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1.12 정토대전 회의
“낙태죄 폐지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하고 오후 내내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회의를 했습니다.

아침 일찍 어제 강당에 설치한 화목 난로에 불을 때 보았습니다. 연기가 밖으로 잘 나가는지도 꼼꼼히 확인해보았습니다.


“연기가 잘 빠져나가고 있어요?”

“네, 잘 나갑니다. 이번에는 연통을 길게 연결해서 안이 더 따뜻한 것 같아요.”

공동체 법사님들은 스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난로라 저희가 같이 설치해야 하는데, 다들 회의 일정이 바빠서 못 도와 드렸어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이제 강당이 따뜻해졌으니까 정토대전 연구나 열심히 하세요.” (웃음)

7시 40분에는 큰 트럭에 JTS 구호물품 보관 창고에서 수원시 자원봉사센터로 보낼 물품을 실었습니다. 창고 안에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기 위해 JTS에서 구입한 의류와 겨울 부츠, 담요, 목도리 등이 적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북한 인도적 지원이 계속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수원시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이 물품들을 국내에 있는 아동 복지 시설에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물품을 트럭 위에 모두 적재한 후 JTS 봉사자들 모두가 현수막을 들고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물품지원 전달식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산 윗밭으로 갔습니다.

생강을 캐고 난 빈 땅을 다시 갈아엎고 밭을 만들어 겨울채소를 심었습니다.

한쪽 끝에서부터 빠르게 심기 시작했습니다. 10시부터 회의가 있는 데다 JTS 물품지원 전달식으로 인해 울력 시간이 1시간 남짓 밖에 안 되었습니다.


“스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10시가 다 되어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오전에는 불교사상팀과 사회사상팀이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오늘은 사회사상팀에서 그동안 세미나 과정에서 나온 의문점들을 갖고 와서 스님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사회사상팀에서는 어떤 점이 궁금해요? 그럼 질문을 해보세요.”

사회사상팀을 책임지고 있는 향훈 법사님이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낙태죄 폐지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요즘 낙태죄에 대해 논쟁이 심합니다. 작년에 헌법재판소에서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려서 올해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에서는 임신 14주까지는 어떤 경우에도 낙태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형법도 바꾸고 모자보건법도 개정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여성계에서는 아예 낙태죄 자체를 폐지해야 된다는 입장이고, 종교계는 이미 낙태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데 낙태죄가 폐지되면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입장입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엄마의 자기 결정권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논쟁에 대해 불교사상적으로는 낙태죄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불교의 핵심 사상은 중도(中道)입니다. ‘중도(中道)’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는 사회 합의사항에 들어갑니다. 낙태는 절대로 안 된다거나, 낙태를 전면 허용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양쪽 다 극단에 속합니다.

낙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침해됩니다. 성폭행에 의해 임신을 했거나, 미성년자가 임신을 했거나 하는 경우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봐도 그건 너무 심하다고 바라보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낙태를 전면 허용한다고 하면, 태아의 생명권이 침해됩니다. 임신 8개월이 되어 낙태를 하는 경우, 이것은 태아를 살인하는 것에 해당됩니다. 8개월이 넘은 태아는 이미 자궁 밖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자라 있습니다. 이런 태아를 죽여도 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양극단을 떠나 중도를 추구하는 불교의 사회관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란 이 사이에서 적절한 사회 합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했던 중세사회에서 낙태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중도적으로 접근하면, 낙태를 금지하되 일부 예외에는 허용하자고 합의할 수 있습니다. 임신한 여성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든지, 성폭행 등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라든지,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경우 등 이런 특수한 경우에는 여성의 행복추구권이 심각하게 침해를 받게 되니 예외로 낙태를 허용하는 사회 합의를 1차로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다음 단계로 합의를 넓혀가는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사회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려면 임신 6개월 이상은 낙태를 금지하자든지 하는 선에서 사회 합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낙태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사회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자고 주장하면 사회 저항과 반발이 크기 때문입니다. 몇 개월부터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해야 된다고 정해진 법은 없습니다. 사회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겁니다. ‘태아가 6개월 정도 되면 완전히 사람의 형상을 갖추는데, 이때 낙태를 하는 것은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이렇게 동의를 얻게 되면 6개월로 정해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5개월이나 4개월, 3개월로도 조정이 될 수 있겠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양 극단을 피하고 중도를 취해야 됩니다. 낙태는 무조건 안 된다거나 전면 허용해야 된다는 것은 극단입니다. 낙태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임신한 여성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되고, 낙태를 전면 허용해야 된다고 하면 태아의 생명권이 침해가 됩니다. 양 극단을 떠나서 그 사회 조건에서 태아와 산모가 다 보호될 수 있는 사회 합의를 만들어가야 됩니다.

