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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세평 하늘길 14km를 걸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5시에 문경 수련원을 출발해 봉화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햇볕은 따사롭고 여린 나뭇잎이 푸르름을 더하는 날씨입니다. 오늘은 법회가 없는 날이어서 봉화 수련원 근처에 있는 낙동강 상류 세평 하늘길을 하루 종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네요.”
아시아태평양 정토회 대표를 맡고 있는 노재국 거사님이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한국에 머물고 있어서 오랜만에 스님과 동행했습니다.
“한국 구경 좀 시켜주려고요. 전 세계 어디를 가 봐도 한국만큼 경치가 아기자기한 곳이 없어요. 대부분 큰 숲만 있거나, 큰 계곡만 있거나, 큰 바위만 있거나 어느 한 개만 있는데 한국은 숲과 계곡, 바위가 한 곳에 어우러져 있잖아요.”
“늙으면 늙을수록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강과 산, 나무, 꽃이 어우러진 자연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니 가슴이 툭 트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산타마을로 유명한 분천역부터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분천역 철길을 왼편에 두고 마을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낙동강을 가로질러 건너는 비동1교와 포장도로 옆에 조성한 낙동강 금강송 오솔길을 만났습니다. 이어서 비동2교를 건넜습니다. 최근에 주말마다 봄비가 내려서 그런지 물이 아주 많았습니다.
강 너머 풍경은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여린 나뭇잎은 윤기를 더하고, 물오른 버들강아지가 부풀어 오르고, 바위와 소나무 사이사이에 붉은 진달래가 수를 놓았습니다.
강변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소리와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스님, 속이 확 트이는 기분입니다.”
“이 풍경은 아무리 부자라도 자기 발로 직접 걸어와야 볼 수 있는 풍경이에요. 이런 오솔길은 차도 못 들어오잖아요.” (웃음)
강을 따라 나란히 놓인 시멘트 포장길 200여 미터를 걷다 철교 아래를 지나 가파른 둔덕을 오르니 비동역이 나타났습니다.
발아래 흐르는 시원한 강줄기를 내려다보며 철교 옆으로 난 보도를 건넌 뒤 터널 오른편으로 난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처음에 여기 왔을 때는 이 산길을 못 찾아서 한참 동안 헤맸어요. 겨울에 왔을 때는 얼음 위로 걸어갔는데 그 다음에 왔을 때는 물이 녹아서 강을 건널 수가 없었거든요.”
흙길을 오르는 동안 울창한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주었습니다. 언덕을 넘어서니 발아래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하를 구불구불 돌아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산길을 내려와서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다시 강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강 건너 솔숲의 푸르름을 보니 이내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잠수교와 철교 아래를 지나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로 불리는 양원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산골 오지 마을에 사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승강장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애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길을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이라고 해서 세평길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그만큼 험준한 계곡이라는 뜻이죠.”
양원역에서 승부역까지는 백두대간 협곡을 따라 걷는 비경길이 이어졌습니다. V자형의 협곡 물길을 따라 지금도 영동선 열차가 칙칙 소리를 내며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 보세요. 민가가 들어설 자리가 하나도 없잖아요.”
영동선 철로를 따라 난 오솔길은 강바닥으로 연결되어 자갈길과 바윗길로 이어졌습니다. 잠시 바위 위에 앉아 협곡 양편의 절벽 위에 곧게 뻗은 금강송들의 멋진 자태를 구경했습니다.
“참 경치 좋죠?”
옥빛 강물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았습니다.
아침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강 건너편 응달에는 아직까지도 얼음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기 보세요. 햇볕이 없는 곳은 아직도 얼음이 안 녹고 있네요. 봄이 왔다고 해도 응달에는 아직도 얼음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굽이굽이 휘어진 강을 따라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6시간을 걸었습니다. 드디어 승부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 오늘 저희가 얼마나 걸었죠?”
“14km 정도 걸었네요. 수고하셨어요. 봉화 수련원에 가서 두릅나무 뿌리를 좀 캐서 드릴게요. 갑시다.”
다시 차를 타고 봉화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봉화 수련원 뒷산에는 두릅나무가 많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 두릅나무의 뿌리를 캐기로 했습니다.
“두릅나무는 뿌리를 이용하면 쉽게 번식을 시킬 수 있어요. 지금처럼 두릅순이 물이 오르기 전에 뿌리를 굴취하면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아요.”
스님은 두릅나무 하나를 정해서 괭이로 그 밑을 팠습니다. 조금만 팠는데도 금방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뿌리 5-6개만 자른 후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10cm 길이로 자른 다음에 수평으로 땅에 묻고 흙을 살짝 덮어주기만 하면 돼요.”
뿌리의 굵기가 볼펜 정도만 했습니다. 이렇게만 해도 다시 번식을 한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자, 선물입니다. 한 40개 정도 드릴 테니까 밭에 심어 보세요.”
뿌리를 자르고 나니 100개 정도가 되었습니다. 40개는 노재국 거사님에게 선물로 주고, 나머지 60개는 봉화 수련원 앞마당 경사면에 모두 심었습니다.
