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5 정토대전 불교사상서 회의
“경전 속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공동체 법사단과 함께 하루 종일 정토대전 편찬을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스님과 회의를 하기 위해 불교사상서와 사회사상서 제작을 맡은 법사님들이 모두 문경 수련원 명상원에 모였습니다.

문경 수련원에는 밤사이 눈이 살짝 내렸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날이 밝자 마당이며 길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먼저 공동체 법사단 전체 회의를 2시간 동안 한 후 10시 30분부터 정토대전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회사상서팀을 이끌고 있는 향훈 법사님이 궁금한 점을 물은 후 이어서 불교사상서팀이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우선 여광 법사님이 오늘 회의 내용을 제안했습니다.

“오늘은 팔정도의 여덟 가지에 대해 각각 어떤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지 조사해 왔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지난 회의 때 더 알아보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신 과제들도 조사해 왔는데요. 한 명씩 발표하겠습니다.”

팔정도 중에서 ‘정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 해석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향광명 법사님이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정사유’가 어떤 의미인지, ‘정념’, ‘정정’, ‘정정진’이 무엇을 뜻하는지 차례대로 발표하고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 다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무변심 법사님이 붓다가 입멸 후 그 가르침이 어떤 경전으로 만들어져서 전승되어 왔는지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묘당법사님이 불교의 우주관에 대해, 대광법사님이 12연기에서 식(識)과 명색(名色)의 고리가 무엇인지 발표했습니다.

법사님들은 열심히 연구하고 정리해왔지만, 듣는 사람들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어렵게 말씀하셨을까요?” (모두 웃음)

스님은 과거의 경전과 기록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관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안 돼요. ‘부처님이 과연 이렇게 말씀하셨을까’라고 보면 안 되고 ‘부처님의 말씀을 이렇게 편집했나’ 이렇게 봐야죠. (모두 웃음)

과학적인 지식이 없었던 그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이 글들은 최소 2000년 전에 편집되었고, 논장이라고 하는 것도 1500년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둬야 해요.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인 지식이 전혀 없었던 그 당시에 아무리 학식이 높았다 하더라도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어요?

특히 2600년 전 인도에서는 전생에 지은 인연의 과보로 태어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을 거예요. 사람이 왜 여자가 되고 남자가 되는지도 생물학적인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또 그 당시에 남녀가 평등했다면 그런 생각을 안 했을 텐데, 남자로 태어나면 온갖 복락이 주어지고, 여자로 태어나면 온갖 고통이 주어졌잖아요. 그러니 ‘왜 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저렇게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을까?’ 이런 의문을 가졌던 겁니다. 신분제도가 절대화되어 있으니까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그걸 설명하거나 이해하려니 전생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야 해요. 기독교에서 아직도 우주를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불교에서도 이런 관념에서 못 벗어난다면 사실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문화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야’, ‘네가 그러니까 하느님한테 벌을 받지’ 이런 말을 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적으로는 ‘다 전생의 인연이다’ 이런 말을 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문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전생이 있을까요?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어요.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가 결합해서 이루어진 수정란이 초기 분열을 할 때, 그 수정란을 두 쪽으로 내면 똑같은 두 사람을 만들 수 있고, 네 쪽을 내면 똑같은 네 사람을 만들 수 있어요. 16쪽을 내면 아예 신체적으로 유전형질이 동일한 존재를 그 수만큼 똑같이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이 16명의 존재를 과연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분할한 16쪽을 여성 16명의 자궁 안에 넣어서 키우면 16명의 다른 아이가 태어납니다. 낳은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이 아이들은 다 모양이 같습니다. 그러나 유전형질이 같다고 해서 키도 똑같고, 발육상태도 똑같고, 생각도 똑같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체의 육체적 영양 상태나 심리적 긴장 상태에 따라서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서로 조금 달라지고, 자라면서 또 달라져요. 아예 유전형질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면 이 16명은 생김새가 똑같고 행동도 많이 비슷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 달라요. 인(因)은 같지만 연(緣)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무 씨앗을 뿌려도 수확한 무를 보면 굵은 게 있고 작은 게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16명을 각각 다른 환경에서 키우면 어떻게 될까요? 한 아이는 어릴 때부터 뉴기니 원시부족이 키우도록 하고, 한 아이는 아프리카에 데려가서 키우고, 한 아이는 프랑스에서 키우고, 한 아이는 독일에서 키우고, 한 아이는 영국에서 키우고, 한 아이는 일본에서 키우고, 한 아이는 한국에서 키우고, 한 아이는 중국에서 키우고, 다른 아이들은 미국에서 키우는 거예요. 또 미국 내에서도 한 명은 흑인 가정에서 키우고, 한 명은 백인 가정에서 키우고, 한 명은 하층 노동자 집안에서 키우고, 한 명은 상류층 집안에서 키운다면, 모두가 서로 다른 인간이 됩니다. 물론 이런 실험은 윤리적 이유로 불가능합니다. 여기서는 이해를 도우려고 예를 든 거예요.

