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0.30 일본 언론 기자회견, 정토대전 회의
“스님이 지금 집중하고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하고,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 회의를 한 후 일본 언론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기도와 공양을 마치고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오늘은 몸이 불편하신 마을 어르신 밭의 콩을 수확했습니다. 이른 아침, 아직 해가 나지 않은 밭은 겨울처럼 쌀쌀했습니다.


한참 콩을 뽑고 있는데 법사님들이 도착했습니다.

“꼬투리가 누렇게 변한 콩대를 뿌리째 뽑거나 아랫 부분을 낫으로 자르면 돼요. 위쪽에 다섯 두둑 뽑고, 아직 꼬투리가 파란 콩을 건너서 아래쪽에 다섯 두둑 뽑으면 돼요.”

“네!”

뽑은 콩대는 펼쳐놓은 망 위에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가지런히 모아서 놓아주세요.”

“네.”


위쪽이 끝나갈 즈음 스님은 아래쪽으로 가서 다음 준비를 했습니다. 망을 깔 수 있을 정도로 콩을 뽑고 망을 넓게 펼친 후 콩대를 올렸습니다.

마을 어르신이 가지런히 놓인 콩대를 보고 한마디 했습니다.

“아이고, 예쁘게 잘도 했네.”

어르신은 기특해 하시며 밭 옆에 있는 산수유나무에 산수유를 따 가라고 권했습니다.

위쪽을 다 끝내고 아래쪽 두둑을 시작하자 산 위로 해가 떠올랐습니다. 해가 나자 몸이 조금씩 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콩을 뽑다 한 법사님이 아직 파란 잎이 남은 콩대 앞에서 망설였습니다.

“잎이 아직 파란 것도 뽑아도 되나요?”

“꼬투리만 보면 돼요. 상강(霜降) 지나면 콩은 환갑 지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웃음)

아랫 두둑이 끝날 무렵 스님은 먼저 울력을 마쳤습니다.

“저는 오후에 기자회견이 있어서 세수를 좀 해야 해요. 뒷정리 부탁해요.”

스님이 가고 법사님들도 곧 뒷정리를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오전 10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지난 9월 한 달 동안 문경과 두북, 탑곡, 봉화 수련원의 지출 경비에 대해 검토하고, 혹시 낭비되고 있는 건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했습니다.

“지금 각 수련원마다 거의 사용을 안 하고 있는데, 전기료가 너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1년에 한 번 초파일에 등을 켜기 위해서 매달 고액의 전기 요금을 낸다는 것은 좀 낭비라고 생각해요. 태양열을 이용하든지, 축전을 해놓았다가 행사 때 그 전력을 사용한다든지 연구를 좀 해봅시다. 사용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내야 하는 전기 요금이 너무 많네요. 숫제 발전기를 구비해서 큰 행사 때만 사용하는 게 더 절약되지 않을까요?”

“네, 한번 연구해 보겠습니다.”

이어서 11월 한 달 동안 정토대전 편찬을 위한 회의 일정을 잡은 후 연말 명상수련 등 하반기에 남은 행사 일정들을 다시 확정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는 다 같이 추수가 끝난 논으로 가서 볏짚을 묶는 울력을 했습니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다 같이 한 시간만 하면 될 거예요.”

스님은 밥을 먹자마자 바로 논으로 나갔습니다. 빈 논에 볏짚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볏짚으로 볏짚을 묶는데 볏짚이 짧아 한 번에 감기 어려웠습니다. 스님은 이리저리 볏짚을 돌리고 조여 짚단을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 법사님들이 도착하자 스님은 볏짚 묶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먼저 짚을 한 아름 모아서 가지런히 정리해둡니다. 볏짚을 몇 가닥 모아서 아래쪽에서 한번 꺾어주세요. 꺾으면 양 끝이 생기죠. 한쪽 끝을 두 갈래로 만들고, 반대쪽 끝은 짚더미에 붙인 다음 두 갈래로 짚더미를 감싼 다음 꼬아주면 됩니다. 옮기다가 풀리지 않도록 꽉 매 주세요.”

