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7.3. 천일결사기도 생방송, 경주 남산 안내
“즐거움에 집착하면 필연적으로 괴로움이 따라옵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 맑은 종소리와 함께 천일결사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처럼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이제 날이 더워져서 108배를 할 때 땀이 많이 났습니다.

경전 독송을 마친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즐거움 이면에 도사린 괴로움

“오늘 읽은 경전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가을에 버려진 조롱박처럼
잿빛으로 퇴색한 뼈를 보라.
그것들을 보고 어찌 즐거워하겠는가?

뼈를 쌓아 올리고
살과 피를 발라놓은 이 몸속에
늙음과 죽음과
자만과 위선이 감추어져 있다.

조롱박은 가을이 되면 마릅니다. 그때 쓰임새가 있는 조롱박은 바가지로 쓰이지만, 쓰임새를 다한 조롱박은 버려집니다. 그런 것처럼 사람도 살아있을 때는 귀하다고 하지만 목숨을 다하면 쓸모가 없어집니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숲에 그냥 버렸습니다. 그 숲을 시다림(尸陀林, Sitavana의 음역)이라고 했어요. 마치 우리가 쓰레기장에 다 먹은 음식을 버리듯이 사람의 시신도 시다림에 함부로 버려졌습니다. 시신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곳이니까 그곳의 시신들은 뒤엉켜 있기도 하고 제각각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습니다. 어떤 시신은 썩어가고, 어떤 시신은 뼈만 남아 있고, 어떤 시신은 흙이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경전에도 ‘잿빛으로 퇴색한 뼈를 보라’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우리나라는 시다림 문화가 없으니까 공동묘지에 가도 뼈가 널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경전을 읽을 때는 인도 문화를 알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시다림의 비유는 경전 여러 곳에 나옵니다. 부처님이나 야사 비구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출가할 때 이야기에도 나와요. 출가하기 전에 평소처럼 술을 마시고 놀던 어느 날, 사람들이 취해서 잠에 빠진 모습이 마치 시다림의 시신들처럼 보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엎어져 있고, 어떤 사람은 옆으로 누워 있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 몸 위에 다리를 얹고 있는 모습이 시체가 뒤엉켜있는 것 같았던 거죠. 이는 극한의 즐거움 이면에 도사린 괴로움을 적나라하게 보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극한의 즐거움을 맛보자마자 바로 다음날 새벽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모습을 통해 락(樂)의 뒷면이 곧 고(苦)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죠. 고락(苦樂)이 곧 고(苦)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괴로움만 괴로움으로 인식하고 항상 즐거움을 원합니다. 실제로는 그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에요. 그걸 깨닫고 출가를 한 거예요.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의 의미

제가 행복학교 운영도 하고, ‘행복’이라는 책을 쓰기도 하면서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제가 이야기하는 행복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반을 뜻합니다. 열반은 괴로움이 없는 경지, 괴로움이 사라진 경지입니다. 이러한 행복은 마음이 들뜨는 기분 좋음, 즐거움과는 성격이 달라요. 그런데 우리는 대개 들뜨는 마음, 기분 좋음,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기 때문에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치 자석에는 늘 N극과 S극이 함께 있듯이 즐거움의 이면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라다닙니다. 즐거움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로 인한 괴로움 역시 깊어지고, 고락의 윤회를 반복하게 됩니다.

기분 좋음을 행복으로 삼으면 기분 나쁨의 괴로움이 늘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의 세계관에서는 즐거움이 극에 달한 상태를 천상, 괴로움이 극에 달한 상태를 지옥이라고 표현했어요.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를 계속 돌고 도는 윤회가 곧 천상과 지옥을 돌고 도는 윤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윤회전생(輪廻転生) 한다’고 말합니다. 윤회전생(輪廻転生)에서 벗어나려면 즐거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즐거움에 집착하면 필연적으로 괴로움이 따라옵니다. 즐거우면 심리가 들뜨고, 반대로 괴로우면 심리가 가라앉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면 피할 수 있어요. 평정심을 유지하면 마음이 들뜨지 않기 때문에 가라앉음도 자연적으로 막아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바닷물처럼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풍랑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마음 작용의 원리를 알고 자꾸 평정심을 유지하는 경험을 쌓으면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해집니다. 아예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는 거울과 같은 마음이 되면 좋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입니다.

