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3.23~24 화단 정비, 온라인 수행법회
“건강검진에서 병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3월 23일

오늘은 화단을 정비하기로 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해가 뜨자마자 비닐하우스 옆에 쌓인 흙을 포대에 담았습니다. 농사팀 행자님들도 일손을 도왔습니다.

“무거우면 들기가 힘드니까 흙을 3분의 1 정도만 담아 주세요.”

쉼 없이 포대를 날랐습니다. 흙을 담는 사람, 흙을 이동하는 사람, 흙을 받아서 뿌리는 사람, 이렇게 역할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행자님들이 날라 준 포대를 화단에 뿌리고, 쇠스랑으로 흙을 평평하게 골랐습니다.

1시간 정도 일을 하고 나니 화단에 흙이 골고루 뿌려졌습니다.

“이 정도면 됐어요. 이제 개울에 가서 고운 모래를 좀 담아 옵시다.”

개울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바닥에는 아주 고운 모래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장화를 신고 물속에 들어가자 금방 흙탕물이 되었습니다. 삽으로 조심히 모래를 퍼서 포대에 담았습니다.

“물기를 빼고 말려서 모래만 담으면 좋은데,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포대에 담아서 나릅시다.”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고운 모래를 화분에 가득 담았습니다. 금방 물기가 빠지고 반듯한 화분 네 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화분에는 선인장을 옮겨 심어야겠어요.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요.” (웃음)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장갑을 벗고 나니 손바닥에 가시가 많이 박혀 있었습니다.

“가시 빼내는데 시간이 꽤 걸리네요.”

화단 정비를 마치고 오전 10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했습니다.

“이 벚나무는 벌써 꽃이 피었네요. 가장 빨리 꽃이 피는 벚나무를 올벚나무라고 해요.”

오후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오후 3시부터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졌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1년이 넘게 사회 인사 분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오랜만에 정토회관을 찾아왔습니다.

윤여준 전 장관님, 최상용 교수님 등 사회인사분들을 차례대로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3월 24일

오늘은 서울 서초 법당에서 오전 10시와 저녁 7시 두 번 생방송으로 수행 법회가 열렸습니다. 지난주 수행법회에 이어 오늘도 온라인 정토회 개편 방향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로 오전에만 생방송을 하다 보니 저녁반 활동가들이 직접 질문할 기회가 없다고 해서 오늘은 저녁에도 생방송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침 기도와 공양을 마치고 10시부터 생방송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행자들은 지금 출가열반일을 맞이해 8일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정진의 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좋아도 싫어도 꾸준히

“오늘은 출가열반절 8일 정진 기간 중 5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제 절반이 지났는데 정진 잘하고 계세요? 정진의 의미는 ‘꾸준히 한다’입니다. 우리는 뭐든지 마음이 나면 바짝 해버리고, 마음이 안 나면 관둬버리죠. 좋을 때도 너무 과하게 하지 말고, 싫어도 그만두지 말아야 해요. 좋을 때도 정해진 만큼 하고, 싫어도 정해진 만큼 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는 게 정진입니다. 그러니 너무 욕심내서 조급해 하거나 긴장하지 말고, 또 싫은 마음에 사로잡혀서 게을러지거나 포기하거나 억지로 하지도 마세요. 좋고 싫고는 마음의 문제고 나는 하기로 한 것을 그저 꾸준히 하면 됩니다.

이런 연습을 꾸준히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않고는 그 사람의 문제라는 걸 깨달아서 상대의 기분과 상관없이 나는 그 사람을 꾸준히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부모라면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아이들의 문제고,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내 말을 듣든 안 듣든 아이들을 꾸준히 사랑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을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봄을 좋아해도 여름이 되면 여름의 일상을 살아가야 해요.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옷 한 벌 더 입고 난방을 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겨울이라고 움츠러들거나, 여름이라고 늘어져 있을 필요가 없어요. 계절은 계절이고, 나는 그 가운데 꾸준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 됩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꾸준히 하는 것이 정진입니다. 그러니 8일 정진 기간 동안 바쁜 날도 하고, 한가한 날도 하고, 하고 싶은 날도 하고, 하기 싫은 날도 하고 이렇게 꾸준히 해보세요.

