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2 사르나트(Sarnath) 답사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설한 곳인 사르나트(Sarnath) 지역을 하루종일 답사했습니다.

각자 방에서 기도를 하고 날이 밝자 8시에 사르나트로 출발했습니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해가 떠올랐습니다.


40분을 걸으니 영불탑이 나왔습니다. 영불탑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뒤에 가야에서 같이 수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찾아왔을 때 부처님을 맞이한 곳입니다.

영불탑을 지나 700m를 더 걸으니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을 하신 곳인 사르나트에 도착했습니다. 성지를 둘러보는 순서를 정하는데 참고하기 위해 영불탑에서 사르나트까지 걸어서 걸리는 시간도 재보았습니다. 7분 정도였습니다.

사르나트에는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신 곳에 세워진 탑인 다르마 라지크 스투파, 두 번째로 설법하신 곳에 세워진 탑인 다메크 스투파가 있습니다. 4일 아침 일찍 성지순례 A팀 이백 여명과 함께 올 것이기 때문에 입장료와 결제 방식도 미리 점검했습니다. 아침에 문 여는 시간을 물으니 ‘해 뜨고 나서’라고 대답합니다.

먼저 다르마 라지크 스투파 앞에서 합장하고 탑돌이를 했습니다. 미얀마, 태국 등 불교국가에서 온 스님, 불자들이 참배를 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서른한 번째 성지순례입니다. 매년 지난번에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합니다. 현지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점검을 했습니다. 사진 찍을 곳을 둘러보며 직접 사진도 찍어보았습니다.

“여기가 더 멋있네요. 여기 와 보세요.”

햇볕이 강렬했습니다.

“지금이 9시인데, 모레는 12시쯤 될 거니까 해가 더 떠올라서 괜찮을 거예요.”

단체 사진을 찍을 곳에서는 팔을 벌려 서서 한 줄에 세울 인원을 가늠해보았습니다.

사진 찍을 곳을 보고, 설명할 장소를 점검한 후 녹야 정사, 아쇼카 석주까지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아쇼카 석주는 기둥만 남아있습니다. 스님은 인도인 활동가들에게도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사르나트는 녹야 정사(鹿野精舍)라고도 해요. 사슴이 많은 동산이라는 뜻이에요.”

“저기 첫 번째 설법한 곳에 세운 탑이 다르마 라지크(법륜) 수투파예요. 내 법명도 다르마 라지크(법륜)이에요.” (웃음)

이어서 사르나트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르나트에서 발굴한 유물을 전시한 고고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에 입장하자 아쇼카 석주 기둥머리에 올려져 있던 네 마리의 사자상 조각이 보였습니다.

“부처님 입멸 후 전인도 대륙을 통일한 왕이 아쇼카 왕입니다. 아쇼카 왕은 불교에 귀의했고, 부처님의 발자취마다 탑을 쌓고 중요한 곳에는 아쇼카 석주를 세웠어요. 여기서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하셨다는 상징으로 세운 기둥이 바로 이 아쇼카 석주입니다. 저기 보세요.

머리에는 네 마리의 사자가 등을 맞대고 사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쇼카 왕의 법이 사방으로 미치는 것을 상징해요. 그 밑에 원형 판에는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코끼리·말·황소·사자 네 마리의 동물과 법륜(Dharma wheels)을 의미하는 수레바퀴 네 개가 조각되어 있죠?”

“네.”

“법륜이란 두 가지 뜻이 있어요. 첫째, 불법을 전한다는 의미가 있고, 둘째, 왕이 전쟁의 방식이 아닌 바른 법(正法, dharma)에 의한 통치로 이상 국가를 실현한다는 뜻이 있어요. 이 사자상은 인도의 국가 문장(National Emblem)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 지폐에도 새겨져 있어요.

