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01.03 제31차 성지순례 1일째(A팀 입재식)
“내면의 변화를 보는 여행”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사르나트 주변 빈민촌에 담요를 지급하고, 31차 성지순례 A팀 입재식을 했습니다.

새벽 5시, 각자 방에서 108배와 명상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오늘 성지순례 일정을 점검했습니다. 오후에 A팀 2백여 명이 바라나시에 도착합니다. 스님은 저녁에 입재식을 하기 전까지 어제 사르나트 역에서 보았던 빈민촌에 담요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미리 빈민촌을 둘러보고 가구마다 담요와 교환할 쿠폰을 지급했습니다. 총 23가구가 담벼락 아래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었습니다.

인도JTS 활동가가 반나절 동안 시장에서 담요를 고르고 미타이(mithai)를 사왔습니다. 미타이는 달달한 과자인데 인도인들은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꼭 미타이를 먹습니다. 새해를 맞은 지 며칠 안 되었기 때문에 미타이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집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 나왔습니다.

어제 하루 일찍 도착했던 해외 참가자들이 지급을 도왔습니다. 스님은 먼저 담요를 지급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담요를 나눠주는 이유는 성지 주변에 이 분들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에요.

제가 처음 인도에 왔을 때 부처님이 깨달으신 부다가야에는 외국인들이 서로 와서 절을 짓고 성지 순례하고 기도하는데 정작 그 동네에 사는 인도 사람은 불교신자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어느 날 물어봤어요. ‘외국인들까지 불교가 좋다고 당신의 나라까지 찾아오는데, 당신들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이곳에 살면서 왜 불교를 공부 안 하느냐’ 했더니 ‘불교가 뭐가 좋은데요?’라고 오히려 되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불교는 지혜와 자비라고 설명을 하면서 자비란 ‘어려운 사람들을 내 몸같이 생각하고 돕는 것이다’라고 했더니, 대뜸 자기들은 그런 사람을 못 봤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몇 십 년 째 장사하면서 세계 각국의 불교인들을 다 봤지만, 당신이 말하는 그런 자비심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게 무슨 소리냐’ 고 했더니, 그 외국인들은 여기 길거리에 사람이 굶어 죽든지,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든지, 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여기 와서 종교 행사만 하지, 우리를 위해서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제가 그 얘기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보드가야 근교에는 학교라도 지었는데, 여기는 학교도 못 지었으니까 이렇게라도 도와주려고 해요. 여러분이 먼저 왔으니까 같이 나눠 주겠습니다.”

스님은 설명을 마치고 삼귀의를 한 후 지급을 시작했습니다. 성지순례 참가자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지급을 도왔습니다.

빈민촌 사람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쿠폰을 내고 담요와 미타이를 받아갔습니다. 쿠폰을 미리 지급하는 이유는 서로 받을려고 뒤엉키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주거자를 조사해서 질서있게 나누어주기 위함입니다.

담요와 미타이를 들고 흙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미타이를 먹고 담요를 둘렀습니다.

한편, 바라나시 공항에는 성지순례객 이백여 명이 두 대의 비행기로 나누어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공항을 나오자 먼저 와 있던 스텝들이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두 군데의 숙소로 나누어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옮겨놓고 저녁 6시부터는 만찬과 더불어 성지순례 입재식이 열렸습니다.

원래 성지순례 기간 동안 조별로 직접 밥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오늘과 마지막 날만 예외로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인도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 참가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한국에서 온 참가자들을 소개했습니다. A팀은 강원경기동부, 경남, 광주전라, 대구경북지부와 해외에서 참가한 분들이었습니다.

이어서 이번 성지순례를 안내하는 법사님들과 실무를 맡은 스텝들과 인도인 스텝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버스 운전기사들을 스님이 직접 소개해 주었습니다. 순례객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운전기사들을 맞이했습니다.

