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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제1강이 생방송으로 열리는 날입니다.
아침에는 원고 교정 업무를 비롯해 전화 통화와 여러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4월 한 달 동안은 스님이 직접 생방송으로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강의 주제는 ‘불교란 무엇인가’입니다.
먼저 스님은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어떤 마음 자세로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입학하고 나서 첫 번째 강의 시간입니다. 온라인 강의라고 해서 혹시 설거지하면서 강의를 듣고 있는 건 아니죠? (웃음)
앞으로도 집에서 강의를 계속 들어야 하니까 집에서 강의를 들을 때도 법당에 나와서 듣는 것처럼 방을 깨끗이 정비하고 자리를 마련해서 준비를 딱 하고 나서 강의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10분 전에는 준비를 다 마치고 마음을 편안히 한 상태에서 강의를 들어야 강의가 귀에 쏙쏙 들어와요.”
이어서 오늘 강의 주제인 불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1시간 동안 설명했습니다.
“불교(佛敎)라고 할 때 ‘불(佛)’자는 부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교(敎)’자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불교라는 말은 '깨달음의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깨달은 자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깨달은 자의 가르침'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까요? 깨닫지 못한 자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즉, 깨닫지 못한 자가 깨달음에 이르도록 안내하기 위한 가르침이 불교입니다.
그럼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일까요? 바로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치란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왜 마음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어떻게 하면 마음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할 수 있는지, 그 원리를 말합니다. 이런 이치를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이런 이치를 모르는 것을 '무지' 또는 '무명'이라고 합니다. 무지라는 말은 앎이 없다는 뜻이고, 무명이라는 말은 밝지 못하다는 뜻이에요. 앎이 없는 상태에서 이치를 알아가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이치를 알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마음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다가 마음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혼란스럽잖아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는 것도 사실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할 때는 전염을 방치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염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죽게 되니까 육체적 고통, 죽음으로 인한 가족 간의 이별의 고통 등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 알지 못해서 생기는 괴로움입니다. 처음에는 몰라서 방치하다가 사람이 죽어나가니까 이제는 두려움이 생겨서 우선 나부터 살기 위해 물건을 사재기하고,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전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바이러스의 유전자 배열을 알아내서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연구하고,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해야 합니다. 예방법을 찾거나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지만, 시간이 1년 내지 2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 바이러스는 아주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잘 생깁니다. 약을 하나 개발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면 또 거기에 맞춰서 약을 새로 개발해야 됩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대응이 어렵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한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무지하니까 나라별로 서로 경쟁적으로 약이나 마스크를 선점하려고 하다 보니 이 나라에는 남고, 저 나라에는 모자라는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첫째, 무지입니다. 둘째, 나만 살겠다는 이기심입니다.
지금 미국의 흑인 인구 비율이 약 15% 미만인데,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흑인이고, 사망자의 70% 이상이 흑인입니다. 옛날에는 ‘흑인은 죄가 많아서 그렇다’, ‘하느님을 안 믿어서 그렇다’, ‘인종적으로 열등해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죄를 덮어 씌웠어요.
그러나 이런 현상은 미국 내에 빈부격차가 심하고, 빈곤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이나 의료 지원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일 뿐입니다. 흑인 개개인이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흑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의료 혜택을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의료지원 시스템을 개선함으로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동안 종교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무지를 깨뜨리고 이치를 알아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무지의 상태에서 어떤 힘 있는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기도해서 문제를 풀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종교인들이 성당과 절과 교회에서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구제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런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루빨리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건 참 선량하고 좋은 마음이지만, 그렇게 기도한다고 바이러스가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겪고 있는 괴로움은 이치를 몰라서 생긴 것입니다. 불안함과 초조함도 무지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고,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도 무지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이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되면 누구나 다 부정적인 심리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면 지혜로운 상태에서 문제에 대응하게 되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갖는 게 수행이에요.
