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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16년 유럽 북미주 순회 강연의 마지막 순서로 캐나다 밴쿠버(Vancouver)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지난 9월 5일 독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캐나다 5개국에서 하루에 1강씩 21개 도시에서 강연이 열렸는데요. 밴쿠버에서 대장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어제 미국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어 밴쿠버에 도착한 스님은 정토불교대학 수계식과 졸업식을 마치고 밴쿠버정토회 강은희님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새벽 5시에 집안 거실에서 예불과 기도를 한 후, 정성껏 차린 아침식사를 감사히 먹고 숙소를 나왔습니다.
▲ 밴쿠버정토회 강은희님의 집에서 새벽 예불
밴쿠버 주위는 일년 내내 눈이 덮혀 있는 설산으로 유명합니다. 스님은 그동안 밴쿠버를 수 차례 방문했지만 강연만 하고 돌아갔지 한 번도 설산 구경을 해보지 못했는데요. 오늘은 캐나다를 처음 방문한 수행팀을 배려해서 스님도 처음으로 설산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 숙소와 음식을 제공해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스님
설산 안내를 해주기로 한 최영환님은 1인당 60달러를 내고 곤도라를 타는 코스를 제안했는데, 스님은 “한국에서도 케이블카 타고 산에 오르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님이 60달러 씩이나 내고 산에 올라가야 하겠느냐”라며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산 밑에 가서 설산 구경만 하고 오는 것으로 하고 출발했습니다.
▲ 연어가 많기로 유명한 프레이저 강
밴쿠버 도심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125km 정도를 달리니 휘슬러(Whistler)라는 마을이 나왔습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때 각종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는데요. 특히 스키장인 휘슬러-블랙콤이 있기 때문에 매년 2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휘슬러 마을 앞에 위치한 알타 호수(Alta Lake)에 잠시 내려 주위 경관을 둘러보았습니다. 호수 위에 설산이 영롱하게 비치는 모습이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아직은 여름이라 눈이 산 정상 부위에만 하얗게 쌓여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산 전체가 하얗게 변한다고 합니다. 휘슬러산(whistler mountain)은 높이가 2,284m이고, 블랙콤산(blackcomb mountain)은 2,436m입니다.
▲ 알타 호수(Alta Lake)
호수 주위에는 단풍나무가 빨갛게 불물들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가을이 왔네!”라고 하며 설산을 본 것보다 더 반가워 했습니다.
휘슬러 마을에서 산속 깊이 더 들어가니 인디언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의 집들이 빈민촌의 판자집처럼 허름했습니다. 인디언들은 현재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며 살고 있는데, 지원금에만 의존해 살다보니 자립성을 잃어버리고 집에서 술이나 약물에 취하여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늘은 볼 수 없었지만, 거리로 나온 인디언들이 눈에 초점을 잃고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을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초점을 잃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인디언.
인디언 마을을 한바퀴 돈 후 휘슬러 마을 앞에 위치한 또다른 호수인 로스트 호수(Lost lake)에 내렸습니다. 호수 가에서 스님은 2016년 유럽 북미주 순회 강연을 마치는 소감과 인사 말씀을 SNS 구독자들을 위해 해주었습니다.
[영상 보기] “유럽 북미주 순회 강연을 마치며”
영상 촬영을 마치고 다시 밴쿠버 도심을 향해 내려오는 길에는 그림 같은 설산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 일년 내내 눈이 덮혀 있는 탄탈루스산(2,608m)과 세라투르산(2,321m)
잠시 차에서 내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설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설산 안내와 운전을 해준 밴쿠버정토회 최영환님과 박은선 총무님, 시애틀정토회 주상휴 총무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왼쪽부터) 최영환님, 주상휴님, 박은선님
저녁 7시부터는 밴쿠버 도심에 위치한 크로아시안 센터(Croatian centre)에서 해외 즉문즉설 21번째 강연이자 지난 9월 5일 시작한 유럽 북미주 순회 강연의 마지막 강연이 열렸습니다.
▲ 크로아시안센터(Croatian centre)
4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먼 길을 달려온 스님에 대한 열렬한 환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밴쿠버는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남서부에 있는 도시로 캐나다에서 토론토, 몬트리올에 이어서 3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한국 교민들은 약 6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님은 바쁜 와중에도 강연에 참석해 준 교민들에게 반가운 마음을 표현한 후 곧바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북한 두만강변의 홍수 피해와 이상 기후 현상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북한에는 홍수 피해가 아주 크게 났고, 남한에는 지진이 났습니다. 백두산 아래쪽에 지진이 나고 남한에 홍수가 났다 하면 이해가 될 텐데 오히려 북쪽에, 그것도 100년 만에 가장 큰 홍수가 나서 세계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두만강변에 사는 조선족분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정말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이상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기후 변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요. 옛날에도 더 춥거나 더 덥거나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의 일부였다면 지금의 기후변화는 인위적인 파괴로 일어난 현상입니다. 우리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온실가스 효과 때문에 지구 기온이 올랐고, 그래서 이상기후변화가 일어난다고 설명을 합니다.
