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2.13(오전)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졸업수련
“불교를 공부하면 경쟁사회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는 온라인으로 정토불교대학 졸업수련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행복시민과정 수료자를 위한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방송 사이사이에 절인 배추를 건지고 포장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 명상수련을 진행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공양을 마치고 당분간 문경으로 옮겨갈 짐을 정리했습니다. 오전 9시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온라인으로 2020년 봄에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졸업수련이 열렸습니다. 졸업을 앞둔 1,300여 명이 생방송으로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입재법문을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갈무리

“봄 불교대학생 여러분,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갑자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입학식도 한 달 연기되고 출발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봄에 씨를 뿌릴 때는 언제 싹이 트나 했는데 벌써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어느덧 졸업 갈무리할 때가 다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좋은 씨앗을 심고, 거름을 잘 주고, 김을 매고, 잘 가꾸는 과정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갈무리입니다. 추수를 제대로 못 했다든지, 보관을 잘 못해서 쥐가 다 먹는다든지 하면 앞선 노력이 다 허사가 됩니다. 이제 졸업할 때까지 두 달 여 남았는데 이때 방심하면 중단하기 쉬워요. 산도 오르다가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거의 하산해서 발목을 삐거나 넘어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방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졸업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지난 9개월 동안 배운 실천적 불교사상, 부처님의 일생, 근본불교의 핵심을 짧게 요약하고, 마지막 과목인 불교의 변천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이어서 수행으로서 불교를 강조하며 ‘신해행증(信解行證)’, 믿고 이해하고, 직접 실천하고 체험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불교를 알기만 해서 무얼 하겠습니까? 내가 직접 체험을 해야 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입학하기 전보다 지금이 덜 괴롭습니까? 사람과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더라도 좀 해소가 되었습니까? 화와 슬픔이 줄었습니까? 원망과 미움이 줄었습니까?

변화가 있었다면, 비록 들은 것을 다 잊었다 하더라도 공부가 된 거예요. 아는 건 많아졌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맹탕입니다. 그러니 졸업하기까지 남은 두 달 동안,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이해를 하고, 실천과 체험이 부족하면 그 부분을 보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온라인이지만 주어진 프로그램에 충실하게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

입재법문을 마치고 학생들은 화상으로 조별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대학 1년을 통해 깨달은 점과 변화된 점’, ‘나의 수행과제’를 나누고 스님의 하루 발췌문을 함께 읽었습니다.

학생들이 조별 활동을 하는 동안, 스님은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어제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건져 물기를 빼고 포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건진 배추를 차곡차곡 담는 일을 했습니다.



배추를 차곡차곡 담으니 다른 사람들이 담은 배추 상자보다 두 배는 무거웠습니다. 이렇게 소금물에 절인 배추는 저온저장고에 보관해 두면 내년 봄까지 반찬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배추를 건지고 남은 소금물에 운동장에서 키운 배추를 또 절였습니다.

“스님, 이제 법문 하실 시간이 15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래요? 두 시간은 일할 줄 알았더니, 제가 시간을 잘못 알았네요. 그럼 법문 마치고 다시 올게요.”

한 시간 가까이 울력을 하고 다시 법복으로 갈아입고 10시 40분에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이번 시간은 스님에게 불교대학 수업 1년 과정에서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조별 나누기 잘하셨습니까?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 가운데 화상으로 6명을 연결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불교를 공부하면 경쟁사회에서도 앞서 나갈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수행과 경쟁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면 경쟁사회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을까요?

“중도, 사성제, 팔정도 등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을 챙기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삶의 지표이자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복잡한 일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고, 특히나 경쟁을 해야 되는 사회에서는 이런 담마를 지키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담마를 실천하면서 마음을 챙길 수 있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쟁을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경쟁에서 이기라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 것과 관계없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질문한 내용 속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공부해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좀 써먹는 방법이 없겠나?’ 이런 내용들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질문자가 불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자유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자유를 뜻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내 맘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에요. 싫을 때 싫음을 탁 놓아버리고 해 버리고, 하고 싶을 때도 그게 해롭다면 탁 놓아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에서 쓰는 자유와 용어가 똑같지만, 불교에서는 나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걸 진짜 자유라고 봅니다.

수행과 경쟁의 상관관계

경쟁에서 이기는 것, 경쟁을 포기하는 것, 경쟁을 부정하는 것, 이런 것들과 담마는 관점 자체가 다른 별도의 문제입니다. 담마를 공부하고 보니 ‘경쟁은 무익하다’ 하고 깨달아서 세상 일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가족도 있고 집을 떠날 수 없으니까 일정한 기간까지는 담마와 세상살이를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일을 버리지도 않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쓰지도 않고, 그냥 중간만 가는 길을 선택해서 좀 편하게 사는 방법도 있어요.

