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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11월이지만 날이 따뜻해지면서 때 아닌 때에 곳곳에 장미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인연 있는 분들에게 수확한 농산물을 선물하기 위해 인근 지역을 오전 내내 방문했습니다.
오늘은 쇠똥 거름을 주는 날입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쇠똥 거름을 주기 위해 농사팀 행자님들과 함께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먼저 덤프트럭이 쇠똥을 가득 싣고 산을 올랐습니다.
밭에 도착한 트럭이 적재함을 경사지게 세우자 쇠똥이 미끄러지듯이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좋아요. 이 상태에서 앞으로 조금씩 가보세요. 나머지는 삽으로 퍼서 뿌립시다.”
쇠똥 냄새가 온 밭에 풍겼습니다. 트럭이 크게 쇠똥을 흘려놓고 가면 스님과 행자님들이 삽으로 쇠똥을 퍼서 힘껏 밭으로 흩뿌렸습니다.
쇠똥이 오랫동안 굳어 있어서 그런지 트럭의 적재함의 기울기를 70도까지 기울였는데도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행자님이 적재함 위에 올라가서 삽으로 쇠똥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아이고, 땀이 많이 나네요.”
땀이 많이 나서 스님은 조끼를 벗고 나서 계속 삽질을 했습니다.
마지막에 트럭에서 내린 쇠똥 한 무더기는 너무 굳어 있어서 삽으로도 쉽게 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일인당 삽질 스무 번 씩만 하면 쇠똥을 다 풀 수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전체가 붙어서 삽질을 스무 번씩 했습니다.
“자, 끝이 보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남은 쇠똥 무더기는 아무리 삽으로 푸려고 해도 너무 굳어 있었습니다. 멀리 뿌리기에도 혼자서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스님이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끈을 좀 가져와 보세요.”
“우와, 이건 옛날에 공사장에서 어른들이 하던 방법을 봤는데...” (웃음)
스님이 끈을 삽에 묶고 양쪽에서 끈을 잡아당길 수 있게 장치를 하자 훨씬 수월하게 쇠똥을 풀 수 있었습니다.
“자, 쇠똥을 푸세요. 우리가 양 옆에서 끈을 잡아당길게요.”
“으랏찻!”
쇠똥이 저 멀리까지 휙휙 날아갔습니다.
“잘했어요.”
삽질이 훨씬 수월해지자 행자님들의 얼굴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남은 쇠똥을 밭 전체에 골고루 뿌렸습니다.
이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남은 일은 트랙터가 지나가면서 땅을 가는 일입니다. 트랙터가 큰 소리를 내며 한 줄씩 왕복하며 땅을 갈았습니다.
아랫단에서 트랙터가 땅을 가는 사이에 스님과 행자님들은 윗단으로 올라가서 도라지 밭에 퇴비를 뿌렸습니다.
각자 퇴비를 한 포대씩 들고 이동해서 띄엄띄엄 포대를 놓았습니다. 포대를 하나씩 뜯어서 골고루 뿌렸습니다.
“여기에 도라지를 옮겨 심으려고 해요. 도라지는 땅 속에 너무 오래 두면 썩거든요. 그래서 옮겨 심어줘야 해요.”
도라지를 지금 옮겨 심어도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개만 실험 삼아 캐 보기로 했습니다.
몇 개만 삽으로 캐 보았는데 생각보다 도라지가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1년밖에 안 되었는데 제법 많이 컸네요.”
도라지가 삽으로 캐기는 어려울 정도로 컸습니다.
“크기가 작은 줄 알고 삽으로 펐더니 도라지가 삽에 다 찍혔어요. 크기가 한 뼘보다 훨씬 더 커요.”
“포클레인으로 캐낼까요?”
“조금 더 연구를 해 봅시다.”
일단 삽질한 곳에 난 도라지만 일부 캐낸 후 첫 수확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첫 수확한 도라지는 내일 두북 공동체 점심 식사에 내서 다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아랫단을 보니 트랙터가 밭을 고루 잘 갈아 놓았습니다.
“수고했어요. 밭이 잘 만들어졌네요.”
행자님이 새로 간 밭에 무엇을 심을지 물어보았습니다.
“스님, 이 밭에는 무엇을 심으면 좋을까요?”
“산 위에 있는 밭이어서 올라오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냥 도라지를 다 심으면 어떨까 싶어요.”
트랙터를 운전하는 행자님은 윗단에 올라가서 퇴비를 뿌려 밭갈이 작업을 하기로 하고, 스님과 행자님들은 다 함께 산을 내려왔습니다. 추수가 끝난 논밭에는 마시멜로처럼 생긴 흰색의 원통이 갑자기 많아졌습니다. 탈곡을 끝낸 볏단을 동그랗게 말아놓은 것입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엊그제 길벗 강연에서 있었던 못한 즉문즉설을 하나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행동을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예전에 잘못했던 게 생각나요. 예전에 술 취해서 잘못한 것처럼 굉장히 오래전 일도 계속해서 생각이 나고, 그냥 생각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 그런 실수를 하다니 난 죽어야 해’ 이렇게 자꾸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에 적게는 두세 번에서 네다섯 번까지 떠오르고, 그런 말이 속으로 나옵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고민입니다.”
