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0.31 천일결사기도 생방송, 농사일, 경주 남산 산책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네 가지 방법”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으로 한 후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는 경주 남산에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새벽 4시 30분, 맑은 종송 소리와 함께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4천여 명의 천일결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예불을 정성껏 한 후 5시 정각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10차 백일기도 중 41일째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끝나고 뵙겠습니다.”

이어서 곧바로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함께 했습니다.

경전 독송을 하고 사홍서원을 한 후 천일결사 기도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카메라를 향해 돌아보고 앉아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매일 정진을 하고 있는 천일결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오늘 아침 정진 잘하셨습니까? 이제 3차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6주가 지났습니다. 한 주가 더 지나면 절반이 지나게 되는데, 이번에 처음 입재하신 분들은 절반 고비를 잘 넘기셔야 합니다.” (웃음)

이어서 어제 읽은 경전의 의미부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어제 읽은 경전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을 때 걱정이 없겠습니까?’

당시 인도 사람들은 죽고 난 후에 지옥이나 아귀도에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걱정이 없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부처님에게 물은 겁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네 가지 방법

보통 종교에서는 ‘신을 믿어야 한다’, ‘기도를 해야 한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성실해야 한다. 둘째, 자제해야 한다. 셋째, 인내해야 한다. 넷째, 베풀어야 한다.’

이 네 가지만 잘 지키고 살면 저 세상에 간다고 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가미니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저 바라문이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바라문들이 기도를 해주면 천상에 태어나고, 사람이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임종할 때 바라문이 축복해주지 않으면 천상에 태어날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가미니가 이렇게 질문하자 부처님께서 가미니를 데리고 연못가로 가서 돌멩이를 던지고 기름을 띄우며 말씀하셨습니다.

‘연못 속에 들어간 돌멩이가 어떠한가?’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연못 속에 들어간 기름이 어떠한가?’
‘물 위로 뜹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남의 물건을 함부로 빼앗거나 훔치고, 삿된 음행을 행하고, 욕설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술에 취해서 삿된 소견을 갖게 되면, 그 지은 업이 무겁기 때문에 저절로 아래로 가라앉아서 지옥으로 떨어진다. 반면 사람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가난한 자를 위해 베풀고, 청정한 생활을 하고, 바른말을 하고, 바른 소견을 갖게 되면 그 업은 희고 가벼워서 저절로 천상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가미니와의 대화에서는 다섯 가지 계율을 갖고 설명을 했다면, 이번 경전에는 네 가지를 통해 설명한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든 정성을 다하는 사람을 성실하다고 합니다.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꾸준하게 노력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사람이 거짓 없고 진실할 때 성실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꾸준히 정성을 다하고 진실하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거나 말이 많으면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자신의 장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어디에 가서 함부로 자랑을 하기보다는 대개 조용하고 말이 적은 사람을 성실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정성을 다하고, 거짓이 없고 진실하며, 비교적 말이 없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갈 때 ‘그 사람은 참 성실하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런 사람은 죽어서 걱정할 게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 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제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제어할 줄 안다는 의미입니다. 밥을 먹더라도 맛에 집착해서 과식하지 않고, 술을 마시더라도 과음하지 않고, 사는데 필요한 재물이라고 하더라도 능력에 비해 과하게 욕심을 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성질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제어할 줄 알 때 그 사람을 가리켜 ‘좋은 사람, 인격자’이라고 합니다.

셋째,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내부의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는 것을 자제라고 한다면, 외부의 도전이나 어려움을 견디는 것을 인내라고 합니다. 이는 타인의 비난이나 일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 등 외부에서 주어지는 불리한 조건을 참고 이겨내는 것을 말합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힘들어서 못하겠다’ 이렇게 불평하기보다는 길게 내다보고 그런 장애를 이겨내는 힘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면

성실함, 자제, 인내, 이 세 가지는 모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하는 덕목입니다. 성실함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갖는 행위입니다. 자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을 해치지 않는 행위입니다. 인내도 자신의 이익을 멀리 내다보고 장애를 이겨내는 행위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해치지 않고 잘 보존해나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덕을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즉, 다른 사람이 존경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면 그들에게 이익을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네 번째 덕목인 베풂이 나옵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성실하게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즉 살면서 타인에게 빚진 게 없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넘어진 사람을 보면 일으켜주고, 힘든 사람을 보면 격려해주는 베풂이 있어야 합니다.