“이 분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분들에게 우리의 목숨이 달려있어요. 인도는 워낙 교통이 복잡하고 위험한데 이분들이 안전하게 잘 운전해주실 겁니다. 숙소나 다른 건 못해도 차는 괜찮을 거예요. 한국에 비하면 못하지만 인도에서는 아주 좋은 차예요. 차만 좋아요.”(모두 웃음)

운전기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건네자 순례객들은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소개를 마치고 스님께 입재법문을 청해들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여행자가 아닌 순례자로서 일어나는 마음을 살펴 자기를 알아가는 순례를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성지순례 기간 동안 우리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자입니다. 지금도 힌두교는 순례자들이 많이 있는데, 인도에서 순례자는 깡통 하나 들고 가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반드시 걸어서 순례를 합니다. 우리도 걸어서 순례를 하면 제일 좋은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여행을 할 수도 없어서 그 중간쯤 되는 활동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잠은 순례자 숙소에서 자고, 밥은 직접 해먹고, 이동은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그 누구도 특혜를 받거나 예외인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다 같은 숙소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 한 절에서 똑같이 지은 건물이 아니고 나라마다 건물을 제각기 지어놨기 때문에 같은 곳에 묵어도 숙소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니 그런 것으로 분별심을 내지 않도록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저 사람이 더 좋은 방에 잔다’ 이런 생각을 하기 보다는 항상 ‘내 방이 나무 밑에서 자는 것보다는 좋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해요. 남이 어디서 자든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내 방이 부처님이 주무셨던 나무 밑보다는 낫구나.’ (모두 웃음)

이렇게 생각하고 다니시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면의 변화를 보는 여행

제가 아무리 ‘순례자의 여행’이라고 얘기해도, 며칠 같이 살다 보면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길 소지가 있어요. 날씨가 추워도 힘들고, 먼지가 많이 끼었거나 날이 따뜻해서 낮에 땀이 많이 났는데도 저녁에 제대로 씻을 수 없으면 성질머리가 나옵니다. (모두 웃음)

잠시 한두 시간은 참을 수 있지만,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며칠 같이 살면 성질머리가 다 나와요. 자기도 모르게 입이 자꾸 나옵니다. 경상도 말로 하면 주둥이가 자꾸 길어집니다. 돼지를 닮아가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모두 웃음)

바깥 환경을 보는 것만 여행이 아니라 그런 자기 내면의 변화를 보는 것도 하나의 큰 구경거리입니다.

성지순례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바깥의 여러 환경을 보는 성지순례가 있고, 그 경계 따라 일어나는 자기 마음의 변화를 보는 성지순례가 있습니다. 마음의 변화를 늘 읽고 있으면, 즉 내면을 살피는 성지순례에 충실하면 결과적으로 전체 순례가 행복한 순례가 됩니다. 마음의 변화를 놓치고 시비를 하기 시작하면 끝날 때쯤 되어 후회가 막심합니다.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고생하고... 내가 미쳤나!’

이러면서 자기가 한 결정을 후회합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웃지만 내일부터 한 번 보세요. 자기는 안 그럴 거 같죠? ‘나는 절대 안 그럴 거다’라고 생각이 들지만, 3일만 지나면 본색이 다 드러날 거예요. (모두 웃음)

자기중심적인 생활 방식을 내려놓는 연습

순례 기간에는 함께 생활하고 뭐든지 서로 협력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회사에서는 퇴근하고 나면 생활은 같이 안 하잖아요. 그런데 성지순례는 잠도 같이 자고, 하루 종일 차도 같이 타고, 밥도 같이 먹고, 똥오줌도 가급적 시간을 맞춰 같이 누기 때문에 생활이 다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자기만 생각하는 얌체들은 표가 나게 됩니다. 공용물건 들 때 들지도 않고, 밥 먹을 때 숟가락만 들고 오는 사람들은 밉상이에요. 먹고 입고 자는 것을 누가 서비스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공동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항상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방 안에서 생활할 때도 자기중심으로만 행동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좀 배려해주셔야 해요. 한 방에 혼자 자거나 둘이 자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자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서 너무 오래 있거나 물을 혼자서 너무 많이 쓰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남들이 잘 때 혼자 일어나서 샤워하다가 다른 사람의 잠을 깨우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러니 이런 것들을 서로 조율해 가면서 생활하는 데 서로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시면 좋겠어요.

