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8.24 결사행자 자자, 행복한 대화 온라인 즉문즉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후회할까봐 두려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결사행자 자자에 참석해 입재 법문과 회향 법문을 한 후 저녁에는 유튜브 즉문즉설 구독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3동 비닐하우스에 참깨를 벴습니다.


꼬투리가 많이 벌어진 것은 헌 비닐 위에 따로 모았습니다.

벤 참깨를 2동으로 옮겨 널었습니다.


다시 3동으로 돌아와 가지를 수확했습니다.




가지를 창고에 옮겨두고 체와 바가지를 챙겨 논 아래 수로로 가보았습니다.

“수로에 물이 없어서 우렁이가 죽을 거예요.”

얕은 물 위로 우렁이가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논 아래 수로를 따라 우렁이를 줍고 위로 올라가 우렁이를 주웠습니다.


우렁이는 바가지가 넘칠 정도로 많았습니다. 창고에서 바가지를 더 들고 와서 윗 논에서도 우렁이를 주웠습니다.


우렁이를 다 줍고 스님은 조금씩 나눠 담아 논둑을 돌며 우렁이를 논으로 던져주었습니다.


논 가까이에 가니 벼 사이사이로 풀이 보였습니다.


손이 닿는 곳에 풀을 뽑아주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10시 30분부터는 결사행자 자자 수련에 참석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정토회 역사상 처음으로 ‘자자’도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자자’는 안거가 끝나는 날 그동안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 중에 잘못된 것이 있는지 함께 수행하는 도반들에게 물어 자기의 잘못을 알아차리고 뉘우치는 탁마 수행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자자를 통해 승가 공동체가 청정함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결사행자 모두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자자가 시작되었습니다. 결사행자들은 먼저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에 왜 결사행자 제도를 두었는지, 결사행자에게 자자가 왜 중요한지 한 시간 동안 자세히 법문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일 년에 두 차례 정기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자자를 하는 날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재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자자도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직접 대면을 하는 방식으로 장시간 수행을 해 온 우리들도 수행이란 참 쉽지가 않다고 느끼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모든 것이 전환되면 과연 수행이 제대로 될까?’ 이런 우려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토회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입니다. 온라인 방식이 정토회가 세상에 확산되는 데에는 기여를 많이 할 겁니다. 반면에 정토회의 이런 정체성을 훼손하게 될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대중이 정토회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갖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지,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토회가 출발할 때도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정토회의 정체성을 지키려면 소수의 엘리트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관점과 이제 민주주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대중이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관점 사이에서 많은 토론을 한 결과 정토회는 대중이 주체가 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대중이 주체가 되는 방식이 많은 실패를 겪었습니다. 실패를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다 보니까 결국 원칙을 훼손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초기에는 방편이라는 명분을 걸고 출발했지만 결국 방편이 중심이 되어버린 겁니다.

온라인 시대에 결사행자의 위상과 역할

사실은 수행의 원칙을 지키는 것과 많은 대중이 법의 가피를 입도록 하는 것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많은 안전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의사 결정할 수 있게 대의원 제도를 두는 등 여러 가지 민주적 방식을 도입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결사행자 제도를 두어서 수행의 중심성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양적인 확산을 얼마나 하느냐와 질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그 사이에 결사행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왜 내가 결사행자가 되었는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대중에게 이 법을 확산시키는 것도 정토회의 중요한 목표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면 정토회가 ‘수행으로서의 불교’라는 자기 정체성을 계속 유지해 갈 수 있는가입니다. 즉 ‘수행으로서의 불교’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결사행자가 존재하는 겁니다.

자자가 더욱더 중요해지는 이유

여러분이 그런 역할을 해내려면, 각자가 스스로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반의 밝은 눈을 빌려서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자’를 하는 겁니다.

대중은 다 알고 있지만 정작 나는 모르고 있는 나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에게 요청해서 그 지혜를 나의 수행에 활용해야 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저를 지켜보면서 수행자로서 어떤 부족함이 있었는지, 어떤 계율을 어겼는지, 어떤 인격적 부족함이 있었는지 지적해주시면 제가 한 사람의 수행자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대중에게 요청해서 탁마를 하는 것이 자자입니다. 결사행자에게 이것은 하나의 의례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수행입니다. 회의를 해서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은 결사행자의 의무 중 부차적인 일입니다. 그건 서원행자와 대의원도 다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사행자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사행자 제도를 직장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들까지 확대시킨 이유는 여러분이 직장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하더라도 이 수행자라는 중심이 분명하다면 문제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직장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하다 보면, 가게 운영이 우선이 되고, 출근이 우선이 되다 보니까, 어떤 면에서는 이런 수행자의 원칙들이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사행자라면 최소한 이런 관점은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나는 출가한 스님이다. 세상의 모든 인연을 마음에서는 끊었지만, 보살행을 하기 위해서 다시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나는 결사행자가 될 자격이 없네’ 이런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결사행자의 위상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정토회의 중심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겁니다.