이 네 가지의 길을 간다면 비록 고행을 하지 않더라도, 많은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명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지위가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머리 깎고 스님이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죽은 뒤의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네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 가르침을 계율을 통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고, 죽어가는 생명이 있으면 살려주라.
둘째, 남의 물건을 함부로 빼앗거나 훔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
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말고 청정하게 살아라. 남을 괴롭히지 말고 남을 기쁘게 하라.
넷째, 욕설, 거짓말 등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고 부드럽게 말하라.
다섯째, 삿된 소견을 갖지 말고 바른 소견을 가져라.

삿된 소견을 갖지 말라는 것은 술을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지 말고 항상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계율을 잘 지키면 내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죽은 후에 좋은 세상이 있다면 이렇게 살아간 사람은 저절로 그곳에 가게 되어있습니다. 설령 나쁜 세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갈 일이 없으니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계율을 통해 설명하셨던 내용을 이번에는 성실하게 살고, 자제하며 살고, 인내하며 살고, 베풀며 살라는 말을 통해 설명하신 겁니다. 성실한 사람은 꾸준히 노력하고, 항상 거짓이 없고 진실하고, 조용한 사람입니다. 자제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제하는 사람이 곧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바깥으로부터 오는 갖가지 장애를 이겨내는 사람입니다.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길게 내다보고 참고 견뎌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조급하게 임하면 인내하기 힘듭니다.

또한 베풀 줄 알고 나눠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내 손으로 농사를 다 지었다고 하더라도 옆에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가 번 돈이라고 하더라도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나눠줄 줄 알아야 하고, 비록 내 집이라고 하더라도 나그네가 생기면 재워줄 줄 알아야 하고, 비록 내가 산 옷이라고 하더라도 추위에 떠는 사람이 있으면 입힐 줄 알아야 합니다. 주변에 어리석어서 괴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이 좋은 법과 인연을 맺어서 그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베푸는 삶입니다.”

다음은 오늘 읽은 경전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 읽은 경전은 부처님이 사람의 육신에 대해 관찰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소중하게 여길 만한 게 못됩니다. 즉, 집착할 만한 게 못됩니다. 육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내려놓게 하기 위한 설명이 오늘 읽은 경전입니다. 조금 설명이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것이 육신에 대한 진실입니다. 이렇게 육신을 바라보는 것을 ‘부정관(不淨觀)’이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몸에 집착하거나 욕심을 내는 사람은 부정관을 해야 몸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습니다.

나 또한 죽고 나면 저 시신과 다를 바가 없겠구나

이 부정관은 사념처 중 첫 번째에 들어갑니다. 몸, 느낌, 마음, 법을 관하는 것이 사념처인데, 그 첫 번째가 관신부정(觀身不淨)입니다. 몸을 있는 그대로 관하면 몸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관수시고(觀受是苦)입니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관하면 지금 당장은 좋은 줄 알지만 그 좋음이 곧 괴로움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관심무상(觀心無常)입니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하면 마음은 항상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는 관법무아(觀法無我)입니다. 법을 있는 그대로 관하면 아(我)라고 하는 실체가 없음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네 가지를 관하는 것이 위빠사나(Vipassanā)라고 부르는 ‘관법(觀法) 수행’입니다. 이 관법 수행 중 첫 번째 내용만 따로 분리해서 ‘부정관’이라고 말합니다.

몸을 관하는 것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호흡관입니다. 호흡관은 숨을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집중력을 높이는 수행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이 호흡관만 따로 떼어내서 ‘아나빠나(ana-pana)’ 또는 ‘수식관(數息觀)’이라고 부릅니다. 둘째, 동작을 관하는 수행이 있습니다.

