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4.17 농사일
"소똥이 비에 젖으면 안 돼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농부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날이 바로 비 오는 날입니다. 비가 내리는 관계로 오전에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그동안 밀린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아침 일찍 엄나무순을 따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소똥을 비에 맞지 않게 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지난주에 동네 어르신이 준 소똥 거름을 햇볕에 말리기 위해 비닐하우스 옆에 흩뿌려 놓았습니다. 잘 말려놓은 소똥이 비에 젖지 않도록, 소똥을 한 곳에 모으고 비닐로 덮었습니다.

포클레인이 섬세하게 모으지 못한 부분은 삽으로 직접 퍼서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소똥이 비에 젖으면 안 돼요. 비닐로 덮어 둡시다. 가장자리가 비에 맞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비를 안 맞게 하면 다시 말릴 때 훨씬 수고를 덜 수 있어요.”

비닐이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큰 돌로 가장자리를 고정시키고 나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마지막에 포클레인 삽으로 비닐 덮어 놓은 꼭대기를 꾹 눌러 놓으세요.”

작업을 마치자 비가 후드득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야외에서는 일을 못하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쌈채소를 수확했습니다. 스님은 제일 먼저 열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열무를 좀 솎아줍시다. 오늘은 솎아주고, 다음에는 싹 다 뽑아서 먹고, 새로 또 심어야 할 것 같아요.”




스님은 농사일을 할 때 무아지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고요한 가운데도 손놀림이 아주 빠릅니다. 순식간에 바구니 두 개가 뽑아놓은 열무로 가득 찼습니다.

상추도 수확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아침에 뽑은 거이어서 더욱더 싱싱해 보였습니다.


수확한 채소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에는 비가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스님이 비닐하우스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봄배추, 고수, 열무는 땅 속에 스며든 빗물을 흠뻑 먹고 있었습니다.

농사일은 잠시 쉬기로 하고, 오후에는 각자 미뤄 둔 업무를 보았습니다. 스님은 다음 주에 서울에 올라갔을 때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대중부를 비롯해 각종 사회 부서와 회의 일정을 잡은 후 내일 있을 법사단 회의에 제출된 자료들을 보며 오후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려서 오랜만에 쉴 수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7시부터 전체가 모여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개쑥으로 만든 떡을 맛보라고 하면서 행자님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개쑥떡은 쑥덕보다 훨씬 찰져요. 개쑥을 어릴 때 봤는데, 오랜만에 경주 남산에서 발견했어요."

먼저 스님이 비가 많이 와서 반가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랜만에 비가 흠뻑 온 것 같아요. 모종 심는다고 땅을 깊이 파보았는데 땅 속까지 다 젖어 있었어요. 심어 놓은 곡식들이 물을 흠뻑 먹었을 것 같아요. 그럼 마음 나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서 각자 오늘 하루를 보낸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오늘 비가 와서 사무실에서 새로 만든 노지 밭에 무엇을 심을지 구상을 했어요. 어떤 작물을 어느 정도 심으면 수확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감이 안 잡혔어요. 경험 있는 분에게 조언을 구해도 다들 모르겠다고 하시고요. 밭에서 일하는 건 단순하니까 편한데, 기획을 하는 것은 어려워요. 저녁이 되어서는 내가 너무 정답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마음이 답답했구나, 하는 알아차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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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마음 나누기를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비가 와서 저도 오랜만에 좀 쉬었습니다. 저녁때 좀 자고 일어나니까 꼭 새벽 같았어요. ‘벌써 날이 밝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초등학교 때 생각이 났습니다. 저녁때 자고 일어나면 날이 어둑하니까 아침인 줄 알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려고 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오늘도 어릴 때처럼 꼭 아침에 일어난 기분이었어요. (웃음)

오늘은 업무도 많이 처리했지만, 푹 쉬기도 했습니다.”

나누기를 모두 마친 후 농사일과 관련해서 간단히 회의를 했습니다. 앞서 마음 나누기 시간 때 농사를 담당하는 행자님이 노지 밭에 무엇을 심을지 기획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농사를 짓고 있으면서도 계속 시장에 가서 사오는 채소들이 있거든요. 식사를 하는 데 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심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 비닐하우스에 청경채 같은 채소를 많이 심어 놓았는데 ‘이런 채소는 누가 소비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열무는 김치를 담가 먹을 수도 있고, 얼갈이배추도 자주 먹는 채소잖아요. 일상적으로 먹는 작물을 중점적으로 심으면 좋겠어요.

일상적으로 먹는 작물을 먼저 심어서 공급해주고, 나머지 부족한 것은 구입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올해는 실험이니까 내년에 심을 것을 대비해서 이것저것 조금씩은 심어 보는 것이 필요하긴 합니다. 왜냐하면 소출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산나물도 많이 나는 시기입니다. 머위, 엄나무순, 쑥이 한꺼번에 나오니까 상추나 고수에는 아예 손을 못 대고 있어요. 순번이 안 돌아오니까요. 머위는 억세어지기 전에 빨리 따야 하고, 제피 잎도 따야 하는데, 농사일한다고 여유가 없거든요. 이런 시기에는 산에서 자연적으로 나는 것을 따는 게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농사 계획을 세울 때 산에서 채취하는 것들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채소는 제철에 먹어야지 보관을 하게 되면 질겨지기 때문에 못 먹어요. 물론 무시래기처럼 말려서 삶아 먹을 수 있는 건 괜찮지만요.

특히 올해는 원추리나물도 시기를 놓쳐서 제 때에 먹지를 못했어요. 지금 우리는 채소를 심는다고 온갖 노력을 하면서, 정작 자연에서 나는 것은 그냥 다 버리고 있어요. 경상도 말로 디비쪼고 있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심는 것만 채소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에서 채취하는 것도 생산물의 한 종류로 생각해서 농사 계획을 좀 세워보면 좋겠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쌈채소가 많이 자라 있는데, 이제부터는 서울공동체와 문경공동체에도 재바르게 채소를 공급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요즘 농사를 짓고 있는 스님의 하루를 읽고 어느 분이 토종 씨앗을 다양하게 보내주었습니다. 농사 담당 행자님은 어디에 어떻게 토종 씨앗을 심을지 연구를 했고, 스님은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내일부터는 1박 2일 동안 공동체 법사단 수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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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숫대야

통종씨앗 씨앗이 참 중요하죠

2020-04-27 18:13:40

김기숙

장에가니 할머니께서 개쑥을 떡하면 맛있다고 알려주신 기억이나네요~

2020-04-26 11:41:31

정지나

적절할 때 적절히 행동해 보는것
쉬우면서도 쉽지않다 그래도 다시, 감사^^ 꾸벅

2020-04-24 22: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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