이론을 배운 다음 논 여기저기로 흩어져 볏짚을 묶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쉽게 하는 스님과 달리 막상 해보니 볏짚이 짧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빨리 익힌 사람이 어려워하는 사람을 가르쳐주며 짚단이 하나하나 만들어졌습니다.


여러 번 해도 감을 못 잡는 사람들을 보며 스님이 웃으며 한 마디 했습니다.

“그러게 왜 전생에 복을 안 지어서 조기 교육을 못 받았어요. 나처럼 전생에 복을 많이 지으면 가난한 농가에 태어나서 조기 교육을 잘 받죠.”(웃음)


한바탕 웃다 고개를 드니 파란 하늘 아래 산이 어느새 울긋불긋 물들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짚단이 만들어지자 스님은 한 군데로 모아 긴 끈으로 묶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도 다 새끼를 꼬아서 묶었는데....”

스님은 조기교육을 받은 실력으로 새끼를 꼬기 시작했습니다.


부지런히 손을 비비자 잘 땋은 댕기머리 같은 새끼가 만들어졌습니다. 새끼로 짚단을 한데 모아 묶었습니다.

“새끼로 묶으면 따로 쓰레기가 안 생기니까 참 좋죠.”


한참 짚단을 정리하는 사이 스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스님, 2시부터 일본 언론과 온라인으로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일찍 오셔서 사전에 질문 내용을 미리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지금 묶는 것만 묶고 갈게요.”

시간은 이미 한 시 반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법사님들은 계속해서 볏짚 묶는 일을 하고,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시간만 하면 될 거라는 울력은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사전 질문을 읽어보고 2시부터 일본 언론과 니와노 평화상 수상 관련 인터뷰를 했습니다. 요미우리 신문, 교토 신문, 아사이 신문, 마이니찌 신문 등 8개 언론사의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니와노 평화재단 이사장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얼마 전 온라인 시상식 후에 법륜 스님과 인터뷰를 두 시간 정도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난 저의 소감은 인터뷰하는 저희가 구제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괴로움을 불교 가르침에 따라서 해결해주고, 신앙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협력하여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법륜 스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법륜 스님은 눈앞에 있는 사람도 소중하게 대하시고 많은 분에게 구제의 파도를 확산시키는 힘을 갖고 계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본 언론에서 많은 기자들이 웹상에 모였습니다. 법륜스님께서도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시고 저희도 배울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도 일본 언론사 기자들을 향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활동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니와노 평화재단에서 저를 37회 니와노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활동한 내용을 갖고 저에게 이 상을 주었다기보다는 앞으로 더욱더 이런 활동을 잘하라고 격려 차원에서 상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이어서 일본 언론사 기자들이 차례대로 손을 들고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총 10개의 질문들이 연이어 계속되었습니다. 동시통역으로 진행되어 스님도 편안하게 답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기자는 코로나19와 기후 위기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코로나19의 대유행, 그리고 기후 위기 등을 배경으로 유례 없는 불안감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스님이 니와노 평화상을 수상하신 것이 어떤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인류는 이미 기후 위기를 예측하였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이 예측보다 더 빨리 닥쳐오고 있고, 거기에 따른 우리의 대응은 신속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도 한반도의 평화 문제와 구호 활동 같은 사람의 문제에 치중하다 보니 최근에 기후 위기를 막는 실천 행동을 적극적으로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실천 활동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약이 나온 것도 아니고 대응책이 특별히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방은 할 수 있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면 전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나 조심은 하자’ 이런 메시지를 널리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자는 메시지를 더욱더 널리 전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집중하고 있는 활동이 무엇인가요?