“고민할 것 없습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상담하면 약을 좀 줄 거예요. 약을 먹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져요. 좀 신경이 예민한 상태입니다. 이런 건 마음을 아무리 결심해도 안 돼요. 저절로 자꾸 생각이 그리로 가기 때문이에요. 우울증까지는 아니라도 지금 굉장히 예민한 상태예요. 그대로 두면 진짜 우울증이 되거나,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진짜 죽을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해보세요. 진료를 받아보면 약을 좀 줄 거예요. 약이라도 먹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기 때문에 효과가 있어요. 약이라고 해서 무겁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흥분된 신경을 조금 가라앉혀주는 안정제입니다. 먹으면 약간 졸리는 증상이 있긴 하지만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지내면 훨씬 더 상태가 좋아져요. 응급 치료법은 이렇게 병원 진료를 받는 겁니다.
그다음 방편은 병원 진료를 받는 걸 전제로 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다리가 부러졌으면 일단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해야 하잖아요. 다리가 부러졌는데 기도한다고 낫지는 않습니다. 일단 깁스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재활치료를 해야 합니다. 움직이거나 걷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재활치료는 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은 다음에 할 일입니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서 이 병이 그렇게 큰 병도 아니에요. 신체로 치면 감기 중에서도 조금 심한 감기에 걸린 정도예요. 감기는 그냥 놔둬도 낫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폐렴으로 가면 안 되니까 병원에 가서 치료받잖아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과 의논하면 그냥 가벼운 치료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은 진료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건 과대망상증이에요. 나도 모르게 내가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실수하는 나를 내가 용납하지 못하는 겁니다. 현실에 있는 나는 술 먹고 취할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성인군자인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실수하는 현실의 나를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꼴을 하고 있는 나를 죽여 버리고 싶은 거예요. 자아가 분리돼서 그렇습니다. 현재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해야 하는데, 상상 속의 자기를 자기도 모르게 너무 높이 그리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현실에서 실수하는 자기를 부정하고 싶은 겁니다.
이 간격을 좁히려면 현실에서 실수하는 자기를 질문자가 좀 받아들여야 해요. 성인군자처럼 여기고 있는 환상의 자기를 좀 버리고요. 자기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첫째, 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나라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수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기도해 보세요.
둘째, 동시에 함께 기도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이만하면 아주 좋습니다’입니다. 즉, 현실 속의 자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을 통해 이상 속에서 높게 평가된 자기를 버려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만해도 좋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자기를 수용해야 합니다. 하나는 환상의 자기를 버리는 작업이고, 하나는 현실에 있는 자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입니다. 이 두 가지를 수행과제로 삼아서 해야 해요.
매일 108배를 하면서 ‘저는 이대로 행복합니다’ 하는 것과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는 것, 두 가지를 꾸준히 해보세요. 정반대 같지만 사실은 모두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는 것은 환상의 자기를 버리는 작업이고, ‘저는 이대로 좋습니다’ 하는 것은 현실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작업이에요. 이 두 가지를 과제로 삼아서 정진을 해보세요. 그러나 먼저 응급치료를 받고 난 다음 이걸 해야 합니다. 응급치료를 안 받으면 기도를 해봐도 큰 진전이 없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있거나, 영양이 부족하거나, 뭔가 이상이 있는 것인데, 자꾸 마음을 결심하고 다잡는 것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너무 힘듭니다. 일단 병원에 가서 체크를 먼저 해보는 게 좋아요. 병원 치료를 선행하되, 근본적인 치료는 자기 허상을 버리고 현실의 자기를 수용하는 수행을 하는 겁니다. 두 가지를 겸해야 합니다.”
“아직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어요. 방금 병원에 가라고 하셨는데, 병원에서 주는 약이 혹시 부작용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부작용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부작용이 있다면 졸리는 것밖에 없어요. 신경 안정제이기 때문에 졸리고 좀 멍해져요. 수면제를 먹은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니 약을 먹을 때는 일찍 자야 해요. 졸리면 그냥 자야지 자꾸 다른 일을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신경이 긴장되고 흥분되어 있기 때문에 푹 쉬어줘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사람들한테 양해를 구해야 해요.
‘제가 지금 조금 몸이 안 좋습니다. 앞으로 졸리거나 피곤하면 아무 때라도 가서 쉴 수 있게 조금 양해해주세요.’
이렇게 미리 딱 얘기해 두면 됩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적응해서 괜찮아지는데 초기에는 좀 멍하고 늘 졸음이 오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건 부작용이 아니라 약이 안정제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정도는 감수하셔야 합니다. 그런 작은 불편은 있지만 대신에 약을 먹으면 자살 충동이 있는 사람도 자살을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약을 안 먹으면 대부분 어떤 순간에 딱 충동이 일어나면 자살해버리는 일이 생기거든요.
질문자는 아직 그렇게 심한 상태가 아니고 초기 상태이니까 약을 장기적으로 먹지 않아도 될 거예요. 응급치료부터 먼저 하고, 제가 말한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정진하면 금방 좋아질 거예요.”
“감사합니다.”
내일은 아침에 고추 따는 울력을 한 후 하루 종일 정토대전 사상팀 법사님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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