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29. 정토대전 회의, JTS 다문화가정 선물 포장, 법사단회의
“실제로 내 삶에 적용되는 불교 교리인지, 그게 중요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동체 법사단의 일부 법사님들이 스님과 회의를 하기 위해 두북 수련원을 찾아왔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 그리고 발우공양을 마치자 문경 수련원과 연수원, 죽림정사에서 법사님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갑자기 울력 제안을 했습니다.

“회의하기 전에 어제 뜯은 쑥을 좀 같이 다듬었으면 좋겠어요.”

여러 명이 손을 보태니 금방 일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쑥이 아닌 것도 많이 뜯어 왔네요. 도대체 누구예요?” (웃음)

가벼운 울력을 마치고 8시 30분에 정토대전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불교사상팀에서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사띠(알아차림), 식과 명색, 지식과 지혜, 의, 자의식, 인공지능과 자의식, 수(느낌) 등 그동안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던 개념들에 대해 일주일 동안 더 조사해보고 공부한 내용을 차례대로 발표했습니다.

발표 내용을 다 듣고 나서 스님이 각각에 대해 다시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내 삶에 적용되는 불교 교리

“만약 이 내용들을 정리해서 정토대전으로 만든다면, 여러분들이 이해한 것 이상은 만들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법사가 이해하지 못하는 교리나 사상을 정토회 회원들이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토회원들은 교리나 사상에 대한 이해가 법사보다 못하다고 봐야 되잖아요. 개인의 실천에 있어서는 법사보다 뛰어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요.

그러므로 법사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는 정토대전으로 만들어 봐야 지식으로만 남게 됩니다. 교리가 실제 내 삶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삼법인은 무상 무아 고를 의미한다’ 이렇게 지식으로 아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지난 한 주 동안 공부하면서 새로 정리된 내용이 있어요? 예전에는 헤맸는데 오늘 정리가 됐다든지,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알게 되었다든지, 그런 부분이 있으면 얘기해 보세요.”

법사님들은 각자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12연기에서 말하는 '식'과 오온설에서 말하는 '식'을 포함해서 '식'의 핵심 개념이 일반적인 분별작용이 아니라 자의식이라고 이해하니까 그 의미가 더 분명해졌어요."

아직 이해가 분명하지 않다는 법사님들도 있었습니다. 스님이 다시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오온설이란 내가 인지하는 세계가 일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안다’고 할 때, 이것을 엄격하게 분석해보면 일체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내가 인지하는 세계가 일체입니다. 나를 떠나서 바깥에 일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가 일체입니다.

내가 인지하는 세계가 일체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보고 크니 작으니 하는 것도 내가 그렇게 인지한 것이지, 존재 자체가 크고 작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지한 것은 있는 것이고, 인지하지 못한 것은 없는 거예요. ‘있다’하는 것 자체가 인지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유식학(唯識學)의 입장에서는 바깥 세계를 갖고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결국은 자기가 인지한 식(識)의 세계가 일체입니다.

이런 개념은 수행에 있어 밖을 갖고 논하는 것을 내부로 끌어온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갖습니다. 유식(唯識)의 뜻은 일체가 다 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하다’, ‘더럽다’, ‘고귀하다’, ‘천하다’ 하는 모든 것이 다 마음의 작용, 즉 식의 작용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일체가 다 마음이 짓는 것이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그런데 유식학(唯識學)의 가장 큰 오류는 여기서 한 발 더 가서 ‘삼라만상의 물질세계가 다 마음에서 나왔다’ 이렇게 주장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마음 밖에 없고 모든 삼라만상이 다 마음에서 나왔다’ 하는 주장은 도가 지나쳐서 관념론으로 가버린 거예요.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 하는 것이나 ‘마음이 세상을 만들었다’ 하는 것이 결국은 같은 얘기입니다. 유식학의 출발은 굉장히 과학적으로 접근해 갔지만, 결과는 다시 관념론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요.