‘꾸준히 살아가는 일상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어 연습을 좀 한다.’

이렇게 이해하시고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은 봄소식을 전했습니다.

봄소식을 전해드려요

“지난주에 약속한 대로 오늘은 봄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제 앞에 진달래꽃도 꽂아 두었습니다. (웃음)

도시에 살면 봄이 오는지 겨울이 가는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비가 오는지 날이 맑은지도 구분이 어렵고요. 건물 안에서 지내니까 비가 들이칠 일도 없고, 추울 일도 별로 없고, 더울 일도 별로 없어서 계절의 변화를 잘 못 느끼죠. 시골 산야에 묻혀 살면 하루하루 달라요. 봄에 나무마다 새싹이 돋아나면 그 색깔이 하루하루 다 달라서 산의 색깔도 매일 조금씩 달라져요. 아침햇살이 비칠 때도 햇살의 강도에 따라 나뭇잎의 빛깔이 또 달라지고요. 오늘은 꽃 사진을 몇 장 보여드릴게요. 어제와 그제 감자를 심느라 두북 수련원에 가 보니 꽃이 많이 폈어요. 경주 남산에도 올라가 봤습니다. 두북과 남산에서 찍어온 사진을 몇 장 보여드릴 테니까 봄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어제와 그제 찍은 꽃 사진이 화면 가득 찼습니다. 동백꽃, 홍매화, 매화, 산수유, 생강나무 꽃, 개나리, 진달래, 목련, 자목련, 앵두꽃, 벚꽃을 차례로 보여주었습니다. 꽃봉오리가 맺힌 꽃도 있고 이제 막 피어나는 꽃도 있고 흐드러지게 피는 꽃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꽃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었습니다.

꽃을 보고 난 후 스님은 전국 수련원과 지부별 으뜸절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두북 수련원에는 지금 일거리가 많아요. 이제 막 농사가 시작되는 철인데 전국 법당을 정리하고 보낸 물건이 태산같이 쌓여있습니다. 물건이 창고를 가득 채우고 지금은 교실까지 다 들어차서 잘 방도 모자란 지경이에요. 새로 비닐하우스 창고를 짓고 있는데 물건을 정리할 일꾼이 많이 필요해요.

정토사회문화회관에도 수도권 법당에서 나온 생활용품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법당에서 나오는 생활용품까지 두북까지 싣고 가려니 거리도 멀고 보관할 공간도 부족해서 일단 가구 종류만 두북으로 보내고 생활용품은 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모으다 보니 여기에도 지금 물건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셔서 이 정리를 좀 도와주셔야 해요. 공동체 실무자들이 지금 두 달째 짐 정리만 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웃음)

정토행자들이 법당을 중심으로 활동할 때는 법당 일이 너무 많아서 지부별 으뜸절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법당을 정리했기 때문에 그동안 묵혀있던 토지를 전부 새로 일구고 있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본인과 가까운 곳에, 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조금이라도 봉사를 해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도 온라인 전환 초기에는 강연장에 직접 가지 않으니까 조금 한가했는데, 온라인으로 하는 회의며 법회가 엄청나게 늘어 버렸어요. 지금은 일일이 찾아다니며 법문 할 때보다 온라인으로 하는 법문 횟수가 10배는 더 늘어난 것 같아요. (웃음) 그렇게 다시 바빠진 탓에 실무자들이 일하는 걸 거들어주기가 쉽지 않네요. 예전에는 일주일 내내 붙어서 도와주기도 했지만 요즘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밖에 시간이 안 나요. 시간 날 때마다 내려가서 돕고는 있습니다만, 여러분도 오셔서 틈나는 대로 일손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 개편 방향에 대한 질문 두 가지와 낙태, 미얀마 사태를 도울 방법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4명의 질문을 받고 11시 10분에 수행법회를 마친 후 스님은 곧바로 행정처 활동가들과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4월 18일에 진행되는 10-5차 백일기도 입재식 행사 계획과 4월 10일에 진행되는 온라인 선거 계획에 대해 행정처 활동가들이 스님의 자문을 구했습니다.

