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8.7 (통일의병) 동북아 역사기행 3일째
"역사기행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안녕하세요? 동북아 역사기행을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집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을 돌아보며 고구려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탐사했습니다. 

 

새벽 5시 정각에 숙소를 출발해 국동대혈로 향했습니다. 1분도 늦지 않고 5시 정각에 버스가 출발하자 기행단의 대다수가 스스로에게 놀라는 표정들입니다. 

 

국동대혈로 가는 길에 보이는 압록강변의 북한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습니다. 가파른 산 전체를 둘러싼 뙈밭을 보면서는 굶주린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쳤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북한의 뙈기밭

 

국동대혈은 국내성의 동쪽에 있는 큰 동굴인데 고구려의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안개가 어슴푸레 서린 산 중턱을 지나 하늘로 뻥 뚫린 국동대혈에 들어서니 신령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하늘로 통한다고 하여 ‘통천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기행단 150명을 대표하여 방송인 김병조님이 고구려왕의 의복을 입고 정성스레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어서 통일의병과 정토회를 대표하여 각각 한 사람씩 나와 인사를 올렸습니다.  

 


▲ 국동대혈

 

스님은 고구려의 후예로써 1300여년 만에야 이렇게 찾아온 것을 참회하면서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천지신명께 간절히 발원하였습니다. 

 

“한나라 환인 하느님, 배달나라 환웅 천왕님, 조선나라 단군 왕검님, 부여나라 해모수 대왕님, 고구려나라 주몽대왕님, 백제나라 온조대왕님, 신라나라 박혁거세 대왕님, 가야나라 김수로 대왕님, 고려나라 왕건 대왕님, 조선나라 이성계 대왕님, 이하 9천년 이래 오늘에 이르도록 나라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헌신하신 모든 조상님들, 조상님들이 섬겼던 모든 신들께 저희들이 삼가 절을 올립니다. 

 


 

저희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굽어 살펴주옵소서. 때때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는 왕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할 때, 백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외적을 막고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조선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다물군이 일어났고, 고구려가 멸망했을 때는 고구려부흥군이, 발해가 멸망했을 때는 발해부흥군이, 몽고가 침입했을 때는 삼별초군이, 임진왜란 때는 임진의병이, 병자호란 때는 병자의병이, 일제침략 때도 의병이 일어나서 나라를 구했습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았겼을 때는 독립군이, 나라가 가난할 때는 그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산업역군이, 독재 치하에 있을 때는 민주열사가, 이렇게 백성들은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켜내었습니다. 

 

일제의 강고한 탄압에 온 백성이 일어나 만세를 불렀던 3.1독립정신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이제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나라의 주인인 대한민국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이러한 빛나는 역사의 전통을 계승해서 자주독립국가와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 민주주의를 더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이곳 국동대혈에 왔습니다. 옛날에는 나라의 주인인 임금이 제사를 지냈지만, 이제는 백성이 주인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하느님께 이렇게 절을 올립니다. 

 


 

저희들은 나라는 발전하고 국민은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나라 ‘통일 대한민국’을 발원하옵니다. 또한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들과 함께 공생공영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와 인류의 평화를 발원하옵나니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천지신명과 조상신들께서는 저희를 옹호하여 주옵소서.”

 

스님의 간절한 목소리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스님의 발원을 가슴에 새기며 통일의병들도 모두 합장 반배를 함께 했습니다.  

 

음식과 술로 음복을 한 후 둥글게 서서 손을 맞잡고 남북한이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기행단은 점점 통일에 대한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국동대혈을 내려와 압록강변을 따라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강 건너편에 북한의 만포시가 보였습니다. 집안과 만포시 사이에는 하루에 한 번씩 기차가 다니고 있다 합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만포에서 평양을 거쳐 서울로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해 봅니다. 

 


▲ 중국 집안에서 북한의 만포시로 가는 기차길 

 

이어서 400년이 넘도록 고구려의 수도로 사용된 집안시 곳곳을 꼼꼼하게 돌아보았습니다.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 5회분5호묘 벽화를 차례대로 둘러보며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더욱더 가까이에서 느껴 보았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민족이 살았구나. 중원의 문명과는 다른 배달 문명의 역사를 이어 받은 선조들의 무대는 바로 이곳이였구나. 두 발로 걷고 눈으로 보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먼저 장군총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들 웅장한 규모에 놀라워 했습니다. 

