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7.5 해외지부 총무단 수련 6일째 (회향 법문)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합시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해외지부 총무단 수련 6일째를 맞이해 즉문즉설, 소감문 발표, 회향 법문의 순서로 마지막날 수련 프로그램에 함께 했습니다.  

 

해외지부 총무단 수련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련을 시작한 지 6일이 지났고, 드디어 오늘 회향 법문을 끝으로 수련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에서 발우공양을 한 후 명상원으로 내려온 해외지부 총무단은 아침 8시부터 법륜 스님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 발우공양을 마치고 명상원으로 내려오고 있는 해외 총무단

 

즉문즉설 시간에는 지난 5일 동안 다양한 교육과 수련을 받으며 들었던 의문들을 묻고 답했습니다. 4시간 동안 총 13명이 다양한 의문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 중에서 미국 뉴욕정토회에서 사회활동팀을 맡고 있는 한 분은 해외에서는 통일, 복지, 환경 운동을 어떤 방향성을 갖고 활동해 나가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우선 수행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방향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해외사무국에서 사회활동팀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토회가 한국에서 성장하는데 있어서 환경운동, 복지운동, 통일운동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중 응집력이나 홍보 측면에서 바닥부터 다지는 작업을 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현재 해외에서는 통일운동 부분은 휴면 상태인데다가 환경 운동이나 복지 운동 부분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느 정도까지 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과 해외는 워낙 조건이 다르니까요. 사회 활동을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해나가야 할까요?”

 

“정토회를 설립할 때 네 가지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첫째, 개인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둘째,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평화로워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사람과 사람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 ‘좋은 벗’과 ‘평화로운 사회’의 의미입니다. 셋째, 이 세상에 태어난 짐승도 굶어죽지 않고 사는데 사람이 태어나서 굶어죽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빈곤퇴치를 시작했습니다. 기아, 질병, 문맹, 이 세 가지를 함께 퇴치하고자 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고, 간단한 질병에 병들어 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고, 아이들이 글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아와 질병은 생존에 관계되는 것이고, 문맹은 인간다운 삶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퇴치한다는 건 요즘 말로 ‘절대 빈곤 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 나가야 된다는 의미에서 환경운동, 즉 ‘아름다운 자연’을 얘기했습니다. 정토회를 설립할 때부터 이렇게 네 가지 목표를 갖고 출발했습니다. 

 


 

이 네 가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고, 설립취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를 대중들에게 전파할 때는 동시에 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수행으로 접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개인들이 다 힘들고 괴로우니까요. 이 네 가지를 다 하지 말고, 수행으로만 먼저 접근을 하는 겁니다. 

 

가령 '깨달음 장' 수련을 다녀오면, 결국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고, 가난한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또 우리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하는데 서로 이해함으로써 좋은 벗의 관계가 되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부부끼리의 문제나 자식과의 문제도 풀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첫째, 수행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내 명상만 하는 건 정토회의 취지에 안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낭 메고 여기 가서 명상하고, 저기 가서 명상하고, 미얀마 가서 명상하고, 티벳 가서 명상한다는데, 이런 사람은 정토회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명상센터로 가세요’ 라고 안내해 주면 됩니다. 또 정토회가 평화운동도 하고, 환경운동도 하고, 빈곤퇴치를 위한 NGO활동도 한다는 말을 듣고 와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왔는데, 왜 나보고 수행하라고 하느냐?’라고 하는 사람도 정토회에는 해당이 안 되는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은 ‘다른 NGO로 가세요’ 라고 안내해 주면 됩니다. 이런 중심을 딱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안내하는 대로 떠난 사람을 자꾸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 ‘머리 깎고 스님이 되겠다’ 하는 사람이 오면 저는 다른 절로 안내해 드립니다. 그래도 ‘여기서 수행하겠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 라고 하면 저는 ‘머리가 무슨 상관이냐? 하심하고 살면 되지, 머리 깎고 스님 되어서 목에 힘주려고 그러느냐? 그럴려면 다른 절에 가라. 여기 살려면 머리 기르고 일해라’ 라고 합니다. 출가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인이 되고 싶은 거예요. 조금 고생하더라도 머리 깎고 가사 장삼 입고서 남한테 대우받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정토회는 신자 모임이 아니에요. 수행자들의 모임이에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질서가 잡히고, 앞으로 ‘스님’이라는 말도 따로 필요 없어지는 거예요. 

