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4. 전법활동가 법회, 백일출가 참가자 간담회
"결혼생활이 자취생활보다 못해 지는 이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늘도 스님은 밤을 주우러 밤나무 숲으로 가서 떨어진 밤송이를 찾았지만 이전처럼 많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밤 줍기를 그만둬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끝물이에요.”

주워온 밤을 물에 담가 놓은 후 어제 주운 알밤을 분류하는 일을 했습니다.

알밤을 평상에 펼쳐놓고 벌레 먹은 것과 깨끗한 것을 구분했습니다.

“열심히 줍는다고 주었는데 절반 이상이 벌레가 먹었네요.”

고르고 골라 깨끗한 알밤만 선물용으로 따로 모았습니다. 선물용 알밤을 더 모아야 하는데 개수가 부족했습니다.

“운동 삼아 산에 한 번 더 갑시다. 조금 더 밤을 주워오면 될 것 같아요.”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다시 산길을 올랐습니다.

“아이고, 숨이 차요. 좀 쉬었다 갑시다. 평지를 걷는 건 아무 이상이 없는데 오르막길만 걸으면 가슴이 따끔따끔해요.”

잠시 쉬었다가 오르기를 반복하며 큰 밤나무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역시나 아무리 뒤져도 새로 떨어진 밤송이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누가 이미 다 주워간 것처럼 빈 껍질만 무성하네요. 운동 삼아 걷는 셈 치고 조금 더 가봅시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조금씩 알밤을 더 줍는 것을 제외하고 예전처럼 풍성하게 밤을 줍지 못했습니다.


“내려갑시다. 오늘로 밤 줍기는 끝내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은 오랜만에 밤 줍기가 아닌 새로운 일을 했습니다. 제피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려 있는데 열매를 모두 따기로 했습니다.


가위로 하나씩 잘라서 바구니에 담는데, 나뭇가지가 무성해서 가시에 찔리기가 쉬웠습니다. 스님은 전지가위를 가져와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햇살이 뜨거워서 땀을 흘리며 가지치기를 마쳤습니다.

“스님, 법회 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어요. 지금 내려가야 합니다.”

제피나무 열매 따기를 다 끝내지 못하고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10시 정각에 전법 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오전과 저녁에 각각 주간반과 저녁반을 위한 전법 활동가 법회가 따로 열리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전법 활동가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스님은 30년 전 처음 정토회를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며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30년 전에 정토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법당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전국 시군구와 읍면동에 수행 도량을 하나씩 만들어서 이 땅에 부처님의 정법을 실현해보자는 원을 세웠습니다.

‘내가 사는 집이 법당이 되고, 내가 법사가 되고, 내 가족들과 친지들이 수행자가 되도록 해보자.’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그때는 법당을 만든다고 생각할 때 오프라인 법당 밖에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내 집을 법당으로 만들고, 내가 법사가 되고, 내 가족과 이웃을 도반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차 만일결사의 꿈

그런데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면서 이 꿈이 한꺼번에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방이 법당이 되었고, 여러분이 불교대학과 경전 대학을 진행하니까 이미 법사에 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만일의 꿈이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온라인 정토회로 바뀌면서 한꺼번에 목표에 도달한 겁니다.

지난주에 대중부 선출직 임원진이 새로 구성이 되었고, 지원국의 임명직 임원진도 구성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지부에서 수행을 지도하는 지부 법사가 지회 담당 법사를 겸임했는데, 법사 활동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지회별 담당 법사를 각각 임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로써 이제 대중부는 대표-지부-지회-모둠 이렇게 구성이 되었고, 수행을 관장하는 법사단은 전국법사 회의-지부법사 회의-지회법사 회의 이렇게 구성이 되어 양쪽이 균형을 맞추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부처님 당시 승가 운영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할 수 없었는데, 온라인 정토회가 되면서 구성원 전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직접 민주주의라는 승가의 전통도 도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위드(with) 코로나 이후의 정토회

이렇게 해서 온라인 정토회의 큰 틀이 잡혔습니다. 오프라인으로 듣던 법문을 온라인으로 옮긴 정도의 변화에서 이제는 회의와 조직운영까지 온라인으로 모두 전환했습니다. 11월 즈음에 위드(with) 코로나로 국가 정책이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러면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사회 활동이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으뜸 절에서의 실천 활동,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을 다시 재개가 되고, 지역에서의 실천 활동도 가능해지면, 현재 온라인이 갖는 한계를 오프라인 활동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빠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오프라인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또 어떤 변이 바이러스가 나와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죠. 그러면 현재 하고 있는 형태를 유지하면서 오프라인 활동에 대한 계획을 유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상대로 오프라인 활동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서 실천 활동까지 병행해 나간다면 온라인 정토회에 대한 실험이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시스템은 전부 구축이 됐습니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만 남았습니다. 남은 과제는 전법 활동가 여러분들이 지회장, 지회 담당 법사님과 함께 의논해서 잘 운영해 나가 주십사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지금 많은 실험을 하고 있고, 이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우리가 가고 있다 보니까, 여러분들이 망설이기도 하고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정토회가 늘 시대를 앞서 왔듯이 코로나로 인한 변화의 시기에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앞서가기 위해서는 항상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책임을 지면서 나가야 합니다.”