 


▲ 장군총

 

스님은 이 무덤을 어떻게 쌓았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겉으로 보기만 해서는 쉽게 알 수 없는 과학적 원리가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리우는 장군총입니다. 현재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장수왕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총 7층으로 되어 있고 층층이 돌이 3칸으로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맨 밑에는 4칸으로 쌓여 있어요. 여기에 쌓여있는 돌의 총 개수는 1100개라고 합니다. 옆에 길죽하게 세워놓은 돌을 호석이라고 하는데, 저것은 중력 때문에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세워놓은 겁니다. 한 개의 무게가 작은 것은 15톤, 큰 것은 25톤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돌입니다. 

 


 

5층에는 무덤실이 있습니다. 무덤실 안에는 관을 두는 관대가 2개 있습니다. 주인공은 왕과 왕후입니다. 무덤의 천장을 덮은 돌은 통돌입니다. 통돌의 무게는 50톤입니다. 저 위에 어떻게 50톤짜리 돌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요? 대강 추론하기로는 통돌 밑에 통나무를 대어서 끌어올리는데, 우선 흙을 덮어서 완만한 경사로 끌어 올렸다가 나중에 흙을 없애는 방식으로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맨 꼭대기에는 정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저기서 기와조각이 발견되었고, 돌에 구멍을 내어서 난간을 만든 흔적도 보이거든요. 조상신에 제사를 지내기 전에 저 위에 올라가서 하늘에 먼저 제사를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이 무덤에 대해 제사를 지낼 때는 어디서 지냈을까요? 이 무덤의 뒤쪽에 가 보시면 제사를 지냈던 ‘제전’이 있습니다.  

 

이 무덤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밑바닥에는 진흙과 강돌을 다져 넣습니다. 왜 진흙을 넣을까요?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강돌을 넣은 이유는 가라앉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진흙과 강돌을 아주 단단하게 다진 위에 큰 바닥돌을 깔았습니다. 바닥돌에는 홈을 팠습니다. 그 홈에 맞물리도록 다음 돌을 쌓은 겁니다. 그래야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 안에는 강돌을 넣어야 돌이 부식하지 않습니다. 강돌은 이미 부식할 부분은 다 부식하고 남은 것들이기 때문에 튼튼합니다. 광개토대왕릉이 무너진 이유는 규모가 워낙 큰데다가 왕이 갑자기 죽어서 무덤을 빨리 완성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강돌을 넣다가 나중에 산돌도 마구 넣다 보니 세월이 흐르면서 무너져내려 버린 겁니다. 바깥에 있는 큰 돌이 튀어나오고 안에 있던 강돌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위를 덮어버려서 멀리서 보면 돌무더기가 산처럼 쌓여있는 형상이 되었어요.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잘 다음어진 돌들이 강돌에 묻혀 있어요.”

 

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대중들은 무덤 가까이에 다가가 정말로 바닥돌에 홈이 파져있는지 등 일일이 확인해 보며 다시 한 번 선조들의 지혜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 돌이 밖으로 밀려나지 않게 바닥돌에 홈을 파고 호석을 세운 모습

 

이어서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을 보았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 때 만든 것으로 높이가 6.39m나 되는 웅장한 비석입니다. 비석에는 고구려의 건국 이야기와 대왕의 업적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어떻게 이 어마어마한 돌을 옮겨서 이렇게 다듬었는지 놀랍기만 했습니다. 

 


▲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차량별로 기념촬영을 한 후 바로 옆에 위치한 광개토대왕릉으로 이동했습니다. 18세에 왕위에 즉위하여 39세에 죽을 때까지 광활한 영토를 확장했던 광개토대왕은 그 업적에 걸맞게 무덤의 크기가 장군총에 비해 훨씬 컸습니다. 장군총의 한 변이 32m라면 광개토대왕릉은 65m나 되었고 기단을 받추고 있는 호석도 장군총은 한변에 3개인 반면 광개토대왕릉은 5개나 되었습니다. 