그 목표점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한 상태는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일어나듯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호숫가에서는 물결이 일어나도 배가 흔들린다거나 해변가의 모래가 휩쓸려가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평정심이라고 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래서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열반(涅槃, Nirvana)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지고(至高)한 행복’입니다.

다시 말해, 불교에서 말하는 ‘지고한 행복’은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지 않고, ‘괴로움 없음’을 행복으로 삼습니다. 지고한 행복을 누리려면 첫째, 마음이 들뜨지 않고 평정한 상태를 가져야 하고, 둘째, 즐거움과 괴로움에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불교 수행의 목표는 내가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듣고, 어떤 것을 냄새 맡고, 어떤 것을 맛보고, 어떤 것을 감촉하고,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그 경계에 휩쓸려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거나, 울거나, 금방 기뻐했다가 슬퍼하거나,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늘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열반(涅槃)’이라는 용어를 일상에서 쓰는 단어 중 무엇에 가장 가까운지를 생각해보면 그나마 ‘행복’이 가장 가깝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은 주로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과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의 의미가 다른데 동일한 용어를 계속 사용하다 보니 혼동이 생기고 있어요.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도리

삶과 죽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을 보면 땅에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피고, 죽으면서 씨앗을 남기면 다시 싹이 트고 자라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여기에 열매가 맺혔다고 좋아하지도 않고, 죽었다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화분에 심은 씨앗이 꽃을 피웠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다시 피었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또 피었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에도 변화만 있을 뿐 여기에는 어떠한 사라짐이라는 것도 없고 생겨남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마치 물결이 출렁거릴 때 파도를 보면 우리는 ‘파도가 생겨났다’고 하지만 사실 파도가 생겨났다고 할 것도 없고, 또 ‘파도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사실 파도가 사라졌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본질은 어떠한가. 그저 물결의 출렁거림이 있을 뿐입니다.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자연 생태계에는 이처럼 다만 변화가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변화할 뿐이라는 걸 직시한다면 여기에는 그 무엇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생겨난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생겨난다고 할 것도 없고, 사라진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사라진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걸 알게 되면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슬퍼할 일도 없습니다.

왜 기쁨과 슬픔이 생길까요? 변화의 한 측면만 보고 ‘생겨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쁨이 일어나고, 변화의 한 측면만 보고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슬픔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실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 오류 때문에 빚어지는 일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사람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현상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우리 존재에 뭔가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다 사라진다’는 말도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는다’는 표현 자체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어난다’는 말도 맞지 않습니다. 태어남과 죽음도 실제로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연속되는 수많은 현상 중 한 단면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겨난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한 번 핀 나뭇잎이 영원히 피어 있고, 한 번 핀 꽃이 영원히 피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잘못된 생각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사람이 늙고 죽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잘못된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경전 ‘가을에 버려진 조롱박처럼 잿빛으로 퇴색한 뼈를 보라’는 구절은 ‘사실을 직시하라’는 의미입니다. 무덤가에 가서 버려진 시신들을 보면 우리가 즐겁다고 할 게 뭐가 있겠어요? 여기서 핵심은 ‘즐거워할 게 없다’가 아니라 ‘괴로워할 일이 없다’입니다. ‘즐거워하지 말라’가 아니라 ‘사실을 알면 즐거워할 것이 없다’, 그리고 ‘사실을 알면 괴로워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주된 내용은 ‘즐거워할 일이 없다’가 아니라 괴로워할 일이 없다’가 핵심입니다. 괴로워할 일이 없어지면 즐거워할 일이 없어지고, 즐거워할 일이 없는 줄 알면 괴로워할 일도 저절로 없어집니다.

뼈를 쌓아 올리고
살과 피를 발라놓은 이 몸속에
늙음과 죽음과
자만과 위선이 감추어져 있다.