이어서 법사 단장, 지부 법사, 지회 법사로 누가 배정이 되었는지 법사단장인 무변심 법사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이제 정토회는 전법활동과 실천 활동을 해나가는 모둠, 지회, 지부로 이루어진 대중부와 수행을 관장하는 법사단이라는 이원 체제를 완결적으로 갖추게 되었습니다. 새로 배정된 법사단의 소감을 한 마디씩 듣는 시간을 가진 후 힘찬 박수와 함께 온라인 정토회를 정식으로 출발했습니다.

전법 활동가 법회가 끝나고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오전에 하던 밤 분류작업을 이어서 했습니다. 깨끗한 밤과 벌레 먹은 밤을 분류한 후 깨끗한 밤만 선물용으로 따로 모았습니다.

“나이 드신 노보살님들에게 선물로 하나씩 보내드리려고 해요. 스님이 직접 주워서 보냈다고 하면 노보살님이 기뻐하지 않을까요?”

스님은 밤을 잘 말리려고 수건으로 두 번 세 번 닦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밤만 모아서 선물용으로 포장을 했습니다.

“지금 몇 개를 포장했어요?”

“70개 다 포장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지난 2주 동안 스님은 매일 아침마다 부지런히 밤을 줍고 삶았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나서 가장 소외된 분이 노보살님들입니다. 한 분이라도 놓치지 않고 선물을 보내드리려고 하는 스님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 밤 작업은 오늘로서 끝입니다.” (웃음)

이어서 아침에 가지치기를 해 둔 제피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작업을 했습니다.

“제피는 따자마자 바짝 말려서 바로 가공을 해야 향이 좋아요.”

열매를 다 따낸 후 남은 제피나무는 가지런히 다듬어서 땔감나무 두는 곳에 쌓았습니다. 잎사귀는 해우소에 모아 두었습니다.

“제피나무 잎사귀를 해우소에 두면 해우소 냄새가 사라져요.”

다 고른 제피 열매는 햇볕에 잘 말렸습니다.

밤 포장이 완료된 것은 저온 냉장고로 옮긴 후 스님은 비닐하우스 뒤에 저수지 물이 들어오도록 장치한 호스 연결을 다시 보완했습니다. 폐자재를 재활용하다 보니 연결 부분이 자꾸 터지는 문제가 발생했는데, 연결 부위에 부품을 교체하고 잠금장치를 해서 더욱 튼튼하게 보완을 했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해가 지자 스님은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6시 20분부터는 백일출가에 입재한 행자님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두북 수련원에서 일체의 장을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학교 건물 뒤에 차고 만드는 일과 겨울용 땔감을 자르고 쌓아놓는 일을 했습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백일출가를 하게 되었는지 한 명 한 명에게 물어본 후 어떤 관점을 갖고 백일 동안 지내야 하는지 수행의 방향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두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백일 출가한 지 얼마나 됐어요?”

“3주 정도 지났어요.”

“한참 힘들 때네요. (웃음) 이제 적응이 조금씩 되고 있어요?”

“네, 생활에는 많이 적응됐어요.”

“3주 동안 살아보니까 많이 힘들어요?”

“네.”

“직장생활보다 힘들어요?”

“네.” (웃음)

“직장생활을 하면 돈도 주는데 그냥 직장생활을 하지, 왜 돈을 쓰면서까지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려고 해요? 이제 와서 후회돼요?”

“가끔요.”

“솔직해서 좋네요. 평소에는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 이렇게 행자생활을 해보면 ‘직장생활이 수월하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마음을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잘 살 거예요. 그런데 이 마음이 계속 유지될까요?”

“아니요.” (웃음)

“직장을 다닐 때는 직장생활이 힘들지만, 직장을 그만 두면 또 직장 다니는 사람이 부러워집니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안 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이 부럽고,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결혼 안 한 사람이 부러워집니다.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바보 같이 왜 결혼을 했던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

수많은 정토행자들이 백일출가를 한 번 해보는 게 꿈이에요. 그런데 정작 백일출가 한 사람들은 출가 생활이 힘드니까 또 후회를 해요. 또 백일출가를 하는 지금은 힘들지만 지나 놓고 보면 또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나중에서야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게 수행입니다.