이 아쇼카 석주는 BC 3세기경에 만든 작품이에요. 이 시기를 마우리아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AD 1세기부터 3세기까지를 쿠샨 시대라고 부르는데, 간다라 양식이 유명하죠. 이 박물관에 있는 아름다운 불상들은 대부분 AD 5세기 경의 작품들인데, 이 시기를 굽타 시대라고 부릅니다. 좀 더 못생긴 신상들은 AD 11세기~12세기 경의 작품들이에요. 뒤로 갈수록 정교함이 떨어져요.

인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 쿠샨 시대와 굽타 시대의 유물들입니다. 쿠샨 시대에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있는 간다라 지역에서 문화가 발달했는데,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서 부처님을 매우 사실적이고 이성적으로 묘사했어요. 부처님이 머리카락을 칼로 자르고 묶은 모양도 정교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런 조각이 점점 바뀌면서 머리는 점점 곱슬해지고, 머리를 묶어서 자른 부분은 동그랗게 되어서 머리 위가 툭 튀어나온 모양으로 변해간 거예요.

이것 말고 마투라 양식이 있어요. 인도 전통의 영향을 받아서 붉은 사암에 새겨진 불상들인데, 옷을 많이 벗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크게는 간다라 양식과 마투라 양식이 있었는데, 굽타 시대에 오면 두 양식이 통합이 됩니다. 통 가사를 입는 것은 간다라 양식의 영향을 받았고, 그 옷이 너무 얇아서 옷을 벗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투라 양식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특이한 양식을 사르나트 양식이라고 합니다.

이 양식의 특징은 사암에 새겼다는 것이고, 입술이 아주 두텁고, 눈이 동그랗고,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동안으로 생겼고, 배가 약간 튀어나왔고, 허리띠를 맨 자국이 새겨져 있다는 겁니다. 이 박물관에는 사르나트 양식의 조각이 많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먼저 불교 조각상을 전시한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조각은 8대 성지를 상징합니다.”

“이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초전법륜상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불상이에요.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그 밑에 다섯 명의 비구들이 앉아 있고, 사슴 두 마리가 있고, 법륜이 새겨져 있어요.”

이어서 힌두교 신상을 전시한 곳도 둘러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스님이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질문을 하며 둘러보았습니다.

“이 신은 뭐라고 부르나요?”

“이 신은 시바예요. 그 옆에는 부인 파르바티예요. 아들은 가네쉬예요.”

“인도 사람들은 부처님보다 신이 더 좋죠? 결혼할 수 있으니까요.”(모두 웃음)

사르나트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10시 30분이었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인도의 국민차로 불리는 짜이 한 잔을 마셨습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장사하는 곳이었습니다.

화덕 앞에서 할머니가 손으로 부채질을 해서 짜이를 끓여주었습니다.

짜이는 홍차를 끓여 우유와 향신료를 섞어 만든 음료입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홍차의 대부분은 영국으로 보내졌기 때문에 하급 홍차를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으로 나온 차가 짜이입니다. 길에서 먹는 짜이 한잔은 보통 5루피, 한국 돈으로 백 원도 안 되는 값입니다. 값을 물어보니 할머니가 답했습니다.

“맛없으면 5루피, 맛있으면 8루피 주세요.”

“아차해.” (맛있네요)

달콤한 짜이 한잔에 피로가 풀립니다. 스님은 한 잔에 10루피로 계산해서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환하게 웃자 온 얼굴에 주름이 꽃처럼 피었습니다.

다음으로 천막을 칠 땅을 둘러보러 갔습니다. 1차 만일결사가 끝나는 3년 후에 스님은 천 이백 오십 명과 함께 인도 성지순례를 올 계획입니다. 부처님께서 천 이백 오십 비구와 함께 했듯이 말입니다. 천이백오십 명이 묵을 숙소를 다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너른 공터에 천막을 치고 다닐 계획입니다. 30분을 걷자 너른 운동장이 나왔습니다.

한 군데 더 너른 땅을 둘러보았습니다.