“두릅나무는 양지바른 경사면에 심는 게 좋아요.”
뿌리가 물에 잠기면 안 되기 때문에 배수가 잘 되려면 아무래도 경사면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40cm 간격으로 땅을 파고 경사면에 두릅 60개를 다 심었습니다.
“희광법사님이 다리가 불편하니까 두릅 채취하기 좋게 앞마당에 이렇게 심었어요.”
봉화 수련원 원장인 희광 법사님은 스님의 배려에 웃음을 보이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순식간에 두릅나무 뿌리를 심은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봉화 수련원에는 울진에서 포클레인 운전을 하는 거사님 한 분이 와서 며칠간 머물며 논과 밭을 정비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경 수련원에서 상근 활동가들이 와서 농사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감사한 마음을 전한 후 오후 5시에 봉화 수련원을 출발해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에 문경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수행법회를 한 후 오후에는 명상원 옆 살구골에 잡목을 제거하고 정리하는 울력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어제 청춘톡톡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한 편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동료 관계도 괜찮고 성과도 인정받아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만 차별하고 무시하는 분이 있어요. 차별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제 눈을 안 마주친다든지 제 말에만 반응을 안 한다든지 저를 무섭게 쳐다본다든지 그럴 때마다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어떻게 마음을 너그럽게 가질 수 있을까요?”
“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내가 말하면 다 대답을 해야 하고 눈을 맞춰줘야 해요? 주제 파악 좀 하세요. 그 사람이 상사예요, 동료예요, 부하예요?”
“상사입니다.”
“상사가 마음에 안 들면 직장을 그만두고 나가는 길이 있어요. 그런데 상사가 내가 말을 걸었는데 눈을 안 마주치고 대답을 안 하는 게 직장을 그만둘 만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요?”
“아닙니다.”
“질문자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질문자가 직장을 그만두는 거예요. 그러면 취업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얼씨구나’할 겁니다. 그 자리를 차지할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요. 직장을 그만두면 나도 편해지고, 다른 사람한테도 좋은 일입니다.
둘째, 내가 지금 직장을 그만둘 형편이 아니라면 직장에 다녀야 합니다. 어차피 다녀야 하는 직장을 지금처럼 괴로워하면서 다닐지, 괴롭지 않으면서 다닐지는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상사가 성추행을 한다든지 폭언이나 폭행을 한다면 고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말을 했는데 대꾸를 안 했다거나 눈을 안 맞췄다는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안 돼요,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 내 욕구가 너무 강한 겁니다. 내가 말하면 상대가 항상 대답을 해줘야 하고 내 눈을 맞춰야 한다는 건데 그건 지나친 욕구예요. 그러니까 내 욕구가 강해서 괴로운 것이지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건 아닙니다.
질문자가 ‘그가 무섭게 쳐다봤다’고 했는데 어떻게 쳐다봐야 무섭게 쳐다보는 거예요?(웃음) 질문자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예쁨만 받고 살다가 자기를 예뻐해 주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잘해줘도 문제예요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에게 질문한 사람이 격려가 필요하면 격려를 하고, 생각이 잘못됐다 싶으면 이렇게 지적을 해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저에게 묻는 것 아니에요? 제가 다 잘했다고만 하면 왜 나한테 묻겠어요. 여러분은 제가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니까 즉문즉설을 보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는 하잖아요. 그런데 질문하기 전에 스님한테 야단을 맞을 각오를 하고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뭐 때문에 야단을 쳐요. 아는 사람도 아니고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인데요. 그런데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스님이 야단을 친다고 표현합니다.
늘 좋은 소리만 듣던 사람은 제가 모순을 찌르면 기분 나빠해요. 어떤 사람은 속이 시원하다고 합니다. 그런 반응은 그 사람 사정이지 제가 그걸 다 고려해서 기분 안 나쁘게만 이야기해주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그동안 질문자는 생글생글 웃고 잘하니까 사람들이 예뻐해 줬는데 그 상사는 생글생글 웃어도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웃나’하고 별 반응이 없는 거겠죠.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질문자 의도대로 맞춰줬는데 그 상사는 내 손에 잘 안 잡히니까 기분이 나쁜 겁니다. 그분 성격이 무뚝뚝할 수도 있고, 질문자 같은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어요. 그 이유는 내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나에게 직접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하거나 성희롱을 한 게 아니라면 상대의 반응까지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거니까요.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고발을 해야 하지만, 그가 질문자의 비위까지 맞춰 줄 이유가 뭐가 있어요.
질문자가 너무 건방진 생각을 하는 겁니다. 밥 먹고 살려면 정신 차리고 직장에 잘 다니세요. (웃음) 기분이 나쁘면 오늘이라도 확 사표내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든지요. 취업하려고 줄 서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거예요. 그렇게 보살행을 해도 좋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이니 어쩌니 환상을 갖지 말고 그 상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세요. 그분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줘야 하나요? 내 뜻대로 안 해준다고 미워한 거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는 그런 성격, 그런 성향을 가졌을 뿐이다’ 이렇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또 야단맞았다고 할 거예요?” (웃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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