순례라고 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직접 가서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런 자기중심적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을 내려놓고 대중과 맞춰나가되 그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진정한 순례입니다. 부처님의 성지에 자기 혼자 먼저 가서 기도하고 사진 찍는 게 순례가 아니에요.

이런 점을 꼭 유념하셔서 진정한 순례가 될 수 있도록 서로 협력을 해나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은 이어서 스님은 인도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설명을 잘 알아들을 수 있다며 인도의 자연환경에 대해 지도를 짚어 가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인도의 자연환경

“우리가 도착한 인도 대륙은 사실상 하나의 나라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인도’라는 하나의 나라가 되어 있을 뿐이지, 인종도 다르고 민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릅니다. 인도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그냥 인도라고 부를 뿐이지, 과거 역사 속에서도 인도 대륙이 하나의 나라가 된 적은 아주 드뭅니다. 유럽, 동아시아, 중동 등 세계에 여러 문화권이 있듯이 인도 대륙도 하나의 큰 문화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행하는 장소도 현재 인도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지, 이것이 인도의 전부가 아닙니다. 다만 여러 문화권 중 이 인도 문화권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자라고 출가하시고 수행하시고 성도하시고 교화하시고 열반하셨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동아시아에 빗대어 얘기한다면 ‘태어나기는 고구려에서 태어나고 활동은 당나라에서 하고 돌아가시기는 몽골에서 돌아가셨다’ 이런 식입니다. 인도 대륙에서 활동하셨지, 하나의 나라에서 활동하셨다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인도는 고래로부터 문화가 발달했던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자연 환경을 먼저 보겠습니다. 인도 문명권과 중국 문명권 사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8,000m 이상의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져 있어요. 이처럼 인도 대륙의 북쪽에는 세계 최고로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있습니다.

인도의 가장 북쪽은 카슈미르(Casimir, 카시미르) 지역입니다.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파미르 고원이 있고, 북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으로 막혀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흘러내려와서 벵골 만 쪽으로 빠지는 강이 인도 말로 강가(Gaṅgā) 강, 영어로는 갠지스(Ganges) 강입니다. 인도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으니까 ‘갠지스’가 된 거예요. 반면에 서쪽으로 흘러서 아라비아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은 인더스(Indus) 강입니다. 인도를 대표하는 강은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 대륙의 가운데에는 데칸(Deccan) 고원이 있어요. 해발 600m 정도 되는 고원지대입니다. 평면도로 보면 히말라야 산맥에서는 아주 높다가, 중간에 해발 100m 정도까지 팍 낮아졌다가, 다시 데칸 고원에 이르면 해발 600m 정도로 높아지는 지형을 갖고 있습니다.”

식당의 인도인 직원들도 알아들을 순 없지만 신기했는지 스님의 설명을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고대 인더스문명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도 역사도 설명해주었습니다.

인도의 역사

“부처님은 언제 출현하셨을까요? 브라만 문명은 힌두스탄 평원, 즉 갠지스 강 유역에서 일어난 문명인데, 이 문명의 말기인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에 부처님이 출현했습니다. 그 당시 인도에는 크고 작은 300여 개의 도시국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큰 나라가 16개 있었는데 이것을 ‘16대국’이라고 해요. 그 16대국 중에 G2에 해당하는 초강대국이 있었는데, 그것이 마가다(Magadha, 摩竭陀)국과 코살라(Kosala)국입니다.

이런 브라만 문명의 쇠퇴기에 마가다국의 후예들이 나라를 세운 것이 마우리아(Maurya) 왕조입니다. 마우리아 왕조의 3대 왕인 아쇼카 왕(Ashoka Maurya, 阿育王, 아소카 왕) 때 전 인도 대륙을 통일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 인도 대륙의 첫 번째 통일입니다.

