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28 쑥 캐기, 수행법회
“인도에서 온 스님이 머슴살이를 하며 불교를 전한 곳”

안녕하세요. 낮 기온이 20도 위로 올라가는 따뜻한 봄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스님은 오전에 쑥을 캐기 위해 산 윗밭에 올랐습니다.

어제 맷돌호박을 심으러 갔을 때 간 산 윗밭에 쑥이 크게 자라 있었습니다. 오늘 그 쑥을 캐러 다시 산 윗밭을 찾았습니다.


“쑥이 굉장히 크고 좋네요. 이걸 참쑥이라고 해요. 제가 낫으로 확 벨 테니까 행자님은 포대를 들고 쑥을 담으면서 저를 따라오세요.”

스님은 낫으로 크게 자란 쑥을 슥슥 베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게 지천에서 자라고 있는데, 그냥 두면 아까워서 어떡해요?"

쑥이 커서 몇 포기만 캐도 한 다발이었습니다. 포대가 빠르게 채워졌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캤어요. 5분 뒤에 마무리하고 내려갑시다.”

마무리하고 내려가자던 스님은 울타리 밖에 난 쑥을 또 발견했습니다.

“내려가려고 했는데, 울타리 밖에 쑥이 이렇게 많으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잖아요. 조금 더 캐서 갑시다.”

스님이 울타리 밖에서 쑥을 캐서 넘겨주면, 행자님들이 울타리 안에서 쑥을 담았습니다.

“여기는 쑥이 아닌 것도 막 섞여 있네요. 쑥만 골라 담아 주세요.”

쑥만 재바르게 골라서 포대에 담고 나니, 총 다섯 포대가 가득 찼습니다.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점심 먹고 나서 쑥을 좀 다듬어 놓아야 해요. 쑥떡 만들어서 선물로 보낼 거니까 잘 다듬어 주세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쑥을 함께 다듬었습니다. 굵은 줄기에서 부드러운 잎만 떼어내어 소쿠리에 가득 모았습니다.


쑥이 너무 많아서 덜 다듬은 쑥은 내일 오전에 법사단회의를 하러 오는 공동체 법사님들과 함께 다듬기로 했습니다. 오늘 캔 쑥의 양은 16kg 정도 되었습니다. 쑥떡으로 만들면 8되 정도의 양이 나온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보리수를 옮겨 심고,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정토회 회원들을 위한 수행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금요 정기법회와 수요 수행 법회가 합쳐진 이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수행법회 시간입니다.

저녁반 회원들 13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생방송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방송실 오디오 시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스님의 목소리는 송출이 되는데, 질문자들의 목소리가 송출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영상팀 담당자가 원인을 찾아보아도 해결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영상팀 담당자가 스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스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질문을 받을 수가 없고, 스님께서 법문만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대기하고 있던 질문자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방송에 문제가 생긴 김에

“오늘은 스튜디오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봐요. 지금 문제가 생긴 원인을 못 찾고 있는데, 여러분이 질문하는 소리가 방송에서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여섯 명이 질문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방송에 문제가 생겨서 오늘은 질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질문하실 분은 다음 주에 질문을 하도록 양해를 해주시고요.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니까 제가 그냥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여러분께 말씀드리려던 내용이었는데 마침 방송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니까 지금 말씀을 드릴게요.” (웃음)

스님이 순발력 있게 방송 사고가 난 상황을 반전시켰습니다. 올해부터 정토회가 으뜸절로 마련한 장소들에 대한 역사적 유래와 의미에 대해 1시간 동안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수행 법회는 곧바로 역사 강의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먼저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곳인 아도모례원에 대한 역사적 유래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실천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지부별 으뜸절에 대한 설명을 좀 해드릴게요. 간단하게는 ‘우리가 가서 실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만 알아도 되지만, 으뜸절의 대부분이 역사적인 유적지입니다.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곳

먼저 대구경북지부 으뜸절로 지정된 아도모례원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도모례원은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신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곳입니다.