여러분도 백일출가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면 다시 ‘백일출가할 때가 의미도 있었고 좋았다’ 이렇게 느낄 거예요. 그런데 지나 놓고 나서야 좋은 줄 알지 말고, 지금이 좋은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지금 여기에 깨어있기’ 예요. 늘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이 중요한데 그게 참 잘 안 되죠. 늘 지금은 힘들게 느껴져요.

물론 지금이 좋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어요. 놀러 가거나, 술을 마시는 등 쾌락을 즐기는 건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지금이 좋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런 쾌락은 지나 놓고 나서 대부분 후회를 합니다. ‘내가 그때 왜 그렇게 시간을 낭비했을까?’ 이러면서 아쉬워해요.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면 곧 괴로움이 도래하기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이 늘 뒤바뀌는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즐거움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고, 수행을 하면 조금 달라질까 싶어서 공동체에 들어왔는데 들어와 보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히려 이곳 생활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백일출가, 명상, 깨달음의 장 등 수행을 직접 해보면 그 당시에는 힘이 들지만 늘 지나 놓고 보면 좋습니다.

세상살이가 힘들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나가서 살아도 괜찮습니다. 직장 다니는 것도 재미있고, 결혼생활도 재미있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재미있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요. 여기서 재미있다는 것은 쾌락적인 즐거움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생활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것을 의미해요.

‘시간 남을 때 일하지 놀면 뭐하나’
‘아이 키우는 게 뭐가 힘드나? 내가 밥 먹을 때 아이 밥 숟가락 하나 더 얻으면 되지’
‘혼자 살아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여야 하는데 한 사람 더 있으면 어때? 비용도 절감되고 좋지’

이렇게 생각하면 힘들 일이 별로 없어요. 학교 다닐 때도 혼자 자취생활하는 대신 두 사람이 같이 자취를 하면 밥도 둘이 번갈아 가면서 하고, 방 청소도 번갈아 가면서 하고, 방세도 나누어 내니까 서로에게 이익이 되잖아요. 아무런 애정이 없어도 이렇게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공동으로 자취생활을 하는데,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있으면 같이 생활하기가 훨씬 쉽겠지요.

결혼생활이 자취생활보다 못해 지는 이유

그런데 실제로 결혼을 해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자취생활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애정이 있는 사람들끼리 같이 사는 데도 낯선 사람과 같이 자취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낯선 사람에게는 기대를 안 해요. 각자 자기 일만 하지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는지, 도와주는지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족 간에는 그런 기대를 하기 때문에 도리어 같이 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결혼했다가 같이 살기가 힘들어서 헤어지고 결국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도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천하 만물을 보면 전부 혼자서 살아갑니다. 산에 가서 동물들을 한 번 보세요. 둘이 같이 살아요, 혼자서 살아요?”

“혼자 살아요.”

“다 혼자 삽니다. 그런데 사람이 혼자 사는 게 뭐가 힘들 게 있겠어요? 직장 생활하는 것도 뭐가 그렇게 힘들어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고민인데요.

또 요즘 학생들은 공부하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책을 봤어요.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밥 먹고 공부만 하는데 뭐가 그리 힘들어요?

이렇게 지금 생활이 힘들지 않은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결혼을 해도 문제가 없고, 직장생활을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힘든 사람들은 오히려 출가해서 공동체 안에 살아야 해요. 여러분 중에도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공동체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는데, 만약 공동체 안에서도 사는 게 힘들다면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합니다. (웃음)

스님은 농사를 지어도 힘이 안 들고, 법문을 해도 힘이 안 들고, 등산을 해도 힘이 안 들고, 오지를 다녀도 힘이 안 들고, 말이 안 통해도 힘이 안 들어요. 저처럼 여기서 살면서 이곳 생활이 하나도 힘이 안 들 정도가 되면 밖에 나가서 살아도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곳 생활이 지금 힘들다는 거잖아요.

여기서 지내면서 농사를 지어도 괜찮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괜찮고, 친한 사람을 만나도 괜찮고, 낯선 사람을 만나도 괜찮고, 이 사람을 만나도 괜찮고, 저 사람을 만나도 괜찮으면, 그때부터는 바깥에서 연습을 해봐도 돼요. 여기에서 그 정도가 되어도 막상 밖에 나가서 실전에서 부딪히면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이곳 생활이 벌써 힘들다고 하면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요. 밖에서 살다가 힘들어서 들어왔는데 이곳도 힘들다고 하면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웃음)

참선하고 염불 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을 만나든 처음에는 약간 흔들릴 수 있지만 이내 ‘그래, 그런 사람도 있지’ 하고 같이 지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즉 걸림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날씨가 추우면 옷 하나를 더 입고, 날씨가 더우면 옷 하나를 벗는 것처럼,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거예요. 고단하면 조금 쉬고, 졸리면 조금 눈 붙이고, 배고프면 밥 먹고, 또 배가 고프지만 상황이 안 되면 못 먹을 때도 있는 겁니다. 밥을 꼭 제시간에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시간에 먹을 수 있으면 먹고, 먹을 수 없으면 못 먹는 거죠. 이런 게 진정한 자유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자유가 아니에요.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건 오히려 욕망에 얽매여서 속박을 받는 상태입니다.

