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30. 울력, 정토 대전 편찬회의, 청춘 톡톡
“사제가 된 사람의 아기를 가졌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샛밭에 울타리를 치고 정토대전 편찬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다시 시멘트 미장 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생방송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밭 울타리 치기

오늘은 공동체 법사단이 함께 울력을 하는 날입니다. 오전 8시에 샛밭에서 모였습니다. 동네 어르신이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렵다며 올해부터 빌려준 땅입니다. 작물을 심기 전에 먼저 울타리를 치기로 했습니다. 오늘 정토대전 성전 편찬 회의를 하는 법사님들도 아침 일찍 출발해 울력 시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모이기로 한 8시보다 일찍 울타리 치기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 밭에 도착해서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법사님들이 도착하자 인사를 나누고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먼저 울타리 기둥을 2m 간격으로 꽂아 놓고 갈 테니 뒤 따라서 단단히 박아주세요. 그리고 그물을 치고 나서 그물을 기둥에 끈으로 묶어주면 됩니다.”

스님은 밭의 가장 가장자리에 울타리 대를 박아주었습니다.


울타리 기둥 주변의 풀이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예초기로 벴습니다.

뒤이어 법사님들이 일을 나누어 울타리 기둥을 단단히 박고, 그물을 펼치고, 그물을 기둥에 묶어주었습니다.




건강이 좋은 사람은 힘을 쓰고, 몸이 약한 사람은 잡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키가 큰 사람을 기둥 위로 끈을 묵고, 키가 작은 사람은 아래에 끈을 묶었습니다. 울타리는 그림을 그리듯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스님은 울타리 기둥을 다 꽂아둔 후 낫을 들고 기둥 주변 풀을 벴습니다. 가시나무가 있는 쪽은 예초기를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사이사이 가시 덩굴을 잘 베어 주었습니다.

풀을 다 베고 스님도 함께 끈을 묶었습니다.

뒤이어 울타리와 땅 사이에 뜨는 공간은 철심으로 박아서 틈이 없도록 했습니다.


금세 그물이 밭을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입구에는 여닫을 수 있도록 문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물길 아래는 틈이 넓었습니다. 그물을 덧댈까 돌로 막을까 고민을 하다가 큰 돌을 가져와 틈을 메웠습니다.

“이거 고라니가 머리로 치면 무너지겠는데요.”

“그 정도로 노력했다면 먹을 자격이 있지요.” (웃음)

두 시간은 족히 걸릴 줄 알았던 울력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습니다.

“수고했어요. 다음 주 울력 때는 저기 보이는 새로운 밭에 울타리를 쳐야 해요. 저 밭도 동네 어르신이 주셨어요.”

사용한 도구를 정리하고 밭을 내려왔습니다.

정토대전 회의

작업복을 법복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10시부터는 정토대전 성전팀과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도 경전팀에서 경전 원문에서 발췌하여 편집해온 내용을 함께 독송하고 점검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역사적 사실, 시대 배경과 어긋나지 않는지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준비한 모든 자료를 점검하고 다음 주 일정을 잡은 후 4시가 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야외 수돗가 미장하기

스님은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스님보다 나이가 많은 행자님이 요즘 들어 부쩍 야외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야채를 씻기 불편해 해서 개수대를 설치해주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스님은 야외 수돗가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연구를 했습니다. 재활용 창고에서 개수대를 하나 가져와 수돗가 위에 두고, 수돗가 주변을 미장하기로 했습니다.

개수대에서 나온 물이 튀면 수돗가 주변이 질퍽해지기 때문입니다. 한참 연구를 하던 스님은 수레에 삽과 포대, 거름망을 싣고 개울로 나갔습니다. 흙을 한 삽 떠서 거름망에 넣고 흔들어 돌만 골라 세 포대를 담아왔습니다.


다시 수돗가로 돌아와서 미장을 할 땅을 괭이로 팠습니다.

“시멘트에 흙이 섞이면 잘 안 굳기 때문에 흙은 골라내고 돌만 깔아야 해요.”


거름망으로 돌만 골라 따로 담고 파낸 땅은 평평하게 폈습니다.