인류 문명이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오늘날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서 한 행동이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같아요. 늘 쓰레기장을 뒤지던 쥐가 접시에 놓인 음식을 보고 ‘웬 떡이냐’ 하고 먹었는데 그 안에 쥐약이 들어 있어서 결국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다 죽는 것과 같습니다.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가장 큰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이것을 ‘어리석음’이라고 해요.
인생살이라는 것은 머리로 배우는 지식과는 달라서 ‘이것이 정답이다’ 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어리석으면 삶이 괴로워지고, 조금 지혜로워지면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문제로 서로 대화하다 보면 무겁던 마음이 좀 가벼워지고, 어둡던 마음이 좀 밝아집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모르게 지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지식적인 앎이 아닌 통찰력이 조금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께 해주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스스로 지혜가 생겨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가끔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맞는 대답만 하세요?’라고 물어요. 그건 여러분들이 그 이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꾸 그렇게 가면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신비주의는 무지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신비주의를 뛰어넘는 것이 통찰력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어떤 신비한 것이 아니고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에요. 법륜 스님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상식에 기초해서 꼬인 인생 문제를 풀어나가는 거에요. 자, 그럼 오늘도 대화를 나눠봅시다.”
스님은 언제나 상식에 기초해서 답변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많이 남았습니다.
이어서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12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시아버지가 여자를 잘못 만나 재산을 탕진할 것이 걱정된다는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질문자가 편안해질 수 있는지 강조했습니다.
“시어머니가 1년 반 전에 돌아가신 뒤 혼자 사시는 시아버지께서 문화센터에서 어떤 여자분과 알게 되었어요. 이 분은 아버님께 굉장히 적극적으로 잘 하기는 하지만 좀 안 좋은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당연히 ‘그건 꽃뱀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님이 당시에는 ‘만나지 않겠다’ 라고 말씀하셔서 당연히 이해를 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계속 만나셨고, 이제는 정이 들어서 헤어질 수 없게 되셨대요. 3개월 전, 당신이 사시던 집을 전세로 내어놓고 그 전세금으로 아파트를 이 여자 명의로 사셨고, 외제차도 사주셨습니다. 저희는 그걸 알고 나서 말리려고 했지만 아버님을 만나러 가면 이 여자 분이 자꾸 방해를 해서 도무지 만날 수가 없어서 매일 아버님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무슨 사정인지 잘 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냥 놔두세요. 혼자 사시는 아버님이 새로운 여자와 함께 살아보겠다는데 왜 본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에 굳이 관여를 해요?”
“관여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잠시 쉬러 여기에 온 거예요.”
“쉬는 게 아니라 그만두세요. 쉰다는 건 또 다시 하겠다는 이야기잖아요.”(모두 웃음)
“그만 둘 수가 없어요. 그 동안도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지만 이번에 시아버지가 치매 진단까지 받으셨거든요.”
“아버님이 앞으로 얼마를 사시든, 재산이 얼마든 간에 그 재산을 여자에게 다 주고서라도 젊은 여자와 한번 살아보겠다는데 왜 그걸 가지고 자식들이 간섭을 해요? 자기 재산 가지고 자기가 살겠다는 거잖아요. 재산을 날릴까 봐 자식들이 겁내는 것은 그 재산을 나중에 자기들이 가질려는 생각이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아버님은 자기 돈 가지고 자기가 쓰시는 거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외제차를 뽑든 아파트를 사든 신경을 딱 끄고 자식들은 자기 앞가림이나 잘 하고 살면 됩니다. 나중에 아버님이 그 여자에게 다 털리고 알몸이 되어 쫓겨나면 그 때 가서 모시면 돼요. 그렇게 되면 모실 기회가 자연스럽게 옵니다. 아직까지는 그 여자가 모시겠다는데도 서로 모셔오겠다며 경쟁을 해서야 되겠어요? 질문자가 아버님과 같이 살아 줄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질문자와 가족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그 여자와 사신 지 아직 얼마 안 되었는데, 얼마 전 아들을 만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내가 병이 들면 이 여자가 나를 안 돌봐줄 테니 너에게 가겠다’라고요.”