유식학의 한계를 넘어

사람들이 너무 남을 탓하니까 ‘다 네 마음이 짓는 것이다’ 해서 관점을 바로 잡아 놓았는데, 이것이 너무 지나쳐서 ‘모든 것이 마음 작용이다’, ‘세상은 상관할 바 없고 마음만 먹으면 다 된다’ 하는 주장이 나왔고, 심지어는 ‘일체유심조’라는 것이 ‘삼라만상이 다 마음에서 나왔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상황까지 가버렸어요.

실제로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 이상으로는 설하지 않으셨습니다.

‘브라만이니 천민이니 하는 계급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 마음이 짓는 바이다. 너의 잘못된 인식을 객관화시켜서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데, 조금만 분석적으로 접근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처님께서 분석적으로 말씀하신 것 중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이런 얘기가 몇 마디 있지만, 우리가 아는 5온설, 12처, 12연기 등의 교리는 다 후대에 논리화 하고 체계화 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교리를 자칫 잘못 이해하면 주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교리 설명은 설령 부처님의 이름으로 설해졌더라도,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불교사상이 교리화 되고 체계화 된 것이 청정도론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청정도론을 쓴 붓다고사가 5세기 사람이니까 당시는 인도의 굽타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는 브라만교가 힌두교로 새로 부흥했고, 오늘날 테라밧다의 전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전에 형성된 대승불교도 이 시기에 정립되었습니다.

창조적으로 현실에 맞게

불교 사상을 연구하려면 좀 더 창조적으로 현실에 맞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냥 어떤 경전에 근거했다는 것은 충분한 논거가 안 됩니다. 가령 법구경에 근거했다고 해도 주석을 보면 전생 이야기가 대부분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해석하는 학자들의 논거를 좀 더 깊이 있게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토대전을 만들 때 12연기를 학자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그대로 넣을 것인지, 좀 더 연구해 보니 만약 초기 불교 문헌에 12연기가 지금처럼 표현이 안 되어 있다면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쓸 것인지, 이런 것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체험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을 자꾸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왔다는 이유로 교리를 만들어 놓으면 후세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오히려 더 복잡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경험될 수 없고 체험될 수 없는 것이라면, 오류를 수정해서 우리 대에서 끝마쳐야지 후대까지 계승해서 오류를 반복하게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경전을 살펴보면 좋겠어요.

모른다는 이유로 과거 교리를 무시해도 안 되고,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해서 무조건 수용해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이 두 가지 어려움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모르는 것인데, 이 교리는 안 맞다고 빼거나 수정하면 오류가 발생합니다. 이 경우는 너무 현실만 중시하고 근본을 간과한 겁니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거니까 어떻게든지 끼워 맞추는 것은 오류를 합리화하고 그냥 넘어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두 가지의 극단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더 찾아보고 연구하고 살펴보는 겁니다.

대승 보살의 출발 지점

대승경전인 반야심경에서 소승교리인 오온, 십이처, 십팔계, 십이연기, 사성제, 깨달음을 딱 꼬집어서 부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고집멸도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또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없다.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以無所得故 菩提薩 依般若波羅密多故)
깨달음을 얻을 바가 없는 까닭으로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마음에 장애가 없고, 장애가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므로 뒤바뀐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무지(無智, 깨달음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겁니다. 소승에서 ‘깨닫는다’ 하는데, ‘깨달을 것이 없다’ 이렇게 딱 반박을 한 거예요. 바로 이어서 ‘역무득(亦無得, 깨달음을 얻는다 할 것도 없다)’이라고 표현합니다. 소승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예류과를 얻었다’, ‘아라한과를 얻었다’라고 하는데 ‘얻을 게 없다’ 하고 반박합니다.

소승불교를 가르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대승불교를 가르치려고 해도 이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히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 문장은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얻을 바가 없는 까닭으로)’라고 나옵니다.