그 위에 개울에서 가져온 돌과 방금 골라낸 돌을 평평하게 깔고 발로 자근자근 밟은 후 망치로 탕탕 박아주었습니다.


그 위로 지난번 강에서 퍼온 모래를 평평하게 폈습니다.

미장할 땅 주변은 각목과 돌을 가져와 고정시켰습니다. 그 위로 시멘트, 모래, 물을 잘 섞어 반죽한 다음 평평하게 펴 발랐습니다. 그런데 시멘트가 부드럽게 발리지 않고 거칠거칠한 모래의 질감이 더 많이 느껴졌습니다.



“이상하네요. 비율이 잘못됐을까요?”

시멘트를 다시 살펴보니 이미 모래가 섞여있는 시멘트였습니다. 다시 시멘트에 물만 질게 섞어 펴 발랐습니다.



“스님, 오늘 저녁에 법회가 있어서 이제 울력을 마치셔야 합니다.”

“내일 마르고 나면 다 부서질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그래도 일단 끝냅시다.”

받아둔 빗물에 사용한 도구를 씻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나니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있었습니다.

청춘 톡톡

해가 지고 저녁 8시부터는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생방송인 ‘청춘 톡톡’을 시작했습니다. 50여 명의 청년들이 방청객으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고, 3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어떤 일도 경험으로 삼는 자세를 이야기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봄날입니다. 저는 오늘 농사일을 주로 했어요. 밭에 울타리도 치고, 수돗가에 물이 주변으로 자꾸 흘러서 시멘트를 개서 수돗가 바닥 공사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나는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그동안 저는 전국을 다니거나 전 세계를 다니면서 강연을 하거나 오지에 가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지난 일 년 동안 꼼짝도 않고 한 곳에 머무르게 됐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같은 방에서 이틀 연달아 자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바랑 하나 메고 돌아다녔는데, 요즘은 매일 같은 방에서 자고 있습니다. (웃음)

제가 한참 돌아다닐 때는 ‘아마 은퇴를 해야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은퇴하기 전에 가만히 있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어요. 또 은퇴하면 농사를 지으려고 했는데, 은퇴도 하기 전에 농사를 마음껏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불행이지만, 그로 인해 주어진 현실을 다행으로 받아들이면서 요즘 저는 매일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환경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은 우리의 바람과 전혀 상관없이 주어집니다. 원하지 않아도 겨울이 오잖아요. 비록 봄을 제일 좋아한다 하더라도 여름도 괜찮고 겨울도 괜찮아야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봄이 아닌 다른 계절을 싫어하면 일 년 중 4분의 1만 행복하게 살고, 나머지는 힘들어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변화시키지만,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내가 적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료약이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조심하면서 적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환경이 내 인생에서 불행이 될지 행운이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짧게 보면 불행이었던 일이 길게 보면 큰 행운이 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어요. 여러분들은 아직 젊으니까 어떤 상황이든 늘 경험으로 삼아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보았습니다. 6명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미혼모가 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사제의 아기를 가졌어요

“저는 지금 아기를 가진 상태고 3주 후에 출산 예정입니다. 아이 아빠는 외국인이고 성직자입니다. 아기 아빠가 맨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성직 생활을 계속할 수 없으니 내려놓겠다고 말을 했어요. 그런데 한 달 전쯤에 말이 바뀌었습니다. 자기는 계속 성직자로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서 제가 한국에 있다가 놀라서 아기 배냇저고리랑 젖병 몇 개만 들고 유럽으로 급하게 온 상태입니다.

아기 아빠와 그 어머니까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같은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자신이 친부모라 할지라도 자기가 원하지 않는다면 친자 등록을 강요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최악의 경우 저 혼자서 아기를 키워야 하는 상황인데 아빠 없이 어떻게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별일 아니에요.”

눈물을 흘리며 질문을 하던 질문자는 스님의 한 마디에 옅은 미소를 보였습니다. 스님은 왜 별일이 아닌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어떤 여자 연예인이 결혼은 안 하고 애기만 갖고 싶어서 정자를 정자은행에서 구입하고 인공수정을 해서 아기를 낳았다는 기사를 보신 적 있지요? 그 여성은 아이 아빠가 없다고 질문자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울까요, 기뻐할까요?”

“그분은 기뻐하겠지요.”