중국 역사에 비교하자면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 같은 때가 바로 인도에 부처님이 출현하신 시대입니다. 공자와 부처님의 출현 시기도 비슷합니다. 그리고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인도 대륙을 통일한 아쇼카 왕과 그 시기가 비슷합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것과 아쇼카 왕이 천하를 통일한 것은 사회 역사적 조건도 비슷하고, 시기도 비슷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로마 문명하고도 그 시기가 비슷합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신 시기와 비슷한 것이 그리스 문명 시기이고,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하고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것보다 조금 늦은 것이 로마 제국이 건설되는 시기입니다.

당시 세계에는 동아시아, 인도, 지중해에 세계 3대 문명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중도(中道) 사상과 공자가 말한 중용(中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도 내용상 상당히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를 거쳐서 아쇼카 왕이 전인도를 통일했기에 인도에서는 아쇼카 왕이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불렸으며, 오늘날 인도의 뿌리로 숭상되고 있습니다. 아쇼카 왕이 이룬 왕조가 마우리아 왕조입니다. 마가다국이 망하고 인도는 다시 분열됐습니다. 그러다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해당하는 북쪽에서 다시 일단의 민족이 남하를 해서 내려옵니다. 이것은 마치 중국 대륙에 몽골이나 만주족이 들어선 과정과 비슷합니다. 이 일단의 민족이 내려와서 인도의 중북부를 통일한 것이 쿠샨(Kushan) 왕조입니다. 쿠샨 왕조가 세워진 시기가 AD 1세기 전후입니다. 쿠샨 왕조의 3대 왕인 카니시카 왕(Kanishka, 迦貳色迦, 카니슈카 왕) 때 인도가 다시 대부분 통일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대승불교가 발달하게 됩니다. 마우리아 왕조 때 부처님의 법이 전 세계로 확대되었고, 쿠샨 왕조 때 간다라(Gandhara) 예술이 발달했습니다.

쿠샨 왕조가 멸망하고 다시 인도 대륙에서 일어난 굽타(Gupta) 왕조가 인도 대륙의 상당 부분을 통일합니다. 굽타 왕조가 번성한 시기는 AD 5세기입니다. 이때가 불교문화가 최고로 발전한 시기입니다. 이때는 불교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힌두교도 다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인도의 박물관에 가서 보는 유적은 대부분 굽타 왕조 시대 것입니다. 내일 박물관에 가서 보는 사르나트의 유적들도 대부분 굽타 시대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아무 흔적이 남지 않았고, 아쇼카 왕 때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기념탑을 쌓았습니다. 카니시카 왕 때 그 규모를 좀 더 키웠고, 그러다가 지금의 규모로 완전히 대형화된 것은 굽타 시대 때입니다. 그 뒤로는 불교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불사(佛事)가 확장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란다(Nalanda, 那爛陀) 대학 등 지금 남아있는 유물의 대부분은 굽타 시기의 것입니다.