 


 

수행의 핵심은 자기 해탈입니다. 그래서 정토회 10대 목표 중에 1번이 ‘어떤 경우에도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된다’ 하는 거잖아요. 이것이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표현한 겁니다. 이걸 우리의 수행 목표 1번으로 잡아놓았단 말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수행을 기초로 해야 돼요. 수행만 해도 안 되고, 사회활동만 해도 안 되고, 수행을 기초로 사회 활동을 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누구 미워 죽겠다, 누구 때문에 못 살겠다, 그래서 괴롭다’ 라고 하는 건 수행이 기초가 안 됐다는 거예요. 무엇을 하든 괜찮지만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이 불편한 건 다 자기 쪽으로 돌아봐야 해요. 

 

가령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 일을 하는 건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일을 괴로워하면서 한다면 그건 수행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좋은 일을 당신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기꺼이 즐겁게 해야 수행자다운 겁니다. ‘일할 때 괴롭냐, 안 괴롭냐’ 하는 것이 수행의 관점이고, 그 다음에 정토세상을 건설하는 건 ‘부조리를 어떻게 개선할 거냐’ 하는 문제인데, 그 부조리를 개선하는 일을 하면서 괴로워 죽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사회변화를 실천하는 실천가는 될 수 있어도 수행자는 안 되는 겁니다. 반대로 ‘나만 편안하면 된다. 나는 아무런 괴로운 일이 없다’ 라고 하면서 세상을 외면한다면 그것 또한 정토회 회원이 될 수 없어요. 즉 사회적 실천과 수행이 똑같이 가야 합니다. 이 두 개를 나눌 수는 없는 건데, 그래도 어느 걸 더 기본 바탕에 깔아야 할까요? 수행입니다. 수행을 기본바탕에 깔아야 합니다. 이게 정토회의 원칙이에요. 

 

수행을 기본바탕에 안 깔면 본인이 괴로워집니다. 본인이 괴로워진다는 건 자기를 희생하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일을 통해서 자기가 기쁨을 얻어야지 일을 위해서 괴로워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정토회에서 10년이나 월급도 안 받고 일했는데 정토회에서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괴로워한다면 그 사람은 그동안 희생을 했다는 거예요. 정토회는 누구를 희생시키고 싶진 않아요. 자기실현의 과정으로 삼았으면 하지요. 그래서 이런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해요. 

 

정토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사회활동을 하려고 오는 건 아니잖아요. 처음 올 때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니까 오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수행을 먼저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수행이 되면 깨달음의 장을 권유해 보는 거예요. 깨달음 장을 통해서 자기 마음이 밝아지면 첫째, ‘아이고, 우리 아들도 여기 보내야 되겠네. 우리 남편도 보내야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게 전법입니다. 법을 제대로 알게 되면 제일 먼저 그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깨닫자 마자 고통받는 중생을 생각하신 거예요. 부처님에게 있어서 전법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고, 깨닫는 순간 전법의 길로 가신 겁니다. 

 


 

둘째, ‘그동안은 나 살기에 급급했는데, 나도 인도 아이들을 좀 도와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나잖아요. 여러분들은 깨달음 장을 다녀와서 어떤 마음이 들었어요? 정토회에서는 '돈 내면 복 받는다' 하는 말 안 하는데도 여러분들이 돈을 내는 이유가 뭐예요? ‘너무 많은 혜택을 입었으니 내가 보시라도 좀 해야 되겠다’ 하는 거잖아요. 이게 보시에요. 보시하면 복 받는다고 믿고 보시하는 사람은 정토회에 없어요.