“올해 특히 힘을 기울이고 계시는 활동이 있으시다면 그 이유도 함께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때문에 아무런 대외 활동을 못 했습니다. 대신 이 시기를 적극 활용하여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비대면 소통 방식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요즘 유행하고 있는 명상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소비에 속합니다. 노동과 휴식의 관점에서 보면 휴식에 속합니다. 요즘 제가 가장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것은 명상을 생산 또는 노동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앉아서 명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추를 따면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생산 활동과 결합하는 수행을 계속 실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주 4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4일은 각자 집에서 직장을 다니지만, 3일은 수련원에 들어와서 농사를 짓거나 공구를 만드는 노동을 하면서 수행도 함께하는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비승비속(非僧非俗), 즉 승려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생활을 하게 되는 겁니다. 곧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갖추어질 거예요. 이런 대안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4일을 노동하고 3일을 쉬게 되었을 때 소비가 너무 많이 늘어나게 될 겁니다. 가령 게임이나 쇼핑 등 소비 위주의 여가를 보내게 되면 알코올 중독이나, 게임 중독, 가계부채와 같은 사회 문제도 발생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는 부채가 늘고, 정신적으로는 약물이나 게임에 중독될 위험이 매우 커지게 되는 거죠. 이것을 방지하려면 주 3일을 생산적이면서 동시에 놀이가 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 대안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절이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명상하는 수행 기능, 농사를 짓는 생산 기능, 건강을 회복하는 헬스 기능을 모두 갖춘 종합적인 웰빙 장소가 되어야 해요.

이렇게 미래 사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지금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에는 사무 자동화가 확대될 것이고, 그러면 노동 과잉 사회가 오게 되고, 다수가 일거리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일을 서로 나눠야 하고, 기본 소득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잃고 사육되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이들에게 어떤 삶의 의미와 기쁨을 갖게 만들 것인지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관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 제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실험을 조금씩 하고 있는 중입니다.”

분열을 극복하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요?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분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열을 극복하려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항상 자기가 세계의 중심입니다. 자기를 기준으로 이쪽은 왼쪽이라 하고, 저쪽은 오른쪽이라 하는데, 모두 그 기준점이 자신입니다. 자기를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 결과 이 세상에는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신성하고 부정함, 등 갖가지 차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물을 바르게 인식하면, 모든 것은 서로 다를 뿐이므로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등합니다. 예를 들어, 털이 흰 개와 털이 검은 개는 털 색깔이 다를 뿐이지 흰 개가 더 우월하다거나 검은 개가 더 열등한 건 아니잖습니까.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피부 빛깔로, 성별로, 계급으로 차별을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 상의 오류에서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인식 상의 오류에 의해서 차등의 사회가 되는데, 인식 상의 오류를 제거하게 되면 진실의 사회가 됩니다.

사람, 나라, 인종 등 모든 것들은 서로 다 다릅니다. 생각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서로 다를 뿐인데, 자꾸 ‘옳다’, ‘틀리다’로 이렇게만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테러 사건들도 서양적 가치관에서는 어떤 신성스러운 것은 없다고 보고 무슬림의 입장에서는 어떤 신성불가침의 요소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생기는 충돌입니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려면, 첫째,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다’ 하는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그쪽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해입니다. 저는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입니다. 그것이 비록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이해가 없으면 폭력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한 기반 위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평화로 가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옛날에 비해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인종차별이 심했는데 많이 사라져 가고 있고, 성차별도 많이 사라져 가고 있고, 신체장애에 대한 차별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200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차별에서 평등으로 많은 진척이 있었습니다. 우선 인류 역사의 흐름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본 후 그다음에 부족한 부분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 이렇게 관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20년 전 북한 인도적 지원을 시작하셨을 때 한국 국내에서 상당히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법륜스님께서는 20년 간 노력해 오셨는데 한국 여론에 뭔가 전향적인 변화가 있었습니까?”

“제가 지난 20년 이상 북한의 기아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만, 아직도 북한의 식량 사정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때처럼 대량 아사는 없지만 아직도 기아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북한 주민들의 삶의 곤궁함은, 그것이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20년 동안 노력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으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변화는 직선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에너지가 쌓이면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그것이 바른 길이라면 꾸준히 지속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남북관계가 개선이 되든 갈등에 빠지든 관계없이 꾸준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만약 남북관계가 개선이 되면 너도 나도 무언가를 하겠다고 다 나설 겁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뒤로 물러나서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도록 놓아두고 저는 다른 일을 합니다. 또 남북관계가 나빠져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데도 아무도 지원을 안 하면, 저는 비난을 받더라도 인도적 지원을 합니다.