굽타 왕조가 멸망한 이후로는 인도가 분열되어서 한 번도 통일된 적이 없습니다. 계속 분열되어 내려오다가 8세기, 9세기에 이르면 무슬림이 침입해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13세기에 들어와서 무슬림의 본격적인 침공으로 불교는 인도 대륙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들어와서 인도 대륙은 무슬림 왕국으로 통일이 됩니다. 그것이 무굴(Mughal, 무갈) 제국입니다. 무굴 제국의 마지막 무렵에 영국 식민지를 겪으면서 독립투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서 오늘의 인디아가 된 겁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분쟁으로 인해 파키스탄과 인도가 분리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벵골(Bengal) 지역에도 무슬림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나눠서 파키스탄과 인도가 분리됐습니다. 동파키스탄은 종족 상 서파키스탄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동파키스탄은 벵골인들이고 서파키스탄은 펀잡인들이에요. 그래서 1970년대 들어와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인도를 중심으로 해서 주위에 있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가 있어요. 앞으로 인도 대륙에 남아시아 공동체가 건설된다면 이들 나라가 포함될 겁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종교적인 갈등 때문에 우리의 남북관계만큼이나 극적인 협력과 갈등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파키스탄령과 인도령으로 분단되어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심각합니다. 지배계급은 인구의 20% 정도 되는데 힌두교도이고, 피지배계급은 인구 비율로는 80% 정도인데 전부 무슬림이에요. 그래서 이 지역이 인도로 속할 거냐, 파키스탄으로 속할 거냐를 놓고 분쟁이 치열했습니다. 처음에는 지주들, 즉 지배계급이 대부분 힌두교이다 보니까 인도로 편재가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다수의 무슬림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3분의 1은 현재 파키스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같은 카슈미르인데 일종의 휴전선으로 나뉘어서 3분의 1은 파키스탄에, 3분의 2는 인도에 소속되어서 잠무 카슈미르(Jammu and Kashmir) 주를 이루고 있어요. 지금도 인도에 소속된 카슈미르 지역에서는 무슬림들이 계속 게릴라 식으로 저항을 합니다. 그걸 파키스탄이 돕는다고 해서 인도가 파키스탄을 폭격하고, 파키스탄은 맞대응을 하고요. 그래서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잠무 카슈미르 지역입니다. 카슈미르 지역 자체가 현재 분단이 돼 있습니다.

인도의 동쪽은 중국과의 분쟁 지역입니다. 인도 사람은 인도 땅이라고 하지만 현재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어요. 반대로 어떤 지역은 중국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데 현재 인도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아루나찰프라데시(Arunachal Pradesh)주도 최근에 중국과 무력 충돌이 났던 곳입니다. 그래서 인도는 중국과 앙숙입니다. 인도는 중국을 경쟁상대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 포위 전략에 지금 인도를 끌어들이고 있죠.”

스님은 부처님의 일생을 다시 한 번 요약정리하고 어떤 순서로 순례를 하는지도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인도 곳곳을 우리가 이번 순례 기간 동안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세세한 것은 현장에 가서 그 때의 정황을 그대로 보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2,600여 년이 지났으니까 옛날의 흔적이 없을 것 같지만, 아직 인도가 개발이 덜 되었기 때문에 시골에 가면 2천 년 전이 상상되는 모습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도 저희 세대가 어릴 때는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 조선 시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시골에 가도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인도도 앞으로 50년이나 100년만 지나면 아마 옛날 흔적을 완전히 찾을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나 인도는 아직도 시골에 가면 2천 년 혹은 3천 년 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시골에는 나무로 만든 수레바퀴가 다니고 있고, 타작을 할 때 손으로 때리고 훑어서 하는 방식이 남아 있어요. 그러나 제가 처음 인도에 오고 나서 최근 30년 사이에도 굉장히 많이 변해서, 옛날 모습이 빠르게 없어지고 있어요. 전기가 들어오고 기계가 도입된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옛날 흔적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날이니까 피곤하죠?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래도 옛날보다는 좀 짧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두 웃음)

입재법문을 마치고 순례객들은 나누기를 한 후 내일 먹을 밥을 짓고 조별로 물품을 나누었습니다. 법사님들과 차장, 조장님들은 늦게까지 내일 순례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5시에 기상해서 각자 숙소에서 기도를 한 후 6시 30분에 사르나트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설법하신 '사르나트'에서 순례객들 모두가 수계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강가강으로 가서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인도인들의 문화를 느껴보는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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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주

글과 사진으로 법문과 그때의 일들을 공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6-06 13:03:22

김은경

자기중심적인 생활 방식을 내려놓는 연습, 내면의 변화를 지켜보는 여행
부처님의 발자취를따라가는 순례자

2020-04-21 04:57:29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20-02-24 23: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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