“그러면 ‘그 여자와 사시다가 재산 다 없어지고 병 드시면 그 때 오십시오. 돌봐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돼요. 간단한 걸 두고 뭘 그리 고민해요? 아버지는 자식이 핏덩이일 때부터 다 키워줬는데 그런 아버지를 말년에 잠시 돌봐드리는 걸 왜 못해요? 어머님 살아계실 때까지는 다른 여자한테 한눈 팔지 않고 착실하게 사셨잖아요.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혼자가 됐으니까 다른 여자를 원하는 건데 그게 왜 문제가 돼요?
부부 중 여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자는 더 이상 그 여자의 남편이 아니에요. 질문자도 남편과 사별하거나 헤어지면 더 이상 그 남자의 아내가 아니에요. 결혼한 부부가 함께 있으면 아내와 남편이지만, 남편이 없으면 아내가 아니라 그냥 여자이고, 아내가 없으면 남편이 아니라 그냥 남자일 뿐입니다.
그러니 아버님이 누구를 만나든 그건 그 분의 자유에 속해요.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 말을 안 듣고 여기 캐나다까지 와서 마음대로 살잖아요. 하물며 부모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해서 바꾸려 드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혹시 아버님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고 물어도 ‘아이고, 저희가 뭘 알겠습니까? 아버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해야 해요.
그리고 ‘그 여자 분과 같이 사시는 동안에는 저희가 돈을 지원하거나 모실 생각은 없습니다. 나중에 그 여자와 헤어지고 오시면 그 때는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 때 가서 아파트나 원룸 하나를 전세 내어 드리면 되지 그렇게 힘들어할 일이 아니에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질문자가 편하다는 거예요. 늙어서 바람나면 말리기 힘들어요.”(청중 웃음)
“네,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는데 워낙 나쁘게 행동하는 여자라서요.”
“아니에요. 아버님처럼 평소에 감정을 억압하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욱더 그런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는 걸 이해하셔야 해요. 자식들 키워서 시집 장가 보내줬으면 됐잖아요. 효자라면 아버지가 혼자 살겠다고 해도 할머니를 구해서 같이 살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질문자는 나름대로 잘 생각해서 질문했을지 몰라도 지금 그런 생각은 아주 불효막심해요. 여기 계시는 어르신들한테 한번 여쭤볼까요? (청중 웃음)
자식들은 부모에게 ‘늙어서 무슨 이성 친구가 필요하나?’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자식들의 부모님에 대한 이런 이해 부족 때문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겪는 외로움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습니다. 외롭지만 표현할 수도 없고 체면도 있고 하다 보니까 소위 노인들만 전문으로 성매매하는 여성들을 만나는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수상한 약물을 넣은 야쿠르트를 몇 병 가지고 다니다가 혼자 있는 노인들에게 접근해서 음료수를 주면서 꾀어요. 최근에는 그 피해자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70세, 80세 쯤 되면 뭐 그런 성적 욕구가 생기겠냐고 생각하지만, 사람이란 육체의 나이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는 아무리 늙어도 이성과 함께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예요. 아버님이 질문자 부부처럼 무지몽매한 자식들을 왜 낳아서 길러줬는지 모르겠어요.(청중 웃음)
질문자가 말한 내용은 하나도 합당한 것이 없어요. 그러니 이렇게 기도하세요.
‘아버님 뜻대로 하십시오. 저희에게는 아무런 유산을 안 주셔도 됩니다. 당신께서 번 재산이니 그 여자에게 주시든 어떻게 쓰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나중에 병든 몸으로 저희에게 오시면 자식된 도리로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입장을 딱 정리하면 아무 고민거리도 안 돼요. 또 그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아버님을 모셔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용돈도 좀 드려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괜히 말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지요?”(청중 웃음과 박수)
“아니에요.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강연을 끝마칠 시간이 되어 스님은 질문자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주진 못했습니다. 아쉬움이 좀 남았지만 청중들은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11명이 더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사회 문제에 대한 질문 2개, 인생 고민에 대한 질문 9개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어 청중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목에 무리가 갔는지 목소리가 많이 갈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청중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점을 잡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정리 말씀까지 해주었습니다.