셋째, 몸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관하는 수행이 있습니다. 몸의 구성을 관찰하면 지, 수, 화, 풍, 즉 흙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뼈와 살은 고체, 즉 흙의 요소입니다. 피는 액체, 즉 물의 요소입니다. 숨은 기체, 즉 바람의 요소입니다. 열은 에너지, 즉 불의 요소입니다. 이를 보면 과거에도 몸의 구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 수, 화, 풍이 결합해서 몸을 이루고, 몸이 죽으면 지, 수, 화, 풍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넷째, 몸을 신장, 간 등 기관별로 분해하며 바라보는 수행이 있습니다. 몸을 통째로 보면 무언가 성스럽다고 할 만한 것이 있는 것 같지만, 내부의 기관을 해부하듯이 하나하나씩 살펴보면 그 어디에도 성스럽다고 할 만한 게 없고 집착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태국에 가면 시신을 해부하여 방부 처리를 한 다음 유리관 안에 보존하고 수행자들이 그 시신을 보며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부정관의 내용을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부된 몸을 관찰하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일부 수행자들은 병원 영안실에서 시신을 닦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며 이런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이 시신도 조금 전까지는 나의 몸과 같았으며, 나 역시도 죽고 나면 이 시신과 같이 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수행입니다. 안과 밖을 본다는 표현은 곧 나를 보고 남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저 시신도 조금 전 나와 같았다. 나 또한 죽고 나면 저 시신과 다를 바가 없겠구나.’

이렇게 몸에 집착할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수행이 부정관입니다. 이는 몸을 함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몸을 보존하기 위해 먹고 입고 화장하고 장식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냅니까. 여러분이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는 건 추워서 옷을 입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몸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데 거의 평생을 바칩니다. 몸에 대한 집착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삶이 훨씬 자유로워지고 한가해집니다.

이처럼 몸을 해부해서 집착할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내용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나열해놓은 내용도 경전에 있습니다. 몸이 죽으면 검푸른 색으로 변한 다음, 살이 썩고 문드러지면 뼈만 남게 되고, 뼈도 조금씩 흩어져서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아홉 단계로 나눠서 몸의 실체를 보는 내용입니다.

대념처경이라는 경전에서는 시신의 변화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경전에는 그 내용이 요약해서 나와 있습니다. 처음 읽으면 조금 뜬금없이 생각될 수 있지만, 이 내용은 우리가 몸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많이 겪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몸에 대한 집착을 놓는다는 것은 아파도 참거나 몸을 함부로 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음식이 주어져야 하고, 적당한 잠이 주어져야 하고, 적당한 휴식이 주어져야 합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는 옷을 입어야 하고, 휴식을 하기 위해서는 작은 초막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몸에 대한 집착을 놓으라는 말은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거부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하거나 건강한 삶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욕망에 의해 헛된 노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삶에 많은 여유가 생겨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삶을 활기 있게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는 부정관을 하기가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고 나면 시신을 숲에 갖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갖다 버린 숲에 가면 저절로 부정관이 되었습니다. 이제 막 죽은 시신, 썩어가는 시신, 뼈만 남은 시신이 함께 섞여 있어서 그 변화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까 저절로 부정관 수행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에서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으니까 수행을 한다고 해도 몸에 대한 집착을 놓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직접 경험하는 것과 생각으로만 수행하는 것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육신에 대해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하구나’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상은 부정(不淨)한데 겉으로는 채색이 되어서 마치 아름다운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치 물고기가 미끼에 현혹되듯이 우리는 거기에 현혹되어서 한 평생 끄달리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괴로움에서 벗어나 삶을 활기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대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행복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백일 동안은 여러분 모두가 이 활동에 집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운동장으로 나오니 아침 해가 막 뜨고 있었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져서 냉기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농사팀 행자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바깥이 너무 춥네요. 지금 울력을 시작하지 말고, 해 뜨고 나서 조금 따뜻해지면 울력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스님의 제안에 1시간을 늦춰 8시에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산 윗밭 남은 두둑에 겨울 채소를 심었습니다.

모종판을 들고 각자 조금씩 떨어져 앉았습니다. 스님도 한쪽 끝에서부터 모종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키운 모종이 아직 어린 데다 흙에 물기가 많아서 모종을 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모종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빼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모종판 뒤쪽을 눌러준 다음 엎어서 모종을 하나씩 가려내 흙과 함께 심었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일찍 씨앗을 심고 모종으로 키워야겠습니다.