 

전법과 보시가 이렇게 시작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조금 다니다 보면 환경에 대한 인식이 커집니다. 깨달음 장을 다녀온 사람은 환경 교육이나 뒷물하는 교육을 시켜도 쉽게 이해하는데, 정토회 안에서도  깨달음 장을 안 다녀온 불교대학생한테 뒷물하라고 시키면 불편하다고 난리입니다. 깨달음 장만 딱 다녀오면 ‘아, 환경이 소중하구나’ 하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때 인도 돕기 등을 권유하면 거의 100%가 동참하거든요. 그때는 ‘아, 나도 뭘 기여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니까요. 

 

그래서 평화운동, 빈곤퇴치, 환경운동은 정토회 목표의 한 축으로 이해하시되, 법당을 처음 열어서 적용해나갈 때는 수행에 90%의 비중을 둬야 합니다. 그러나 법당 안에서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예를 들어 뒷물도 하고, 휴지도 적게 쓰는 등 최소한의 환경실천은 하도록 안내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에 대해서 법당에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막 그런 운동을 하라고는 안 하더라도 일단 법당에 들어오면 그렇게 하도록 우리가 얘기를 해야 됩니다. 그런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전법이 핵심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이라는 게 아니라 우선 그 사람의 요구가 그러니까 전법부터 하라는 겁니다. 서양인들 중에 불교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명상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계속 '가난한 사람들을 도웁시다' 라고 얘기하면 안 되겠지요. 그런 사람에게는 우선 그런 걸로 다가가야겠지요. 그런데 명상 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한테 ‘오지 마세요’ 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에게 너무 신경을 쓰진 마세요. 오면 ‘오는 구나’, 가면 ‘가는 구나’ 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또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성향이 다르니까 거기에 맞게끔 해야겠지요. 우리는 셋 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지역의 특성, 그 나라의 특성, 사람의 특성에 따라서는 순서 등을 달리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JTS 모금이 잘 될 것이고, 유럽은 북한 돕기 같은 사회적인 실천활동들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잘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독일 같은 곳은 약간 진보적 성향의 운동이 잘 될 수도 있고, 미국은 약간 보수적인 입장이라야 잘 될 수 있을 것이고요. 이렇게 지역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미국이라도 LA와 뉴욕의 정서가 다르고, LA가 더 보수적이라면 샌프란시스코는 더 진보적입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라는 게 아니고, 이렇게 사람들의 성향에 맞게끔 적절히 해서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답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중간에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는데요. 어제 스님이 텃밭에서 캐온 감자가 삶아져서 나왔습니다. 스님도 같이 감자를 하나 집어서 먹었는데, “맛이 별로다”라고 하면서 어떻게 삶아야 감자가 맛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서 모두들 웃으면서 스님의 노하우를 전수 받았습니다. 

 


 

이어서 한 차례 더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번 수련을 통해 모두들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점심식사 후 오후부터는 소감문 작성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은 지난 6일을 돌아보며 정성껏 소감문을 써내려 갔습니다. 

 


 

전세계에서 모인 참가자는 총 25명. 동그랗게 원 모양으로 둘러 앉은 후 한 명 한 명 소감문을 읽었는데, 지난 6일 동안 너무나 많은 감동을 느꼈는지 곳곳에서 울음과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울면서도 웃고, 웃으면서 울기도 하는 가운데 소감문 발표를 모두 마쳤습니다. 