“남의 고민을 들을 때는 스님의 답변이 지당한 것 같죠? 그런데 자기 고민을 물을 때는 그렇지가 않아요. ‘스님이 장가를 안 가봐서 내 심정을 모른다. 애를 안 키워봐서 내 심정을 모른다. 남 이야기할 때는 사람 마음을 잘도 아시는 것 같더니 내 고민을 이야기해 보니 진짜 내 마음을 모른다’ 이렇게 됩니다.(청중 웃음)
이렇게 우리가 남의 일은 잘 알면서 자기 일은 잘 몰라요. 이게 모순이에요. 자기 일을 잘 알고 남의 일을 몰라야 정상일 텐데, 오히려 남의 일은 잘 알고 제 일은 몰라요. 또 지금 일어나는 일을 가장 잘 알아야 할 텐데, 그 때는 모르고 지나가고 난 뒤 나중에 돌아보면 ‘그 때 그럴 걸 그랬다’하고 또 잘 알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자기에 대해서 어둡고 지금에 대해서 어둡습니다. 이게 어리석음이에요. 어리석기 때문에 늘 후회하는 인생을 사는 거예요.
그러니 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운다고 해서 돌아가신 어머니께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내가 이렇게 우는 게 남편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식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죽은 어머니 영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우는 걸까요? 속된 말로 미쳐서 그런 거예요.(청중 웃음)
그래서 우리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여기 이 컵을 위에서 보면 동그라미처럼 보이고 옆에서 보면 네모처럼 보여요. 그래서 우리는 ‘네모다’ 혹은 ‘동그라미다’라고 하지만 컵의 실제 모양은 네모도 동그라미도 아닙니다.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고, 이렇게 전체를 다 보아야 이 컵의 실상, 전모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컵을 물병 옆에도 놔보고, 시계 옆에도 놔보았을 때 이 컵의 실상이 보입니다. 이걸 통찰력이라고 해요. 통찰력을 다른 말로는 ‘지혜’라고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괴로움, 신비감, 두려움은 편견 때문에, 다시 말해 무지 때문에 생깁니다. 그러니 한 발 떨어져서 전모를 봐야 합니다. 앞만 보던 것을 뒤도 보고, 이쪽에서 보던 것을 저쪽에서도 보고, 내 입장에서만 보던 것을 시아버지 입장에서도 보고, 내 입장에서만 보던 것을 남편 입장에서도 봐서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의 고뇌는 사라지게 됩니다.
행복해지려고 캐나다까지 왔으니 행복하게 살아야죠. 여기까지 와서 괴로워하면서 살면 어떡해요. 또 한국으로 돌아가도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지금도 한국에 5천만 명이 잘 살고 있는데 한국에 돌아가서 산다 한들 무슨 큰 문제가 있겠어요? 그렇게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사시라는 말씀을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 뒤, 위, 아래, 사물의 전모를 보듯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보라는 스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오늘 3시간 동안의 강의를 총정리해주는 말씀 같았습니다.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 청중들을 위해 스님은 사인과 함께 환한 웃음으로도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에게 “덕분에 많이 행복해졌어요”라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 책 사인회
다음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밴쿠버정토회 회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오늘 강연을 위해 주차안내, 책판매, 무대셋팅, 질문자안내 등 무려 40명의 회원들이 자원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합장을 하며 “정말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라고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 밴쿠버정토회 회원들
마지막으로 강연을 총괄한 밴쿠버정토회 박은선 총무님, 실무를 담당한 강은희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스님과 단독사진을 찍는 모습을 부러워하자 스님은 “부러우면 다음에는 여러분들이 총괄을 한번 맡아 보세요”라며 농담을 던졌습니다.
▲ (왼쪽부터) 강은희님, 박은선님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밴쿠버를 출발해 시애틀로 향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밴쿠버에서 한국으로 가지 않고 왜 시애틀에서 한국으로 가는지 궁금해하자 스님은 “밴쿠버 공항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시애틀 공항에서 출발하는 것이 1인당 100달러가 더 싸다”고 하면서 웃음을 보였습니다. 수행팀까지 4명이 한국으로 가야하니까 밤새 차를 타고 이동한 수고 덕분에 400달러를 절약한 셈입니다.
새벽 1시에 시애틀 정토법당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시애틀 정토법당 주위를 산책한 후 오후 2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 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귀국합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유럽 북미주 순회 강연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준 구독자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은 오는 10월부터 ‘법륜 스님과 행복한 대화’를 제호로 한국에서도 30개 도시를 순회할 계획입니다.
※ 미국 JTS를 통한 두만강변 홍수 피해 긴급 모금이 미국 JTS 홈페이지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동참을 바랍니다.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배너를 클릭하세요.
<북한 두만강 홍수 피해 인도적 지원을 위한 모금 참여 방법>
홈페이지 www.jtsamerica.org
이메일 jtsamerica.n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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