 


▲ 광개토대왕릉

 

다음은 5회분 5호묘 무덤에 도착해 무덤 속에 그려진 벽화를 보았습니다. 1,2,3,4호묘는 공개가 되지 않고 있었고 오직 5호묘만이 관람이 가능했습니다. 다행히 무덤 입구에 전시관이 있어서 무덤 속에 어떤 벽화가 그려져 있는지는 사진으로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대중들이 30명씩 그룹을 만들어 5호묘에 들어가 직접 벽화를 보고 나오면, 전시관에서 다시 스님으로부터 벽화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특히 여러 가지 생활 모습이 담긴 벽화를 가리키며 이 벽화 속에는 단군 신화가 그려져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그림은 장천에 있는 1호묘 전실의 북쪽 면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여러 가지 모습을 담은 생활도입니다. 여기 보시면 나무가 하나 있죠? 이것이 신단수입니다. 신단수 아래에는 동굴이 있죠?”

 

“네”

 

 

▲ 벽화로 표현된 단군 신화


“동굴 안에는 곰이 한 마리 앉아있죠? 안 보여요? 이게 안 보이는 사람은 아마도 혈통이 조선 사람이 아닐 거예요.(모두 웃음) 

 

동굴 밖에는 호랑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화살을 쏘며 호랑이를 쫓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단군신화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단군신화는 일연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는데,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12세기에 쓰여진 반면 이 그림은 5~6세기에 그려진 그림이거든요. 그러니 단군신화는 일연이 쓰기 전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단군신화가 벽화 속에도 잘 표현되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누군가가 단군신화는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비난하면 이 벽화를 꼭 보여주어야겠다”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습니다. 

 

5회분 5호묘를 끝으로 집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 답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역사기행단은 집안을 출발해 통화를 지나 백산으로 향했습니다. 

 

집안에서 백산까지는 약 3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동하는 도중 스님이 버스 안 프로그램을 제안했습니다. 차량별로 노래 실력을 한번 보자는 것입니다. 1,2,3호차에서 각각 노래 한 자락씩 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송수신기를 잡고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어떤 마음으로 역사기행을 오게 되었는지 자기 소개도 했는데, 결혼 20주년을 기념해서 부부가 함께 오신 분, 아내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같이 왔다는 남편분, 스님과 함께하는 역사기행에 참가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분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역사기행에 함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녁 5시에 백산에 도착한 기행단은 숙소에 짐을 푼 후 저녁 6시부터는 대강당에 모여 저녁 강연을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 강연은 특별한 주제 없이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그동안 여행하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물어보세요”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몇몇 분들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여러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친 후 스님은 우리가 왜 이곳 동북아지역으로 역사기행을 왔는지 정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지역에 여행 온 것은 ‘여기가 우리 땅이다’ 하는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옛날에 이곳에 우리 조상들이 살았다. 그들이 남긴 문화 유적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러 온 것입니다. 지금은 이곳이 중국 영토의 일부가 됐지만 천 년 전엔 고구려의 주요한 활동 무대였으니까 우리 조상들이 이곳에 남긴 유물을 통해서 우리 문명의 뿌리는 어떤 문명이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또 환인, 환웅, 단군, 부여, 고구려의 역사를 살펴봄으로 해서 ‘아, 우리가 단순히 중국의 변방이 아니라 하나의 주요한 문명을 창조해 낸 민족이었고, 그런 문명을 계승한 민족이었다’ 하는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지금 이집트가 아무리 약해졌다 해도 어쨌든 이집트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그리스가 아무리 약해졌다 해도 그리스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이잖아요. 지금 그리스는 유럽에서 골칫거리라고 손가락질 받는 나라가 되었지만 그래도 유럽이 그리스를 떼어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가 바로 유럽의 시조, 유럽 문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이 그런 자부심을 갖는 건 폐쇄적 민족주의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문명에 대해 자만심을 가질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열등의식은 없어야 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겁니다. 