스님 반대편에는 두 명이 모종을 심어 오고 있었습니다. 호미로 땅을 파고 모종을 심는 단순한 동작을 쉼 없이 반복했습니다. 스님이 출발한 쪽에서 3분의 2가 됐을 즈음 반대편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다음 두둑으로 넘어가 계속 모종을 심었습니다.

다 심은 모종에 물을 듬뿍 주고 거름을 섞은 흙으로 북돋아 주었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공양이 끝날 무렵 아시아태평양 정토회 노재국 대표님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동시에 예전에 정토회 실무자로 활동했었던 김정님 법우님도 찾아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잘 살고 계셨습니까?”

스님은 마스크를 쓰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손님들과 함께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경주 남산을 구경시켜 드릴게요.”

새갓골 주차장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오늘 산행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지금부터 산행을 시작할 텐데요. 새갓골로 올라가서 3시간 정도 산행을 한 후에 용장골로 내려오겠습니다. 경주 남산에서 가장 경사가 완만한 코스예요. 천천히 걷겠습니다.”

스님이 선두에 서고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30분 정도 산을 올랐을 때 스님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멈춰 섰습니다.

“저는 심장이 안 좋아서 오르막길을 오를 때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천천히 올라가야 해요.”

뒤따르던 노재국 거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대중들이 정말 좋아하겠네요. 늘 스님이 빨리 올라가셔서 따라가기가 힘들었거든요.”

“맞아요. 천천히 올라가서 다들 좋대요.” (웃음)

산 중턱에 도착해 거꾸로 엎어진 채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상을 만났습니다. 마애불상 바로 세우기 원력 불사로 인해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장막이 쳐져 있어서 불상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스님은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다 함께 기도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열암곡 마애불상 바로 세우기 불사가 원만 성취되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합니다.”

관음정근을 하며 정성껏 기도를 한 후 다시 산행을 이어나갔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서 땀이 등줄기를 타고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곳곳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너무 예쁘다”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 발 한 발 산을 올랐습니다. 반가운 건 단풍만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스님이 크게 소리를 내었습니다.

“우와, 여기는 봄이 왔어요. 봄!”

가을이 깊어가면서 차고 따뜻한 날이 반복되다 보니 봄인 줄 착각했는지 진달래가 한 송이 피어 있었습니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젓이 피어 있는 진달래 한 송이를 보며 크게 웃었습니다.

전망이 좋은 바위 위에서 간식을 먹은 후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힘든 건 끝났어요. 내려갈 일만 남았으니까요.”

묘덕 법사님은 내리막길이 더 걱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희는 무릎이 안 좋아서 오르막길이 쉽지 내리막길이 더 힘듭니다.”

“저는 아무리 똥차여도 내리막길은 잘 가요.” (웃음)

단풍 구경을 하며 대화도 나누다 보니 금방 용장골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 좋은 구경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봐요. 조심히 가세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오늘은 19년 만의 ‘핼러윈 블루문’이 뜨는 날입니다. 핼러윈 블루문은 핼러윈데이에 뜨는 블루문을 말합니다. 다음 핼러윈 블루문이 뜨는 날은 2039년 10월 31일이 된다고 합니다. 두북 공동체 대중도 핼러윈 블루문을 감상하며 10월의 마지막 날을 보냈습니다.

내일은 평화재단 통일의병과 온라인 즉문즉설을 한 후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생방송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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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예전 불대때 마스크없이 자유롭게 경주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11-05 22:02:09

보리수

네. 성실 재제 인내 베풂. 새깁니다. 덕분에 남산산행 잘 했습니다. 차분하고도 유쾌한 산행. 열암곡 마애불상 원만하게 복원되는 기도와 코로나로 돌아가신 무수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기도까지! 봄인 줄 착각하고 핀 한 송이 진달래까지... 고맙습니다!

2020-11-05 13:20:19

실상

나를 돕고 보호하는, 성실과 자제 인내를 넘어 세상을 이롭게하는 베품이 있을때 아무 두려울것이 없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가 온전히 지금 여기 행복하도록 만들어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아 나누고 갚으며 살겠습니다.

2020-11-05 07: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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