“그분과 질문자를 비교했을 때 질문자가 불리한 게 뭐가 있어요? 질문자가 훨씬 더 유리합니다. 그분은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정자를 가져와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질문자는 그래도 한 때는 좋아했던 사람과 관계를 가진 거잖아요. 짧은 순간이었다고 해도 좋아해서 만났고 그 결과 아기를 가졌잖아요. 그러나 그분은 정자은행에 가서 정자를 사기 위해 몇 천 유로를 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한 푼도 내지 않았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아기를 가졌잖아요. 아기를 낳아서 질문자가 키우면 되지 왜 구질구질하게 그 남자에게 가서 매달리나요?

남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겠다고 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 남자는 그렇지가 않은데 어떡합니까. 하나님께 성직을 맹세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어쨌든 그 남자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들먹이든 부처님을 들먹이든 무엇을 들먹이든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아기 때문에 결혼하자고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남자한테 계속 매달릴 이유가 뭐 있어요?”

“아기 아빠는 프랑스인이에요. 일반적인 프랑스인이라면 ‘그래, 역시 다르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사제가 어떻게 생명을 그런 식으로 바라볼 수 있나요?”

“그 사람은 질문자와 만났을 때 그냥 한 남자였어요. 이제 와서 ‘신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고 분노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에요.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간에 질문자를 만났을 때는 그냥 한 남자였을 뿐이에요. 이미 아이는 생겼고, 그 남자가 함께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만, 그 남자는 책임을 안 지겠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이제 질문자가 어떻게 할 거냐를 선택해야 해요.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아기를 낳아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를 정해야 합니다. 자꾸 지나간 과거를 따지는 건 바보예요. 질문자가 아기를 낳아서 키우기 어려우면 아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면 됩니다. 그것도 큰 복을 짓는 일이에요. 그리고 질문자는 자기 생활을 하면 돼요.”

“그 남자가 부모님과 함께 와서 저에게 한 얘기가 황당했었어요. 아기 아빠는 아기를 키우지 않기로 선택을 했고, 아기를 키우기로 선택한 것은 저라는 얘기였습니다. 낙태를 할 수도 있었고, 아기를 입양 보낼 수도 있었지만, 저는 아기를 낙태하거나 입양 보내는 건 모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면 질문자가 아기를 키우는 것을 선택하면 되죠. 그 남자와 부모님은 자기들의 책임을 면하려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 속 보이는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삼자가 봤을 때도 결국 모든 것은 다 자기 선택입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해요.”

“하지만 아기를 낙태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고, 아기를 입양 보내는 것은 내 아기를 누군가에게 주게 되는 거잖아요.”

“아이를 왜 줘버린다고 생각을 해요? 나를 기준으로 보지 말고 아이를 기준으로 봐야 해요. 내가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 키울 수 있다면 아무리 가슴 아파도 그 아이가 잘 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이에요. 자기가 아이를 키우는 게 좋겠다면 자기가 키우면 되지 요즘 같은 세상에 못 키울 이유가 뭐가 있어요?”

“당연히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키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자가 아이를 키우세요. 프랑스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산 후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낳고 키우는 여성들이 꽤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이에게 아빠가 없어서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할까요?

엄마 혼자 아이를 키워도 엄마가 당당하면 아기에게 아무런 상처가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남자한테 구걸을 하고 원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되니까요. 그런 자세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사제가 여자와 관계해서 아기가 생기면 사제직을 박탈당하잖아요.”

“그 남자를 원망하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걸 보니 젊은 사람이 시원하질 못하네요. 질문자가 보기에 ‘그는 사제로서 자격이 없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바로 교구에 신고해버리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는 것도 다 자기 선택이에요. 그런데 신고로 인해 그 남자가 사제를 그만둔다고 해서 질문자와 결혼할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질문자가 신고해서 사제 자격이 박탈된 사람이 왜 질문자와 결혼을 하겠습니까.

‘이 사제가 나한테 피해를 준 건 차치하고, 또 다른 여자한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건 막아야겠다.’