기록을 보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사람이 ‘묵호자(墨胡子)’라고 되어 있습니다. ‘묵호자’는 ‘얼굴이 시커먼 오랑캐’라는 뜻입니다. 얼굴이 검은 낯선 사람이 왔다는 내용을 한문으로 쓰니까 ‘묵호자’가 된 거예요. 즉 ‘얼굴이 시커먼 외국인이 왔다’ 이런 뜻이에요. 또 다른 기록에는 ‘아도화상(阿度和尙)’이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에 온 아도화상과 신라에 온 아도화상이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는 현재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한쪽은 아도로 기록이 돼 있고, 한쪽에는 묵호자라고 기록이 돼 있어요.

신라는 굉장히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외래 문물의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주변 나라들에 비해 문명이 낙후된 상태였습니다. 고구려와 백제하고는 국가 세력이 아예 비교도 안 되었고, 가야와는 이웃해 있지만 가야가 문명 측면에서는 훨씬 앞서 있었어요. 신라는 가장 작고 낙후한 상태에 있으면서, 전통문화를 굉장히 보호하고, 외래 문물을 거부했습니다. 폐쇄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른 말로 하면 쇄국정책을 펼쳤다고도 볼 수 있어요.

당시에 주변국에서는 불교가 급속히 전파되고 있었지만 신라는 불교가 외래 문화라고 여기고 거부했어요. 불교를 금지시켰다는 뜻입니다. 보통은 이웃나라로부터 사신으로 파견이 돼서 공식적으로 불교를 전하게 마련인데, 신라는 국가에서 불교를 금지하니까 스님이 왕궁에 가서 임금에게 허가를 받고 불교를 전하는 과정을 거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도화상은 신라 국경을 통해 몰래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신라는 조그마한 나라였기 때문에 지금의 구미와 선산 지역이 신라의 국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국경 변에 몰래 가서 모례 장자(毛禮長子)의 집에 숨어서 불교를 전했어요.

머슴살이를 하며 숨어서 불법을 전하다

불교가 금지되어 있으니까 승복을 입고 와서 불교를 전하면 불법행위가 되잖아요. 그래서 아도화상은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어서 승려 표시를 안 낸 채 국경 변에 있는 촌장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머슴살이를 하면서 맡은 일이 마을 뒷산에서 양을 키우는 일이었어요. 아도화상은 일을 아주 착실하게 잘해서 주인의 재산을 많이 불려줬어요. 그러니 주인인 모례 장자가 볼 때는 비록 머슴이기는 해도 참 훌륭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워낙 사람이 착실하다 보니 주인의 여동생이 이 머슴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당시에는 신분 차이 때문에 좋아한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죠. 신분이 낮은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중국의 양나라로부터 신라에 사신이 파견됐어요. 사신이 오면서 향을 가져와서 왕에게 선물했는데, 신라 왕궁에서는 이 향이 무엇이며 어디에 쓰는지를 아무도 몰랐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전국으로 다니면서 이게 뭔지 아는 사람을 물색하고 다니다가, 모례 장자가 사는 일선군까지 왔습니다. 선산의 당시 지명이 일선군이에요. 모례 장자의 집에 와서도 ‘이게 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이렇게 물으니까 머슴살이를 하던 아도화상이 나서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건 향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

‘향에 불을 붙여 연기를 피우면서 기도를 하면 신과 통해서 영험이 있습니다.’

‘네가 누군데 이 세상에 아무도 모르는 걸 네가 아느냐?’

‘사실 저는 인도에서 온 승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불교를 금지하기 때문에 이렇게 속복을 입고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향은 우리가 늘 쓰는 물건이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도화상을 왕궁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왕궁으로 가서 다시 자초지종을 얘기한 거예요. 그런데 마침 그때 공주가 병이 나서 임금의 근심이 크던 참이었어요. 그래서 임금이 명했습니다.

‘향에 그런 신령스러움이 있다면 향을 사용해서 공주의 병을 낫게 해 봐라.’

아도화상이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했더니 마침 공주의 병이 나았어요. 기도를 해서 나았는지, 나을 때 되어서 나았는지, 당시 가져온 선진문물 중에 요행이 맞는 약이 있어서 그 약을 먹여서 나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았어요. 공주의 병이 나으니까 임금이 감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도화상이 머무를 수 있는 절을 짓게 했습니다. 불교를 공인한 거죠. 물론 굉장히 반대가 많았어요. 그러나 공주의 병이 나았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임금이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이 임금이 세상을 떠났어요. 새로운 임금이 들어서니까 대신들이 다시 항의를 해서 결국 불교를 다시 금지해 버렸습니다. 절은 다 없어져버리고, 아도화상은 다시 도망을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때 도망을 어디로 갔을까요? 다시 국경 변 일선군에 있는 모례 장자의 집으로 왔습니다.