“다들 수고가 많으시네요.”

“또 궁금한 점이 생기면 자문을 구하겠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 30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했습니다.

이어서 오후 3시에는 사회활동기구 책임자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정토회는 법당을 모두 철거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했지만, 아직 사회활동 단체들의 경우에는 분명한 방향을 잡지 못했습니다. 평화재단 기획위원장님의 발제가 있은 후 스님이 먼저 지금의 고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온라인 시대에 사회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사회운동은 온라인 공간에서 어떻게 펼쳐나갈지 아직 충분한 논의를 못했습니다. 법당을 철거했 듯이 사회운동도 축소해야 하는 영역이 있을 것이고, 오히려 확대하고 개발해야 하는 일도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음식물 쓰레기 제로 운동은 좀 소극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집집마다 베란다에서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는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에 필요한 퇴비를 자기 집에서 만들어내고, 집집마다 남는 유기농 거름들을 정토회에서 구입해주고, 반대로 거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정토회가 유기농 거름을 제공해주고, 그렇게 생산한 유기농 채소가 남으면 정토회가 구입해 주고, 채소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정토회가 공급을 해주고, 이렇게 생활과 밀착해서 환경도 살리고, 건강도 회복하는 운동을 개발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해보면 어떨까요?

요즘 정토회가 법당을 철거하면서 나온 물품들을 재활용하듯이 전국적으로 재활용 운동을 활성화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어떤 사회운동을 하는 게 좋을까요?

수행자가 하는 사회운동

앞으로 빈곤층 지원 사업은 정부의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대부분이 해결될 겁니다. 현재 미국에서도 시민단체가 해야 하는 영역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홈리스(homeless)를 돕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런 일이 구호 차원에서는 필요한데 미래사회를 개척하고 창조하는 일은 아니거든요. 요양병원을 운영하거나 노인들을 돕는 일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너무 무거운 운동인 것 같아요. 미래지향적인 운동은 좀 가볍고 참여가 쉬워야 해요. 숫제 요양병원을 잘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지원하거나 거기에 가서 봉사를 해주는 일을 하는 게 차리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토회는 월급을 주고 고용하는 것을 안 하기로 했는데, 요양병원을 운영하려면 월급을 주고 관리해야 하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수행자가 하는 사회 운동은 좀 더 가벼워야 합니다.

노인들을 돕는 일도 시골에서 해보니까 요즘은 정부에서 워낙 지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노인잔치를 하면 선물을 3만 원짜리를 줍니다. 정토회는 3천 원짜리를 주거든요. 온천 목욕도 시켜주지, 이동식 목욕차를 가져와서 씻겨주지, 그러다 보니 결국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도 고급화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 고급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사람들이 찾아오니까요. 이런 일을 과연 우리가 할 필요가 하는 의문이 들거든요.

환경 운동을 해야 하는 건 맞아요. 그러나 어떤 환경 운동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인권 운동을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어떤 인권 운동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예요. 정말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인권 운동도 있지만,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도 있거든요.

그래서 변화된 시대에 맞게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회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30년이 되었기 때문에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요.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사회활동기구 책임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었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고민의 출발점에 서서 워밍업을 하듯이 가볍게 의견만 주고받았습니다. 다음 회의 때는 팀장급 활동가들도 참가해서 더욱더 활발하게 의논해보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을 했다가 오후 5시부터는 행복시민의 사회 실천과 관련해서 간담회를 했습니다. 그동안 행복학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 온 책임자들이 온라인 시대에는 행복학교를 졸업한 시민들이 어떤 사회 실천을 하면 좋을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얼마 전 행복학교 졸업생들이 동네에서 쓰레기 줍기 활동을 해보았어요. 쓰레기를 줍고 나니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저는 요즘 담배꽁초를 매일 줍고 그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같이 하겠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어요.”