‘깨달음도 없고, 깨달음을 얻을 바도 없는 까닭으로.’

대승보살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여기까지 와야 대승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에 의지한다는 말은 반야바라밀을 증득했다는 뜻이에요. 본질을 꿰뚫었다는 얘기입니다.

‘반야바라밀을 의지한 까닭으로 마음에 장애가 없고, 장애가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이렇게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본질을 꿰뚫는 과정은 소승을 하든 대승을 하든 다 거쳐가야 할 과제입니다.

첫째, 이 내용들이 소승불교에서 정확하게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먼저 연구해야 합니다. 둘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승이 잘못 이해한 것이 무엇인지 밝혀야 합니다. 대승에서 소승교리를 비판할 때는 ‘원래 이런 뜻인데 소승에서 잘못 이해했다’ 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법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 ‘법집’이고, 잘못 이해한 것을 비판하는 것이 ‘반야지’입니다. 그러니 원래 설해진 법이 무엇이고, 그 법을 소승이 이렇게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승에서 소승의 법집을 타파해서 다시 본래의 부처님 가르침으로 돌려놓은 것이 증명될 수 있습니다.

현실에 맞고 체험이 가능한가

부처님 당시 사람들은 태생에 의해 신분의 지위 고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에 의해서 삶이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진리입니다. 그런데 행위에 의해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후대에 잘못 이해하는 폐단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다시 대승은 오히려 행위에 의해서만 인간을 규정할 수 없다고 설명해야 되는 상황이 된 거예요. 이 말은 브라만교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월이 흐르면서 오염된 심리에 의해 해석되어 권위를 갖게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원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맞느냐’, ‘체험 가능하냐’ 이렇게 접근해봐야 됩니다. 그래야 오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사람들이 베다 등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물으면 부처님은 그것을 현실에 적용해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을 보여주셨어요. 진리라고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아무리 말로 얘기해봐야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할 수 없으니까, 늘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현실에 적용해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을 보여주신 겁니다.”

스님의 설명이 끝나고 법사님들은 다시 질문을 하고 토론을 이어나갔습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오전 회의를 마쳤습니다. 법사님들은 점심시간에 전국 법사단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서 모두 회의에 참석하고, 스님은 창고 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점심 먹고 JTS 창고에 가서 울력을 한 시간 정도 하고 올게요.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게 학용품을 보내주려고 JTS 안산다문화센터에서 봉사자들이 여기까지 와서 물품 포장을 하고 있거든요.”

점심을 먹은 후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JTS 창고로 향했습니다.

창고에는 어린이용 이불과 필통, 양말이 600세트가 쌓여 있었습니다.

먼저 박스에 같은 수량만큼 필통을 배분하여 넣는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다 같이 개수를 헤아리며 박스에 필통을 넣고 있는데, 스님은 가끔 필통을 하나씩 밖으로 빼곤 했습니다.

“이건 뺍시다. 품질이 영 신통치 않아 보여요. 아이들에게 나눠주려면 똑같이 좋은 걸 나눠줘야죠. 한 사람은 품질이 나쁜 것을 받으면 안 되잖아요.”

혹시나 문제가 있는 물건이 섞여 들어갈까 싶어서 스님은 꼼꼼히 물건들을 확인했습니다.

“스님, 그 정도만 해도 아이들이 엄청 좋아해요.”

“아니에요. 그래도 이건 너무 상태가 안 좋아요.”

스님이 골라낸 필통은 박스 하나에 따로 담아놓고, 양질의 필통들만 박스에 담아서 포장을 했습니다.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월광 법사님도 와서 함께 선물 포장을 했습니다.

“이 필통은 우리 다문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아요.”

박스를 포장하는 동안 물건을 싣고 갈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트럭에는 닭똥(계분) 20kg짜리 40포대, 200kg짜리 두 포대가 실려 있었습니다. 두북 농사팀에게 유기농 비료로 사용하라고 트럭을 운전해 준 봉사자가 직접 가져왔다고 합니다.

