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0.21 경주남산순례
주간반 불교대학 학생들과의 경주남산순례

짙은 새벽 안개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제 밤, 원고 점검을 하고 오랜만에 일찍 눈을 붙인 스님은 새벽 2시에 잠이 깼습니다. 명상을 하고 4시가 되어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쳤는데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습니다. 안개에 뒤덮인 새벽은 인도에서 자주 겪는 풍경입니다. 한국도 인도처럼 오전과 오후의 기온차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주변이 밝아지기를 기다려 점검 요청을 받은 원고를 살펴보고, 6시 20분이 좀 넘어 주변이 밝아지고 안개가 좀 걷히자 서둘러 울력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었습니다. 새벽안개에 나무며 풀, 꽃과 잎들이 흠뻑 젖어 있었지만 스님은 어제 캔 고구마 밭의 흙을 갈아엎고 바짝 마른 소똥을 섞었습니다. 배추밭 옆 조그만 공간에는 적상추 씨앗을 뿌렸습니다. 앞 텃밭의 고구마를 심었던 자리에는 마늘을 심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뒤 텃밭의 고구마 자리에는 남은 고소씨앗을 뿌렸습니다. 주로 그늘진 곳이나 자투리땅을 이용해 고소를 심습니다.

공구창고 앞 감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어서 공구를 가지러 갈 때 마다 눈에 들어옵니다. 하루가 다르게 다홍색이 투명해지는 감 중에 다 익은 것은 따 두었습니다. 잘 매달려 있다가 어느 틈에 툭 떨어져 밟혀 못 먹게 되거나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 상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서 미리 따 두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심은 배추와 무의 누렇게 된 겉잎도 땄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8시가 다 되었습니다. 가을 불교 대학 경주 남산 순례의 오후 일정에 맞추려면 30분 후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어제 웃밭 배추들이 속부터 누렇게 물러지는 ‘배추무름병’에 걸린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번에는 농약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유기농, 무농약으로 재배해 왔는데 가을비가 많이 내려 속이 다 썩어가기 때문에 약을 조금 쳐야겠습니다. 하지만 약도 사고 약 치기 좋은 햇볕이 쨍할 때를 기다리기에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스님은 지혜명 법우에게 장에서 약을 사다가 뿌리도록 이야기 하고 작업복에서 법복으로 갈아입고 용장골로 출발하였습니다.

용장골, 삼릉골, 포석골, 부처골, 봉화골의 다섯 코스로 나누어 각 법사님들이 안내를 하며 경주남산을 순례한 다음, 통일암 숲 속 너른마당에서 함께 모여 점심 공양을 하고 즉문즉설 모이는 일정입니다.

9시가 못 되어 용장골 입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걸으면 딱 좋은 폭의 길이 이어져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물소리를 들으며 걸으니 발걸음도 가벼워집니다.

금오산 방향으로 1시간가량 걸어 이영재를 넘으니 통일암으로 내려가는 숲속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가장 먼저 도착하여 점심공양을 하였습니다. 11시 30분부터 순례를 마친 불교대학생들이 속속 도착하였습니다.

스님은 입구에 미리 나가 도착하는 불교대학생들을 한명 한명 악수하며 맞이하였습니다.

숲속 너른 터는 작년과 달리 대나무숲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거사님들의 노고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작년에는 미처 느낄 수 없었던 앞쪽 풍경이 눈에 쏙~ 들어와서 색달랐습니다. 그런 반면 항상 솔 숲 안에서의 포근한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오늘은 가을 하늘 아래 시원한 풍경이 주는 경쾌함을 택해봅니다.

일찍 남산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은 많은 분들이 하산 중에 있어 숲속 너른터는 약간의 여유로움이 있는데, 그와 반대로 안쪽에 자리한 의료지원부스는 조금 분주한 모습입니다. 오랜만에 오른 산에서 땀을 흘리다 시원한 바람에 쉬이 한기가 들어 잠시 의료부스 침상에서 잠시 쉬고 계신 분, 나무를 잡는 와중에 작은 생채기를 입은 분. 올해도 이렇게 의료부스를 지키는 구미 김진석 님이 오늘따라 더욱 든든하게 보입니다.

