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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전야제 및 점등식이 열리는 기쁜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스님은 오전 내내 상추와 고수를 수확했습니다. 깨끗이 씻어서 잘 포장한 다음 바구니에 담아 경주로 향했습니다.
경주 지역에 인연 있는 분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후 문경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싱싱한 상추와 고수 속에는 늘 베풀며 살고자 하는 스님의 따뜻한 마음이 담겼습니다.
오후 1시에 경주를 출발해 차로 2시간을 달려 오후 3시에 문경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도착하자마자 지난번에 도량 정비 울력을 했던 살구골과 명상원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한 달 사이에 풀이 엄청나게 자랐네요. 지난번에 애써 정비한 게 아무 소용이 없어졌어요. 문경에 며칠 머무르면서 제대로 정비를 한번 해야겠어요.”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처리한 후 저녁 7시에 점등식을 하기 위해 대웅전으로 올라갔습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점등식을 앞두고 연등을 더 높이 세우는 일을 하느라 행자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자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행자님들이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고 선 다음 저녁 7시 30분에 점등식을 시작했습니다.
점등식 행사는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온라인으로 전 세계의 정토회 회원들에게 생방송되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 후 청법가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점등식에 앞서 연등을 밝히는 이유와 그 유래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 날 하루 전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는 의미에서 연등을 켜는 전야제를 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부처님 오신 날 당일에 연등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처님 오신 날 밤에 연등을 밝히는 행사를 하면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있다 보니까 하루 전 날 저녁에 점등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 현실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전야제 성격도 있습니다.
점등식을 하는 문화가 생긴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중생을 깨우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셨습니다. 마치 어두운 밤에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불을 비춰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신 거죠. 이런 부처님의 모습을 상징해서 연등을 밝히는 문화가 생겨난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 오신 날에는 왜 그냥 등이 아닌 연등을 달까요? 이것은 부처님이 지닌 인격의 독특함에서 유래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인격을 지녔는지는 여래십호라는 열 가지 칭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열 가지 칭호는 크게 ‘지혜와 자비’라는 두 가지로 축약됩니다. 부처님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지혜로운 분이었습니다. 또 중생의 아픔을 껴안고 포용하는 자비로운 분이었습니다. 이 지혜와 자비를 부처님의 인격이 지닌 두 가지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자비를 상징합니다. 연꽃은 진흙에 뿌리를 두고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잖아요. 그것처럼 세상에서 ‘신분이 낮다’, ‘범죄자다’, ‘어리석다’ 등 온갖 비난을 받는 중생이라도 그들 모두 부처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중생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어요. 진정한 포용이란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거나 불쌍히 여기는 것을 넘어서서 그들 또한 부처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의 큰 특징은 섭수, 즉 껴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를 합쳐서 연꽃 모양의 등불, 즉 연등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자비로움과 빛나는 지혜를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가 연등을 밝히는 이유는 그런 부처님의 인격을 흠모하고, 그분을 존경하고 공경하며, 우리도 부처님처럼 어리석은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내겠다고 원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의미로 연등을 밝히는 문화와 전통이 생겼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기복 행위로 점점 변해간 겁니다. ‘등불을 켜면 복 받는다’ 하고 복을 비는 것은 중생의 오랜 습관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이 그렇게 변질이 된 거예요.