너무 무거워서 운동장 한켠에 내려놓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지게차가 와서 포대를 내리려고 했는데, 땅에 어제 새로 부어놓은 흙이 깔려 있어서 지게차의 바퀴가 푹 빠져버렸습니다.


지게차를 흙에서 빼내느라 울력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1시 30분에 회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2시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결국 무변심 법사님이 스님을 모시러 달려왔습니다.

“스님, 회의 시작할 시간이 30분 지났는데, 언제 시작할까요?”

결국 묘당법사님이 포클레인을 갖고 와서 지게차를 밧줄로 연결하여 겨우 흙에서 빼냈습니다. 스님이 포대를 내려놓을 위치를 정해주자 조심스레 포대를 땅으로 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두고 조금씩 퍼서 거름으로 사용할게요.”

스님은 다시 JTS 창고로 향했습니다. 트럭을 창고 앞에 세우고,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전해줄 박스들을 하나씩 트럭에 실었습니다.




트럭에 박스를 가득 싣고 JTS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저는 법사님들과 회의를 해야 해서 이만 들어가 볼게요.”

JTS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에야 스님은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JTS 이사장이다 보니 같이 일을 해야 하잖아요.” (웃음)

법사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후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오후에는 사회사상팀에서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고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교의 정의관에 대한 내용 중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갈마 제도, 포살, 자자의 유래와 경전 속 사례, 오늘날 정토회에서 하고 있는 참회, 포살, 자자의 의미에 대해 차례대로 발표한 후 스님의 정리 말씀을 들었습니다.

정토대전 회의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오후 4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무안 미륵사, 아도모례원, 문경 수련원 등 각 지부 으뜸절에 머무는 법사님들은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초파일 전 일주일 간 집중 정진하는 시간을 가질지 여부 등을 비롯해 갖가지 다양한 안건이 올라오고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의 정리 말씀을 들은 후 회의를 마치려는 찰나에 법사님 한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정토대전을 언제까지 완성해야 할까요? 올해 4월까지 집중하기로 했다가 지금 4월이 다 끝나가는데...”

“제가 보기에는 내년 연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 수준을 감안하셔서 굉장히 현실적으로 기간을 잡고 계시네요.” (웃음)

“지금 여러분들이 글을 완성해서 편집한 초안이 나와도 그걸 갖고 다시 수정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이 또 걸려요. 그런데 아직 한 장도 초안이 안 나온 상태예요. 내내 공부만 하고 있잖아요.”

“저희도 부서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요.”

“공동체 법사님들은 부서 업무를 현상 유지 정도만 하고 전부 정토대전 업무에 집중을 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갈수록 더 시간을 못 내요.”

다른 업무들이 많기는 하지만 정토대전을 만드는 일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운동장으로 나오니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공동체 법사님들과 더 대화를 나눈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정토대전 경전팀 법사님들이 두북 수련원에 와서 스님과 함께 하루 종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청춘톡톡’이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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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스님! 법사님들! 정토회 도반님들! 후원해 주시고 자원봉사해 주신 모든분들 참 고맙습니다. 삼보의 은혜 나라 선조님들 다문화가족 가족친지 일체중생 자연의 은혜속에 살아갑니다. 스님의 하루 제작팀분들도 참 고맙습니다.

2021-05-07 10:32:00

실상

내가 아는 세계가 일체다. 경험되지 않고 들은 것을 아는체 하지 말지니...

2021-05-07 06:52:29

굴뚝연기

[…우리에게 체험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을 자꾸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왔다는 이유로 교리를 만들어 놓으면 후세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오히려 더 복잡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경험될 수 없고 체험될 수 없는 것이라면, 오류를 수정해서 우리 대에서 끝마쳐야지 후대까지 계승해서 오류를 반복하게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정교한법문입니다~모든 스님분들이 배우셨으면‥

2021-05-05 14: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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