 

또 두 문명이 가까이 있다 보니까 서로 충돌하기도 했지만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당나라와 신라의 교류, 송나라와 고려의 교류, 조선과 명나라의 교류 등이 그런 예가 되겠지요. 이렇게 서로 협력관계도 있었고, 갈등관계도 있었다는 걸 같이 살펴봐야 합니다. 특히 이곳은 우리가 일제에 침략을 당했을 때 선각자들이 국경을 넘어와 여기에 근거지를 두고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런 공부를 하러 이렇게 역사적 현장을 찾아온 것이지, 중국을 비난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모든 나라는 불법적이지만 않으면 제 나라를 강대하게 하고, 제 문화를 선전할 권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나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을 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지금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의 애로점을 이용해서, 즉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필요에 부응하고 있잖습니까. 그러면서 일본은 패전국가로서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이제는 정상국가화 하겠다, 이제는 군대도 갖고 헌법도 개정하겠다는 것이거든요. 전쟁이 끝났을 때 승전국들이 패전국인 일본이 군대를 갖지 못 하도록 족쇄를 채워놓았던 걸 이제는 풀겠다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지금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이런 겁니다. 지금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서 패권을 오래 유지하려고 하고, 중국은 지난 100년 동안 수모를 겪었으니까 이제는 자기 힘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겁니다. 일본은 70년 동안 짊어졌던 패전국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정상국가화 하려고 하는 것이고, 북한은 ‘체제 유지’라는 절체절명의 목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우리를 건드리기만 해 봐라. 너 죽고 나 죽는다’는 식으로 아주 뚜렷한 국가목표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가 목표는 뭐냐는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미국한테 휘둘렸다가 중국한테 휘둘렸다가 북한하고 싸웠다가 이렇게 우왕좌왕 하는 겁니다.” 

 

이어서 스님은 최근 큰 논란을 일으키면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사드 배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답했습니다. 

 

“사드(THAAD)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사적으로만 판단하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드를 배치하는 게 유용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계산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투자에 비해 방어 효력이 효과적인지는 더 살펴봐야겠지요. 또 사드라는 무기가 들어오게 되면 남북 간의 군비경쟁을 초래할 수가 있고, 자칫 잘못하면 북한의 핵을 인정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다시 말해서, 남한도 핵개발을 하면 북한의 핵을 방어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북한에게 핵을 폐기하라고 요구할 수가 없게 되니까 북한 핵폐기 전략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처럼 사드 배치는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추진해 온 북한 핵폐기 전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안보상 위협이다’라고 주장하고 나오니까 우리는 그 두 나라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 나라가 북한 핵폐기를 위한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 되니까 북한 핵폐기가 어렵게 되겠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아도 우리 안보상 사드 배치가 꼭 필요하다면 중국이 반대한다고 그만둬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사드 배치는 이런 걸 다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고, 또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치고, 국민 다수의 동의도 얻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드 배치를 중단해도 망신이고, 그렇다고 그대로 실행해도 중국과의 갈등은 물론 국내 갈등도 초래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추진하면 부작용이 엄청날 게 뻔한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바로 국가의 목표가 불분명해서 우왕좌왕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전승절 때 자유세계 어느 나라도 참석 안 했는데, 한국 혼자 참석해서 한·중 양국의 우호 관계를 과시라도 하는 양 난리를 피우더니 갑자기 또 미국과 사드배치를 결정해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이러잖아요. 또 일본 아베 총리와 악수도 안 하고 외면하는 식으로 국제적인 외교관례를 깨는 제스처를 취해서 마치 아베 총리를 길들일 것처럼 하더니 위안부 문제 관련해서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을 받고 덜렁 합의를 해 주니까 일본의 일부에서 ‘그렇게 한 것이 그 돈 좀 받으려고 그랬던 거였구나. 그럼 몇 푼 주고 끝내지’ 하면서 비웃음을 산 겁니다. 이런 모습은 국제적인 망신입니다.

 

국가적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이쪽에 치우쳤다가 저쪽에 치우쳤다가 하다 보니 이렇게 어려움을 자초하는 겁니다. 그럼 국가의 목표가 불분명한 건 무엇 때문일까요? 세계의 정세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역사관의 부족’ 때문입니다. 그러니 좀 길게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100년 후에 본다면 어떨까요? 조선조 말엽의 사건을 100년이 더 지난 지금 돌아본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옳은지 알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일본 군대와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서 막을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나 당시 지도자들에게는 그게 안 보였던 거죠.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이 분열되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그 해결책이 지금 보면 잘 안 보이지만 100년 후에 지금을 돌아본다면 ‘아,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라면서 다 보일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100년 후에 볼 걸 지금 보자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100년 후에 볼 걸 지금 볼 수 있을까요? 과거 역사 속에 있었던 문제를 잘 살피면 답이 나옵니다. 또, 현재를 볼 때도 앞으로 이게 어떻게 전개될 건지 가변성을 고려하면서 예측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공부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역사현장 학습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와 싸우거나 누구 걸 빼앗거나 누구와 갈등을 일으키려고 여기 온 게 아니고, 자기 존재에 대해 분명히 알아서 이웃 나라와 공존을 도모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목표나 건국이념은 매우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런 정신이 어디에 담겨있습니까? 헌법에 담겨있습니다.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한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핵심은 첫 번째가 민족의 평화적 통일이고, 두 번째가 민주주의의 심화입니다. 그러니 정부가 요즘처럼 통일정책에 반해서 마치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하는 건 사실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거예요. 