육신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어갑니다. 늙고 병드는 것도 삶의 한 과정입니다.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수많은 변화의 한 현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히 늙지 않고, 영원히 병들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고 싶다는 헛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만하고 위선이 생깁니다. 이러한 오류에 자만과 위선이 숨어서 자랍니다. 마치 그늘이 지고 습하면 그곳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처럼, 이러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에 자만과 위선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합니다. 동시에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고 합니다. 수행자는 어떠한 숨김, 위선이 없어야 합니다. 뭔가 감추려고 하면 긴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정심에서 멀어집니다. 있는 대로 진실 되게 살아가면 됩니다. 진실됨은 현실과 떨어져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인식의 오류, 잘못된 생각으로 환상을 보고 살아가는데, 그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 곧 진실입니다. 이렇게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진실이지, 숨겨진 진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현실은 모두 거짓이고 진실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뭔가 숨겨진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다른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요즘 읽고 있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경전은 얼핏 보면 인생을 너무 부정하는 것 같고, 자칫 허무주의에 빠져 허망하게 보라는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경전의 의미는 삶을 허망하게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지나치게 재물, 젊음, 지위, 즐거움 등에 집착하며 살아가니까 한 발 떨어져서 조금만 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집착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걸 알면 인생을 괴로워하면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요즘 읽는 경전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한 삶을 사시고, 일상이 정진하는 삶과 같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비가 곧 올 것처럼 먹구름이 끼었지만 스님은 어김없이 작업복을 갈아입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텃밭에 고수와 얼갈이배추를 심었습니다. 텃밭에는 얼마 전까지 꽃이 핀 고수가 가득했었습니다. 꽃핀 고수는 씨앗을 받기 위해 줄기채 베서 말려두고 삽으로 밭을 뒤엎었습니다.


창고에서 소똥 거름과 유박을 가져와 땅에 고루고루 뿌리고 다시 삽으로 땅을 뒤엎어 잘 섞어주었습니다.




스님은 삽으로 땅을 파는 사이사이 멈추었습니다.

“백신을 맞은 뒤로 금방 숨이 차네요.”

땅을 다 뒤집고 평평하게 편 후에 고수 씨앗을 흩뿌렸습니다.



씨앗을 뿌린 땅 위로 흙을 살살 덮어주고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곧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부직포로 밭을 덮어주었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빗물에 씨앗이 쓸려 내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직포를 덮어주고 땅에 밀착되도록 물을 한차례 더 뿌려주었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상추마늘 밭도 정리해야겠어요.”

작년 겨울에 심어 둔 상추 마늘과 고수를 심어놓은 텃밭도 싹 정리했습니다. 상추마늘과 고수, 잡풀을 싹 뽑고 비닐을 걷어냈습니다.


오늘은 천일결사기도 후 법문을 해서 울력 시간이 평소보다 30분 짧았습니다. 발우공양 시간이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밭 정리를 해두어야 해서 스님은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뽑은 고수를 씨앗을 받기 위해 따로 모아 묶어서 걸어두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곧바로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들과 함께 경주 남산 산행을 함께 하기로 한 날입니다. 지난번 천룡사 답사 이후 두 번째 만남입니다.

“반갑습니다.”

천룡사로 올라가는 길이 늘 비가 오면 흙이 유실이 되어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국립공원에서 최근에 탐방로 보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할 겸 스님도 특별히 시간을 내어 함께 산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인사를 나눈 후 먼저 탐방로 공사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와룡사에서 천룡사로 올라가는 탐방로 공사를 지난 6월에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면 흙이 유실이 되는 게 많았잖아요. 전체 구간에 목재 데크와 야자매트 설치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교량도 두 개가 있는데 많이 낡아서 새로 교체하기로 했고, 지난번 태풍 때 무너진 석축도 보수하기로 했습니다. 미끄러운 부분은 모두 계단식으로 만드는 것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공사는 지난 6월에 이미 착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근에 천룡사에 봉사를 하러 가는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정토회에서 천룡사를 부산과 울산 지역에 사는 활동가들의 지정 사찰로 정했기 때문에 탐방로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경주 남산 안내 지도 앞에서 오늘 이동할 코스에 대해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경주 국립공원 전문가들 앞에서 제가 안내를 하게 되었네요. 다 아시는 내용일 텐데...” (웃음)

“아닙니다. TV 화면에서만 뵙다가 직접 뵈니까 저희가 더 영광입니다.”