질문자의 경우 과거에는 막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경쟁을 했는데, 수행을 하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안 받는 길을 찾아냈단 말이에요. 스트레스를 안 받는 상태로 가게를 운영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니까 오히려 업무 효율이 더 나서 결과적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점유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수행하는 게 경쟁에 도움이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이때 ‘수행이 경쟁에서 이기도록 했다’, ‘수행이 경쟁에서 지도록 했다’ 이렇게 평가하기가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은 이 부분 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수행은 돈을 더 벌고 덜 벌고, 건강하고 안 하고, 승진하고 안 하고, 결혼하고 안 하고, 이런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수행자가 되어서 자기 고집을 안 하니까 결혼하기가 쉬워졌다고 표현할 수는 있습니다. 수행을 하니까 자기 고집이 없으니까 상사가 보기에 인화를 잘해서 승진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 자체는 이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경쟁에서 이기려고 수행을 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이미 수행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욕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괴로움은 욕구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괴로움을 없애려면 욕구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수행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욕구로부터 자유롭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불교에서는 욕구가 나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금욕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르칩니다. 욕구를 따라갔을 때 손실이 생긴다면 딱 멈출 줄 알아야 되고, 욕구를 따라갔을 때 나도 이익이고 남도 이익이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 욕구를 따라가도 되는 겁니다. 배가 고플 때 밥 한 그릇 먹는 것은 나한테, 남한테, 세상한테 아무런 손실이 없잖아요. 그럴 때는 먹어도 돼요. 욕구를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괴로움이 없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며칠 전에 제가 중소기업 하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법륜스님 법문 듣고 수행하면서 사업하는 게 정말로 쉬워졌어요’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종업원들이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고 있는데, 나도 종업원들이 필요로 하는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항상 연구합니다.’

여기서 준다는 말이 물질적인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 항상 마음으로도 종업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종업원들을 적대적으로 보지 않고 항상 친구로 보는 관점을 가지니까 종업원들도 항상 나를 좋아하고, 그래서 일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성과가 나면 더 많이 종업원들에게 베풀게 된다는 거예요. 요즘은 돈 버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같이 웃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업에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어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나니 종업원들을 미워하지도 못하겠고, 옛날에는 면박도 주고 확 잘라버렸는데 그렇게도 못 하니까 오히려 회사 운영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경쟁은 별개라는 겁니다.

수행의 목표

수행의 목표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회사가 잘 되든 안 되든, 이혼을 하든 안 하든, 이런 개념하고 수행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수행은 이혼을 해도 괴롭지 않고, 이혼을 안 해도 괴롭지 않고, 혼자 살아도 괴롭지 않고, 결혼해도 괴롭지 않고, 애가 있어도 괴롭지 않고, 애가 시험에 떨어져도 괴롭지 않는 겁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나의 중심을 딱 잡고 인생을 사는 것이 수행입니다.

‘앞으로 제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 자체가 벌써 수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운명을 점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계율에도 나와 있습니다. 손금을 보거나 관상을 보거나 사주를 보는 걸 일절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좋은 일이 생길까? 나쁜 일이 생길까?’ 이런 생각 자체가 이미 수행이 아니라는 겁니다. 수행자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인데, 그런 수행자가 왜 점을 보나요?

그리고 부처님은 신통을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통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현혹되거나 어리석어지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이런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수행으로서의 불교입니다. 종교로써의 불교, 철학으로써의 불교와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리고 ‘법륜스님 훌륭하다’, ‘부처님 훌륭하다’ 이런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 법륜스님은 괜찮게 사네. 나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 이렇게 모델이 되거나 참고는 되지만 결국은 자기가 그렇게 해야 돼요. 남이 훌륭하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뭐해요? 아무개가 야구선수로 유명하다, 아무개가 축구선수로 유명하다, 아무개가 골프선수로 유명하다, 이렇게 백 명 또는 천 명을 안다고 해서 내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보다는 운동장 한 바퀴라도 직접 뛰는 게 나의 건강에 좋죠.

중도와 사성제를 일상생활 속에 적용하는 방법

우선 질문자와 저와의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믿음이 형성된 다음에는 법에 대한 원리를 이해해야 돼요. 원리를 이해한 다음에는 그것을 생활 속에서 늘 실천해야 됩니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아랫사람을 대할 때 중도를 실천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일을 잘하게 하려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니까 화합이 깨지고, 화합에 자꾸 초점을 두다 보니까 일이 제대로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중도란 이런 것들의 모순 관계가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난다고 화를 내니까 손실이 따르고, 그렇다고 화를 참으니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것은 모두 양 극단입니다. 그래서 중도란 늘 현실 속에서 연습을 해봐야 합니다. 중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자기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본인이 직접 연습해서 증득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치우쳤구나’
‘이번에는 저쪽으로 치우쳤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연습을 하다 보면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길의 폭이 점점 좁아집니다. 그래서 나중에 멀리까지 가서 다시 되돌아보면 일직선으로 딱 보이게 되는 겁니다. 처음부터 똑바른 길은 없어요. 수행이란 이런 중도의 길을 계속 연습하는 겁니다.