“화장실이 없네요. 화장실도 들고 다녀야겠어요.”(웃음)

땅을 둘러보고 사르나트 기차역을 지나는데 역 앞에 허술하게 지은 흙집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양말도 신지 않은 아이가 해맑은 얼굴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해도 나고 날이 따뜻해졌지만, 119년 만에 찾아온 추위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스님은 거리를 지나온 뒤 인도 JTS 활동가에게 부탁했습니다.

“두꺼운 담요를 사서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세요.”

성지순례팀이 묵을 숙소 중 한 곳인 베트남 절도 들렀습니다.

절을 들어서자 웅장한 불상이 있었습니다. 불상 좌우에는 수닷타 장자와 베사카 부인 조각상이 함께 있었습니다.


순례객들이 머물 숙소도 점검하고 법당도 둘러보았습니다.


“잘 보세요. 둥게스와리에도 절을 지어야 해요.”

스님은 웃으며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말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6년간 수행하신 곳입니다. 베트남 절 주지스님께 보시금을 모아 전달했습니다.

법당을 나오니 얼마 전에 베트남에서 새로 온 동자스님들이 조르르 서서 인사를 했습니다.

주지 스님은 베트남에서 27년 전에 인도로 왔는데, 스승님께서 1달러를 주면서 절을 지으라고 해서 이 절을 다 지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스님이 활동가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돈을 너무 많이 줘서 절을 못 짓나 봐요. 27년은 해야 이 정도를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조금 활동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할 거예요?”(모두 웃음)

활동가들은 뜨끔하며 웃었습니다.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절을 나왔습니다. 12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다시 사르나트까지 걸어 나와 거리 포장마차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얇은 밀가루 부침에 야채 볶음을 말아주는 인도음식을 먹었습니다.


오전 내내 걸어서 인지 무척 맛있었습니다. 4시간 동안 10km를 넘게 걸었습니다. 지친 사람들이 있어서 남은 거리는 릭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1시가 넘었습니다. 오후에 스님은 한국에서 긴급히 점검을 요청한 문서를 점검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성지순례를 준비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자 숙소 식당에서 해외에서 성지순례를 참가하는 분들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해외 참가자들은 사전교육을 받기 위해 하루 일찍 인도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면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제가 오늘 저녁식사를 초대했습니다.(모두 박수) 푸짐하게 차린 게 아니고 간단하게 차렸습니다.”(모두 웃음)

인도식 빵, 카레, 볶음밥, 수프가 준비되어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식사를 늦게 하기 때문에 식당에는 성지순례팀뿐이었습니다.

“성지순례는 여행이 아니고 순례입니다. 그래서 ‘이런 장소에서 어떻게 잠을 자나’ 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보따리 싸서 바로 집으로 가세요. 순례라고 생각해야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힘들어서 못 다닙니다. (모두 웃음)

순례를 할 때는 원래 길거리에서 10루피 주고 밥 사 먹고, 나무 밑에서 자고, 이렇게 다녀야 해요. 그래도 많은 사람이 참여하다 보니 비는 안 맞도록 순례자들의 숙소에서 잠을 잘 겁니다. 밥은 조별로 밥솥을 지급해 드릴 테니까 직접 해 먹으면서 다녀야 해요. 화장실은 차를 세워서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이렇게 길에서 볼일을 봅니다.