그러는 사이 하산하는 대중을 스님이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계십니다. 입학할 때부터 영상으로만 보아온 스님을 눈앞에서 맞이한 대중들은 산행하면서 느꼈던 피곤함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고, 만면에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그렇게 피곤함이 날아가니, 상쾌한 솔숲 아래 도반들과 맞는 점심시간은 더없이 즐거운 시간입니다. 이 즐거움을 더 즐겁게 한 건 스님이 진행하시는 도반들의 노래를 듣는 시간입니다. 올해는 밀양아리랑을 시작으로 누구나 어깨를 덜썩이게 하는 전통가요, 듀엣으로 틈틈이 고음불가를 섞어가며 춤을 췄습니다. 매년 정원을 늘려가는 정토불교대학 학생들답게 다양한 개성을 뿜어내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베트남에서도 먼 길 마다않고, 한명의 학생이 참여하였습니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스님은 경주 남산은 수많은 불교문화재가 야외에 있어,그야말로 자연박물관으로써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하였으며,이를 다 둘러보려면 워낙 많아 현재 5개 코스로 한나절 코스씩 나눠서 진행되고 있다고 짤막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종교로써의 불교와 진리로써의 불교의 차이를 찬찬이 설명해주시면서 불교대학 수업 중의 내용을 되짚는 시간도 함께 하였습니다. 진리로써의 불교는 수행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행복은 결코 마음이 흥분되어 들뜬 상태가 아니라, 괴롭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정토불교대학에서 배우는 것이니 이왕 마음 먹은 것이니 1년은 다녀보고, 다니는 동안은 교리를 외우기보다, 이치를 체득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업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라며 대중의 초발심을 되짚어 주었습니다.

오늘 불교대학 학생들과 같이 한 즉문즉설에서는 6명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너무 힘듭니다. 그리고 개미처럼 벌고 개미처럼 저축하던 남편이 주식을 하는데 주식하는 이들에게 충고를 부탁합니다.”
“예비 엄마인데 최근 어금니아빠 뉴스도 나오고 평소에 많이 불안합니다. 태교에 영향이 가는데 걱정입니다.”
“아이가 핸드폰에 빠져 살아서 고민입니다.”

스님의 명쾌한 설명에 대중들은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스님도 활짝 웃으면서 대중들에게 인사를 한 후 다함께 줄을 서서 염불사로 내려왔습니다.

염불사 앞에는 두 개의 탑이 우뚝 솟아 있는데, 두 탑 사이에 800여 명의 대중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다섯 개의 코스로 흩어져서 경주 남산 순례를 정성껏 안내해 준 법사님들과 통일암 주위를 법회 장소로 사용할 수 있게 깨끗이 정비해준 봉사자들이 소개되자 큰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홍서원으로 회향식을 한 후 탑 앞에서 각 지부별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따뜻하게 비춰서 그런지 대중들의 표정도 더욱 밝게 빛났습니다.

스님은 남산순례가 끝나자마자 초등학교 동기들의 저녁 모임에 꼭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잠시 들렀다가 법사단 회의에 참석한 후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내일은 전국에서 모인 정토불교대학 야간반 입학생들과 경주 남산 순례를 안내 할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윤용희(글) 임혜진(사진)

전체댓글 9

0/200

정지나

작년에 경주가 아련히 떠오르네요 부럽습니다~~~~
그리고 스승님 감사합니다^^

2017-10-26 17:53:38

큰바다

"진리로써의 불교는 수행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행복은 결코 마음이 흥분되어 들뜬 상태가 아니라, 괴롭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정토불교대학에서 배우는 것이니 이왕 마음 먹은 것이니 1년은 다녀보고, 다니는 동안은 교리를 외우기보다, 이치를 체득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업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라며 대중의 초발심을 되짚어 주었습니다.
늘 고구 정령이 해탈과 열반의 길을 안내해주시는 스승님. 감사합니다.

2017-10-26 17:23:58

박노화

스님감사합니다 좋은일 많이하시는 스님 존경 합니다 항상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모든게덕분입니다 깨침의 말씀에힘이 됨니다 ~

2017-10-25 0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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