 


 

소감문 발표가 끝나자 스님도 소감과 더불어 몇가지 당부를 덧붙여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해외지부 총무단을 향해 네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우리들의 흔들림은 바깥에서 누가 흔드는 게 아니라 내 자신 속에 그 흔들리는 요인들이 늘 있습니다. 장벽은 상대가 치는 게 아니라 내가 움켜쥐고 있는 장벽이 있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많이 내려놓았지만 아직도 움켜쥐고 있는데 그것을 내려놓으면 훨씬 더 자유로워져서 세상 속에서도 거리낌이 없어지고,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도 거리낌이 없어집니다. 여러분들은 밖에서 힘들다며 안에 들어오려 하거나 안에 있으면 답답하지 않겠느냐며 밖을 고집하며 늘 뭔가 하나를 붙들고 있는데 그걸 놓아버리면 오고 감이 없이 자유로워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오고 감이 자유롭다 해서 ‘타타가타(tathagata)’, 번역하면 ‘여래(如來)’라고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그동안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런 기쁨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해외에서 정토회를 개척한다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이런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런 기쁨이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하는 거예요. 번뇌가 사실은 깨달음의 큰 기초가 된다는 걸 알게 되면 갈등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그것마저도 나의 재산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런 어려움들을 안고 있다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 장벽을 탁 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소감문 발표를 들으면서 여러분들의 그런 모습들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첫째,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이 정말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끼리 비교하면 좀 부족한 사람도 있고 좀 나은 사람도 있지만, 이 지구상에 사는 70억 인구 중에 이만큼의 헌신성과 공공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찾아보려 해도 정말 찾기 어려워요. 만 명 중 한 명, 십만 명 중 한 명, 아니 백만 명 중 한 명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마음을 내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세상에도 좀 헌신적인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죽어서 천당 가거나 복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여기서는 이렇게 하면 천당 간다는 소리도 안 하지, 복을 준다는 소리도 안 하지, 그렇다고 무슨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지, 정말 아무런 대가도 없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런 마음을 내서 자기를 돌아보고 이런 좋음을 세상 사람과 나누려고 하니 정말 귀한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가진 업식, 성질, 고집이 좀 있어서 충돌과 갈등도 일으키긴 하지만 정말 이런 사람들은 드뭅니다. 

 

이런 점들을 항상 자각해서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 있는 도반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이렇게 정말 소중한 줄 알게 되면 소소한 성질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어요. 물론 자기 자신은 자기 성질을 고치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만 다른 사람의 성질은 웃으면서 받아 넘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성질만 빼면 그 사람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니까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 길에서 저만한 사람 한 명 구하는 것은 엄청 힘들어요. 몇 년 안 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그래도 인연 맺은 지 10년씩 넘어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도반들의 존재가 정말 귀한 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둘째,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정토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시비분별이 많은 것을 보고 나무랄 게 아니라 ‘아,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라고 이해해야 해요. 또 새로 오는 사람은 기존의 선배들을 보고 ‘아이고, 절에 다니고 스님 법문도 듣는다면서 아직도 저러냐’ 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은 법문 듣기 전에는 더 심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법문 듣고 저 정도라도 변했구나’ 하고 이해하면 그런 선배들도 어느 정도 수용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을 가르치는 일반 절에서도 다 조용한데 여기는 내내 스님이 수행하라는 데도 오히려 더 시끄럽다.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이래서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 많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걸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합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은 이런 갈등에 대해 설명하면 금방 이해를 하는 편이지만 외국인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외국인들은 이렇게 사람 관계에서 갈등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외국인을 받아들일 때는 우리가 굉장히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갈등을 극복한 뒤에 외국인을 받아들여야지, 지금처럼 갈등하는 와중에 외국인을 덜컥 받아들이면 그 사람들이 볼 때는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야? 부처님의 말씀이 좋고 스님 법문이 좋아서 찾아왔는데 이 사람들은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하고 있잖아’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불법 만나기 전에는 이보다 훨씬 심했다는 걸 외국인들이 모른다니까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해요. ‘아니, 수행을 했다는 사람들이 이러고 있는 걸 보니 이 가르침은 별로 효과가 없구나.’ (모두 웃음) 

 


 