2017년에는 전쟁이 날 위험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광화문에 1만 명 이상이 모여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했습니다. 2018년에 남북관계가 개선이 되고 금방 모든 갈등이 풀릴 것 같이 사람들이 이야기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북 갈등은 그렇게 금방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70년간 해결이 안 된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길게 보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좋아지는 쪽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모든 남북관계가 중단되었습니다. 그 사이 북한 안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남한에서 지원하는 걸 일절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지원을 못 했지만 저는 꾸준히 인도적 지원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시기에도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은 남과 경쟁하면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그 일을 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게 하고, 꼭 필요한 일인데도 아무도 안 하면 비난을 받더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길게 보고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북한 안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배급제에서 시장제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집단 농장 형태에서 개인 농업에 준하는 방향으로 상당 부분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핵과 미사일 개발만 눈에 보이기 때문에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는 삶의 방식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눈에도 보일 정도의 개혁개방의 형태로 나타나려면 북한의 안보 문제에 대한 보장이 필요합니다. 변화를 막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은 북한의 안보 문제입니다. 안보 문제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진다면 급속한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아직 북한과 미국 간에 또는 남한과 북한 간에 완전한 타협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변화가 잠재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생필품들의 90%가 중국산이었습니다. 지금은 북한 안에서 유통되는 식품은 100%가 북한산입니다. 중국산은 거의 없습니다. 나머지 생필품도 70% 정도가 북한에서 생산된 것들로 바뀌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 니와노 평화상 수상 소식을 들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셨나요?
  •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서는 종교행사의 규모를 축소하고 있는데요. 법륜스님께서는 어떻게 종교행사를 진행하고 있나요?
  • 정토회는 재가불교단체라고 하는데 법륜스님은 왜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나요?
  • 한국과 일본 관계는 좀처럼 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 온라인으로 만 명이 참가하는 강연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질문과 답변이 궁금합니다.
  • 20년 전에 니와노 평화상을 받은 강원용 목사님에게서 스님이 배운 점은 무엇입니까?
  • 코로나 사태 속에서 사람과의 대면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과연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요?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종료되고 일본에 갈 수 있게 되면 그때 또 대화를 나눕시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온라인 기자회견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이어 오후 4시부터 오전에 하던 정토대전 편찬 회의를 다시 이어서 했습니다.

오늘은 불교사상서 집필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을 했습니다. 현재 불교사상서팀의 진행 상황에 대해 공유를 받은 후 먼저 스님이 문제의식을 던졌습니다.

“부처님은 당시에 교리적인 용어를 어느 정도 사용하셨을까요? 연기와 중도는 부처님이 처음 사용하신 용어가 확실한 것 같아요. 우리가 읽는 경전은 다 500년 뒤에, 1000년 뒤에 나온 것이거든요. 부처님 당시에 팔정도, 사성제, 12 연기의 개념이 정교하게 정립이 되었을까요?

부처님은 당시에 교리적인 용어를 사용했을까요?

부처님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것인데, 후대에 그것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많거든요. 어쩌면 부처님은 이렇게 설법하셨을 겁니다.

‘네가 눈으로 본 것이 전부가 아니다. 네가 안다고 하는 것이 다 눈으로 보고 안다고 하는 것이지 그게 어떻게 사실대로 아는 것이냐?’

이것을 후대에 세세하게 학문적으로 정비한 것이 오온, 12처, 18 계설이 아닌가 싶어요. 만약 부처님이 12처와 18계를 설명했다는 것은 학자가 강의하듯이 설법했다는 것을 뜻하거든요. 그런데 부처님의 인격으로 봤을 때 학자처럼 강의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란 말입니다. 선불교도 이심전심을 내 걸고 나왔지만, 나중에 교종과 경쟁이 되니까 후대에는 논리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는 어느 정도로 교리가 정비가 되었겠느냐 하는 것도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경전 내용이 엄청나게 많이 겹치기 때문이에요. 팔정도 안에 정견의 내용이 곧 사성제를 아는 것이고, 사성제 안에 도성제의 내용이 곧 팔정도가 되는 것이고, 12 연기도 사성제 안에 들어있는 것이고, 12 연기 안에 사성제가 들어있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되어 있거든요. 팔정도에 대해 후대에 학자들이 분석해 놓은 것을 보면, 학파마다 종파마다 해석이 다 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후대에 집필해 놓은 것들에 연연해서 그걸 해석하고 논리를 맞추는 일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팔정도를 배우고 나면 곧바로 수행적으로 적용이 안 되고 있잖아요. 각각의 용어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해석하는 것조차 아직 정리가 안 되고 있거든요. 수행을 오랫동안 해온 우리들조차 도대체 ‘정정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잖아요. 부처님이 이렇게 설법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부처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눈을 뜨면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진리이다.’