출가를 했는지, 가출을 했는지 판단하는 방법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동안 이런 연습을 많이 해봐야 합니다. 바깥 생활이 힘들어서 여기에 들어왔는데 여기서도 힘들다고 하면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요. 그렇게 되면 출가가 아니라 가출이 됩니다. 밖에서 힘들어서 들어왔다가, 다시 이곳 생활이 힘들어서 밖에 나가면, 나중에 바깥 생활이 힘들어서 다시 들어오게 되고, 이렇게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게 돼요. 청소년들이 힘들어서 집을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하면 가출이 됩니다. 세속에서 이곳에 들어오거나,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세속으로 나가게 되면, 더 이상 오고 가지 않고 그 자리가 그대로 좋은 상태가 되는 것, 그것이 출가입니다. ‘출가’는 곧 자유를 의미합니다. 만약 바깥 생활도 힘들고, 이곳 생활도 힘들다면, 지금 ‘백일출가’를 한 게 아니라 ‘백일 가출’을 한 거예요. (웃음)

가출을 했다면 이보다 더 나은 집을 또 찾게 됩니다. ‘구관이 명관이다’ 하는 말처럼 ‘그래도 집이 나았다’, ‘지난번 직장이 더 나았다’, ‘지난번 그 사람이 더 나았다’ 이렇게 또 과거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출가는 굴레를 벗어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집을 찾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곳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가 어떻게 지내든 각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나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데, 설령 누군가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나는 잘 안 지키더라도 다른 사람이 안 지키는 건 못 봐줘요. 이게 최하수입니다. 중수인 사람은 내가 규칙을 잘 지키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지키라고 강요합니다. 상수는 나는 지키되 다른 사람이 안 지키는 건 그 사람의 문제니까 지키면 좋지만 안 지켜도 괜찮다는 자세로 열려있는 겁니다.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열려 있어야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내가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연습을 여기에서 해야 합니다.

힘이 들면 우리들의 생각이 바뀝니다. 그때 힘든 것에 빠지지 말고 내가 여기에 왜 들어왔는지를 다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지금 행자님들이 힘들어하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그때 생각을 탁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이 백일출가를 하려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는데 이제 와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렇게 돌이켜서 그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해요. 이곳에서 같이 지내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데도 마음이 상한다면 직장생활을 하기는 더 힘듭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끼리 모였는데도 다른 사람을 보고 ‘꼬락서니가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앞으로 어떻게 세상살이를 할 수 있겠어요? 여기서 되어도 막상 밖에 나가면 잘 안 될 수 있는데, 여기서 안 된다면 밖에 나가서 안 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백일출가의 목표

백일출가의 목표는 어떤 활동을 하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절을 하든,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그 과정에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후회가 되면, 그 순간 ‘내가 지금 놓쳤구나’ 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번 백일의 목표는 누구와 무슨 일을 하라고 해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길 가는 사람과 살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무슨 일을 하라고 해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 정도가 되면 백일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주어진 조건이 이런 조건이면 이렇게 살고, 저런 조건이면 저렇게 살고, 이런 일을 해야 하면 이 일을 하고, 저런 일을 해야 하면 저 일을 하는 거예요. 오늘 이 일을 하기로 했는데 일정이 바뀌면 투덜대지 말고 그때 주어진 일을 그냥 하면 됩니다. 어차피 이 일을 하든 저 일을 하든 해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하든 차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은 ‘오늘 이 일을 한다’ 하고 정하면 그 생각이 굳어져서 다른 일을 하기로 변경하면 ‘왜 이 일을 하기로 해놓고 저 일을 하느냐’ 하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또 역할분담을 하고 나면 내 일과 네 일을 따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을 계속 바꾸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러면 ‘천하 만물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저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구나’ 하고 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자유로운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간담회를 마치고 곧바로 방송실로 이동해 7시 30분부터 저녁반 전법 활동가를 위한 수행 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녁에는 오전처럼 새로 배정된 법사단을 발표한 후 온라인 정토회 출범이 갖는 의미와 앞으로 남은 과제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법문을 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 중에서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눈 후 법회를 마쳤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도문 큰스님이 계신 부산 중생사에 들러 농산물을 드린 후 오전에는 장수 죽림정사에서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법회에 참석하고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1

0/200

김나무


그리하겠습니다

2021-10-15 03:31:57

배지연

몇가지읽어보는데 답정너같긴하지만 맞는말이여요 ~ 나이들수록 현재가 좋은것을 점점알게되네오

2021-10-11 08:31:08

김도연

법륜 스님, 건강하세요.

2021-10-10 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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