조금 이치를 아는 정도는 금방 배울 수 있지만 우리들의 성질을 고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니 2차 만일결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6년 반 동안 회원 숫자를 늘리고 외국인을 많이 데려오는 데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각 정토회 별로 다만 몇 명이라도 정말 우리 내부가 화목하게 지내는데 초점을 맞춰야 해요. ‘거기 가보니까 정말 그 사람들은 세 명이 모였든 다섯 명이 모였든 참 화목하게 지내더라. 겉으로 안 싸우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도 서로 이해하더라’ 라는 평을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다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좀 불룩불룩한 사람들이 모여도 이 사람이 불룩하면 저 사람이 받아주고, 저 사람이 불룩하면 이 사람이 받아주고 해서 화목하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되어야 세계화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세계화는 불가능해요. 공동체가 이것이 안 되면 세계 무대로는 못 나가요. 그래서 목표를 잡을 때 확산하는 것도 물론 고려해야겠지만 우선은 각 정토회 별로 적어도 중심적인 사람들은 서로 화합해주는 연습을 중점적으로 해야 합니다.

 

넷째, 정토회는 너무 지저분해도 안 되고 너무 화려해도 안 돼요. 아주 깔끔하면서 소박해야 합니다. 깔끔하면서 소박한 것을 부처님 말씀으로는 ‘청정하다’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다녀도 거지처럼 지저분하지 않고 아주 깔끔하셨어요. 옷이 떨어져 남루했지만 지저분하게 다니지는 않으셨어요. 그것처럼 법당이든 어디든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화려하고 비싼 것들로 꾸밀 필요가 없어요. 이가 빠진 그릇을 갖다놓더라도 정리정돈이 딱 되어 있어야 해요. 이렇게 깔끔하되 소박하게, 소박하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이것을 두고 부처님은 ‘청정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정토회의 회원들은 비싼 옷을 입거나 화려한 장신구를 하지 않더라도 항상 옷을 깔끔하게 입고 소박하게 하는 태도가 첫째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항상 겸손하고 서로 화합해야 해요. ‘거기 가보니까 내내 갈등하더라’ 이러면 사람이 안 모여요. 

 

그래서 부처님은 마지막 유훈으로 상가의 핵심 과제로 청정과 화합을 강조하셨습니다. ‘청정하고 화합하라’ 이것이 공동체의 목표예요. 이렇게 청정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세상 사람들, 즉 중생의 요구와도 들어맞습니다. 껄떡거리는 것을 치유해주기 위해서는 소박하고 안정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고, 심리적인 갈등이 있는 사람들도 우리가 화합해서 사는 모습을 봤을 때 감동받고 귀의하게 됩니다. 

 

한번 보세요. 여러분들이 문경 수련원이든 어디든 어떤 공동체에 가보니까 정말 옷도 한두 벌 갖고 살고, 집도 아주 검소하고, 먹는 것도 간단하게 먹고, 정말 소박하게 살면 감동이 돼요. 그렇다고 거지 같이 살아서 너무 지저분하면 또 감동을 못 줘요. 깔끔하되 소박하게 살고, 마음이 편안하면서 서로 화목하고, 무엇이든지 서로 협의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이 공동체로 들어오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동안 이 세상에서 그 많은 재물, 그 높은 지위를 가지고서도 껄떡거리고 살았는데 그렇게 피곤하게 살 거 뭐 있나. 여기 와서 편안하고 소박하게 살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건 누구나 다 본받으려면 본받을 수 있잖아요. 많이 가져서 잘 사는 걸 본받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만 이건 버리면 되니까요. 그래서 이것은 현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미래의 표상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각 법당에서 이루어줘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정진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불교대학에 많은 사람들이 입학하고, 깨달음의 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정과 화합입니다.

 


 

청정의 핵심은 계율을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화합은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첫째, 물건에 대한 나눔을 공평하게 해야 해요. 둘째, 타인의 견해와 의사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의견을 편안하게 표현하고 남의 의견을 편안하게 들어줘야 해요.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것이 타인이 말하는 대로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공부를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이 하나씩 하나씩 당부할 때마다 해외지부 총무님들은 열심히 그 내용을 수첩에 메모하는 모습이였습니다. 1년에 한번 열리는 수련이다 보니 스님의 말씀 한 구절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해외지부 총무님들은 애정을 담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 준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어서 지난 6일 동안의 수련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은 그동안 많은 가르침을 설해 준 스님께 청법가와 삼배로써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 당시로 돌아가서 부처님은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상기시켜주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를 보면 참 재미있는 게 많아요. 부처님이 어느 날 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뭘 움켜쥐고 막 달려가는 거예요. 그러고 한참 있으니까 30여 명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어요. 