사회 합의는 그 사회가 지금 어떤 사회인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가톨릭 국가라면 우선 원치 않는 임신이라거나 특별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합의해 가야 될 것입니다.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국가라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아무리 낙태가 당신의 권리라고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도 보호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측면에서 설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임신 후 6개월이든 기준을 정해서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사회 합의가 필요한 이유

태아를 언제부터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사회 합의 밖에는 기준이 없습니다. 일반 관습으로는 이 세상에 형상을 갖고 나와야 사람으로 인정이 됩니다. 법률적으로는 출생 신고가 되어야 사람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때부터 윤리나 법률이 적용됩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인식을 못 합니다. 인식을 못 하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권을 누가 대신 주장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태아가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엄마입니다. 그것이 생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엄마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거죠.

태아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 몸의 일부입니다. 출생을 하면 아이는 엄마와 별개의 생명이지만 뱃속에 있을 때까지는 아이와 엄마를 일체로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내가 내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갖듯이, 엄마가 태아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때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자르는 것과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것을 동일하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는 종교계가 제 3자로서 태아를 대신해서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 극단을 떠나 사회 합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한 낙태의 전면 금지나, 태아의 생명권을 무시한 낙태의 전면 허용이나 모두 극단입니다. 엄마의 자기 결정권도 존중받고, 태아의 생명권도 존중받는 길을 찾아야 되는데, 이것은 사회 조건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사회 합의를 추구해야 됩니다. 10년 전 한국 사회라면 낙태를 금지하되 어느 정도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허용하는 쪽으로 사회 합의를 이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에 낙태죄를 폐지하되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대체 입법을 세우는 방식의 사회 합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사회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또 논쟁이 됩니다.”

“사회 합의는 그 사회 사람들의 윤리, 도덕을 감안한 다수가 가진 문화 의식을 말합니다.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자기 자식을 죽이는 것이 낙태입니다. 인간은 이런 심성도 갖고 있다는 거죠. 내 눈에 안 보이고, 내게 필요 없다는 이유로, 혹은 나는 아들을 원하는데 딸이라는 이유로, 이런 여러 가지 자기 이해로 인해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낙태를 하는 거예요. 눈에 안 보이는 수많은 적에 대해서 죽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쟁이잖아요. 자기 눈에 안 보이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외에도 관련된 다양한 질문이 더 추가되었고, 스님은 간단하게 핵심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 개인의 신체에 대해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요?
  • 자살을 엄격히 말하면 살인 행위인데 범죄로 볼 수 있을까요?
  • 연명치료와 안락사 문제를 불교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자궁을 빌려준 대리모와 실제로 아이를 기른 어머니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 인공 자궁으로 아이를 낳게 될 경우 출산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요?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불교사상팀에서도 질문을 준비해 왔지만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불교사상팀도 질문이 있는데, 지금 시간이 없네요. 오후에 1시간 정도만 더 회의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김장 준비할 게 많아서 일을 해보고 정합시다.”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린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부터는 경전팀과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문경 수련원에서 묘수 법사님, 보수 법사님이 도착해 함께 회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자타카에서 지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 꼭 정토대전에 넣었으면 하는 이야기들만 모두 선별해서 모아봤습니다. 1장부터 하나씩 살펴보면서 질문드리고 싶은 건 그때그때 질문드리겠습니다.”

참석한 법사님 모두가 한 문단씩 돌아가며 경전을 읽었습니다. 경전을 다 읽고 나서는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변을 들었습니다.

“경전 작업을 하면서 질문이 있으면 해 보세요.”

여러 질문들이 나오는 가운데 그 속에서 다시 스님이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더 질문이 없죠?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다음 주에 더 공부해와서 또 봅시다.”

“감사합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처리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하고 하루 종일 기획위원회 회의를 온라인으로 하고, 저녁에는 금요 정기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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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어렸을 때 부터 학교나 가정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쉬 쉬' 하면 안 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2020-11-22 21:26:03

김영배

아기는 스스로 생존할수 없으니 국가가 아기를 길러주는 제도가 많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태아의 생존권보다 엄마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할수밖에 없지 않은가요?

2020-11-21 15:37:31

혜당

수정된 그 순간부터 생명은 시작됩니다..낙태는 무서운 일이지요..

2020-11-18 08: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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