스스로를 정화시켜나가는 결사행자가 됩시다

여러분도 저를 보면서 ‘아이고, 스님은 참 훌륭하신데 저것 하나만 고치면 더 존경을 받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단순히 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드는 점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보라는 겁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우리 모두가 부족한 점들이 조금씩 있습니다. 그래서 ‘저것만 고치면 참 좋겠다’ 하는 점들을 서로 이야기해줌으로 해서 각자 자기를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을 얻자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를 합리화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수행문을 읽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점은 눈에도 안 보이고 귀에도 안 들립니다. 이럴 때 도반들의 지적을 받음으로 해서 자기를 깨우쳐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자’가 중요한 거예요.

앞으로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이 되면 대중 확산은 예전보다 더 잘 될 겁니다. 그러나 질적 담보를 하는 측면은 점점 부족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세상이 될수록 더욱더 결사행자의 위상과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사를 소수로 하고 결사행자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결사행자를 소수로 하고 법사를 확대하는 이유는 정토회가 먼 미래에도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유지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그 마지막 보루가 결사행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대부분의 권한을 대중에게 넘겨주겠지만, 정토회를 해산시킬 권한이라든지, 재산관리라든지, 회원 징계라든지, 장기적인 발전 계획이라든지, 정토회의 중요한 일들은 여전히 결사행자들이 지켜나가야 합니다. 정토회의 목표는 단순한 양적 확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결사행자들이 이런 권한만 갖고 있고 실제로 그런 인격이 되지 못하면 대중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결사행자라는 것을 자랑으로만 삼을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중의 모범을 보임으로 해서 대중이 결사행자회의의 결정에 자발적인 동의를 하도록 자기 스스로를 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한 중요한 의식이 바로 ‘자자’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정말 기쁜 날이 되어야 합니다. 지적받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오늘은 내가 도반들로부터 좋은 조언을 듣는 날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말하는 사람도 애정을 갖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고, 듣는 사람도 변명을 하거나 반론을 제기하기보다는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이 아닌 것은 조심스럽게 해명을 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그렇게 보셨구나’ 하고 수용하는 자세도 중요해요. 오늘이 편안하고 가볍고 기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입재 법문이 끝나고 결사행자들은 먼저 정토행자 40 계본에 따라 한 배 한 배 참회의 절을 하며 포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둠별로 온라인 화상회의에 접속하여 참회한 내용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도반들에게 허물이 있으면 이야기해달라고 청한 후 도반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새겨듣는 ‘자자’를 행했습니다.


‘자자’를 모두 마치고 다시 스님을 모시고 회향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회향 법문을 따로 하지 않고 자자를 하면서 도반에 대해 그리고 계율에 대해 의문이 들었던 점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섯 명이 스님에게 의문점을 물었고, 스님은 자상하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오후 5시에 자자 수련을 모두 마친 후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와 각종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에는 유튜브 구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즉문즉설 강연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매년 봄과 가을에 열렸던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잠시 중단되었는데, 오늘부터 온라인 방식으로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은 스님은 활짝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현장에서 만났어야 할 여러분을 온라인으로 만나게 되었네요. 이런 변화에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멀리 이동하지 않고 집에서 대화할 수 있는 건 장점이에요. 그러나 직접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온라인 강연에서는 반감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 저는 강연이 있으면 농사일을 하다가 두세 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곤 했는데요, 요즘은 농사짓다가 한 30분 전에 세수하고 법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여러분을 만나면 됩니다. 이건 좋은 점이네요.

코로나가 종결되면 좋겠지만, 지속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삶을 또 살아가야겠지요. 그래서 저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토회 회원과는 온라인으로 법담을 많이 나누었는데, 이렇게 일반 대중과 온라인으로 즉문즉설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럼 얘기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이 1500여 명이었습니다. 강의하는 동안 시청자는 계속 늘어 총 5천 여명이 온라인 즉문즉설에 접속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대중이 스님의 강연을 기다려 왔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6명이 최종 질문자로 선정되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후회가 남을까 봐 두렵다고 질문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후회할까봐 두려워요