사성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성제란 어떤 문제의 원인, 그 원인의 원인을 계속 규명해 나가서 괴로움을 소멸시켜나가는 겁니다. 그 연습이 바로 수행입니다. 회사에 무슨 일이 있든, 가정에 무슨 일이 있든, 그냥 괴로워만 하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이렇게 규명해보는 사유체계를 가진 사람이 수행자라는 겁니다. ‘노력해도 소용없네!’ 하면서 포기해 버리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일상 속에서 늘 적용해야 합니다. 조금씩 적용되기 시작하면 법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지고, 이해도 더 깊어집니다.

여러분이 희망을 가져도 되는 이유

세상에 유명한 사람들 중에는 ‘하버드 나왔다’, ‘서울대 나왔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어요. 고등학교도 다니다 말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가진 지혜가 있다면 그 지혜는 어디서 얻었을까요? 불교에서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유학을 가거나 특별한 교육을 받아서 성공을 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릴 때 승려가 됐고, 다른 무슨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게 없기 때문에 부처님 법에서 지혜를 얻었거나 제가 스스로 탐구해서 지혜를 얻었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저의 법문이 가진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 제가 탐구해서 얻었기 때문에 경험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둘째, 밖에서 특별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얻었기 때문에 다른 유명한 사람들보다 여러분들에게 자신감을 더 많이 줄 수 있습니다.

‘법륜 스님은 대학도 못 나왔는데, 대학까지 나온 내가 못할 게 뭐가 있냐?’
‘나이가 68세나 되는 법륜 스님도 웃으면서 사는데 젊은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롭게 사는가?’

저를 보면 이렇게 여러분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잖아요. 저는 제가 살아온 삶이 여러분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런가요? (웃음)

여러분들도 자꾸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늘 일상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용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조금씩 키워나가면 좋겠어요. 수행이란 주어진 환경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자신감을 떨어지면 우울해집니다. 용기와 희망을 얻으려면 명상으로 마음을 푸는 게 나을까요? 절을 천 배하는 게 나을까요?
  • 계율을 잘 못 지켜서 참회하고 어기고를 반복합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진정한 참회를 하고 계율을 지킬 수 있을까요?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죄책감만 커지는 것 같습니다.
  • 봉사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마음에서 우러나서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졸업을 위한 형식적인 봉사활동에 좀 거부감이 듭니다.
  • ‘모든 것은 나에게서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고 하니 모든 관점이 내가 됩니다.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행복도 모두 내 생각이 만드는 것이니 더 배울 것이 없다는 '다 안다' 병에 걸렸습니다
  • 스님은 인연 따라 하시는 일이 다양하신데요. 저도 스님께 불교를 배우면서 본업 외의 일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시간은 한정적인데 스님은 어떻게 우선순위를 매겨서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불교대학의 다음 과정인 경전 대학을 소개하면서 법문을 마쳤습니다.

“내년 2월 중순에 졸업을 하게 되니까 앞으로 두 달 남았네요. 두 달간 수업 빼먹지 말고 공부 잘하시기 바랍니다. 졸업하고 나서 내년 봄부터 경전반 공부를 하실 분은 정토경전대학에 입학하시면 금강경, 반야심경, 법성게, 신심명, 육조단경 다섯 과목을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경전반은 좀 쉬었다 가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정토회 회원 등록을 하고 정기 법회를 들으면서 정진을 하셔도 좋아요. 불교대학 과정을 졸업하고 나니 ‘별로네’ 싶으면 미련 없이 딱 그만두고 자기 좋은 대로 사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불교대학이 참 괜찮았다고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정토경전대학에 입학해서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12시에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담당 법사님과 지역별 모임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점심공양을 하고 다시 작업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절인 배추 중 김치를 더 담그기 위해 일부는 남겨두었습니다. 즉문즉설을 하는 동안 행자들이 배추를 한 번 씻어서 물기가 빠지도록 쌓아두었습니다. 스님은 양념에 치대기 전에 배추 꼭지를 잘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소금물에 절인 배추는 저온 저장고로 옮겼습니다.


다시 수련원으로 돌아와 서울과 문경에 보낼 짐을 실었습니다.

2시가 넘어 울력을 마치고 두북 공동체 행자들과 잠깐 내년 농사와 공동체 운영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3시부터는 행복시민과정을 마친 수료자들을 위한 즉문즉설을 하고, 저녁에는 일요 명상수련이 이어졌습니다.

이어진 일정은 내일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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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2020-12-23 12:50:45

하심

부처님의 삶은 법문하고 배추쌓고 법문하고 배추쌓고…

2020-12-22 03:11:05

굴뚝연기

[경쟁에서 이기는 것, 경쟁을 포기하는 것, 경쟁을 부정하는 것, 이런 것들과 담마는 관점 자체가 다른 별도의 문제입니다. ] [수행의 목표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회사가 잘 되든 안 되든, 이혼을 하든 안 하든, 이런 개념하고 수행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수행이란 주어진 환경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0-12-19 18: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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