 


 

정부가 자꾸 북한을 핑계대면서 ‘북한이 저러는데, 그럼 우리가 어떡하겠느냐?’라고 하면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대한민국은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움직일 게 아니라 헌법 정신에 따라서 움직여야 되는 것이지요. 지금 미국의 공화당 측 대선 후보 트럼프가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데, 미국 제일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하는 발언들, 즉 인종주의라든지 종교 차별적 발언들이 미국의 건국정신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제대로 깨어있다면 지금 정부의 정책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 어느 날은 ‘통일대박론’을 얘기하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이렇게 정책이 왔다갔다 하는 건 바로 국가관이 부족하고 국가의 정책목표가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는 바로 ‘역사의식의 결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관과 국가관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으면 이런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왕조사회는 왕이 국가의 주인이니까 왕이 잘못해도 뭘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 즉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란 말이에요. 다시 말해서, 대통령이나 외교부장관이 국가의 주인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 국가의 주인인 여러분들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국가관이 분명해야 되고, 그래서 국가관이 불분명한 지도자는 뽑지 말아야 되고, 설령 뽑았다고 하더라도 잘못 뽑았으면 다음에는 국가관이 분명한 사람을 뽑아야 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 대한민국이 똑바로 갈 수 있게 되지, 그렇지 않으면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가 그래도 성장을 지속해 왔지만 이제는 정체국면에 들어갔고, 곧 내리막길이 시작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성장국면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그래도 앞으로는 점점 좋아지겠지’ 하며 낙관적인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국제적인 경제상황도 매우 좋지 않고, 우리 내부의 성장동력도 거의 소진되었습니다. 이제 내리막길로 가는 일만 남은 겁니다. 

 

추락을 막고 다시 도약하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이 평화와 통일입니다. 만약 한반도에 분쟁이 확대되어서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급격하게 내리막으로 내려가게 될 겁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전쟁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을 합리화해서는 안 돼요. 물론 전쟁만 안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전쟁을 안 하면 완만하게 내리막으로 내려갈 뿐이겠지요. 그래서 두 번째는 남북 협력경제로 재도약을 시도해야 합니다. 불쌍한 북한주민을 위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이제 필요불가결한 문제입니다. 또 미․중 사이의 국제적인 갈등 속에서 우리가 분단된 상태로 각각 양쪽의 하수인이 되어 충돌할 게 아니라 양쪽의 균형을 잡아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통일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을 미워하거나 미국이나 중국을 비판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북한은 저렇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있으니까 우리는 그걸 이해해야 합니다. 북한을 바라볼 때는 북한을 하나로만 볼 게 아니고 좀 세분화해서 봐야 합니다. 먼저 ‘UN에 가입된 북한이라는 국가’는 그것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 정부’가 있는데, 북한 정부는 독재 정부이니까 비판해야 됩니다. 또 ‘북한 주민’이 있어요. 북한 주민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난민이 되어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식량이 부족해도 도움 받을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도와야 할 대상은 ‘북한 주민’이고, 우리가 비판해야 될 대상은 ‘북한 정부’이고, 우리가 존중해야 될 대상은 ‘UN에 가입된 북한이라는 독립국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상들을 ‘북한’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뭉뚱그려 지칭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북한을 왜 도와주느냐? 북한은 붕괴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북한 정부는 붕괴될 수 있어도 북한이란 국가는 붕괴되기가 어렵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고 대한민국이 붕괴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김정은 체제가 내일 교체된다고 해도 그게 곧 북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올바르지 않습니다. 북한 정부는 교체되겠지만요.