“저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후회가 남을까봐 너무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 몸도 마음도 한계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는 아무리 살기 어렵더라도 자식을 스무 살까지 돌봐야 합니다. 이것은 생태적 의무이기도 하고 사회적 의무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사항입니다. 자연 생태계에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돌보는 게 생태적 현상은 아닌 거예요. 부모도 성인이고 자식도 성인이기 때문에, 각각 자기 개체를 보존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생각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옛 은혜를 생각해서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거예요. 그런데 유교에서는 자식을 키우는 것보다 부모를 모시는 것을 더 우위에 두고 효를 중요한 윤리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의무’이고,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택’에 속합니다. 선택의 문제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고, 안 해도 죄가 아니라는 얘기예요. 부모가 자식을 버리면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면 칭찬받을 일,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질문자는 부모님을 모시는 것에 대해 지나친 의무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돌보면서 행복하거나 아버지의 마지막 여생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지 않고 부담이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부담이 되어서 내 인생이 없어진 것 같고,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를 해서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이것은 관점을 잘못 잡은 겁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원하는 것을 해드리는 게 제일이에요. 원하는 것 이상으로 하려는 것은 집착입니다. 원하는 것을 못 해 드리면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돼요.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내 인생을 살아야지, 털끝만큼도 후회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살아계실 때 갈등을 하기 때문에 돌아가신 후에 후회가 생기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돌아가시면 내 인생을 살면 된다.’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1년이든, 2년이든 몇 년이든 이런 관점을 가지면 나도 좋고 부모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위해서 내가 희생한다면 부모님이 오래 사는 게 나한테 부담이 됩니다. 그러면 속으로 ‘왜 빨리 안 죽나’하고 바라는 것과 같잖아요. 이게 더 죄짓는 일이 됩니다. 너무 잘해주려다가 죄짓게 된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잘 못 해드렸다고 후회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입니다. 돌아가시면 잘 가시라고 인사하고, 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마음에 심고 살아가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움켜쥐고 있는 걸 놓으라 하셨습니다. 저는 매달려서 쥐고 있는데 자꾸 놓으라 하니 떨어질 것 같습니다.
  • 우리 집 늦둥이가 4살 남자아이입니다. 아랫집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스트레스가 큽니다. 나름 조심한다고 하는데 너무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아 힘이 듭니다.
  • 정서적으로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무의식 중에 나의 행동이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 9살, 5살 아이 둘을 키우는 37살 엄마입니다. 근래에 문득 제 젊음이 아이들 키우다가 다 지나가는구나 싶어 심각한 우울감에 빠집니다.
  •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종교계가 비판을 넘어 국민들의 분노까지 사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에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한 시간 넘게 여섯 명의 질문자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스님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내 것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네, 여섯 분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듣기만 해도 도움이 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적용을 하는 거예요. ‘그림의 떡’ 이런 말이 있지요? 아무리 보기 좋은 떡이라도 먹지 못하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처럼 부처님의 말씀이든 예수님의 말씀이든 하나라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을 칭찬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법륜스님이 얼마나 훌륭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치를 설명하는 저의 즉문즉설 유튜브를 보고 인생에 변화가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한발 더 나아가 이 이치를 자기화하는 연습을 하면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이런 학습을 하는 곳이 바로 ‘행복학교’입니다.

제가 속한 정토회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운영해보니 사람들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입학을 꺼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종교에 대한 거부감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종교를 믿는 사람이 절반도 안 되는 데다가 종교를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둘째, 다른 종교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성당에 다녀서, 그리고 불교를 믿더라도 다른 절에 다니기 때문에 정토불교대학에 오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좋은 법을 받아들이는 데 종교, 불교, 정토회가 장애가 된다면 이런 장벽을 모두 없애보자고 만든 프로그램이 행복학교입니다. 행복학교는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듯 종교, 불교, 단체를 떠나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까?’를 함께 고민하고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는 곳입니다. 행복학교는 4주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한 번 해보고 도움이 되면 더 해보세요. 여러분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온라인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잘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질문해주신 여섯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방송이 끝나고 실시간 댓글 창에는 수백 개의 감사 인사가 올라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일반인을 위한 첫 온라인 즉문즉설도 잘 마쳤습니다. 온라인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밤새 온라인 불교대학과 경전반에 사용할 교재를 검토했습니다.

내일은 농사일을 하고 하루 종일 정토회 역사 편찬에 대한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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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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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즉문즉설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1-02-27 00:50:41

김인수

법륜스님 감사합니다
제가 늘 가지고있던 후회와 현재도 마음의 큰 슬픔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햐 죄송함에 하루에도 수십번
자책하는데 스님말씀듣고 좀더 좋은 아들이 되는 계기가
될것같습니다!

2020-10-10 09:34:08

김현숙여래심

도반의 밝은 눈과 뒤를 빌어 나를 바로 깨우쳐 나가도록 넓게 깊게 받아들이는 수용자세 갖겠습니다

2020-09-15 20: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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