 


 

부처님을 본 젊은이들이 ‘부처님, 여기 어떤 여자가 한 명 지나가는 걸 못봤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사정을 물어보니 이들은 장자의 아들들, 즉 부잣집 아들들이며 귀족집 아들들이었어요. 봄소풍에 각자 자기 애인을 데려오기로 해서 다 애인을 데리고 나왔는데 한 친구만 애인이 없어서 유녀, 즉 기생을 하루 애인 삼아 데려온 겁니다. 한참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놀다가 취해서 서로들 껴안고 쓰러져 잠들었는데, 자다가 깨어나 보니까 보석이며 귀중품이 다 없어진 거예요. 도대체 누가 가져갔는지 살펴보니까 그 유녀가 도망을 가고 없으니 그 여자를 지금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자 부처님이 물었습니다.

 

‘여보게들,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게 중요한가? 잃어버린 보석을 찾는 게 중요한가?’

 

청년들은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게 더 중요하죠’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그렇다면 여기 앉아보게’ 해서 부처님이 설법을 했는데 그 설법을 듣고 30명이 다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서 30명이 한꺼번에 출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를 잃어버리고 권력과 재물과 인기와 쾌락에 젖어 삽니다. 그 권력이나 재물이나 인기를 잃어버리면 자기가 죽는 줄 알고 헤매요. 사실 그건 영원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걸 딱 꼬집어서 ‘잃어버린 네 자신을 찾는 게 중요하냐? 잃어버린 보석을 찾는 게 중요하냐?’ 이렇게 질문함으로써 그들을 꿈에서 깨워주셨어요. 한마디로 ‘미쳐 날뛰던’ 것을 정신 차리게 해서 그들을 교화하신 겁니다. 청년들이 법문을 듣고 ‘저희들도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오라, 비구여. 여기 좋은 법이 잘 설해져 있다.’

 

딱 이렇게만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붓다의 법은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지름길, 즉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길을 두고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니 어느 때보다도 지금 이 좋은 법이 필요합니다. 이제 옛날과 달라서 꼭 머리를 깎고 먹물 옷으로 갈아입지 않아도 됩니다. 출가한다는 것은 이 잘못된 가치관을 버리고 자기가 잘난 줄 알던 기득권을 버리고, 정말 소박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해탈과 열반이라는 것은 참 자유와 참 행복, 즉 정말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이 좋은 법을 필요로 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번뇌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양약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내가 먼저 이 약을 먹고 내 번뇌의 병부터 나아야 해요. 그래서 ‘이게 정말 약효가 있구나’ 할 때 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도 권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가 내면에 번뇌가 적어지면 사실은 크게 두려워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진 것도 많고 재능도 있고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요. 자꾸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은 당당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자기를 너무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교만이에요. 교만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열등의식이 자꾸 생기게 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부처님 당시에는 이렇게 한 번 만나서 깨우친 사람들도 있었듯이 그것처럼 지금 세상에도 돈으로도 번뇌를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대로, 수면 위로 뜬 연꽃도 있지만 수면 아래에 있는 연꽃도 있습니다. 그러니 약간만 도와주면, 다시 말해 약간만 건드려주면 깨달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우리가 정말 진심으로 접근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레 겁을 먹기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찾아오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기적인 요구, 즉 ‘여기는 왜 복을 안 빌어주냐?’ 같은 요구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사람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런 한 명을 붙잡으려고 너무 애쓰거나 그런 한 명의 말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자예요. 이 법을 믿고 따르고 이 법에 의해서 나아가는 자가 수행자이지, 어떤 모양이 수행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다 법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법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처럼 그렇게 마음공부를 해나가면 법사가 되는 거예요. 세상에 그런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 되겠어요? 정말 귀해요. 그러니 교만해도 안 되지만 너무 비굴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부처님 법에 따라서 공부하면 여러분들이 다 수행자이고, 여러분들이 보디사트바이고, 여러분들이 법사입니다. 