“포항에서 행복학교를 졸업한 어떤 분은 아파트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1시간 했어요. 그 사진을 아파트 주민들이 가입된 밴드에 올렸더니 다음 주에 자기도 함께 하겠다는 사람이 8명이나 생겼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아파트 내에 봉사 모임까지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통장을 하라는 제안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웃음)

......

아이디어를 쏟아내다 보니 약속한 회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오늘은 의견 수렴만 하고 다음 회의 시간을 잡고 저녁 7시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저녁 활동가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녁 활동가 여러분, 오랜만이죠? (웃음) 제가 서울에 올라온 김에 저녁에도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문경으로 내려가려고 갑자기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저녁반 활동가들에게도 꽃 사진을 보여주며 봄소식을 전했습니다. 봄기운을 나누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 개편방향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인생 문제에 대한 질문도 받았습니다. 4명의 질문 중 몸에 병이 생겨 마음이 움츠러든다는 분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건강 검진에서 병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어떡하죠?

“작년 초 건강 검진에서 뇌혈관 협착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있는데, 자주 통증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마음이지만, 일과 인간관계에서 움츠러들 때는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제가 일상에서 어떤 관점과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그런 병이 발견됐다는 것 자체는 아예 병이 없는 것보다는 나쁩니다. 그런데 병이 있기는 있는데 발견이 안 된 것보다는 발견이 된 게 나아요.

이처럼 항상 어떤 것이든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있어요. ‘병이 없으면 좋겠다’ 이런 관점에서는 보면 병이 있다는 건 나쁜 일이겠죠. 그러나 병이 있는데 발견이 안 되는 것보다는 발견된 편이 좋다는 관점에서 보면 좋은 일입니다. 발견이 되어야 예전보다 조심을 하든지 치료를 하든지 길이 열리잖아요. 그래서 지금 질문자가 처한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병이 발견된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제 질문자가 해야 하는 일은 수술을 하든지 약을 먹든지 해서 치료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치료에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어요. 병이라는 게 치료한다고 다 낫는 게 아닙니다. 물론 치료를 해서 완치가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는 어렵고 더 이상 악화를 막는 것만 가능한 경우도 있어요. 이것 역시 치료입니다. 이럴 때는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을 3년이나 먹어도 낫지 않네!’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악화를 안 시키는 것도 치료 중의 하나예요.

그리고 병이 악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치료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있어요. 약을 안 먹으면 1년이나 3년 만에 목숨이 다할 텐데 약을 먹으면 10년은 살 수 있는 경우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이 악화되기는 하지만 그 속도를 늦추어 줍니다. 이런 경우도 치료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처럼 치료에는 완치를 하는 길이 있고, 악화를 방지하는 길이 있고, 악화를 늦추는 길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다 치료에 들어가요.

수행자는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아무 두려움이 없어야 해요. 이것을 ‘생사를 벗어났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다시는 나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불생’ 또는 ‘불사’라고도 표현합니다. 문자 그대로 태어나거나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아무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에요. 수행자는 죽는다 해도 아무 두려움이 없는데, 질문자는 지금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조금 일찍 죽을 가능성이 있겠다는 정도잖아요. 그런데 지금 아프지 않은 사람도 앞으로 다 죽습니다. 아픈 사람만 죽는 게 아니라 안 아픈 사람도 다 죽어요. 차이라면 조금 일찍 죽느냐 조금 늦게 죽느냐 이 차이밖에 없어요.