그런데 종교는 무지함을 채찍으로 해서 협박하고, 신비함을 당근으로 해서 유혹하면서 인생 문제를 풀어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도 똑같았습니다. 부처님은 어렸을 때 굶어 죽는 사람, 병들어 죽는 사람, 늙어 죽는 사람을 보면서 그렇게 해서는 인생 문제가 풀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고 신에게 빌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니까 부처님은 여기에 두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첫째, 정말로 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이 있을까? 있다면 왜 사람들의 고통을 방치할까?
둘째,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신이 있다고 한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면 왜 이런 문제가 해결이 안 될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탐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왕궁을 떠나 출가를 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오랜 탐구 끝에 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무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무지로부터 깨어나니까 마치 어두운 방에서 불을 켠 것처럼 환히 보였습니다. 두려워할 일도 없고, 신비스러워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마음에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지고 긍정적인 기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을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무지 속에서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이 무지로부터 눈을 뜨게 되면 괴로움 없이 살 수가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자신의 인생 문제가 해결이 됐지만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갔습니다. 어둠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고, 그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자비심을 갖고,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하소연을 듣고 그들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 도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중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시고, 모든 중생의 위대한 스승이 되셨습니다.
문명이 점점 발달하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 불법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옛날에 시작된 옛 길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앞으로 인류에게 불어 닥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옛길이 아니고 우리가 나아가야 될 새길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오래된 새길’, ‘미래를 향한 옛길’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가르침을 종교의 영역에만 가두어두면 자칫하면 어리석었던 옛날 사람들의 얘기로 전락해버릴 소지가 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창고에 넣어버리게 되는 거죠.
현대인의 마음병을 치유할 수 있는 이 법을 처음 발견한 이를 ‘붓다’라고 합니다. 수많은 치유법을 설해놓은 것을 ‘담마’라고 합니다. 그 치유법에 따라 치유해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상가’라고 합니다. 붓다, 담마, 상가를 한문으로는 불법승(佛法僧)이라 합니다. 우리말로는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들입니다. 이 세 가지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삼보’입니다. 그래서 불교인들이 모였을 때는 이 세 가지를 항상 먼저 확인합니다.
붓다께 귀의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들께 귀의합니다
오늘은 죽비만 치고 법문을 시작했지만, 앞으로 여러분들이 수행도량인 법당에 모일 경우에는 항상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후 나도 수행자의 일원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왜 복을 비는데 이뤄지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수행자라는 관점을 제대로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어떤 강의를 듣더라도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모였는지를 간과해선 안 됩니다. 관점을 놓치면 자꾸 엉뚱한 얘기를 하게 됩니다.
오늘 법문을 듣고 나서 이런 관점을 갖고 계속 공부를 해나가고 싶다는 분은 계속 정토불교대학을 다니시면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해서 복을 구하고 싶다거나, 병이 낫기 위해서 입학을 했는데 법문이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오늘 바로 자퇴하시면 됩니다. 불교 교리를 배우기 위해 입학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목적으로 왔든, 오늘 스님의 법문을 들어보니 ‘이 가르침이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구나’ 하고 느꼈다면 정토불교대학을 계속 다니시면 됩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는 경험과 체험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매주 과제를 줄 예정입니다. 오늘 주어지는 첫 번째 과제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알기입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있을 때는 귀찮다고 생각되는데 막상 남편이 없으면 굉장히 아쉽습니다. 아내가 있을 때는 잔소리한다고 귀찮아했는데 막상 아내가 없으면 엄청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점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고, 부정적인 면은 계속 부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상대가 없어지면 좋은 점도 같이 없어지니까 아쉬워지는 겁니다.
남편이 있다면 남편이 있어서 좋은 점 발견하기
아이가 있다면 아이가 있어서 좋은 점 발견하기
혼자 산다면 혼자 살아서 좋은 점 발견하기...