이런 생각이라면 바로 신고를 해야죠. 그것은 아기 키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신고를 해야 하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고 프랑스에 왔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어쨌든 아기 아빠인데 문제를 키워서 좋을 게 뭐가 있냐고 하면서 만류하더라고요. 일단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른 후에 일을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아직 신고는 안 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이야기한들 무슨 결론이 나겠어요? 내가 좋아서 그 남자를 만났고, 결국 아기가 생겼어요. 그 남자도 같이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책임을 안 지겠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해요.

첫째, 나는 나 혼자라도 낳아서 키우겠다.
둘째, 나는 생명을 해칠 수는 없으니 아이를 낳겠다. 하지만 내가 키울 형편이 안 되니까 입양을 시키는 게 좋겠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을 살겠다.
셋째, 그 남자로 인해 나와 똑같은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생길 수 있으니 예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신고를 해서 이런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 외에 눈물 흘리고 원망하고 헤매는 건 장부답지 못한 태도예요. 장부가 되세요.”

“알겠습니다.”

“자기 삶에 중심이 서야 해요. 이 일 자체는 불행이 아니에요. 질문자가 지금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불행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그 여자 연예인은 혼자서 아기를 낳아서 기뻐하면서 키웠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자기는 훨씬 더 유리하다.’

울고만 있지 말고 이 이야기를 기억하세요. 먼 훗날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자 혼자서도 얼마든지 아기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제가 그 남자한테 ‘너는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냐?’라고 물어봤어요. 그 남자가 대답하기를, 본인은 조그만 수도원에서 사제 생활을 하고, 저랑 아기는 그 근처에서 살면, 본인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살겠다고 해요.”

“정신 좀 차리세요. 그런 말에 또 속으면 안 됩니다. 한 번 실수했으면 여기서 딱 끊어야지요. 그렇게 질질 끌려가면서 수도원 옆에 붙어서 살고 싶어요? 공개할 수도 없는 상태로 그렇게 숨어서 살려고 그래요? 질문자의 엄마가 그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혼자서도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고 살든지, 입양을 시키든지, 선택을 하세요. 그 남자와의 관계는 딱 끊으시고요. 혹시 나중에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빌면 그건 그때 결정할 일이에요. 그렇게 자기중심을 딱 잡고 살면 어떨까요?

그 남자는 잘못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인생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을 지는 거예요. 기분 나쁘면 교구에 신고하면 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허비하지 마세요.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과거에 자꾸 연연해서 계속 불행을 연장시키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에요.

‘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실수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 여기서 딱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인생의 교훈으로 삼아서 다음 한 발을 잘 내딛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이 육십이 되어서 돌아보면 이것이 무슨 큰일이겠어요. 별일 아니에요. 그러니 조금 더 장부답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기 인생을 이렇게 낚시 밥에 물려서 허비하지 마세요. 그러면 죽을 때까지 을로 살아야 돼요. 젊을 때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이렇게 교훈으로 삼으면 돼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이후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가 중요해요.

출산이 3주밖에 안 남았으니까 낙태는 못하잖아요. 아기를 낳아서 혼자 키워도 되고, 아기를 데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도 되고,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내도 돼요. 다른 선택의 길도 많다는 것을 직시했으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연애, 진로, 부모 관계, 환경문제 등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친 후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미혼모가 되었다며 울먹이던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좀 더 강하게 마음먹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기 잘 낳아서 씩씩하게 잘 키우겠습니다.”

“자랑스럽게 아기를 키우세요. 유화부인은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웠는데, 그 아이는 훗날 고구려를 세운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다고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엄마가 얼마나 당당하냐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남자를 원망하고 욕하면 그 아이가 어떻게 당당하게 자라겠어요?

오늘부터 당당하게 사세요

오히려 ‘이런 아이를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키워야 해요. 그럴 자신이 없으면 입양을 시키든지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좋은 사람이 새로 나타나서 결혼을 할 수도 있잖아요. 만약 그 남자가 다시 돌아오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하면 되잖아요. 거기에 연연해서 울고불고 징징대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예요. 그건 자기 자신을 형편없이 취급하는 겁니다. 설령 그 남자가 와서 싹싹 빌어도 ‘에이, 됐다! 내가 알아서 할게. 가라’ 하면서 쫓아내도 돼요. 사제를 안 하겠다고 해도 ‘당신 같은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믿고 구원받아야죠. 사제를 하세요’ 이러면서 팍 물리칠 정도로 당당함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울면서 남자의 어머니까지 찾아가고, 그래서 결국 ‘너의 선택이니 네가 책임져라’ 이런 소리나 듣고 있잖아요. 그러지 말고 오늘부터는 당당하게 사세요.”