 

이제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괴롭다며 막 하소연하고 난리 피우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봐줄 수 있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도 다 옛날에는 저런 행동을 해봤잖아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해하고 함께하기가 훨씬 쉬워요. 여러분들 또한 저렇게 남편 때문에 난리 피워보고 자식 때문에 난리 피워보고 돈 때문에 난리 피워봤으니까요. 또 새로 온 사람이 잘난 척하고 설치면 나도 한 때 잘난 척하고 설쳐봤으니까 그걸 잘 아는 거예요. 옛날 내 생각을 해보면 그런 모습이 재미있잖아요.(모두 웃음) 

 


 

빙긋이 웃으면서 보세요. 비웃는 게 아니라 빙긋이 웃으면서 ‘아이고, 그러시냐’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요. 그리고 너무 많이 가르치려 들지 말고, 들어준 뒤에 ‘아이고, 그렇긴 한데 이 정도는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어떠세요. 저도 옛날에 그런 적이 있었고 저도 그때는 광분했는데 이걸 이렇게 해보니 조금 낫더군요’ 이렇게 이야기해주세요. 조금만 해야지 한꺼번에 너무 많이 하면 안 돼요. 상대가 느낄 때는 ‘그래, 너 잘났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스님이 그러면 아무 말도 안 하다가도 여러분들이 그러면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런 소릴 하냐’ 이렇게 나오기 쉽거든요. 이렇게 해나가면 누구나 다 법사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스님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 것보다 수련 중에 여러분끼리 소감을 나누니까 더 재미있고 감동이 있었잖아요. 그게 불법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도반은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수행의 전부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도반끼리 서로 나누고 탁마하고 나아가는 게 수행이에요. 어떤 큰스님 밑에 줄 서서 수직적으로 가는 것은 추종입니다. 그것으로 자기 공부가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법륜 스님의 추종자가 되면 안 되고, 부처님의 추종자가 되어도 안 되고, 부처님 법을 받아들여서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나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의지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내가 잘났으니 네 말을 안 듣겠다’ 이런 게 아니라 점점 의지할 바가 없어집니다. 그래도 우리가 늘 의지해야 한다면 오직 부처님께 의지해야 하고, 부처님 법에 의지해야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이게 불법승 삼보예요. 그렇게 정진해 나가신다면 참 좋겠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에요. 수행이 그렇게 쉬우면 누구나 다 하죠. 부처님은 수행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라고 표현했어요. 낙숫물로 바위가 안 뚫어집니다. 그러나 뚫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가능해요. 그러나 쉽진 않아요. 어려워요. 다시 말해 가능은 하지만 어려워요.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가능은 하지만 어렵습니다. 어려워서 사람들이 자꾸 포기하니까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게 되는 것인데, 수행자는 어려운 줄 알지만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서 자기 삶을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방금 전 대표님, 처장님, 여러 법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분들도 다 옛날에는 여러분들과 똑같거나 어쩌면 더 헤맸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꾸준히 수행해온 거예요. 꾸준히 해오면서 하나하나 극복해서 지금은 여러분들보다는 훨씬 앞에 가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닙니다. 온갖 고비를 넘으며 한 발 한 발 거기에 다가간 거예요. 스님도 긴 시간 동안 온갖 환난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얼른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위기에 처하면 굉장히 강합니다. 겪어볼 거 다 겪어봤으니까요. 한 끼 안 먹으면 여러분이나 저나 배고픈 게 똑같지만 열흘 안 먹으면 여러분과 저는 태도가 확 다릅니다. 저는 겪어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꾸준히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금방, 단방에, 빨리’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해 나간다면 여러분들도 다 붓다와 같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법사가 되셔야 해요. 그래서 앞으로 새로운 시대, 도래하는 2차 만일결사에 여러분들이 다 법사가 되어서 외국인들을 맞아줘야 합니다. 교리를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할 필요가 없어요. 오면 그저 ‘오셨어요?’하고 환영인사를 해주고, 절하도록 해주고, 물으면 대화해주고, 차나 한 잔 내어주면 됩니다. 무슨 교리를 외워서 많이 이야기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지식은 남아도는 시대에요. 지식은 이제 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저한테도 물을 필요가 없어요. 네이버나 구글에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이제는 인격적으로 사람을 감화시켜야지, 무슨 교리를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런 걸 아셔서 정토행자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에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되셔야 해요. 아마 10년, 20년 지난 뒤에 보면 ‘내 인생에 제일 잘 한 게 정토회 만난 거다’라고 할 겁니다. 옛날에는 남편 잘 만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정토회 만난 것이라고 말할 시대가 곧 올 거예요.(모두 웃음) 