 


 

이렇게 정확한 개념 정립도 하지 않고 용어를 마구 사용하기 때문에 사고도 혼란스러워지는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제사회 속의 세계시민이잖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이제 국제사회적인 안목을 갖고, 우리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정확한 관점을 가지고 대응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이렇게 역사기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드 배치 때문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시원하게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국가 목표를 뚜렷이 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에는 저녁 식사를 겸하면서 간단히 노래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에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송수신기로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는데, 저녁에는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여행의 흥이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참석한 대중들 모두가 통일의병들이어서 그런지 노래를 부르고 나서는 항상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표현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내일은 전체 일정 중에 버스를 가장 오래 타는 일정입니다. 백산을 출발하여 압록강을 따라 달리며 북한 국경변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장백에 이르러 영광탑을 참배하고 북한의 혜산시를 내려다 본 후 백두산 아래 동네인 이도백하까지 가는 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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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의 통일을 발원하면서 러시아 연해주의 독립운동 성지 '신한촌'의 역사 회복과 재건을 위한 대중 여러분들의 후원금을 받습니다. 소정의 기금 출연으로 역사 회복에 동행하는 마음과 정성을 함께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 계좌번호 : 국민은행 578601-01-272869

- 예금주 : (사)좋은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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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파견 근무 자


사드 미사일 방어체제 감시 영역은 4000km이상으로
중국 본토 핵미사일 무기체제등의
전체를 감시하는것이 가능 하며,
당연히 중국에서는
이를 통해 미국에서 조정 감시 하는 사드레이더는, 직접적으로 미국에 의해 중국의 전력에 큰 손실을 주기에,
추가 중국에 핵 잠수함 을 포함한 다른 전쟁 전력을 강화 해야 하는, 불필요한 전쟁물자 증가를 필요로 하게됩니다.

리빈 칭화대 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사드 대신,
TPY-2레이더를 사용 하면,
감시거리가 사드보다, 한단계 낮기 때문에,
북한 전지역을 감시 할수 있지만, 중국 전체는 감시 할수 없기에 중국에서도 반대를 할 이유가 없다고
명확히 의견을 피력하였습니다.

한국이 구태여,
한국을 중간에 놓고,
미국- 중국 -러시아간 핵전쟁 위협 을 증가시키며,
핵무기 무장을, 증가시키는 사드레이더 배치대신, TPY-2로도 충분히 북한의 도발은 저지 가능 합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총 100여개국 이상 무역 교역 국가들중
50% 이상의 막대한 의존도를 갖고 있고, 만약에,
한국이 중국의 여러차례 , 반대를 무릅쓰고, 사드를 배치할경우, 장기적이며 지속적인
강력한 무역 보복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자체 대규모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한국은 경제가 무역 의존도 80% 이상 취약한 구조로, 만약 무역 보복을 당하면,
기업체들은 어려움이 점차 커지고,
더욱 많은 젊은이들은 취업에 어려움 겪고, 공무원 들 마져도 앞서 미국 경제 위기 수만명이 해고 된것 처럼,
국가 경제의 위기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불필요하게 중국까지
감시 하는 사드미사일 방어 체제 는 백지화 하고,
비록 미국에서 는 사드를 통해 중국전체
감시를 희망 하지만,
미국의 이익에 따라 눈치를 보는대신, 국가의 자존감을
분명히 하면서,
자국 대한민국 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며
중국 과도 무역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북한 지역 만
감시하는
TPY-2 방어체제 설치 고려등으로 한국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 추진등, 국정 운영 방안에 대한,
중심을 분명히 잡고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6-08-12 17:31:00

느릿느릿

찍어 주어 당선이 되었다고 독재로 해서는 안돕니다
국민주권을. 행사하여 비판할 권한이자 의무도 있고요.
통일에 역행하는 현정부의 정책에 바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아야 져야 된다고 봅니다

2016-08-11 18:59:33

WooLee

숭고한 통일의병의 뜻이 모여지고 결집되어 한반도 전체를 녹여내는 광대한 불길로 일어나길 기원드립니다.
다만 이것이 정부의 정책과 엇박자로 나가거나 너무 앞서나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헌법강령도 먼저 나라가 온전히 유지되고 난 뒤에 있는 것이지 헌법 따로 고고히 존재하지 않으니 국권수호를 위해 힘을 모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통치권이 부여된 정부 정책 입안자와 통수권자를 흔들기해서는 안되겠습니다.

2016-08-11 1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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