먼저 울창한 솔숲 속에 자리 잡은 삼릉을 지났습니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것이라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여기 소나무들이 전부 무덤을 향해 있잖아요. 옛날에는 소나무들이 왕을 알아보고 무덤을 향해 고개를 숙인 것이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실제로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무덤 쪽은 빈 공간이고, 반대 방향은 소나무가 빼곡하니까 자연적으로 빈 공간을 향해 가지를 드리운 거예요.” (웃음)

스님의 안내를 따라 삼릉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낡은 목재 데크를 철거하고 야자매트를 반듯하게 깔아 놓았습니다.

“야자매트를 새로 깔아 주셨네요. 이 매트는 수명이 얼마나 됩니까?”

“대략 5년 정도를 수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데크 위를 걷는 게 늘 불편했는데, 야자매트를 깔아놓으니까 훨씬 다니기가 좋네요. 감사합니다.”

삼릉에서 개울을 따라 500m쯤 올라가니 길 옆 바위 위에 머리 없는 석불좌상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이 불상은 머리가 없죠?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불상입니다. 이 불상은 계곡에 엎어져 있어서 아무도 보지 못하고 사람들이 등을 밟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발견이 되어서 이 바위 위에 얹혀 놓은 거예요. 엎어져 있다 보니까 앞부분이 하나도 손상이 안 되었습니다. 조각 솜씨로 보면 석굴암 불상에 버금갈 정도로 정교하죠?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 불상의 머리를 찾기 위해서 계곡 전체를 누비고 다녔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불상의 머리를 찾는 와중에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불상은 꼭 한국 불교를 보는 것 같다. 불교라는 몸뚱이는 덩그러니 남아 있는데, 불교의 핵심인 지혜는 목이 잘려서 없고, 불교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는 자비행도 두 팔이 잘려서 없구나. 한국 불교의 모습을 부처님이 몸소 보여주고 있구나. 이 불상을 진정으로 복원하는 것은 머리를 찾아서 갖다 붙이는 게 아니고, 머리와 손발에 해당하는 불교의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니까 불상의 머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멈추고 구체적인 실천을 시작하게 된 거죠. 정토회를 세우게 된 계기는 이런 발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국립공원 관계자들은 스님의 설명이 재미있는지 질문도 하고, 아주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머리 없는 석불좌상에서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니 뾰족한 바위기둥들이 솟아 있는 가운데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하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관세음보살 입상이 나타났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경주 남산에 있는 불상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바위입니다. 광배를 따로 만들지 않고 뒤쪽의 비스듬한 바위를 광배 삼아 보살상을 조각했기에 방금 하늘에서 하강하는 듯한 모습이에요.

그냥 바위를 깎아서 부처님을 조각한 게 아니라 바위 속에 있는 부처님을 서서히 드러내듯이 그런 느낌으로 조각했어요.

부처님이 인도에서 오신 분이 아니라 원래 우리나라 바위 속에 있었는데 우리가 가서 인사를 하니까 ‘너 왔나?’ 하고 얼굴을 내밀 듯이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아랫부분은 자연적인 바위를 그대로 두고, 윗부분만 살짝 조각을 했어요. 요즘 말로 하면 ‘친환경적’ 조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영험이 있는 곳으로 유명해서 옛날부터 사람들이 여기서 기도를 많이 했어요. 이 골짜기는 이런 식으로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여섯 군데나 있어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올라가다 보면 벌써 정상에 도착해 있습니다.” (웃음)

다 함께 기념촬영을 잠시 한 후 다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이번에는 골짜기 왼쪽에 자리 잡은 넓은 바위에 선으로 새겨진 불상이 나타났습니다.

동서로 펼쳐진 넓은 바위 면에 선으로 불상이 새겨져 있어서 마치 불교 그림을 보는 듯했습니다.

“동쪽 바위 면에는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삼존불을 새겨서 현생을 나타냈었다면, 서쪽 바위 면에는 아미타 삼존불을 새겨서 내생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끼가 너무 많이 껴서 선각의 모양이 보이질 않아요. 옛날에는 푸른 이끼가 껴서 그래도 선각이 좀 보였는데, 요즘은 기후변화 때문인지 새까만 이끼가 껴서 선각이 보이질 않게 되었어요.”