대승불교가 일어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승 사상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게 되면 깨닫게 되고, 깨닫게 되면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니까 어떤 복보다 경전을 독송하는 공덕이 크다고 가르치게 되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경전을 독송하면 복 받는다’라고 하면서 복을 받기 위해 경전을 독송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문화는 모두 후대에 형성된 거예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연등을 켜는 이런 문화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갖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나 원래 연등을 켜는 문화가 생긴 이유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공경하고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중생의 괴로움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우리의 마음이 탐진치 삼독에 물들었을 때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첫째, 욕구대로 안 되어서 괴로워집니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 이런 말이 있잖아요. 둘째, 자신의 성질대로 안 되어서 괴로워집니다. 성질이 확 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지죠. 셋째, 자기의 믿음이나 견해가 옳다는 관념에 사로잡히면 괴로워집니다. 이 세 가지의 상황에 이르면 보지만 보는 게 아니고 듣지만 듣는 게 아닌 상태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만 결과가 반대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치 밤에 길을 가는 사람이 어두워서 길이 안 보이니까 웅덩이에 빠지고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누가 불을 비춰서 환해지면 그 고생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탐진치 삼독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리의 삶은 괴로울 일이 없어요. 이런 의미로 환하게 길을 비춰주는 등불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점등을 하게 되면 주변이 밝아질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연꽃무늬가 나타납니다. 그것처럼 우리도 사로잡힘에서 탁 벗어나는 순간 괴로움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점등을 할 때 어둠이 없어지듯이 여러분도 깨달음을 얻는 발원을 하라고 오늘 이렇게 점등식을 하는 겁니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 또는 팔관회라고 해서 연등을 밝히는 행사가 국가적인 행사로 자리잡아서 나라의 재앙을 막고 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또 유등이라고 해서 등을 물에 흘려보내기도 하는 문화 행사도 있었어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점등식을 하는 이유는 우리도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 없는 삶을 살겠다는 원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문화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문화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외국 사람들이 아름다운 문화라고 평가하면서 세계인이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연등 행사를 지나치게 복을 비는 기복 행위로만 치부하지 말고 서원을 세우는 아름다운 문화로 여기고 선조들이 지켜온 문화를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다함께 모여서 이런 연등행사를 하면 좋은데, 코로나 방역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이곳 문경 수련원에서 저희들이 대표로 점등을 할 테니 여러분들은 점등하는 모습을 화면으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내일 오전에 부처님 오신 날 기념 법회가 끝나면 오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가까이에 있는 절에 가서 연등 구경도 하시고, 정토회 실천 장소인 으뜸절도 방문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지금부터 어리석은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점등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석가모니불 정근이 끝나자 다함께 찬불가 ‘부처님께 바칩니다’를 불렀습니다.
먼저 자신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토행자들이 각자 연등을 밝혔습니다.
이어서 각 지부별 으뜸 절에서 점등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마음을 빛으로 모아 이곳 문경 수련원 대웅전 앞마당에 연등을 밝혔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우리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을 밝히겠습니다.”
가난한 여인을 상징해 인도 사리 옷을 입은 행자님이 등불을 들고 걸어 나와 대연등 앞에 멈춰 서서 높이 등불을 켰습니다.
대연등에 불이 켜지자, 이어서 대웅전 계단 위에 서 있는 행자들이 들고 있는 연등에도 불이 켜졌습니다.
북소리와 함께 대웅전 앞마당에도 오색 찬란한 빛을 발하며 연등이 켜졌습니다.
환하게 밝아진 대웅전 앞마당에서 스님이 부처님의 수기를 낭독했습니다.
“이 작은 등불은 워낙 보잘것이 없어 있는 둥 마는 둥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등불들이 하나씩 꺼져갔다. 시간이 지나서 다른 등불이 다 꺼졌는데도 여인이 밝혀 놓은 그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이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 존자는 불을 끄려 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손으로 끄려 해도 꺼지지 않았고, 가사 자락으로 부채로 끄려 했으나 그래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어서 대중이 함께 낭독했습니다.
“아난다여,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것이기에 비록 작은 등불이지만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그 등불을 켠 공덕으로 미래세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수미등광여래’라고 할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묘수 법사님이 스님이 직접 써주신 발원문을 대연등 앞에서 낭독했습니다.
“한줄기 등불을 밝혀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고,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께서 오시는 길을 비춥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욕망에 눈이 어두워, 성질에 못 견디어, 시비에 사로잡혀, 남을 괴롭히고 나도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뭇 중생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등불이 어둠을 밝히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세상에는 기아와 질병, 문맹에 고통받는, 갈등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차별받고 탄압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자유와 행복, 풍요와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미얀마 국민들의 안전과 평화, 북한동포들의 생존과 인권,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되길 기원합니다.
이 등불 켠 공덕으로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한 정토세상이 속히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스님도 합장을 하며 발원문의 내용을 마음 깊숙이 염원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기 전 온라인으로 점등식을 시청한 분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소감을 말하고 싶은 사람은 화상회의 방에서 손들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에서 온라인으로 점등식에 참여했습니다. 문경 수련원 행자님들의 정성스러운 준비가 느껴져서 감동스럽고 울컥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내년에는 각 으뜸절마다 이런 행사를 하면 정말 멋지고 감동스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는 부산입니다. 문경의 점등식 모습을 온라인으로 보니 감동스러웠습니다. 내년에는 문경에 직접 가서 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유튜브 실시간 채팅창에서도 소감이 올라왔습니다.
“전국에서 연등 달아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삶을 살겠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점등식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 정토행자들이 한 발원은 문경 수련원과 전국 으뜸절에 켜진 다양한 색깔의 연등 속에 담겨서 밤새도록 밝게 빛났습니다.
내일은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문경 수련원에서 생방송 현장 중계로 봉축 법요식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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