령조로 말하는 건 ‘저건 영어다’ 하고 받아들이고, 이것저것 시키는 건 ‘전문가 말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약발이 몇 달이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세요.”
“예, 해보겠습니다. 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웃음)
이어서 스님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자,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실 분 있습니까? 부부지간의 성격적인 문제나 버릇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꾸 욱 하게 되는 분이 있으면 경험담을 얘기해보세요.”
아이를 안고 있는 부부가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자리에 고민을 털어놓으신다는 것 자체가 아직 아내를 많이 사랑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고치려는 노력이 참 대단하세요.” (웃음)
“예, 감사합니다.”
즉문즉설을 다 마치고 나서 질문자들의 소감 한 줄도 들어보았습니다. 한층 밝아진 질문자들의 얼굴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최한 길벗 모임 대표인 노희경 작가님이 마무리 인사말을 했습니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입니다. 저도 아침에 눈뜨면 ‘오늘 해야 할 일이 뭐지?’라는 생각부터 해요. 마치 무슨 도장 깨기를 하는 양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지? 오늘 내가 스케줄 잡은 것들이 어떻게 처리되지?’ 이렇게 바쁘게 살다가도 오늘처럼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정신이 차려집니다.
‘아, 내가 사는 목적이 일하는 것이나 도장 깨기가 아니라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었지. 행복하려고 내가 살고 있지.’
오늘도 법문을 들으면서 내가 사는 목적이 ‘지금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챙길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좋은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다음 길벗 법회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산 윗밭에 올라가서 쇠똥 거름을 뿌리고 땅을 갈고 밭을 정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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