하루살이가 오후 4시에 죽든 오후 6시에 죽든 밤 10시에 죽든 무슨 차이가 있어요? 어차피 하루살이인데요. 사람도 오래 살아봤자 어차피 100년 남짓인데 40살에 죽으나 60살에 죽으나 80살에 죽으나 별다르지 않아요. 사람의 삶도 크게 보면 하루살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그러나 일부러 죽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병이 발견됐으면 ‘아, 발견됐구나’ 하고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만약 치료가 안 된다고 하면 조심을 해야 합니다. 저도 심장에 동맥이 하나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치료하려면 거기에 관을 넣어서 막힌 부위를 뚫어줘야 한 대요. 관을 안 넣으려면 약을 잘 먹고 평소에 조심을 해야 해요. 그렇다고 제가 이 사실을 몰랐던 옛날에 비해 지금 갑자기 아파진 것은 아닙니다. 옛날에도 산에 올라가면 숨이 차서 못 올라가고, 계단을 올라가면 숨이 차고, 절을 하면 숨이 찼어요.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았습니다. 다만 지금은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젊을 때보다 힘이 더 들뿐이에요.

예전과 차이점 있다면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조심을 한다는 겁니다. 옛날 같으면 아무리 가슴이 아프고 따가워도 뒷사람이 못 따라올 정도로 속도를 내서 산에 확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트럭이 오르막길을 올라가듯이 그냥 천천히 올라가요. 내리막은 그래도 아직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내려가는데, 오르막은 꼭 트럭이 올라가듯이 천천히 올라갑니다. (웃음)

그래서 요즘은 걷기 운동을 할 때도 오르막이 가파른 곳은 안 갑니다. 산을 가더라도 차를 타고 고개 마루까지 가서 차를 보내버린 뒤에 내리막을 걷거나 평지를 걷는 식으로 걷습니다. 어제 경주 남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옛날 같으면 가파른 곳도 막 올라갔는데 어제는 조금 완만한 코스를 선택해서 올라갔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조심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숨이 차고 가슴이 아파도 계속 갔지만 이제는 그럴 때마다 잠깐 쉬었다 갑니다. 이것도 조심하는 방법 중에 하나예요.

제 말의 핵심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수행자는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행자는 아예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설령 아프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수행자는 돈을 잃어도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 하지 않아요. 그로 인한 섭섭함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못 살겠다는 수준은 아니어야 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가족 중에 누가 죽어도 눈물이 찔끔 날지언정 그것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두려워하지 말고 거기에 맞게끔 대응하면 됩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법륜 스님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서 따르면 돼요. ‘수술하시오’ 하면 수술하고, ‘약 먹으시오’ 하면 약 먹고, ‘조심하시오’ 하면 조심하고요. 그러면 되지 두려워할 필요가 하등 없습니다.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어요. 조심하는 것과 의기소침한 것은 다릅니다. 그렇게 생활해 나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방청객들도 모두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얘기를 조금 더 나누고 싶지만 300배 정진을 해야 하니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전 법회에 제가 얘기를 조금 길게 했더니 다들 불평이 많았어요. 오전에 들은 분들은 점심을 조금 늦게 먹으면 되는데, 저녁에 듣는 분들은 내일 직장도 가야 하는데 잠잘 시간이 줄어든다고요. 오늘은 제가 얼마나 법문을 잘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을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정진 열심히들 하세요.” (웃음)

8일 출가 용맹 정진 기간이어서 대중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300배 정진을 함께 하고 마음 나누기까지 한 후 수행 법회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하루 종일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을 위해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유튜브 구독자들을 위한 행복한 대화 공개 강연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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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연기

[저도 심장에 동맥이 하나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치료하려면 거기에 관을 넣어서 막힌 부위를 뚫어줘야 한 대요. 관을 안 넣으려면 약을 잘 먹고 평소에 조심을 해야 해요. 그렇다고 제가 이 사실을 몰랐던 옛날에 비해 지금 갑자기 아파진 것은 아닙니다. 옛날에도 산에 올라가면 숨이 차서 못 올라가고, 계단을 올라가면 숨이 차고, 절을 하면 숨이 찼어요.]

2021-04-05 04:14:10

보각

스님 고맙습니다. 환경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03-30 18:43:01

감사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2021-03-30 07: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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