오늘부터는 이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가진 건 있어서 좋고, 없는 건 없어서 좋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까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고, 직장을 나가게 되면 직장에 나갈 수 있어서 좋은 겁니다. 이렇게 ‘내 삶 긍정하기’를 연습해보겠습니다.
이런 연습을 할 때 제가 주로 하는 방법은 가장 밑바닥부터 긍정하는 겁니다. 가장 밑바닥부터 긍정하는 방법은 지금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하는 겁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하면, 일상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별 일 아닌 것이 됩니다. 살아있으니 의견이 다른 사람도 만나고, 살아있으니 밥도 하고 일도 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에서 출발해서 밥 먹은 것에 대한 감사함, 결혼한 것에 대한 감사함, 혼자 사는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점점 확장해 나가면 됩니다.
이번 주에 연습을 해보시고 나서, 다음 주에 만났을 때는 제가 여러분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연습을 해보니 이런 점이 좋았고, 이런 것은 잘 안 되더라, 등등의 상태를 도반들끼리 인터넷으로 나누어 보는 겁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다음 강의를 듣고,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나가면 제가 볼 때는 몇 달만 지나면 아주 좋아지리라 봅니다.”
강의가 끝난 후 불교대학 학생들은 모둠별로 화상 채팅으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봉화 정토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봉화 수련원 뒷산에 두릅이 많은 밭이 있는데, 작년에 늦게 갔더니 다 없어져 버렸어요. 올해는 일찍 가서 점검을 좀 해봅시다.”
점심 식사도 거르고 곧장 봉화로 달려갔습니다. 열심히 달려갔지만 봉화 수련원에 막상 도착해서 보니 두릅이 아직 덜 피어 있었습니다.
두릅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따기로 하고, 오늘은 수련원 주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지자체에서 숲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큰 나무만 두고 잡목을 다 베어버린 후 뒷정리를 하나도 안 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두릅나무는 베지 않았지만, 간벌을 하고 난 후 나무들을 묶어 놓거나 정리를 해놓지 않아서 잘린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아이고, 나무들이 베어져 있어서 길을 다닐 수가 없네요. 여기를 좀 치워놓고 갑시다.”
두릅은 따지 못했지만 대신 산길을 다닐 수 있게 정리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여기는 산초나무가 많은 곳인데 다 베어버렸네요. 연달래와 진달래도 다 베었고요. 쯧쯧.”
소나무 빼고는 잡목이라고 해서 다 베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숲 가꾸기 사업은 조림목이 성공적으로 활착 되도록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꽃과 산나물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봉화 수련원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 마음 나누기를 함께 했습니다.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경청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차 타고 봉화를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한가하게 차 안에서 뉴스도 보고 휴식도 하고 편안하게 잘 보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마친 후 스님은 농사일과 관련해서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밭에 무엇을 심을지에 대해 의논이 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농사짓는 사람과 요리하는 사람이 긴밀하게 의논해서 밭에 무엇을 심을지 조정을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요리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심는 것만 자꾸 생각하다 보니 어떤 것은 너무 많이 심고, 어떤 것은 너무 적게 심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것저것 심지 말고, 공동체에서 필요로 하는 양을 먼저 파악한 후 무엇을 심을지 결정하면 좋겠어요.
올해까지는 실험입니다. 한 줄에 얼마의 양이 생산되는지 올해에 파악을 다 해놓아야 내년에는 전체 양을 계산해서 몇 줄을 심을지 계획을 세울 수 있거든요. 필요하면 내년에 밭을 더 확보하든지, 여기는 밭이 부족하니까 감자 농사는 봉화 수련원으로 옮긴다든지 하려면, 올해 계획적으로 농사를 지어봐야 가늠을 할 수 있어요.”
서울, 문경, 두북, 각각의 공동체에서 공양간을 책임지는 사람들과 의논을 한 후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보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산윗밭에 올라가서 새로 만든 밭에 거름을 넣은 후 두둑을 만들고 생강과 옥수수를 심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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