신라 최초의 비구니 스님

모례 장자는 처음에는 ‘머슴인데 참 훌륭한 사람이구나’ 이러다가 스님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완전히 마음이 바뀌어서 아도화상을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스님이 쫓겨서 돌아오니까 집 지하에 땅굴을 파고 아도화상이 머물도록 숨겨주었어요. 땅굴에 숨어 있으니 수색 군이 찾아와서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죠. 거기서 지내면서 주위에 몰래 전법을 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제일 먼저 감동을 받은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모례 장자의 여동생이에요. 처음에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연심을 품었다가, 알고 보니 훌륭한 수행자라고 하니까 자기도 수행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출가를 했습니다. 이분이 신라 최초의 비구니예요. 이름은 없고 사(史) 자 성이었다고 해서 ‘사 씨 비구니’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해서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겁니다. 아도화상이 떠난 이후에도 또 인도에서 스님들이 오고 갔다고 해요. 얼굴이 시커먼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 일부 기록에는 ‘묵호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분들이 가고, 또 오고, 이렇게 왕래가 계속 있었다고 해요. 이것이 신라 불교 초전법륜 성지인 아도모례원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초문사와 이불란사, 가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가야정사(창원 봉림사지), 백제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우면산 대성사, 예부터 나라의 흥망이 좌우된다고 전해져 온 경주 남산 천룡사에 대해 차례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흥미진진한 옛이야기에 모두가 흠뻑 몰입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유적지는 아니지만 지부별 으뜸절로 지정된 문경 수련원과 무안 미륵사, 죽림정사에 대해 소개하고, 으뜸절은 아니지만 실천 장소로 지정된 두북 수련원과 봉화 수련원, 지리산 수련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대해 설명한 후 법문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실천 장소로는 두북 수련원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있는 곳이 두북 수련원입니다. (웃음)

재활용 유통과 유기농 생산의 꿈을 키워가는 곳

여기는 재활용 유통과 유기농 생산 및 공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기농은 아직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제가 만일결사를 마치고 농사 담당이 되려고 지금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농사짓는 양이 아직은 공동체 사람들이 먹을 정도밖에 안 나오지만, 점점 확대해서 정토회 회원들 모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려는 꿈을 안고 한창 연습 중입니다.

그리고 안 쓰게 된 재활용품을 서로 교환해서 쓰려고 유통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어요. 처음에는 여기저기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받다가 지금은 170여 개의 법당을 해체하면서 나온 물품을 받기에도 급급한 상태입니다. (웃음)

그래서 비닐하우스 창고도 새로 지었는데, 일거리는 지금 두북 수련원이 제일 많아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많이 와서 일손을 좀 거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매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을 하고, 저녁에는 여러분과 같이 이렇게 대화 나누는 일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질문을 받아서 대화하기로 한 시간이었지만, 마침 방송에 문제가 생겨서 대화를 못하게 되는 바람에 지부 으뜸절의 상황과 실천 장소에 대한 역사적인 유래를 말씀드렸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공부하고 수행하고 전법하는 것은 다 온라인으로 하지만,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은 실천 장소에서 하면 되도록 이제 환경이 다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으뜸절과 실천 장소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적극 참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질문하기로 했던 분들은 다음 주에 다시 기회를 드려서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정진 잘하시기 바랍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가고,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정토대전 사상팀을 맡고 있는 법사님들과 회의를 한 후 점심시간에는 JTS 창고에서 다문화 가정 어린이에게 보내줄 학용품과 여름이불, 양말을 꺼내고 포장하고 트럭에 싣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온라인으로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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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불교의 전파이야기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스님의 손은 쉴틈이 없습니다. 귀한 손길, 더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2021-05-06 17:41:11

박인자


우리가 편하게듣는 법문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실이라는것을
새삼깨닫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021-05-02 22:25:55

전법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2021-05-02 10: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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