이런 사실을 윤회와 전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어요. 윤회와 전생으로 설명한다면 그건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사실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시대에서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이해한 내용인 거예요. 경전의 내용을 볼 때 경전을 기록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생각하며 봐야 합니다. 그중에서 올바른 것을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거예요.

경전 속 비과학적인 요소를 해석하는 관점

부처님의 말씀이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 어떻게 이해가 잘못되었는지를 살펴야 해요. 또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안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원래 부처님 말씀에는 없지만 이런 의문이 많이 제기되니까 이런 설명을 만들어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고 죽는지를 설명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전생에 대해 부처님한테 물으면 부처님은 아마 ‘그런 건 놔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늘 ‘이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느냐’, ‘왜 저 둘은 다르냐’ 이런 것에 대해 궁금해하니까 후대 사람들이 부처님의 말씀에 조금 덧붙여서 내용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어요. 부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잘못 이해했다고 볼 수도 있고, 원래의 말씀에 조금 덧붙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소승불교에서는 가능하면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했기 때문에 거기에 뭔가 설명을 덧붙이면 왜곡하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논장(論藏)을 새로 만들어서 해석을 했어요.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아예 후대에 해석하거나 덧붙인 내용을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흘러온 것이 불교의 역사라는 거예요.

진실이 무엇인지 탐구하라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맹목적으로 믿을 때는 이런 사실들이 밝혀지면 믿음이 흔들리지만, 부처님 가르침의 유일한 주안점은 ‘진실이 무엇인지 탐구하라’ 이겁니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침이기에, 우리는 불교 경전마저도 연기법(緣起法)과 중도론(中道論)에서 벗어나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경전 내용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한 사람들이 남긴 글이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선택은 이겁니다. 정토대전 속에 복잡한 교리에 대한 설명은 넣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넣는다 하더라도 잡다한 설명은 간명하게 정리를 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현실에 맞게 해석을 해야겠죠. 그러나 우리가 임의로 해석하면 안 되고 원뜻에 맞게 해석해야 합니다. 원뜻에 근거를 달아서 ‘우리는 이 내용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해한다. 근거는 이렇다’ 하는 것을 만들어서 넣으면 돼요.

아무리 해석하려고 해도 의미가 애매하면 내용을 안 싣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내용을 새로 고치면 그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고, 또 우리가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후대에 시대가 바뀌면 올바르게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도 안 맞고, 경험되어지지도 않고, 과학적으로도 안 맞는 내용은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내용 자체를 정토대전에서 빼야 해요. 혹시 논쟁적인 질문을 하면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 문제에 논쟁하기보다는 지금의 내 문제에 집중합시다. 그런 학문적 논쟁이라면 우리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는 잘 모른다고 외면하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전생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문제는 굳이 ‘있다, 없다’ 하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수행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현실적인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냥 공상을 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에서 수행할 때 탐구해야 할 과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말씀하신 식(識)과 명색(名色)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면 자료가 이 경전밖에 없어요. 자료를 뒤져도 이렇게 어렵게 설명된 것 밖에 없었습니다.”

“더 많은 자료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연결고리를 만들 건지는 이제 우리가 결정을 해야 해요. 우리는 학문적 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체험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정토대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학자들은 통합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문자에 얽매여 일부분만 해석하기 쉽습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가 경험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꾸 과거에 해석해 놓은 것을 중심에 두니 그 틀에서 못 벗어납니다. 과거에는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론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설명했어요. 지금도 그 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보니 해석을 합리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는 겁니다. ‘자아가 모태에서 입태한다’ 이런 말 자체가 정신적인 자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증하는 거예요.

아무리 업식은 형성되는 것이라고 알아도 그것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형제인데도 너무 다르니까 전생을 빼고는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는 거예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우리가 ‘다르다’라고 말할 때 크기를 보고 다르다고 할 것인지, 종류를 보고 다르다고 할 것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다르다고 할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같다’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입니다. ‘저 둘이 같다’라고 할 때는 종류를 기준으로 해서 같다 하고, ‘저 둘이 다르다’라고 할 때는 크기를 기준으로 해서 다르다고 표현을 하는 거예요.

‘형제가 같다’, ‘형제가 다르다’ 이런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모양을 갖고 같다고 하고, 어떤 때는 성질을 갖고 다르다고 표현합니다. 형제라도 모양이 다르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어요.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워낙 많다 보니 두 염색체가 결합할 때 일부 염기서열이 바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넓은 마당에 콩 백 개를 던지면 마당 밖으로 콩이 나갈 가능성이 낮지만, 콩 만개를 던진다면 한 두 개가 밖으로 튀어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인연이라서가 아니라 확률이 그렇다는 거예요. 인도에 10명이 가면 환자가 안 나올 확률이 높지만, 100명이 가면 환자가 나올 확률이 높은 것과 같습니다. 염기서열의 수가 수억 개이기 때문에 결합을 할 때 수시로 수백 개 정도는 순서가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그림을 아주 유사하게 필사하거나 모방할 때도 선 하나가 삐뚤어지거나 어느 한 부분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움이라는 겁니다.