“네. 감사합니다.”

씩씩하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질문자에게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얘기하면서 젊은이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저도 알 수 있었어요. 야단친 건 미안해요. 돈 받고 강의하는 것도 아니니까 야단치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무슨 재미로 하겠어요.(웃음)

지금 무엇에 집착이 되어 있나요?

울든 웃든 자기 인생은 다 자기가 사는 것이니까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겁니다. 비유를 하자면 입에 맛있는 음식과 건강에 좋은 음식은 다른 것과 같아요. 아무리 좋은 담배도 안 피우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안 먹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비싼 마약도 안 먹는 것보다 못해요. 이 세상에는 여러분들이 엄청나게 귀하게 여기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은 안 하는 것보다 못한 게 굉장히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환경 문제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고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차라리 개발을 안 하는 것보다 못한 일이 앞으로 나타날 거예요. 안 하는 것보다 못한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 아닐까요?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차 한 통이 천만 원 하는 것을 마십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술 한 병에 천만 원 하는 걸 마셔요. 이렇게 어느 한 가지에 집착이 되면 거기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그것을 못하면 열등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충족하면 우월의식을 느끼는 거예요. 그러나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고민도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입시에 떨어져서 한 해 재수해야 하는 게 그때는 어마어마하게 큰 충격이지만 훗날 나이 육십이 넘어서 다시 돌아보면 일 년 재수한 것은 별 일 아니에요. 연애하다가 헤어지면 병원에 갈 정도로 울고불고 하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 결혼한 후 다시 돌아보면 별 일 아닙니다. 상대를 못 잊어서 괴로워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일을 하든, 자유롭게 하되,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또 포기하고, 그래도 하고 싶으면 한 번 더 해보고, 이런 자세로 살면 좋겠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고 반드시 좋은 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된 게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요.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성과에 너무 사로잡힐 필요는 없어요. 방금 전에 울면서 질문했던 청년도 20년 후에 다시 돌아보면 지금 이 일이 질문자한테 얼마나 복이 되어 돌아올지 몰라요. 그러니 지금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내가 행복한 것이 제일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아프가니스탄에 구호활동을 갔는데요. 길을 가다가 늦어서 사막 가운데에 위험한 오두막집에서 잔 것과 호텔에서 잔 것은 그날만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 아무런 차이도 없어요. 오히려 오두막집에서 위험 부담을 안고 잔 게 훨씬 더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 경험이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너무 작은 현안에 전전긍긍하지 마세요. 인간은 항상 잘못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부족하고 잘못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아! 이게 부족했구나’ 하고 딱 돌이켜서 주저앉지 말고 벌떡 일어나세요. 그것을 경험으로 삼는다면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의 여유로 자리 잡는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지위와 돈 이런 것들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옛날에 배고플 때나 신분으로 차별받고 살 때는 그런 욕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살든 자기가 행복한 게 제일이에요. 자기가 당당한 게 제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기죽을 필요 없고, 어떤 사람을 보고도 무시해서는 안 돼요. 우월한 것도 열등한 것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다만 다를 뿐이에요. 그런 관점을 가지고 젊은이답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달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오전에 은사 스님인 불심 도문 큰스님 생신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통일의병들과 농사일을 함께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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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로 지나고 보니 30년 전에 있었던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있던 일들이 지금 와서 돌아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2021-05-28 11:31:57

신은희

저도 젊은시절엔 현안 하나하나에 신경쓰고 스트레스 받느라 가정에 직장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때는 너무 집착했고. 완벽하려고 했구. 책 잡히지 않으려 했고. 조급했습니다.
이제 나이 54살이 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보니
아! 내가 너무 바보같이 살았구나 싶어요. 다행인것은 그점을 이제라도 깨치고 여유있게 마음을 다스릴수 있다

2021-05-07 19:58:13

법안

스님께.. 귀의합니다...

2021-05-07 12: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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