다들 걱정을 하는데, 걱정이란 건 하기 전에 일어나는 마음일 뿐입니다. ‘화장실은 어떠하지’, ‘물을 적게 먹어볼까’ 하고 걱정을 하는데, 한 번 해보고, 두 번 해보고, 세 번 해보면, 점점 화장실 가는 거리가 짧아지고, 멀리 가라고 해도 다 차 옆에서 볼 일을 보고 있어요. 사람이란 다 습관이 들면 익숙해지기 마련이에요. (모두 웃음)

인상을 보니까 적응을 못해서 입이 이만큼 나올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요. 도저히 못 갈 것 같으면, 내일 아침에라도 빨리 포기를 하십시오.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인도에 13억 인구가 사는데, 왜 나만 여기서 못 살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꾸 집에서 살던 생각을 하면 힘들어져요. 여기서는 집 생각은 싹 잊어버려야 합니다. 부처님은 맨발로 다니셨고, 나무 밑에서 주무셨고, 걸식을 해서 얻어먹었는데, 우리는 부처님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잖아요.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성지순례 내내 즐거울 것이고,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내내 분별심이 치성을 할 겁니다. 입이 자꾸 나오시는 분들은 입이 잘릴지 모르니 조심하셔야 해요. (모두 웃음)

그래서 인도 성지순례는 반드시 불교대학을 졸업해야 참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지순례는 한 인간으로 살아간 붓다의 모습을 규명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믿음의 대상으로서 부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성지순례를 하고 나서 자기 신앙에 굉장한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승으로서의 부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적나라한 삶의 현장 속에서의 부처님을 만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믿음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반드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해야만 성지순례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제한을 둔 게 아니라, 이런 제한을 두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일반 절에 다니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부처님은 빌면 복을 주는 존재인데, 성지순례에서 만나는 부처님은 전혀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성지순례는 한 인간으로 살아간 위대한 스승인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입니다.”

이어서 각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상하이, 천진, 시드니, 브리즈번, 멜버른, 뒤셀도르프, 런던, 더블린, 마닐라, 도쿄, LA, 오렌지카운티, 뉴저지, 오스틴, 워싱턴, 하와이에서 오신 29명이 각자 정토법당에서 자신이 맡은 소임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분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프로그램을 만드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스님은 처음으로 인도 성지순례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너무 그리워했기 때문에 캘커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었어요. 그러고 나서 공항 밖으로 나갔는데 버스에는 사람이 앉지도 못할 정도였고, 숙소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그때는 전부 배낭여행식으로 다녔어요.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원래 계획은 숙소, 식사, 교통비까지 다 합해서 하루에 1인당 10달러만 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달러로 세 끼 식사를 먹었어요. 지금도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으면 1달러로 세 끼를 먹을 수 있습니다. 30년 전에는 3루피 주고 식사를 했는데, 오늘 낮에 35루피를 주고 사 먹었어요. 그래도 한국 돈으로 6백 원 정도지만 그만큼 물가가 많이 올랐어요.

그렇게 절약하면서 순례를 다녔습니다. 오늘도 답사한다고 차를 타지 않고 13km를 걸어서 다녔어요. 걸으면 건강에도 좋습니다. 부처님은 평생 걸어 다니셨어요. 말도 못 타고 다니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자는 짐승을 괴롭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계율에 어긋나는 행위예요.”

내일부터 성지순례가 시작되기 때문에 짧게 대화를 마쳤습니다. 해외 참가자들은 인근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아직 환전을 못해서 인도 루피가 없는 사람 있어요? 제가 드릴게요.”

릭샤를 타려면 인도 화폐가 필요합니다. 스님의 세심한 배려에 참가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돌아가고 스님은 방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요청한 업무를 본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31차 성지순례 첫째 날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83

0/200

이은여

스님의 이런 세심한 배려가 있는줄 몰랐습니다
새삼 감사드립니다
지금 비록 집이지만 작년 오늘 인도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2021-01-03 06:59:56

이수희

작년 이맘때
성지순례를 다녀온 3호차 3조 이수희 입니다.
우리 조의 몇명이 이렇게 일년전 오늘을 돌아보며 스님의 하루를 다시 읽어보자고 제안을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되돌아봐도 스님의 세심함에 친절하고 자상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다시 16박 17일의 일정을 따라갑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1-01-03 04:40:24

최연주

저도 성지순례에 다녀와보고싶습니다. 글들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6-06 12:20:04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