씨앗은 조금 다른지만 환경이 비슷해 별로 차이가 안 날 수도 있고, 반면 씨앗은 비슷했는데 환경이 달라 많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씨앗도 다르고, 환경도 달라서,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코끼리’라고 하면 보통 ‘어마어마하게 크다’라고 생각하지만, 개만 한 코끼리도 있어요. 반대로 사자만 한 개도 있습니다. 종이 같다고 해도 다시 종자에 따라 크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토끼만한 쥐도 있고, 참새만한 메뚜기도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생물의 유전자 내부에 감춰진 작용이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태어날 때 전생의 까르마를 안고 온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까르마가 사람들에게 전이는 될 수 있어요. 내 까르마가 여러분들에게 영향을 줄 수가 있듯이요. 나중에 과학이 발전되면 한 사람의 의식을 다른 사람에게 마치 컴퓨터에 usb를 꽂듯이 입력시킬 수 있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긴 시간 동안의 교육이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단기간에 배우는 일이 가능해지겠죠.

요즘 공상 과학에 이런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기계에 넣으면 그 사람 속에 있는 정보를 빼서 암호화하고 디지털화해서 컴퓨터에 그 정보를 넣어두는 겁니다. 마치 이쪽 컴퓨터에 꽂혀있는 usb를 빼서 저쪽에다 꽂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아직은 가능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기술이 조금씩 개발되고 있어요. 그러나 그런 정보를 갖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가

부처님은 전생으로부터 온 자아가 모태에 입태된다는 그런 얘기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이 고뇌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거냐에 대한 목표의식이 굉장히 뚜렷했습니다. 과거 얘기를 하면 ‘지나간 얘기는 하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미래 얘기를 하면 ‘그것도 내려놓고 지금 네가 어떠냐?’ 이런 관점에서 얘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겠어요?

그러나 부처님은 인도 사람이었으니까 대화를 할 때 당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전생을 언급할 수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연기법이나 중도 등 부처님이 말씀하신 걸 비추어 보면 부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 분이며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되잖아요. 그 관점에 비춰서 사물을 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요즘 사람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기 삶에 적용해서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불교를 공부한다는 게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또 하나의 지식을 쌓는 것에 불과하게 돼요. 이런 불교 교리가 수행에 도움이 되면 좋지만, 아마도 불교대학이나 경전반에서 불교 교리를 가르치게 되면 오히려 수행에 장애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도 명상수련을 할 때 불교 교리를 설명하면 명상하는 한 시간 내내 그 내용만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망상을 없애는 게 아니라 망상의 원인을 제공하잖아요.” (웃음)

여기까지 토론을 하고 회의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햇살이 비치고 눈이 다 녹았습니다.

“다음 회의 때는 지금까지 연구한 것을 한번 정리해보세요. 무상과 무아, 12연기, 사성제와 팔정도를 계속 연구했는데, 아직 정리는 안 됐으니까요.”

과제를 안고 6시가 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7시부터는 만일결사준비위원회(만준위) 위원들과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만준위 위원들은 정토회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질문들을 스님에게 했습니다.

회원 시스템, 의사결정 구조, 선거, 지부와 지회 운영, 모둠 운영 등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그에 따라 여러 가지가 함께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스님은 각각에 대해 어떤 점이 달라져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스님이 잡아주신 방향을 기초로 해서 다음 주부터는 정초순회법회에서 지역 회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준위 위원들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하고 온라인 화상회의를 마쳤습니다.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 7시에 해외 총무단, 대표단, 국제국 활동가들과 세계 전법을 위한 조직 개편에 대해 온라인 화상회의를 한 후 10시에는 수행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정토대전 경전팀과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합니다.

전체댓글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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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승

'지금 여기 나는 어떠한가?'를 꾸준히 챙겨나가보겠습니다. :)

2021-01-12 07:25:57

월광

부처님!부처님의 가르침!스승님! 법사님들! 만준위원님들! 일체중생 자연의 은혜속에 살아갑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자유롭고 행복하시기를 돌아가신 조상영가님들과 일체영가님들 왕생극락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2021-01-10 08:24:18

굴뚝연기

[…‘부처님이 과연 이렇게 말씀하셨을까’라고 보면 안 되고 ‘부처님의 말씀을 이렇게 편집했나’ 이렇게 봐야죠.] [이 글들은 최소 2000년 전에 편집되었고, 논장이라고 하는 것도 1500년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둬야 해요.] [이런 사실을 윤회와 전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어요.…그건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사실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2021-01-09 15: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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