위로 더 올라가면 더 많은 유물과 유적을 볼 수 있지만, 오후 1시부터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선각육존불까지만 보고 삼릉계곡을 내려왔습니다.

“비 맞으면서 산을 탈 수는 없잖아요. 지금부터는 남산을 둘러싸고 있는 평지 길을 따라 걷겠습니다.”

산을 내려온 일행은 우산을 하나씩 챙겨 들고 평지를 걸었습니다.

남간사지를 지나 월암종택을 잠시 둘러본 후 경주 남산의 북쪽 기슭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산성이 있었던 흔적을 보며 산 위로 조금씩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가니 부처골에 있는 감실 부처님이 나타났습니다. 정말로 감실 속에 아주 친근한 이미지의 부처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동네 사람들이 이 불상을 할매 부처라고 불렀어요. 할머니가 앉아 있는 것 같죠? 부처골의 감실 부처님입니다.”

스님의 설명대로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의 부처를 찾아내었다는 말이 실감 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대나무 숲이 둘러싸여 있어서 아주 아늑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간단하게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일기예보대로 오후 1시가 되자 비가 쏟아졌습니다. 우산을 펴고 도로 위를 걸었습니다.

옥룡암이라는 작은 암자 뒤에 우뚝 솟은 바위 암벽에 사방으로 돌아가며 환상적인 부처님의 세계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탑골에 있는 부처바위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왼쪽에는 9층 탑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황룡사 9층 탑을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른쪽에는 7층 탑입니다. 가운데에 연꽃과 부처님이 새겨져 있고 위에는 닫집까지 새겨져 있어요. 밑에는 사자 두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앞발, 뒷발, 꼬리가 보이죠?

저 위에 하늘에서는 천녀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네 면에 다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북면과 서면, 동면을 차례대로 본 후 남면을 보기 위해 바위 위로 올라갔습니다. 남쪽 바위 면에는 삼존불과 함께 독립된 불상이 입체상으로 서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있고, 바위 속에 한 스님이 탑을 향해 예불을 하는 모습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쪽 구석에 아무도 찾지 못할 것 같은 곳에 새겨진 그림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바위에 금강역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삼지창을 딱 들고 있죠? 옛날에는 문이 이쪽으로 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탑골 부처바위를 둘러본 후 경주 남산 안내를 끝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경주 남산이 갖고 있는 아주 중요한 특징을 강조했습니다.

“보통 불상은 아주 장엄하고 거룩하게 모셔져 있어서 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경주 남산은 부처님이 우리 곁에 아주 친숙하게 스며든 모습을 하고 있어요. 팔짱을 껴도 되고, 만져도 되고,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모습입니다. 전문가가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조각한 게 아니고, 서민들이 자기가 새기고 싶은 불상을 각 바위마다 새긴 거예요. 그래서 경주 남산은 민중 불교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내를 마치고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구경할 건 다 구경했어요. 비야 올려면 와라, 하면서 내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웃음)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민중불교, 생활불교를 느낄 수 있는 곳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스님도 당부의 말을 했습니다.

“이곳은 종교와 관계없이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에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오신 분들이니까 이런 문화유산을 잘 관리해 주세요.”

지난번에 같이 산행을 했을 때 두북 수련원을 보여주지 못해서 오늘은 두북 수련원으로 가서 학교 건물 곳곳에 있는 시설물과 재활용 물품 창고를 보여준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두북 수련원에는 밤새도록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통일특별위원회 리더십 연수인 ‘행복광장’을 온라인 생방송한 후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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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

매순간 평온한 시간이 참 좋습니다.

주어진일에 감사하고 가진것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진정한 행복은 즐거운것이 아니고 괴로움이 없어야한다는 의미를 알겠습니다

스님 건강하십시요
어리석고 무지한 중생들곁에 오래오래오래 1000년동안
계셔주시길 희망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_()_

2025-02-02 20:12:47

김진원

감사합니다.

2025-02-01 21:45:55

최희정

감사합니다

2025-02-01 11: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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