 


 

저도 어릴 때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스님 되기가 정말 싫었는데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보니까 그래도 내 인생에 부처님 법 만난 게 가장 잘 된 일이고 그 법 만나도록 인연 맺어준 스승님이 가장 소중해요. 그렇게 되도록 우리 같이 해봅시다. 부지런히 정진합시다. 수고들 하셨어요.”(모두 박수)

 

단박에 이루려고 하지 말고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수행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되새겨 준 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대중들은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해외지부 총무단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예상보다 조금 일찍 마쳐서 스님은 “한국에 왔는데 계곡이라도 한번 구경하고 가야지”라며 대중들을 이끌고 용추계곡으로 향했습니다. 

 

용추계곡에는 어제까지 비가 많이 내려서 물이 아주 세차게 흐르고 시원한 냉기가 가득했습니다. 특히 무더운 나라인 동남아에서 온 총무님들은 “에어컨을 틀지도 않았는데, 자연 속에서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게 너무 오랜만이다”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 용추계곡

 

스님의 뒤를 따라 계곡 옆으로 난 산길을 30분 남짓 오르니 드디어 용추폭포가 나타났습니다. 

 

용추폭포는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다시 용추폭포를 바라보니 정말 그런 모습인 것 같았습니다. 

 


 

폭포 앞의 너른 바위에서 다함께 사진을 찍은 후 잠시 시원한 바람을 쐬다가 계곡을 내려왔습니다. 

 


 

원래는 선유동계곡까지 더 구경할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가보지 못하고 곧바로 저녁식사를 하러 이동했습니다. 저녁식사 후 대부분의 해외지부 총무단은 내일부터 10일 간 명상수련을 참가하기 위해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들어갔고, 스님은 내일 새벽 5시에 서울에서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서울로 향했습니다. 

 

<덧붙여>

 

스님은 내일(7월 6일)부터 8월3일까지 대중들의 명상수련을 지도하며 하안거 묵언 수련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스님은 7월1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는데, 명상수련이 끝날 때까지 단식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명상수련과 하안거 묵언 수련 기간 동안에는 스님의 하루도 묵언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수련이 모두 끝나는 8월 3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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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o0411

글만 봐도 마음이 청정해지는 느낌이네요. 소박하고 깔끔하게. 내 주변도 내 마음도 ^^

2016-10-18 16:21:39

ㅁㅁ

정토회 불교대학 좀 다녔는데 시비분별이 좀 유별나신 분들이 많아서 피곤하더군요.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너무 집요하게 물고늘어져서 혼났습니다. 그날 엄청 데인이후로 안나갑니다.
물론 그분이 수행한지 얼마 안되는분인거 아는데도 적응이 안되더군요.

2016-08-20 19:02:46

우미영

스님의하루가 언제쯤 다시 올라오나요? 카톡이 계속 안 오고 있어요. 스님 묵안 명상도 8월1일에 끝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6-08-05 06: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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