그런데 12 연기, 팔정도, 이런 개념들은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얼마나 복잡합니까. 교리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저도 대중에게 법문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불교사상서도 교리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야 대중이 가장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교리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그 용어에 대한 해석이 정확하냐에 대한 논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명상을 안내할 때도 교리적인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 아주 쉬워요.

‘마음을 고요히 합니다. 그러면 졸리고, 생각이 많아지니까,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서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그게 잘 안 되기 때문에 계속해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데, 만약 교리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집중’이 ‘정념’에 해당하는지, ‘정정’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학자들 사이에 아직도 끝이 안 나고 있다는 겁니다. 알아차림은 정념이 확실하고, 고요함은 정정이 확실한데, 집중은 무엇에 속하느냐는 거죠. ‘정정진’에 대한 해석도 서로 다릅니다.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용어의 정확성 때문에 논쟁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문제는 누구한테 물어봐서 해결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용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전마다 용어에 대한 설명이 다르고, 교리집에도 용어에 대한 설명이 다르고, 스님마다 용어에 대한 설명이 다릅니다. 학자들은 그것들을 다 비교해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특히 우리는 대중을 가르치는 사람들인데, 이런 견해도 있고 저런 견해도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사실 대중의 입장에서는 필요 없는 설명입니다. 대중을 헷갈리게 만들기만 하죠.

그래도 우리가 교리적인 용어를 정리해서 불교사상서를 만들어봐야 해요. 그래야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연구해서 만들어봐야 이런 책은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거든요. 일단 다 만들어놓은 후에 결론을 내야지, 만들기도 전에 결론을 내어서는 안 돼요.”

“그러면 불교 용어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요즘 현대인들의 생활 언어를 사용한 즉문즉설 방식으로 책을 만들면 어떨까요? 그러면 정토불교대학 교과과정도 다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이미 대중 법사님들이 즉문즉설 방식으로 정토불교대학 교과를 바꾸자는 제안을 했어요. 개인이 수행을 경험하고 체험하기에는 즉문즉설 방식이 더 낫거든요. 그렇게 바꾸면 불교대학이 아니라 수행대학으로 간판을 바꿔야죠. 만약에 제가 외국인을 앉혀 놓고 법문을 하면 불교 용어를 일절 사용하지 않겠죠.

제 말은 수행과 관계없이 교리라는 것을 별도로 공부해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오온설을 공부하고 나면 괴로움이 싹 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혹시 과거의 틀에 매여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살펴보면 좋겠어요. 지식화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실용화되게 할 것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연기와 중도는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굉장히 필요한 개념이거든요. 그래서 불교사상서는 ‘연기’와 ‘중도’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잡고 정리해야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논의를 한 후 6시가 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정기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직접 생방송하지는 않고 지난 수요일에 방영한 니와노 평화상 수상식 내용을 그대로 방영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한 후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는 산책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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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회의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1-06-08 21:58:39

이태웅

고생하십니다.

2020-11-28 08:33:52

정자영

스님...
요즘 말하는 군중심리나 패거리심리는 어떻게 해석해야하나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몇몇 사람의 생각을 진실인양 사실 아닌 사실을 만들고
무리를 만들어 자기와 반대 되는 그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왜 자꾸 이런 패거리 심리가 활개를 치고 분열을 조장하는 걸까요 분열로 인하여 세

2020-11-05 13: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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